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세상에서 가장 바쁜 헌터(1)
1월 말.
한율은 아주 갑작스럽게 마법이라는 기술을 공개한 것처럼 정령 소환 마법을 공개했다.
계약이 아닌 소환이다.
하지만 한율은 말했다. 소환된 정령이 마법진 위에 선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면 먼저 계약을 요청할 것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마법이라는 기술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처럼 사람들은 환호했다. 누군가는 한율을 칭찬했고, 누군가는 한율을 존경했으며, 누군가는 다음 날부터 정령 소환 마법진을 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터 협회로 향했다.
물론 헌터들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봐서 입구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헌터 협회를 방문해 정령 소환 마법진을 이용했다.
하지만 정령 소환 마법진 위에 선다고 해서 모두가 정령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00명 중 1명.
정령 소환 마법진 위에 선 사람 중에 재능이 있는 몇 명만이 정령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만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계약까지 맺었다.
기본적으로 정령 소환 마법진(정령 계약진)은 정령사로서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재능, 그 재능에 이끌려 발동하기 때문이다.
“열두 번째인가?”
1월 23일부터 이용할 수 있던 정령 소환 마법진.
바람의 정령, 참새를 닮은 정령을 소환한 여성의 환한 미소를 카메라에 담았던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뱉자 옆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던 다른 신문사 기자가 대답했다.
“열세 번째.”
“지방?”
“불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 부산이란다.”
제주도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한율은 헌터 협회, 청일 그룹, 그리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차를 타고, 때로는 기차를 타고,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정령 소환 마법진을 설치했다. 그래서 정보로 먹고사는 기자들도 정령사의 탄생이라는 특종을 놓치는 일이 많았다.
혼잣말을 했던 기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바람의 정령사가 된 여성이 마법진 위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다음 이용자가 마법진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오! 외국인.”
마법진을 설치하는 게 끝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 한율은 외국에 정령 소환 마법진을 설치하는 것을 미뤘다.
많은 국가가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한율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서 마법진을 설치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한율에게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에 대한민국의 정치인 그리고 헌터 협회가 먼저 나섰다.
“헌터 한율의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을 파견하면 헌터 한율에게 요청해 보겠다.”
한율이 하는 일은 총 네 가지다.
주문서 제작, 아티팩트 제작, 마법사 양성, A급 헌터로서의 게이트 활동.
A급 헌터로서의 게이트 활동은 자국의 A급 헌터를 보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주문서 제작, 아티팩트 제작, 앞서 말한 일보다 더 중요한 마법사 지망생들을 교육하는 일은 다르다.
마법사만이 가능한 일.
그래서 국가는 고민했고, 미국이 진행한 방법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이벤트였다.
항공사, 그리고 여행사와 협력해 대한민국 여행과 관련된 이벤트를 열었다.
이미 마법사 한율로 인해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국가로 선정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정령 소환 마법진이 설치되고, 그 시기에 맞춰 대한민국 여행과 관련된 이벤트를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속셈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속셈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당했다.
자신에게 정령사로서의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한민국 여행 이벤트 있잖아.”
“어.”
“이벤트 내용이 어떻게 됐지?”
“비행기표 반값 할인이랑 서울에 위치한 호텔 숙박비 30% 할인. 통역사는 당연히 붙고.”
만만치 않은 지원이다.
“역시 미국이라고 해야 하나.”
돈이 참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마법과 정령 소환이라는 마법을 공개한 한율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실패했네.”
외국인은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반응하지 않자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마법진 위에서 벗어났다.
한국인일지, 외국인일지 모른다. 하지만 열네 번째 정령사라는 특종을 잡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들 때였다.
다른 신문사이지만 오랜 기자 생활로 인해 친구가 된 라이벌 기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야, 근데 그거 아냐?”
“뭘?”
“정령 소환 마법진이 범죄자도 잡더라.”
“……범죄자?”
“어. 신분을 감추고 정령 소환 마법진을 사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마법진 위에 올라가기가 무섭게 정령이 나타났어. 문제는 나타난 정령이 그 사람을 위협하고 사라졌고, 그 모습을 목격한 헌터 협회가 조사를 하니 범죄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거야.”
“아! 그러고 보니……”
한율이 언급한 적이 있다. 정령이 아닌 패밀리어였지만.
“정령도 하양이처럼 성향을 볼 수 있다는 거냐?”
“어, 그런 거 같더라. 헌터 협회가 엄청 빠르게 움직인 것을 보면 미리 알고 있던 거 같고.”
“신기하네.”
정령사도 찾고, 나쁜 사람도 찾고.
참 하는 일이 많은 마법이다.
“음?”
성향을 본다.
하양이처럼.
‘아니, 하양이가 먼저 등장해서 하양이를 중심으로 생각해서 그렇지.’
다르게 보면 정령처럼 하양이도 성향을 본다.
‘하양이는 정령인가?’
문득 든 생각에 기자가 새로운 이용자가 마법진 위에 올라섰음에도 카메라를 들지 않을 때였다.
카메라를 들고 정령사의 탄생을 기다리던 라이벌 기자가 아쉬움과 함께 카메라를 내리고 기지개를 켰다.
“피곤해 죽겠네.”
아침에는 마탑, 오후에는 협회.
2월의 첫날부터 체력적으로 피곤한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커피 마실래?”
“…….”
“……?”
라이벌 기자가 고개를 돌렸다. 헌터 전문 신문사, 헌터스의 이세원 기자가 고민에 잠겨 있었다.
“뭐야? 좋은 정보라도 받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정령을 앞에 둬야 하는 건지, 하양이를 앞에 둬야 하는 건지.
아니면 문득 든 생각처럼 하양이는 정령이자 마법사를 돕는 페밀리어가 맞는 건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던 이세원 기자는 라이벌 신문사, 그것도 대기업 한국신문의 양지혁 기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애매하다. 누군가와 의논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특종 냄새가 강하게 나니 다른 사람, 그것도 라이벌 신문사에 다니는 친구와는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아냐. 아무것도.”
일단 일어나자.
정령사 탄생이라는 기사는 독점 기사로 낼 수 없다. 이미 많은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들이 탄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하다고 해도 독점으로 낼 수 있는 기사다.
“……어디 가냐?”
양지혁 기자가 물었다.
“아, 카페.”
“오. 같이 가자.”
카페에서 잠시 친구의 눈치를 살피다가 마탑으로 이동할 생각이던 이세원 기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입가에 그린 자연스러운 미소와는 다르게 그의 눈빛은 특종 냄새를 맡은 기자처럼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양지혁 기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이세원 기자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한율 헌터다!”
“……!”
이세원 기자가 고개를 돌렸고, 양지혁 기자가 고개를 돌렸다.
정령 소환 마법진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물론 정령 소환 마법진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은 움직이지 못하고, 기자들은 움직일 수 있는 점이다.
이세원, 양지혁 기자도 빠르게 달려갔다.
마법사를 육성하는 마법사.
정령 소환 마법진을 공개한 마법사.
노린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헌터보다 외화벌이를 잘하는 헌터.
기자들은 한율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의 본분을 잊지도 않았다.
“한율 헌터. 마법사 지망생들이 마탑에 도착했습니다. 심정이 어떠십니까.”
“첫째 날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열세 번째 정령사가 탄생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방문하신 건가요?”
자신의 질문으로 진행되는 기사를 뽑기 위해 기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무시할 수도 있다.
무시한다고 해서 한율을 대상으로 한 악성 뉴스를 뽑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율은 답했다.
“일이 또 늘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첫날요? 마법 강의했습니다. 제가 외출을 한 후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고요.”
대답을 생각하지 못한 질문은 그냥 넘겼다. 하지만 바로 대답이 생각나면 그대로 전달했다.
“…….”
지금인가?
이세원 기자가 빠르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빠르게 메일을 작성한 그는 보내기 위해 손가락을 올린 후에 점점 멀어지는 한율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양이는 정령입니까!”
“…….”
한율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기자들도 질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방금 하양이와 관련된 질문을 하신 분?”
“헌터 전문 신문사, 헌터스의 이세원 기자입니다! 정령이 성향을 본다는 사실을 듣고 조심스럽게 추측했습니다. 하양이도 정령입니까?”
“네.”
“……패밀리어가 아니라요?”
이세원 기자가 아니다. 전직 육상 선수, 그래서 한율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기자가 물었다.
“페밀리어는 종족이 아니잖아요. 마법사와 계약한 몬스터, 신수 등에 붙는 단어죠.”
“아!”
“하양이가 정령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특종을 놓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들었는지 일단 메일을 전송한 이세원 기자가 다시 묻자 한율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언제 하양이가 페밀리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나요!”
“정령 소환 마법이 스킬창에 생성된 직후요. 정확하게는 정령 소환 마법으로 소환된 정령이 하양이, 그리고 커피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알려 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