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마법사의 탑(4)
타다다다닥.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은갈치 양복이 매우 인상적인 사내.
“흐어, 흐어어.”
지각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본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릎을 잡고 호흡을 고르던 은갈치 청년이 마법사 지망생, 그리고 김세혁 헌터에게 물었다.
“느, 늦었나요?”
“아닙니다. 안내를 맡은 헌터, 김세혁이라고 합니다. 잠시 옆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후우. 다행이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법사 지망생, 김덕배라고 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인 은갈치 청년이 뒤늦게 자신을 소개하고 다른 마법사 지망생들처럼 편의점 유리 창문 앞으로 이동했다.
1분, 2분, 5분.
한 명, 두 명, 세 명.
텀이 조금씩 길어졌지만 홀로 마탑에 도착한 마법사 지망생들이 스무 명으로 늘어나 김세혁 헌터가 다시 무전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띵동.
익숙한 알람 소리.
김세혁 헌터가 고개를 돌렸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던 마법사 지망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총 세 명.
“하, 한율 헌터다.”
“배희연 헌터도 있어.”
“처, 첫 번째 제자도 같이 있네.”
남성 마법사 지망생들은 사람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여성 마법사 지망생들은 달랐다.
“우와.”
“하양이랑 커피다.”
“귀여워어…….”
여성 마법사 지망생들은 배희연 그리고 이유리가 안고 있는 하양이와 커피에 집중했다.
“응? 뭐 하세요?”
편의점 앞에 모인 마법사 지망생들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던 한율이 김세혁 헌터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인력이 부족해서 안내 일을 돕고 있습니다.”
“아.”
정시에 연구실을 나온 게 아니다. 집합 시간까지 30분이 남았을 때 두 사람과 함께 연구실을 나왔다.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일단 여기 계신 분들이라도 먼저 숙소로 안내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반문하며 스마트폰을 꺼낸 김세혁 헌터가 시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협회에 들러야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네. 그럼 지하 수련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계약을 맺었지만, 아직 힘이 불안정해서 협회에 남아 정령과 친해지고 있는 김세연과 김세후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인 김세혁 헌터가 마법사 지망생들을 데리고 기숙사로 향하자 바로 몸을 돌려 강의실로 이동했다.
“오빠.”
“왜?”
“오늘 뭐 해?”
“……뭐 하긴. 강의하지.”
“첫날부터?”
“그럼?”
그럼 뭘 하냐?
한율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이유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입학식?”
***
기숙사를 먼저 들러 캐리어를 내려놓은 마법사 지망생들이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율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거나 사교적 미소를 그렸다.
마법사 지망생들은 단상 위로 올라가 한율과 마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 한율을 바라봤다.
단상 끝에 걸터앉아 마법서를 읽고 있는 한율.
가장 먼저 마탑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방을 선택하고, 가장 먼저 강의실을 찾아 맨 앞자리에 앉은 엘렌이 그런 한율을 빤히 바라봤다.
마법사, 한율.
처음에는 각성을 하지 않아도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공개했다는 사실에 빠졌고, 마법에 입문한 후에는 화려한 마법을 사용해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에 빠져 버렸다.
사랑은 아니다.
존경심.
엘렌이 한율에게 느끼는 것은 존경심이었다.
너무 빤히 바라본 것일까. 엘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한율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그렸다.
“엘렌?”
“……저를 기억하세요? 마스터?”
“유명하잖아요.”
뛰어난 재능이 있어 유명하고, 가족이 S급 헌터여서 유명하고, 연예인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와 완벽한 몸매 때문에 유명하고.
“흣흣.”
존경하는 한율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그 사실이 매우 기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엘렌이 다시 눈을 반짝였다.
“마스터.”
“네.”
“오늘 뭐 해요?”
“강의하죠.”
“……에? 첫날부터요?”
“네. 마법사가 되려고 마탑에 가입한 거잖아요.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도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이고.”
“…….”
엘렌은 물론이고 한율이 입을 열기가 무섭게 귀를 기울이던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미리 준비한 노트와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누군가는 태블릿 PC를 책상 위에 내려놓을 때였다.
“쌤.”
마스터가 아닌 쌤.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 도착한 걸까. 한국의 마법사 지망생, 유아리가 엘렌의 옆자리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편의점이요.”
“네.”
“무료 시설이라고 하는데 진짜인가요?”
“……오, 누구한테 들었어요?”
“김세혁 헌터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맞아요. 재고 파악, 그리고 지출액 파악을 위해 직원은 두겠지만 마탑 소속이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정말 환하게 웃는 유아리.
한율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엘렌, 유아리, 류페이, 그리고 일본의 중환자 소년과는 다르게 기억이 강하게 박힌 한 사람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색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내.
한율은 그 사내를 빤히 바라봤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스스로를 가리키는 사내.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고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자 바로 물었다.
“어떻게 좋은 방법이라도 떠오르셨어요?”
“……기억하십니까?”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바로 연구를 시작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일이잖아요.”
중요한 일이라는 한율의 강조에 주변에 있던 마법사 지망생들이 쓰윽 고개를 돌려 은갈치 양복의 사내, 김덕배를 바라봤다.
“어, 일단 생각나는 건 전부 적어왔습니다.”
“포션을 이용한 생명력, 성장 속도 상승 말고?”
“네.”
“호오.”
한율이 짧은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전부 도착했습니다.
모든 마법사 지망생들이 강의실에 모였다는 무전 때문이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네.”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단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한율이 거래창을 열어 마법서를 회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긴 한율이 단상 중앙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등등.
“그러면.”
한율이 입을 열었다.
사용한 언어는 한국어.
“바로 강의를 시작할 생각이니 필기하실 분은 지금 당장 준비해 주세요.”
첫날부터 마법 강의를 한다는 한율의 말을 듣고 노트를 꺼내고 태블릿 PC를 꺼낸 마법사 지망생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마법사 지망생이 강의 준비를 갖춘 것은 아니었기에 한 소년이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저 필기구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다녀와도 될까요?”
“책상 서랍에 노트와 펜이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마법사 지망생은 책상 서랍을 확인해 바로 필기구를 꺼내 수업 준비에 들어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한율은 마법사 지망생들에게 마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마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했다.
“마법이 무엇인지, 마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 저절로 2서클이 생성될 겁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시고요. 질문 있으신 분?”
“옙! 2서클 마법은 언제 배울 수 있나요?”
한 마법사 지망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한율은 단상 위에 설치한 거대한 보드를 바라봤다.
그 안에는 오늘 강의한 내용으로 빼곡했다.
지울까?
잠시 고민하던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학생 중에서 한국인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듣고 쓰는 것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그러네요.”
잠시 침묵하는 순간 칠판 쪽으로 눈을 돌린 마법사 지망생들이 다시 한율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제가 많이 바쁩니다.”
몇몇 마법사 지망생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 마법사 지망생들이 올 것이 왔다는 듯이 한율을 빤히 바라봤다.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몇몇 마법사 지망생들은 마법사, 한율이 자신들에게 투자하는 시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합니다. 2서클에 오른 분이 나타나면 9시부터 11시까지 1서클 마법사들의 교육, 11시부터 12시까지 2서클 마법사들의 교육을 진행합니다.”
짧아도 너무 짧다. 그래서 몇몇 이들이 아쉬움을 느낄 때, 한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후 1시부터 저는 게이트 활동을 시작, 저녁 6시에 끝냅니다. 그러니 대충 7시 즈음에는 길드로 복귀하겠죠?”
그럼 7시부터 다시 강의를 하는가?
“그리고 복귀한 저는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힐 것 같습니다. 그러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구실로 오세요.”
강의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부를 도와주겠다.
“그럼 1서클 마법사들은 강의를 마치고 뭐 하느냐. 당연히 공부입니다. 강의실 옆에 사지방이 있습니다.”
“사지방?”
특이한 줄임말에 여성 마법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남성 마법사들, 그것도 몇몇 남성 마법사들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거나 질색한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봤다.
“사이버 지식 정보방. 줄여서 사지방입니다. 인터넷…… 아니, 인트라넷에 올려놓은 강의를 들을 수 있죠. 오늘 강의한 내용도 영상으로 제작해 올릴 겁니다. 정리하면…….”
한율이 칠판을 돌렸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강의. 12시부터는 자유 시간. 공부를 하든 놀러 나가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본관 우측, 수련장에서 마나 호흡법을 외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련에 도움이 되는 마법진을 설치했으니까요. 하지만 3서클부터는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1서클과 2서클 마법사는 사람이 붙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면 마법진이 자동으로 발동해 도움을 주지만 3서클부터는 사람이 붙어야 하니까요.”
3서클.
아직 1서클에 불과한, 그것도 본격적인 강의 내용을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한 그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율은 3서클을 언급한 후에 아직 필기를 마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다시 칠판을 돌렸다.
“공부를 하든 놀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3개월마다 시험을 볼 겁니다. 필기시험, 실기시험.”
“…….”
합격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저도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기준점을 어떻게 매겨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준점으로 잡은 것이 반년마다 새로 가입하는 마법사 지망생들입니다.”
1서클 마법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9월 시험. 만약 9월 시험에서 6월에 가입한 마법사 지망생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마법사 지망생은 그대로 탈퇴 서류를 받게 될 것입니다.”
너무하다?
아니다. 한율은 6개월이라는 유예 기간을 주었으며, 기준점을 새로 들어온 마법사 지망생들로 잡았다. 그러니 너무하다고 볼 수 없다.
후배보다 못한 선배는 그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