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마법사의 탑(2)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를 머릿속에 저장하던 배희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끼이익.
저벅저벅.
“……와씨. 한 시간이다, 이놈들아.”
엉망이 되어 버린 연구실을 보고 중얼거리는 한율.
잠시 한율을 바라보던 배희연이 다시 고개를 돌려 강아지, 하양이와 고양이, 커피가 잠을 자는 모습을 지켜봤다.
“왔어? 오셨어요?”
“오빠. 너무 귀여워요.”
“내가?”
“…….”
정색하며 바라보는 두 여성.
어깨를 으쓱한 한율, 그가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두 여성 옆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는 하양이와 커피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악마 같은 놈들.”
한 시간이다. 마법사 지망생들과의 만남이 가까워져 샤워를 하기 위해 5층으로 이동하고 겨우 한 시간 만에 연구실을 폭풍이 몰아친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빠. 이렇게 귀여운 악마가 어딨어요.”
“정정하시죠.”
“……지금 쟤네들이 한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세요?”
“애들이잖아요.”
“정정 안 합니까?”
용서하라는 이유리와 사과하라는 배희연.
내 편이 한 명도 없다.
한율은 귀여운 외모로 사람의 혼을 빼먹는 두 정령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 보자.’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 시각까지 30분 정도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강의실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소한 문제가 발생해도 5분 남짓.
“아, 오빠.”
25분 동안 인터넷 뉴스나 살펴볼까 하던 한율이 이유리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왜?”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아프리카, 중국.”
“아. 아아.”
1월 중순.
대한민국 A급 게이트를 소멸시킨 한국으로 중국과 아프리카 연합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A급 몬스터, 그것도 A급 게이트의 일반 몬스터가 아닌 가디언 몬스터를 압도하던 한율의 힘을 빌리기 위해 A급 게이트의 폭주를 막아 내지 못한 중국과 아프리카 연합 측에서 사람을 보낸 것이다.
한율은 당연히 거부했다. 가디언 드레이크와의 전투 당시에 보여 주었던 힘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아주 잠시나마 사용할 수 있던 힘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아프리카 연합?
믿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또한 한율의 거절을 기꺼워했다.
물론 겉으로는 외교적 수사를 곁들였지만, 적극적으로 외교적 압박을 막아냈다.
그렇게 줄다리기가 이어지자 한율은 당시 레이드에서 보였던 힘이 일시적이었던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 연합이 보낸 사람들과 함께 B급 게이트로 이동해 본 실력(?)을 발휘했다.
5서클에 올라 분명 뛰어난 무력을 선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A급 게이트의 가디언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존나 귀찮았지.’
그렇군요. 방송에서 언급된 것처럼 순간적으로 얻은 힘이군요.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설득을 위해 A급 헌터를 대동한 채 방문한 아프리카 연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중국 측은 달랐다. 그들은 실력을 공개했음에도 믿지 않고 소리쳤다.
힘을 감추고 있는 거다.
중국에서 막아 내지 못하면 중국에 나타난 몬스터들이 한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 싸우는 것이 무서워 실력을 감추는 거냐.
한율은 그런 중국 측의 반응에 등급 심사에 사용하던 측정 구슬은 물론 드레이크의 사체까지 이용해 다시 한번 실력을 공개(?)했다.
“진짜 아까웠지.”
참고로 일반 A급 몬스터로는 믿지 않을 것 같아 대한민국, 그리고 헌터 협회는 가디언 드레이크의 비늘을 잘라 제공했고, 한율은 그 비늘에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5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응? 뭐가요?”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아프리카와 중국은 또 왜? 끝난 거 아니었나?”
“…….”
이유리는 물론 배희연까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은 모르고 있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
한율이 그런 두 사람에게서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고자 할 때, 책상 위에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우우웅. 우우웅.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들었다.
[김환성 협회장님]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잠시,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두 여인과의 대화를 떠올린 한율이 바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네, 협회장님.”
-뉴스 봤지? 언제 갈래?
“……뉴스?”
-안 봤냐?
“그거 볼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할 일도 많은데.”
마나, 마법을 공부한다.
주문서를 제작한다.
아티팩트 제작 연습을 한다.
포션 조제 연습을 한다.
언소월에게 배운 분심법에 대해 공부한다.
언소월에게 받은 강시 조종술의 숙련도를 높인다.
이 외에도 많다. 마법사 지망생들을 위한 교육 준비도 있고, 정령들의 성장을 위해 정령술과 마법을 조합하는 훈련도 있다.
“와! 이게 사람 사는 건가.”
-뭐?
“아뇨.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헌터 연합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헌터 연합.
전 세계 S급 헌터들이 가입하는 헌터 연합.
“아프리카? 중국?”
-알고 있네.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이유리는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뭘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중국과 아프리카를 언급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직후 김환성, 그와의 통화에서 헌터 연합이 나왔고.
그럼 답은 나온다.
헌터 연합에서 아프리카와 중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헌터 연합은 중국, 아프리카의 피해가 너무 크다고 판단, 그리고 이대로 방치하다가 또 한 번 A급 게이트의 폭주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보고 지원을 결정했다.
“흐음. 글쿤요.”
-그래.
“…….”
-…….
“그런데요?”
-응?
“S급 연합이 지원을 결정한 거죠?”
-그렇지.
“그런데 왜 제게 연락을?”
A급 게이트의 가디언조차 압도하던 힘은 사라졌다. 또한, 중국 측 덕분에 측정 구슬을 사용해 공식적으로 결정된 신규 등급은 A등급이다.
상성에 따라 한정적으로 S급 헌터의 힘을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한율의 헌터 등급은 A등급이었다.
“설마 저한테 요청했어요?”
-아, 그건 아냐. 인터넷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네 헌터 등급은 A급이니까. 실제로 헌터 연합에서도 공식적인 네 등급, 그리고 네가 하고 있는 일 때문에 한정적으로 S급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번 지원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흐음.”
제외하기로 결정했는데 자신에게 연락을 했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나 봐요?”
-강현이만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
대한민국의 S급 헌터는 두 명이다.
검의 주인, 이강현.
변신 능력자, 채현수.
“……근데요?”
-몇몇 나라에서 A급 헌터지만 S급 헌터로 봐도 무방한 헌터가 있으니 두 사람 모두 움직일 수 있지 않냐고 묻더라고.
“…….”
한정적 S급 헌터, 한율.
“……어느 나라가요?”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
A급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중국과 아프리카다.
S급 헌터들의 지원이 간절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나라의 안전을 위해 지원을 요청한 나라의 안전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인상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응?”
김환성은 연락했다. 두 나라(아프리카 연합은 나라가 아니지만)의 불쾌한 요청을 듣고 난 후에 자신에게 연락했다.
“받아들였어요?”
-그래.
“……대체 왜?”
-보상이 좀 크더라고.
“아무리 보상이 커도 그렇지. 두 명밖에 없는 S급 헌터들을 전부 지원 보…….”
-북한 영토 수복을 위한 A급 헌터 지원. 그리고 중국과 아프리카 연합 소속인 S급 제작 능력자들을 3개월…….
“……체류?”
-체류. 지금 메일 하나 보냈거든. 그거 봐 봐.
컴퓨터 앞으로 이동한 한율이 스피커 모드를 누른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았다.
메일을 확인해 보니 헌터 협회가 아닌 김환성의 아이디로 날아온 메일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메일을 클릭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장의 사진.
이름: 삼엽초 환약.
설명: 약초 조제사, 핫신이 마나를 흡수하고 자란 영초, 삼엽초로 조제한 환약.
효과: 신체 강화(5~8%).
이름: 드레이크 가죽 갑옷.
설명: 대장장이, 순신이 제작한 드레이크의 비늘과 가죽을 사용해 완성한 갑옷.
효과: 피해 35% 감소. 화염 피해 20% 감소. 마나 주입 시 피해 5%, 화염 피해 10% 추가 감소.
영약의 효과가 늘어났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분명 설명란에 ‘삼엽초’라는 영초의 이름만 들어가 있는데 핫신이라는 능력자의 손이 닿자 수천만 원에 판매되는 영초에 버금가는 효과를 지닌 영초, 아니 환약이 되었다.
장비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도 아닌 세 가지 효과가 있는 장비.
“음? 드레이크 가죽 갑옷?”
-진심으로 설득할 생각인지 직접 데려왔더라.
“순신이라는 제작자를요?”
-그래. 뭐, 장비를 제작하고 바로 돌아갔지만.
“…….”
3개월이다. 하지만 그 3개월간 헌터들의 빠른 성장을 도와줄 제작자, 그리고 조제사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다.
헌터 협회가,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왜 헌터 연합의 불쾌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도 두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죠?”
-당연하지.
“제가 해야 할 일이 뭐죠?”
-두 사람이 하던 일.
“수복?”
S급 헌터, 이강현과 채현수는 북한의 영토를 점거한 몬스터를 토벌해 북한 영토를 수복하고 있었다.
-수복하라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다가오는 몬스터를 토벌하면 된다.
“이강현 헌터와 채현수 헌터가 돌아올 때까지요?”
-그래.
“언제 돌아올 줄 알고?”
-작전대로 진행되면 3개월?
“……음? 짧네요?”
-A급 게이트에서 출몰한 가디언 및 변종 토벌하는 게 작전이니까.
A급 헌터도 A급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A급 게이트에서 출몰한 가디언과 변종이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김환성은 바로 대답하거나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듯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는데요?”
-일주일 후에.
“이동 방법은?”
-헬기.
“흐음, 나흘 안에 협회에 한번 들를게요. 어차피 이번 주에 들를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래. 출발하기 전에 연락하고.
“네. 수고하세요.”
작별 인사를 건넨 한율은 기다렸고, 김환성이 전화를 끊자마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새로운 인터넷 창을 열고 검색란에 북한을 작성.
“오빠.”
“어.”
“시간 됐어.”
‘Enter’ 키에 손가락을 올렸던 한율이 모니터 화면 우측 하단을 확인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이유리의 말처럼 시간이 됐다.
‘뭐, 일주일이나 있으니까.’
일주일 후에 출발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북한 영토를 점령한 몬스터들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이유리는 커피를 안고, 배희연은 하양이를 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려가게? 데려가게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두 여인.
한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여인과 함께 강의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