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제주도 방어전(4)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격 하나하나가 목숨을 위협할 정도였지만 너무나 단순한 공격 패턴으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디언 드레이크를 상대하는 게 익숙해진 헌터들이 한율을 보조하고 있다.
-게임 하다 보면요. 보스급 몬스터는 최후의 발악 같은 거 하던데.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인간 또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평소에 두 배, 세 배나 되는 힘을 사용한다.
몬스터라고 다를까?
촤아악!
이번에는 손톱을 길게 늘어트린 늑대인간 채현수가 가디언 드레이크의 날개를 잘랐다. 아니, 찢었다.
잘리고 찢어진 부위에서 피를 흘리는 가디언 드레이크.
점점 체력이 떨어져 길게 숨을 들이쉬고 길게 숨을 뱉으며 눈을 굴린다.
다른 인간들의 공격을 무시한 채 한율만 바라보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른 인간들도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가디언 드레이크가 마나를 개방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 잘못됐다.
“디스펠.”
마법 효과를 제거하는 마법, 정확하게는 상대의 마나를 순간적으로 봉인해 강제로 해제시키는 마법이다.
중요한 것은 1시간 한정이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사가 사용하니 ‘순간적’으로 상대의 마나를 봉인하는 것이 아닌, ‘단기간’ 상대의 마나를 봉인하는 마법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신이 붉은빛으로 둘러싸이던 가디언 드레이크의 마나가 사라졌다.
“쳐라!!”
그 순간 S급 헌터 그리고 A+등급 헌터들이 공격했다.
푸부부북!
촤좌좍!
마나가 움직이지 않아 당황하는 가디언 드레이크가 이강현, 채현수에 그치지 않고 A급 헌터들의 공격도 허용했다.
비늘이 뜯겨 나갔다. 전신에 상처가 생겼고, 다른 한쪽 눈도 잃었다.
쿠우웅!
가디언 드레이크가 커다란 땅울림을 만들어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생명이 꺼지지 않아 깊게 호흡을 하고 있었지만 헌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율은 완전히 마무리를 하기 위해 다시 주문을 영창했다.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온전하면 좋지 않겠는가.
“아이스 랜스.”
기다란 얼음 창.
한율이 기다란 얼음 창을 날렸다.
목표는 눈.
푸각!
크뤄뤄뤄뤄!
한율의 조작에 따라 방향을 바꾼 얼음 창은 그대로 가디언 드레이크의 눈을 관통해 녀석의 뇌를 파괴했다.
거칠게 호흡을 하던 가디언 드레이크가 호흡을 멈췄다.
“…….”
가디언 드레이크의 영향으로 올라갔던 온도가 내려갔다.
“……후우. 시간은?”
가디언 드레이크를 빤히 바라보던 김환성이 작게 숨을 뱉고 물었다.
-58분입니다.
2분.
2분을 남기고 가디언 드레이크를 토벌했다.
피해는 크다.
하지만 가디언 드레이크를 토벌해 A급 게이트의 브레이크를 막았다.
김환성이 무전기 수신 버튼을 누른 후, 멍하니 가디언 드레이크를 바라보고 있는 헌터들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수고했다.
“우와아아아!”
“흐아아아!”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긴장이 풀렸는지 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또 누군가는 아직 경계심이 남아 있는지 가디언 드레이크를 바라보거나 게이트를 바라봤다.
그렇게 각양각색으로 환호하는 헌터들을 지켜보던 김성환이 주파수를 바꿔 지원 부대에 연락했다.
“피해는?”
-너무 큽니다. 또 한 번 A급 게이트가 폭주하면 막아 내지 못할 겁니다.
“율이가 있는데도?”
-한율 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시간 한정, 그리고 일회성 능력이라고.
김환성이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임지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율은 처음에 말했다. 1시간 한정으로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고 말이다.
“일단.”
-네.
“조금 쉬었다가 대책 회의에 들어가자.”
A급 헌터였고, 다른 헌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협회장이었기에 협회장이라는 직책에 있음에도 선두에 서서 싸운 김환성이었다.
바로 협회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졌기에 휴식을 제안하자 임지혜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
“…….”
맑다.
하늘이 참 맑다.
A급 게이트가 폭주한 날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맑았다.
“괜찮냐?”
“죽겠는데요.”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던 한율이 김환성의 물음에 앓는 소리를 했다.
“부작용 같은 거냐?”
“그건 모르겠네요. 일회용 기술이다 보니.”
깨달음을 통해 서클이 생성되며 1시간 동안 마나를 지배하는 마법사가 되었다.
“아쉽군.”
“……네?”
“나중에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러니 힘을 길러야죠.”
“시간은 되고?”
확실히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한율은 그런 김환성의 질문에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대답했다.
“잘게 쪼개 보면 시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어요.”
“흐음! 그러지 말고 미루는 거 어떠냐?”
“……?”
대화를 나누면서도 푸른 하늘을 구경하던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느새 자신의 옆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김환성을 바라봤다.
“예?”
“지금 당장 육성에 힘을 싣는다고 해도, 그들이 몬스터와 싸우지는 못한다. 맞지?”
“맞죠.”
“시중에 판매되는 주문서는 일반인들의 안전을 목적으로 몬스터와의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맞지?”
“맞죠.”
“그러니 미루는 게 어떠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뒤로 미루고 게이트 활동 시간을 늘려라?”
“그래.”
김환성의 조언은 딱히 틀리지 않았다.
아니,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게이트와 몬스터를 생각하면 잠시 육성과 주문서 제작을 중지하고, 게이트 활동을 늘려 힘을 기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율은 일반적인 헌터가 아니었다.
“브레이크 방어전이 시작되기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뭘?”
“4서클에서 5서클에 오르는 데 필요한 것은 게이트 활동이 아닌 마나에 대한 깨달음, 마법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아…….”
경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성장 지원 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헌터, 아니 마법사 한율.
“이게 공부랑 또 연관이 있더라고요. 가르치면서도 배우는 것이 있달까?”
“끄으응.”
게이트 활동을 통해 성장이 가능하면 A급 헌터는 물론, 필요하다면 S급 헌터라도 붙여 한율의 활동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율은 게이트 활동으로 성장하는 헌터가 아니다.
“뭘 해 주면 되겠냐?”
“으으음…….”
“우리 헌터 협회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
김환성의 물음에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한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치적 개입……. 있겠죠?”
“있겠지. 없을 수가 없지.”
시간 한정이지만, 일회용이기는 하나 S급 헌터보다 강력한 힘을 사용했다.
문제는 그 힘은 마법이라는 기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분명 국내 정치인이 접근할 것이고, 국가가 접근할 것이다.
“막을 수는 없고요?”
“막을 수야 있지.”
“역시 어렵……. 네?”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김환성이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말했다.
“시간 한정이지만 분명 S급 헌터보다 강력한 힘을 사용했다. 그런 헌터가 다가올 몬스터의 공격을 대비해서 힘을 기른다고 하는데 어떤 미친놈이 방해하겠느냐. 아, 미친놈은 있겠구나. 바로 금배지를 떼야겠지만.”
“……진짜요?”
“조건이 있지만, 힘을 냈다는 것은 사실. 거기다가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뭘 생각해 봤다는 걸까.
한율은 김환성을 가만히 바라봤다.
김성환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간 한정 무적.”
“네.”
“미래 아니냐?”
“……오!”
“정답이군. 허어.”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7서클, 또는 8서클 경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레스트에게 물어보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율은 깨달음과 서클 생성이라는 우연이 만들어 낸 마나를 지배하는 힘은 7서클, 또는 8서클 경지 마법사가 사용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걸리겠냐?”
“수십 년?”
“……그렇군.”
김환성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바로 납득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 한정이지만 인간이 S급 몬스터를 압도하는 힘을 사용했다.
7서클, 또는 8서클에 오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 다른 나라는 어떻게 됐어요?”
대한민국 A급 게이트의 폭주가 끝난 직후여서일까.
한율이 타국의 상황을 물어오자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김환성이 천천히 대답했다.
“막았다.”
“……표정은 막은 게 아닌데요?”
“절반만 막았으니까.”
한율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김환성이 화제를 돌리는 게 더 빨랐다.
김환성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누워 있는 한율에게 내밀었다.
“뭔데요?”
“전공 1등 보상.”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피곤하기는 엄청 피곤했는지 멍하니 전방만 응시하고 있는 김환성이었다.
“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강현이 그리고 현수가 아무 말 없이 물러나자 반대하던 이들도 입을 다물더라고.”
“그래서 이게 뭔데요.”
“말했잖아. 전공 1등 보상이라고.”
한율이 잠시 고민하다가 김환성이 내밀고 있는 붉은 구슬을 받아 감정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름: 드레이크의 심장(530).
설명: 레드 드레이크, 진화한 하이 레드 드레이크의 심장.
효과: 신체 강화(13%).
“……미친.”
확률이 아닌 고정 강화 효과를 가진 영약이다.
“이걸 그냥 준다고요?”
“너 아니었으면 전부 죽었다. 아니, 죽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꽤 고생했을 거다.”
제주도 역시 몬스터가 점령하는 땅이 되었을 것이다.
드레이크는 몰라도 와이번은 인간의 생명력을 쫓아 바다를 넘어왔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그런 와이번을 토벌하는 아주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거.”
김환성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은 보석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주는 건 아니고. 일단 알고 있으라고.”
“……감정.”
이름: 차원의 조각.
설명: 없음.
설명도 없고 효과도 없다. 심지어 자신에게 보여야 하는 가치 값도 보이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조각?”
이름은 차원의 조각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정체불명의 조각으로 보인다.
“그래.”
“사용법은요?”
“일본 협회가 알려 주더라. 퀘스트창을 열고 그 위에 정체불명의 조각을 올리면 된다고.”
A급 게이트를 소멸시킨 일본은 퀘스트 시스템이 생성되자마자 차원의 조각을 납품(?)했다.
“바로 납품할 거죠?”
“흐음.”
“……?”
“해야지.”
짧게 신음을 흘린 후에 대답하는 김환성.
한율이 그런 김환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냥 납품해요.”
“……?”
“연구한답시고 정체불명의 조각 가지고 장난치다가 사고 터지면 어쩌려고요.”
“그래도.”
“납품해요. 우리가 연구하지 않아도 다른 나라에서 연구하겠죠.”
대한민국이 정체불명의 조각을 연구하지 않아도 A급 게이트를 소멸시킨 다른 선진국들에서 연구를 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낫겠다.”
김환성이 바로 퀘스트창을 열고 그 위에 차원의 조각을 올렸다.
저 멀리서 차원의 조각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던 과학자들이 달려왔지만, 김환성은 후련하다는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