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마법사의 탑(1)
1월 말, 1차 면접을 통과한 마법사 지망생들이 다시 비행기에 탑승했다.
게이트의 폭주라는 큰 사건이 있었지만, 국가는 자국의 마법사 지망생들을 한국으로 보냈다.
그들은 분명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당장 전투에 투입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마법사 지망생들의 출국을 허가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을 찾은 마법사 지망생들은 국가의 도움을 받아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기다렸고, 2월 1일 아침이 찾아오자마자 한국의 헌터 길드, 마법사의 탑을 찾았다.
“와, 왔다!”
이미 수많은 기자가 모여 있었다.
“엘렌이다.”
“카일은 안 왔나 보네.”
“카일은 어렵지. 상황이 상황이잖냐.”
A급 게이트의 폭주 이후, 국가는 S급 헌터들이 해외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떤 나라는 S급 헌터들을 위해 법을 만들었고, 어떤 나라는 S급 헌터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제공했다.
그러니 카일이 여동생의 입학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찰칵, 찰칵, 찰칵.
수십 명이나 되는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눈살을 찌푸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엘렌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고개를 숙인 후에 정문을 통과했다.
미국의 마법사 지망생, 엘렌만이 아니다. 엘렌 정도의 재능은 아니지만, 재능이 있어 면접에 통과한 미국 측 마법사 지망생들도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정문을 통과했다.
첫 번째로 정문을 통과한 미국 측 마법사 지망생들.
이어 마탑 입구에 도착한 이들은 중국 마법사 지망생들…….
“한 명밖에 없어?”
“허! 정말 징글징글하다.”
검은 리무진에서 내린 마법사 지망생은 단 한 명.
“이름이 뭐였지?”
한 기자의 물음에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두들기던 후배가 대답했다.
“류페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흐음.”
고개를 끄덕인 기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입구까지 중국 헌터 협회의 헌터들과 함께 이동한 류페이라는 마법사 지망생은 호위를 해 준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자마자 입구를 통과했다.
‘음? 뭐지?’
중국 측 헌터들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카메라 앵글로 주먹을 불끈 쥐는 마법사 지망생이 들어왔다.
마치 크고 무거운 족쇄를 벗은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은 물론 입가에는 아주 작은 미소를 그리고 있는 마법사 지망생.
다른 기자들과는 다르게 사다리 위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다른 기자들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발로 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 바닥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기에 자신만 담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야.”
“네, 선배님.”
“류페이에 대해 조사해 봐.”
“뭔가 촉이 왔습니까?”
“으음, 그건 아닌데. 뭔가 쟤랑 관련한 일이 우후죽순 터질 거 같다. 그러니 미리 정보 좀 모아 봐.”
“넵.”
고개를 끄덕인 후배가 다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천천히 몸을 돌린 류페이가 중앙 건물로 향하자 기자가 다시 몸을 돌렸다.
“음?”
미국은 대형 버스를 빌려 마탑을 찾았고, 중국은 리무진을 빌려 마탑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 마탑 정문에 멈춰 선 것은 대형 버스도 리무진도 아니었다.
벤.
“뭔가…….”
“익숙하네요.”
후배의 중얼거림에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검은 벤.
드르륵.
보조석 문이 열리며 양복을 착용한 사내가 벤에서 내렸다. 그는 직접 문을 열었고, 그 순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기자들이 황급히 카메라를 들었다.
하나! 둘! 셋!
아리야! 파이팅!
한쪽, 기다란 현수막을 들고 있던 남녀 무리의 외침.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린 기자가 다른 기자들처럼 카메라를 들고 마법사 지망생을 앵글에 담았다.
어색함이 느껴지던 엘렌과는 달랐다. 아주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포즈를 취하는 마법사 지망생, 이내 자신을 응원하는 무리에게 접근해 인사를 나누는 마법사 지망생.
“이야. 역시 현역 아이돌은 다르네.”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현역 연예인의 사진을 확인한 기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였다. 다른 마법사 지망생들에 대한 글을 작성할 때에 두 배, 아니 세 배는 되는 타자 속도로 기사를 작성하던 후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님.”
“어, 왜.”
“그럼 아리는 은퇴하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래. 기획사에 있는 친구 놈에게 물어보니 활동을 인정받았다고 하던데.”
“에? 진짜요?”
“어.”
“연예인이라서요?”
“아니. 그건 아니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무슨 사이버 대학도 아니고.”
“큭큭큭.”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기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입구에서 멈춰 선 아리가 마침 몸을 돌려 기자, 그리고 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식스센스……. 아, 헤헤.”
직업병에 가깝다.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던 마법사 지망생, 아리가 민망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정문을 통과하는 그녀의 모습을 찍은 기자가 뒤이어 도착한 마법사 지망생들을 찍기 위해 몸을 돌렸다.
1차 면접에 합격한 마법사 지망생들은 짧은 시간차를 두고 마탑에 도착했다.
미리 사전협의라도 된 것처럼 시간은 겹치지 않았고 그렇게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등 해외의 마법사 지망생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던 중 사진을 찍는 기자들을 멈추게 만드는 마법사 지망생이 도착했다.
“저 선배님.”
“……왜.”
“류페이보다는 쟤 정보를 모으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미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마법사 지망생들이 면접에 통과해 버스를 빌린 일본이다.
그 대형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안대를 착용하고 망토를 두른,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왼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마법사 지망생.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괴상한 차림의 마법사 지망생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자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일단 모아 봐.”
류페이와는 다른 이유로 조회 수를 모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아름다운 금발의 미소녀.
사건 사고를 불러 모을 것 같은 미청년.
현직 아이돌.
그리고 중2병 환……. 4차원 소년.
정말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기자가 어수선한 마탑 입구를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끼이익.
차 한 대가 마탑 입구에서 멈췄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미녀가 보조석에서 내렸다.
“배희연 헌터?”
헌터 관련 뉴스로 유명한 헌터스의 기자가 바로 정체를 알아차리고 중얼거리자 기자들이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청일 그룹의 A급 헌터, 배희연이 마탑을 찾았다.
헌터 협회, 청일 그룹, 그리고 국가 소속 헌터들이 한율의 호위를 맡고 있다고 하지만 오늘은 2월 1일, 마법사 지망생들이 마탑을 찾는 날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배희연이 문을 열었다.
“우……와!”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탄성을 흘리는 아름다운 소녀.
찰칵!
어느 기자가 카메라에 그녀를 담자 다른 기자들도 자연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촤좌좌좌좍!
아름다운 외모도 외모지만 그녀의 위치 때문이다.
마법사 한율의 첫 번째 제자.
마법사 한율의 도움을 받아 병을 치료한 청일 그룹의 아가씨.
플래시 때문인지 한율의 첫 번째 제자, 이유리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배희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앞에 서서 기자들을 바라봤다.
오싹!
평범하게 노려본 게 아니었는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의식으로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을 멈췄다.
어느 기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배희연뿐만이 아니었다. 뒤이어 차에서 내린 헌터들이 기자들을 노려봤고, 입구를 지키던 청일 그룹 소속 헌터들이 기자들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배희연의 뒤에 서 있던 이유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어 다시 주변을 살피고는 미소를 그렸다.
찰칵.
***
“우와. 진짜 사람 많았다.”
배희연 덕분에 한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어도 수십,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것이었다.
배희연은 뒤를 힐끔힐끔 훔쳐보던 이유리와 함께 본관에 발을 딛자마자 작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서 후문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아가씨.”
“하지만 첫 번째 제자잖아요.”
“…….”
한율의 첫 번째 제자이자 한율 다음으로 가장 많은 서클을 생성한 마법사, 마지막으로 청일 그룹 소속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청일 그룹의 공주.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쉰 배희연이 배시시 웃으며 팔짱을 끼는 이유리의 행동에 바로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걸음을 옮겼다.
마법사 지망생들은 1층 강의실에 모인다. 하지만 이유리는 달랐다.
이유리는 다른 마법사 지망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입장이 아니다. 한율의 조수로서 마법사 지망생들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이동했다.
띵동.
익숙한 도착 알람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배희연과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유리가 바로 연구실 내부를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연구실에서 마법 연습이라도 한 건가?”
개판이었다.
책상 위에 쌓여 있어야 하는 서류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포션 조제 연습에 쓰이는 유리병 또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한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율이 연구실이 개판이 된 이유를 알기 위해 주변을 둘러볼 때, 두 사람의 눈에 아주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들어왔다.
“아으으으.”
“…….”
너무나 귀여운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떠는 이유리와 입만 벌리고 있는 배희연.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두 생명체에게 다가갔다.
“너무 귀엽다.”
“네. 너무 귀엽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서로의 등허리에 머리를 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서류에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의 발자국이 남은 것을 보아 연구실을 엉망으로 만든 게 분명했지만, 그녀들은 사랑스러운 두 생명체가 저지른 사고를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