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세상에서 가장 바쁜 헌터(2)
‘와씨.’
놀랐다. 그것도 무지 놀랐다.
성향을 본다는 사실을 통해 하양이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줄이야.
‘평범하게 반응했어야 했는데.’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놀라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자신의 능력을 마법으로 공개한 사실, 그리고 스킬창은 타인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꾸몄다.
정령 소환 마법진을 공개할 때처럼.
‘오히려 좋은 건가?’
일찍 하양이와 정령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나중에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 정말 ‘마법’인지 의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벌써 기사가 올라왔군요.”
옆에 서 있던 김세혁 헌터의 말에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대로 벌써 ‘한율과 계약한 페밀리어, 하양이의 정체는 정령’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왔다.
“뭐, 잠깐 반짝하다가 사라질 뉴스니까 무시하세요.”
“그렇습니까?”
“간단하게 정리하면 마법사와 계약한 정령. 더욱더 간단하게 설명하면 재능만 있으면 마법사도 정령사가 될 수 있다가 전부니까요.”
“…….”
하양이의 정체가 공개되면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뿐이다. 마법사도 정령 소환 마법을 이용해 정령사의 자질을 확인하는 것이다.
“뒤늦게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일단 최초라는 수식어는 한율 님에게 넘어갔습니다.”
“뭔 최초요?”
“최초의 정령사.”
“…….”
“거기다 헌터들 덕분에 하양이가 최초 등장할 때보다 성장했다는 사실도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죠.”
“……정령사들이 몰려온다?”
“몰려오지 않겠습니까. 정령사의 성장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귀찮아지기 전에 밝혀야겠네요.”
“성장 방법 말입니까?”
“네.”
“뭡니까?”
“아시잖아요.”
“……?”
알고 있다?
잠시 한율을 바라보던 김세혁 헌터가 한율과 하양이, 김세연과 정령, 김세후와 정령을 떠올리고 물었다.
“자연의 마석?”
“네. 그리고 소환 시간 정도? 저는 자연의 마석을 흡수키시고 자주 소환했어요.”
“그렇군요.”
누구나 알 법한 정석이다.
김세혁 현터는 김빠진 표정이 되었다.
띵동.
천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한율이 김세혁 헌터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회의실로 이동했다.
덜컥, 끼이익.
문을 열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뒤이어질 내용이 너무도 뻔했기에 한율이 먼저 물었다.
“하양이 정체를 알고 있었냐고요?”
“그래. 정말 최근에 알았냐?”
“저도 정령 소환 마법으로 소환한 정령에게 들었거든요. 뭐, 대충 정령이 아닐까 의심하기는 했지만.”
“어째서?”
“하양이는 바람 속성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커피는 땅 속성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키니까요.”
정해진 속성 마법의 효과만 증폭시키는 패밀리어.
확실히 정령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협회장 김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넘어갔다고 판단한 한율이 회의실을 둘러보며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고 사람이 많네요?”
“S급 헌터 두 명이 붙어서 하던 일을 마법사라고 해도 A급 헌터 한 명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눈을 반짝이는 여성과 시선이 마주치자 손을 흔드는 남성을 보고 다시 물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인 이유는요?”
“그래도 친분이 있는 길드와 함께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었냐?”
“아뇨. 감사하죠.”
한율은 발키리 길드장 이연희와 레온 길드장 백호준에게 인사를 하곤 빈자리에 앉았다.
“그럼 시작하지.”
김환성이 바로 회의 진행을 맡은 직원에게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현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헌터 연합, S급 헌터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헌터 연합은 아프리카 연합, 그리고 중국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S급 헌터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으니, 상당한 추가전력의 지원이 있을 예정입니다.”
2차에 이어 3차 게이트 변화까지 일어났다.
그것도 반년 만에.
S급 헌터라면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헌터 연합은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집단이 되었다.
만약 또다시 A급 게이트가 폭주한다면 S급 헌터만이 이를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S급 헌터가 없다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헌터 연합은 각 국가에서 최소 두 명을 차출하기로 협의했습니다. 단, 한 국가의 S급 헌터가 2명이라면 1명만 차출하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한국은 두 명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설명을 하던 직원이 한율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한정적 S급 헌터로 분류할 수 있는 한율 님이 한국 소속 헌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기에 다들 쉽게 수긍했지만, 한율은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물론,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한율 님은 조건에 부합해야만 S급 힘을 발휘하는 한정적 S급 헌터니까요. 그렇기에 가능한 많은 S급 헌터의 도움이 필요한 중국, 아프리카 연합은 한국 정부에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S급 헌터 두 명을 파견해주면, 그들도 S급 능력자를 파견하겠다는 제안입니다. 물론 그들은 전투 관련 헌터가 아니며, 그 능력은 전해드린 자료에 써진 대로 제작에 특화되어있습니다.”
받은 자료를 살피자 확실히 영약 조제사와 대장장이로 분류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조용히 설명을 듣던 백호준이 손을 들고 물었다.
“전투 전문 헌터 파견을 대가로 제작 특화 능력자를 파견한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허면, 다른 국가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것 같은데요.”
“당연히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중국은 타 국가에도 파견은 하되, 최초 파견 국가로는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왜죠?”
“제작 능력자들이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제작 능력자가?”
“예.”
이유가 뭘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인위적으로(?) 초능력자를 육성할 수 있는 마법사를 보유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마법?”
“제작 능력자들은 마법과 능력을 조합하면 더 좋은 영약, 더 좋은 장비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해 보게 된다면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작 능력자들이 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너무 자세하다. 그리고 노골적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연희의 물음에 답한 직원이 한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한율 님?”
“네.”
“마탑에 남는 방이 있을까요?”
남는 방?
한율이 고개를 갸웃하자, 직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 설명을 이었다.
“제작 능력자들은 마탑에 머무르며 활동하고 싶다며 전해왔습니다.”
“협회가 아니라요?”
“네. 마탑입니다. 대신, 최우선까지는 어려워도 마탑의 의뢰를 우선적으로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방을 빌려주고, 제작 능력자들을 돕는 대가로 그들의 작품을 우선하여 받을 수 있다.
나쁘진 않다. 나쁘진 않은데…….
한율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시간이 날까요?”
“시간이요?”
“네.”
협회 직원은 당황했다.
설마 시간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스케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다.”
“일단 5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아침 수련하고, 씻고 밥 먹고 9시에 1서클 마법사를 가르칩니다.”
오전은 가장 중요한 마법사 육성에 쏟아붓는다.
“점심을 먹고 게이트 활동을 합니다. 아, 이번 협회의 의뢰를 생각하면 북한 영토 경비 임무겠네요.”
오후에는 게이트 활동, 아니 협회 의뢰다.
소홀히 할 수 없다.
“뭐, 그렇게 일을 마치고 마탑으로 복귀하면 저녁 먹고 아티팩트 제작, 주문서 제작 그리고 연구실을 방문하는 1서클 마법사들에게 개인 교습.”
저녁에는 주문서 및 아티팩트 제작을 하며 그와 동시에 연구실을 방문하는 1서클 마법사들 보충 수업.
“……그 저녁 몇 시까지 작업하시는지.”
“새벽 2시까지?”
“…….”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그 정도로 한율의 스케줄은 끔찍했다.
질문을 던진 협회 직원은 물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질색한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봤다.
“안 쉬냐?”
“주말에는 쉬겠죠?”
“왜 의문사냐?”
“협회 의뢰잖아요. 주말에 쉴 수 있어요?”
김환성은 물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의자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댄 채 힘을 쭉 뺀 한율이 입을 열었다.
“뭐, 조율해서 주말에 시간이 생겨도 어려울걸요.”
“……왜?”
“마법사 지망생들 가르쳐야 하니까요. 아마 제작 헌터들과 연구하는 시간은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것도 1시간에 한 번씩? 아니다 30분에 한 번씩 방해를 받으면서 해야 할걸요.”
“…….”
“그래도 오케이라고 하면 저도 제작 능력자들의 연구를 돕겠습니다.”
***
회의 도중에 날아온 김환성의 문자에 이강혁이 그대로 굳어졌다.
“…….”
“왜 그…….”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문자를 읽는 이강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던 채현수가 그의 스마트폰, 정확하게는 김환성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똑같이 입을 쩍 벌렸다.
한국 헌터 협회에서 파견 대책회의를 하는 중이고, 그 회의에 한율이 참가했다는 소식에 S급 헌터들은 회의 내용을 공유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의 회의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강혁은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에 자리한 S급 헌터들, 정확히는 그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고 있는 조제사와 대장장이 능력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디에서 발생한 문제입니까?”
“제작 능력자들의 활동 지역, 아니 정확하게는 제작 능력자들의 제안 쪽에서요.”
마법을 이용해 제작 능력을 성장시키려던 조제사, 그리고 대장장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탑에도 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닙니까?”
“아니, 그건 맞습니다. 맞는데…….”
“……?”
“…….”
“말씀하시죠.”
“시간이 안 됩니다. 한율 헌터가.”
“……예?”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했다. 이강현은 바로 문자를 저장한 후, 그 저장한 문자를 조제사, 그리고 대장장이에게 보냈다.
“…….”
“…….”
의아하게, 또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던 조제사와 대장장이가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침묵했다.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자를 확인하고.
헛것이 보이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자를 확인하고.
잠시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다시 켠 후에 문자를 확인하고.
역시나 현실도피는 좋지 않은 것임을 인식한 두 능력자가 이강혁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사실입니까?”
“예. 한율 님의 공식 일정표입니다.”
“…….”
“……이, 이 사람.”
너무 황당해서 말을 더듬은 조제사가 이강현에게 물었다.
“사람 맞습니까?”
24시간 중에 식사 시간,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헌터로서 활동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S급 헌터들도 이렇게까지 일은 안 한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해 희생하는 헌터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 한율 님이 말씀하시기를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시간이 된다고는 합니다. 계속 방해를 받을 수 있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