135 각개 전투(1)
혈사회, 그리고 거래를 중개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군인들은 바로 차량에 탑승해 북쪽으로 도주했고, 아크럼은 거래 장소에 남아 헌터들을 막으며 지연 작전을 펼쳤다.
“…….”
힐끔 한율 일행과 충돌한 검은 가면을 확인한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 이연희가 자신의 기습 공격을 막아 낸 회색 가면을 바라봤다.
“에휴.”
황급히 방패를 꺼내 공격을 튕겨 냈던 회색 가면이 번갈아 방패를 잡으며 손을 털고 이연희를 바라봤다.
“어, 안녕하세요?”
“…….”
“찾으시는 분이 있으면 제가 밀고해 드릴 수 있는데.”
“……검은 가면, 주무기는 단창. 능력은 불.”
“아. 아쉽게도 이 자리에는 안 계십니다. 나중에 발키리 길드장이 찾았다고 전해 드리면 될까요?”
가면 아래에 보이는 입이 호선을 그렸다.
파앗!
이연희는 그 미소를 확인하자마자 흐릿한 잔상을 남긴 채 사라졌고, 회색 가면은 다시 양손으로 방패를 들었다.
빠르게 마나를 풀어 위치를 확인한 회색 가면이 우측으로 몸을 틀며 방패를 내밀었다.
콰앙!
A급 헌터, 이연희.
이연희가 바닥을 구른 회색 가면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패를 드는 모습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치.”
“아오. 씨.”
대답 대신 회색 가면이 다시 한번 손을 털고 이연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도와주십니까?”
“……!”
자신을 바라보며 말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한 것이다.
마나를 개방한 이연희가 제자리에서 반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콰앙!
검과 검이 충돌하며 일어난 거대한 폭발.
이연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어느새 그녀의 뒤에 나타나 롱소드를 휘둘렀던 검은 가면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
“…….”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것도 잠시, 이연희는 자신이 찾는 인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즉 적을 제압하기 위해 앞으로 튀어 나갔고, 롱소드를 쥔 검은 가면은 포위망을 무너트리고 도망치기 위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아앙!
“오우.”
검과 검이 충돌했는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난다.
몸을 부르르 떤 회색 가면, 소름이 쫙 끼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뒤로 물러서던 그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도를 사용하는 검은 가면과 그의 광신도들이 마탑…….
“……마탑이 맞나?”
캡이 있고, 망치를 무기로 사용하는 라이트닝이 있다. 활을 다루는 헌터가 있고 총기를 다루는 헌터가 있다.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주무기가 총기가 아닌 마법이었지만…….
“은색 어깨 장갑…….”
왼팔에 은색 어깨 장갑을 착용했다.
이연희와 롱소드를 다루는 검은 가면이 충돌할 때에는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던 회색 가면이 다른 의미로 몸을 부르르 떨고 백색 가면들에게 수신호를 내렸다.
후퇴.
검은 가면이 A등급 헌터, 그리고 B등급 헌터들의 발을 묶고, 무력이 떨어지는 백색 가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
회색 가면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는 백색 가면을 확인하고 다시 전장을 살폈다.
모두 상대가 있다.
자신만 빼고.
그렇다면…….
회색 가면이 자연스럽게 배낭을 열고 준비해 둔 백색 가면을 꺼냈다. 하지만 그는 가면을 교체하지 못했다.
“…….”
어느새 맞은편에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군인.
“어,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회색 가면이 군복 상의, 왼쪽 가슴에 부착되어 있는 V마크 세 개를 보고 다시 미소를 그렸다.
“상사님이군요. 고생하십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방긋 웃으며 말을 받은 대한민국 상사, 강찬혁이 이를 바득 갈았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고, 회색 가면은 백색 가면을 내팽개치고 방패를 들어 총알을 튕겨 냈다.
“그쪽이 여기서 거래질하지 않았으면 고생도 안 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 하하.”
최소 B등급.
마나를 주입한 총알이 마나를 주입한 방패와 충돌해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박혀 버렸으니까.
“안 잡으시나요?”
“뭘?”
“중국이요.”
“아아. 그쪽도 이미 사람 갔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방긋 웃으며 대답한 강찬혁 상사, 그가 앞으로 튀어 나가며 방아쇠를 당기자 방패를 내밀고 있던 회색 가면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
“애들은?”
습격 소식을 듣자마자 장갑차에 올라 북쪽으로 도주하던 친타오의 물음에 뒷자리에 앉아 무전기를 조작하던 책사가 대답했다.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제압 또는 사살당한 것 같습니다.”
“아오!”
S급 헌터가 자리를 비우며 최대 A급, 최소 C급 헌터들이 군사 분계선으로 모였다. 그래서 거래를 진행하기 전에 몬스터를 군사 분계선으로 유인해 적들의 시선을 묶고 거래를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거래가 끝난 뒤니까.”
거래가 끝난 후에 습격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산은 이미 마친 상황.
왼손에 들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매만지던 친타오가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창문을 내린 그가 차량 밖으로 권총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타앙!
퍼억!
기습을 통해 차량을 뒤집을 생각이었는지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친타오의 공격에 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야! 막아!”
운전석에 앉은 수하는 움직일 수 없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책사 또한 마찬가지다.
장갑차에 탑승한 혈사회 소속 헌터는 총 여덟 명.
창문을 내린 헌터 여섯이 창틀에 소총을 올렸다.
조준?
타타타탕! 타타탕!
없다. 그냥 방아쇠를 당겼고, 매복을 하고 있던 헌터들은 황급히 몸을 날려 나무 뒤에 숨거나 방패를 들어 올렸다.
나무 뒤에 숨어 움직이지 못하는 헌터.
총알 세례를 피하다 보니 속도가 느려진 헌터.
“대체 몇 명이나 쫓아온 거야.”
사이드 미러를 통해 이제는 양옆에서가 아닌 후방에서 달려오는 헌터들을 확인한 친타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빠르게 주변을 스캔했을 때, 시각만을 이용해 확인한 헌터만 해도 열 명이 넘었다.
“거래 현장은?”
친타오가 상체를 틀어 누군가와 연락 중인 책사에게 물었다.
“아크럼 쪽에서 마탑, 그리고 발키리 길드를 막고 있습니다.”
마탑.
알고 있다. 초능력자를 양성할 수 있는 한율이 소속된, 정확하게는 신설한 길드니까.
발키리 길드.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터 길드 중 하나였지만 뛰어난 미녀들이 소속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헌터 길드니까.
“……그럼 얘네는 뭐냐?”
“잘 모르겠습니다.”
“…….”
최소 B등급 헌터들이었다.
“……음?”
인상을 찌푸린 채 상황보고를 듣던 친타오가 무언가를 느끼고 상체를 바로 해 전방을 확인했다.
한 사내가 보였다.
20대 후반으로 추측되는 사내.
이상한 막대기만 들고 있는 사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미친놈으로 치부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헌터들의 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르다.
“꺾어!”
“예?”
“꺾으라고!”
황급히 머리 위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은 친타오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20대 후반의 사내, 그가 막대기를 양손으로 잡고 중단세를 잡았다.
우우웅!
막대기에서 솟아난 푸른색 마나.
마나 소드가 솟아난 막대기를 높이 들어 올린 사내가 위에서 아래로 막대기를 휘둘렀다.
“좌우 산개!”
친타오는 소리쳤고,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수하들은 황급히 좌우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피하는 순간, 막대기 끝에서 솟아난 마나 소드가 길어졌다.
바로 옆을 스쳐 가는 마나 소드.
드르르르륵!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마나 소드에 의해 두 동강이 난 장갑차.
“…….”
저 멀리 운전대를 잡고 있는 수하가 보였다.
“미친.”
B등급인 행동 대장조차 일격에 이 장갑차를 두 동강 내지 못한다.
장비?
아무리 장비가 좋다고 해도 그 장비를 다루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면 장비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슨.
“A등급이 왜 우릴 쫓아와?!”
친타오가 버럭 소리치며 차량에서 튀어나와 20대 후반의 광선검 사용자를 바라봤다.
장갑차를 두 동강 낸 사내, 김건우는 달랐다. 그는 친타오가 아닌 대여 받은 막대기를 바라봤다.
“…….”
그래도 마나 소드 능력을 사용하면 막대기 끝에서 검날, 또는 도날이 솟아날 거라고 생각했다.
김건우가 다시 막대기에 마나 소드 능력을 사용했다.
우우웅!
원통형 푸른 막대기가 솟아올랐다.
검날도, 칼날도 아닌 원통형 막대기.
“아…….”
모르겠다.
작게 한숨을 내쉰 김건우가 뒷걸음을 치는 친타오를 한 번 보고 다시 막대기를 바라봤다.
막대기를 건넨 이대한은 말했다.
숨겨진 능력이 있다. 그런데 각성 능력을 높여 주는 능력이 아니라 스킬이어서 시전어가 있다.
“하아.”
중국의 각성 범죄자 조직, 혈사회의 주인 친타오는 ‘위기 예언’이라는 능력을 각성해 수많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적대 조직의 공격을 피해 무력이 부족함에도 국가가 감시하는 거대한 범죄자 조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각성 범죄자는 아니지만 붙잡거나 사살하면 중국은 한국에게 빚을 지게 된다.
그러니 사용해야 한다.
“하아아아!”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쉰 김건우, 그가 친타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임 유어 파더.”
이름: 마나 소드.
설명: 김지현이 제작한 마나 소드.
효과1: 마나 소드 마법 효과 18% 증가.
효과2: 아임 유어 파더(상대를 추적할 수 있다).
***
김건우의 마나 소드만 있느냐.
아니다.
한율이 이대한에게 선물 받은 은색 어깨 장갑에도 숨겨진 능력이 존재했다.
이름: 한율의 장갑(250).
설명: 한율을 위해 김지현이 제작한 어깨 장갑.
효과1: 피해 20% 감소. 마법 효과 25% 상승.
효과2: 피해 15% 감소. 신체 강화 효과 40% 상승(착용 부위 한정)
처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착용과 함께 마나를 부여하는 순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숨겨진 능력을 확인했다는.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좋다. 왼팔 한정이지만 피해 감소 효과가 기존 효과를 더해 35%가 되었고, 왼팔 한정이지만 마나를 사용해 신체를 강화할 경우 1.5배 상승하는 것이니까.
“진짜 마약 같은 장비다. 마약 같은 장비.”
효과가 너무 좋아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장비.
타인의 장비를 감정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오랫동안 사용하면 ‘마법사 한율’이 아닌 ‘윈드 워리어 한율’로 불릴 게 뻔하지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장비!
한숨을 내쉰 한율이 황급히 몸을 틀면서 왼팔을 뻗었다.
콰앙!
도를 휘두른 검은 가면이 뒤로 튕겨 나갔고, 왼팔을 들어 공격을 막은 한율 역시 뒤로 튕겨 나갔다.
“허. 허허…….”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안전하게 착지한 검은 가면이 칼을 어깨 위에 짊어진 채로 웃음을 흘렸다.
“마법사 맞아?”
“닥쳐. 나도 내 정체성이 헷갈리기 시작했으니까.”
무의식에 가까웠다. 검은 가면과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몸을 틀어 안전하게 착지한 한율이 그의 말을 받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
이대한, 문수원, 김세혁…….
아니, 이대한이나 문수원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면 후방에서 마법만 팡팡 쏴 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대한도 문수원도 모두 회색 가면을 착용한 아크럼 소속 헌터들에게 묶여 검은 가면과 정면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