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제주도 방어전(1)
게이트의 폭주.
일명 브레이크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하면 게이트의 입구는 커진다.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몬스터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다. 게이트의 입구는 게이트를 통과하는 몬스터의 크기와 관계없이 커진다.
“준비!”
감정 시스템을 이용해 게이트의 정보를 확인하던 김환성의 외침에 후방에 자리한 이들이 바로 통신망을 가동해 연락을 취했고, 헌터들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올렸다.
“……감정.”
마나 드레인 마법진 관리 작업을 맡았기에 당장은 할 일이 없던 한율은 게이트를 향해 감정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름: 붉은 아룡의 대지 게이트(3/8).
등급: A-.
서식 몬스터: 드레이크, 레드 드레이크, 레드 와이번 외 12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04:32.
폭주,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4분 32초, 31초, 30초.
한율이 정보창을 없애고 다시 게이트 입구를 바라봤다. 폭주가 가까워지자 게이트의 입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도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후우…….”
대한민국 S급 헌터, A급 헌터, B급 헌터가 모였다. 전투기가 상공을 날고 있고, 전차가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제주도 앞바다에는 구축함이 포를 조준한 채 대기하고 있고, 힘을 합쳐 방어에 실패한 헌터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공간 이동 능력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저 한율 님.”
남은 시간은 4분.
다시 한번 마법진을 살피고 있던 한율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A급 헌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한 거라도 있으세요?”
“레드 드레이크의 레드가 속성을 뜻하는 거면요. 얘네 제주도에 묶이는 건가요?”
“그렇겠죠. 날개 없는 애들 한정으로.”
“……날개 달린 애들은 넘어온다는 건가요?”
“날개 있잖아요.”
“…….”
“걱정 마세요. 막을 수 있어요.”
한율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A급 헌터가 그런 한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희망이 깃든 눈으로 물었다.
“비밀로 하고 있는 작전이 있는 건가요?”
“당연히 있지요.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거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작전이거나.
비밀로 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주가 점점 가까워지자 불안감이 커졌다.
“물어봐도 될까요?”
“성공할지 확신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비밀로 한 거고요. 그래도 궁금하세요?”
“네.”
질문을 던진 A급 헌터뿐만이 아니다.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무전기를 눌러 수신 버튼을 활성화한 것인지 이어폰을 착용한 한율의 귓속으로 김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궁금하다.
“성공률이 정말 낮아요. 진짜 안 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제로(0%)는 아니잖아. 뭐냐?
“드레이크가 배출한 마나와 마나 드레인이 흡수한 마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율에게 돌아갔다.
“그걸 사용하는 작전입니다.”
***
남은 시간은 3분.
우우웅.
게이트의 입구가 더욱더 커졌다.
남은 시간은 2분.
화아악!
밖에서 안을 보지 못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몬스터가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폭주 현상이 가까워지자 게이트는 아룡의 대지, 그 내부를 비추었다.
“……꿀꺽.”
와이번이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드레이크로 추측되는 날개가 없는 몬스터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남은 시간은 1분.
쿠구구구궁!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대형 몬스터가 밖으로 탈출하는 것을 돕는 것처럼 게이트가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구에서 게이트 내부를 볼 수 있듯, 게이트 내부에서 지구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드레이크들이, 무의미하게 상공을 날아다니고만 있던 와이번들이 몸을 돌려 게이트 밖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30초!”
김환성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헌터들은 심호흡을 해서 긴장감을 해소하거나 스킬창, 또는 감정 시스템을 이용해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한율도 작게 심호흡을 하고 지면에 설치한 마법진을 주시했다.
포션을 비처럼 내리게 하는 것?
이미 명령권을 위임한 상태였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
드레이크의 난동으로 마법진이 파괴되면 바로 복구하는 것.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면 마나 드레인 마법진을 이용해 흡수한 마나를 사용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전개하는 것.
“스으읍, 후우우!”
소멸 작전보다 더 긴장됐다. 소멸 작전과는 다르게 드레이크를 피해 게이트 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드레이크와 전면전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율 님.”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심호흡을 반복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
“콜록!”
깊게 숨을 들이마신 상태였기에 한율이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김세혁.
활을 사용하는, 드레이크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은신 능력을 각성한 A급 헌터다.
“콜록! 콜록! 아뇨, 콜록! 무, 콜록! 콜록!”
사레가 들린 한율이 주먹을 쥔 손으로 자신의 명치를 두들겼다.
그렇게 가까스로 기침이 멈추자 붉어진 얼굴로 김세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요?”
20초만 지나면 드레이크가 게이트를 빠져나온다. 그래서 한율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묻자 김세혁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화려한 갑옷을 착용한 헌터를 소개했다.
“시간이 부족하니 바로 설명하겠습니다. 이분은 협회 소속 헌터, 각성 능력은 감정입니다.”
시스템이 게이트를 감정하지 못할 때, 감정이라는 능력을 각성한 감정사들이 게이트를 감정했다.
물론 감정사들이 하는 일은 게이트의 폭주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감정사라 부르는 감정 능력을 각성한 헌터들은 몬스터도 감정할 수 있어 지원 시스템이 업그레이드(?)하기 전까지 게이트 시간 확인, 그리고 몬스터 정보 확인이라는 임무를 맡았다.
“A급?”
“네.”
A급 감정사.
20초, 아니 15초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세혁이 A급 감정사와 함께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드레이크의 감각조차 속이는 은신 능력과 A급 감정 능력을 사용해 약점을 파악한다.
등급이 같으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확인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가디언도 가능하겠습니까?”
E급 게이트의 가디언은 D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D급 게이트의 가디언은 C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그렇다면 A급 게이트는?
A급 게이트의 가디언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위 등급 몬스터일 것이 분명했고, 상위 등급 몬스터라면 꼼수라고 봐도 무방한 지금의 작전을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붉은 아룡의 대지 소멸 작전에 참가한 김세혁이다. 그는 가디언에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하고 감정사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한율은 바로 몸을 돌려 마나를 개방해 지면에 설치한 마법진과 접촉했다.
남은 시간은 5초.
게이트 입구는 확인하지도 않았다.
날개를 펄럭이며 와이번이 가까워지고, 드레이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음에도 한율은 마법진만 바라봤다.
게이트 입구에서 드레이크의 머리가 튀어나올 때도.
김환성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능력을 사용하고 탱크가 커다란 굉음과 함께 포를 발사할 때에도 마법진만 바라봤다.
“……!”
전투의 영향으로 지면에 설치한 마법진이 파괴될 수 있어서 수십, 수백 개의 마나석을 이용해 게이트 입구를 중심으로 반경 1km짜리 거대한 마법진을 설치했다.
문제는 마법진이 너무 거대한 탓에 설치가 끝났음에도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능력으로 한 번 어그러져 조정.
포격으로 한 번 더 어그러져 조정.
드레이크의 난동으로 한 번 더 어그러져 조정.
와이번의 날갯짓에 마나가 지상에 작은 회오리를 만든 탓에 한 번 더 어그러져 조정.
조정, 조정, 조정.
예상한 것보다 마법진이 어그러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A급 게이트의 폭주였다. 한율은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어 정신을 바로 잡고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
타아악!
공중으로 도약한 김환성이 양손으로 들고 있던 거대한 해머를 높이 들어 올렸다.
목표는 드레이크보다 더 귀찮은 와이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바람 칼날을 날리는, 그리고 드레이크보다 쉽게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 와이번을 노렸다.
“하아압!
콰아앙!
해머를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러 와이번을 지상으로 떨어트렸다.
사람은 날 수 없다. 당연히 높이 도약한 김환성 또한 추락해야 했지만, 그에게는 실드 마법 주문서가 있었다.
파아앗.
발아래에 생성된 실드에 착지해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드레이크와 와이번의 수는 고작 수십 마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A급 몬스터답게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행인 점은 마나 배출 포션 그리고 마나 드레인 마법진에 의해 지속적으로 방어력, 공격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지만…….
김환성이 고개를 돌렸다.
포탄 세례를 받았음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드레이크가 보였다.
콰앙!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이지,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에 마나를 섞은 살기를 내뿜은 드레이크가 발을 구르자 대량의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헌터들을 짓눌렀다.
“쿨럭!”
“미, 미친!”
드레이크가 일으킨 마나 파동을 억지로 버텨냈지만, 그 반동으로 상당수의 헌터가 피를 토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데.”
지속적으로 방어력이 떨어지고 공격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공격 한 번에 헌터 수십 명이 부상을 입고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B급 헌터들은 물러나고 A급 헌터들이 앞에 선다. 한율의 작전대로 지속적으로 방어력, 공격력이 떨어지고 있으니 버티면 된다. 버티면! 버티자!”
직접적으로 드레이크와 충돌하는 A급 헌터들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적들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김환성의 위험한 명령에도 바로 선두에 서서 드레이크와 싸웠다.
김환성도 마찬가지였다.
능력의 명칭만 생각하면 참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능력이다.
경량화 능력을 사용해 몬스터 연구소에서 구입한 초대형 몬스터 전용 무기의 무게를 줄이고, 신체의 무게를 줄인 후에 실드 위에서 도약했다.
후방으로 물러난 B급 헌터들은 군부대를 지원했다.
A급 헌터들은 선두에 서서 드레이크, 와이번과 전투를 벌였다.
그렇다면 S급 헌터들은 무엇을 할까?
S급 헌터, 이강현과 채현수는 가디언 드레이크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