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붉은 아룡의 대지(1)
“네? 총이요?”
“네. 총을 고집하시는 거 같아서요.”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내려 손에 들고 있는 소음기를 장착한 K-7을 바라봤다.
총.
마법사인데 왜 총을 무기로 선택했나.
“몸을 지킬 무기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총입니까?”
“네.”
“뭐, 익숙하기도 하고요.”
3년, 아니 헌터가 된 이후에도 총을 사용했으니 4년이나 사용했다. 사용하는 무기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이강현이 말끝을 흐려 한율의 시선을 다시 돌리게 만들었다.
“어렵지 않습니까?”
“뭐가요?”
“물건에 주입한 마나를 유지하는 게.”
“…….”
한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누구에게 물건에 마나를 주입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묻는 것일까?
“저 마법사입니다만?”
“……핫, 하하. 그랬죠. 네, 그러네요.”
세상에서 가장 마나를 잘 다루는 족속들이 마법사였다. 그래서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강현을 바라보던 한율은 그의 미소가 어색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려우세요?”
“네. 어렵습니다.”
“막 검을 공중에 띄우시는데도요?”
“그건 능력이니까요. 능력을 사용해 검을 조종할 수는 있지만, 조종하고 있는 검에 마나를 두르고, 검신에 두른 마나를 유지하는 게 조금 어렵다고 할까.”
“…….”
초능력에 의지하는, 그리고 신체 능력에 의지하여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들이다. 마나를 다루는 게 미숙한 것은 당연했다.
뭐, 마나 호흡법이라는 것이 공개되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는 헌터들이 늘어나겠지만, 마나 호흡법이 공개되고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율처럼 능숙하게 마나를 다루는 헌터는 없다고 봐야 했다.
“이건 단기 속성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은 아시죠?”
“네, 압니다.”
“마나 호흡법은 배우셨고?”
마나를 다루는 게 미숙한 것은 이강현뿐만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며 고개를 돌린 한율은 헌터 몇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자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안 배우셨어요?”
“그게, 마나를 회복하는 속도가 늘어나는 거잖아요.”
“아, 그래서 안 배우셨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까지는 없죠. 마나 호흡법을 습득하느냐, 습득하지 않느냐는 스스로 선택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마나 호흡법을 배우면 마나 감응 능력이 올라가요. 신체에 돌아다니는 마나를 직접 느끼는 게 마나 호흡법이고, 외부에 마나를 체내로 흡수하는 것이 마나 호흡법이니까요.”
“즉,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마나 호흡법을 배워야 한다는 겁니까?”
어느새 이강현의 옆에 앉아 있는 채현수가 물었다.
“네.”
“그…… 시간이 지나면 초급 마나 호흡법도 공개한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럼 감응 능력이라는 게 더 빠르게 상승하나요?”
“아뇨. 똑같아요. 기초, 초급, 중급, 상급 마나 호흡법의 차이점은 마나를 흡수하는 속도, 마법이나 초능력을 사용할 때에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마나량, 마법 및 초능력의 효율성 상승 정도니까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네요.”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기에는 등급에 따른 능력 차이가 너무 컸다.
“그렇죠.”
“중급은 공개 안 하시고요?”
“하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겠죠. 지금 당장 중급 마나 호흡법을 공개한다고 해서 능숙하게 호흡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마나를 다루는 게 미숙해서?”
“네.”
레스트에게 배운 마나 호흡법은 총 다섯 가지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나 호흡법(기초 마나 호흡법).
마탑에서 판매하고 있는 마나 호흡법(초급 마나 호흡법).
아카데미 학생에게만 공개하는 마나 호흡법(중급 마나 호흡법).
레스트가 스승에게 배운 마나 호흡법(상급 마나 호흡법).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배운 마나 호흡법을 독자적으로 개량한 레스트의 마나 호흡법(최상급 마나 호흡법).
“기초가 익숙해졌다고 판단되면 초급을 공개할 것이고, 초급으로 마나를 다루는 게 능숙해졌다고 판단되면 중급 마나 호흡법을 공개할 겁니다.”
“중급은 마탑 소속에게만 공개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강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중급을 공개할 시기에 마탑 소속 애들에게 상급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상급이면……. 한율 님과 한율 님의 직속 제자만 배웠다는 그 마나 호흡법?”
“……아뇨. 상급.”
“……최상급도 있습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자연스럽게 소매를 걷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30분 지났습니다. 출발하죠.”
“아……. 네.”
지금 당장 기초 마나 호흡법을 배우고 싶어도 시간은 없다. 그래서 이강현과 채현수를 비롯한 소멸팀 헌터들이 한율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보석, 게이트의 핵을 바라봤다.
***
이름: 붉은 아룡의 대지 게이트(7/8).
등급: A-.
서식 몬스터: 드레이크, 레드 드레이크, 레드 와이번 외 12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94:21:36.
94시간 21분 36초.
남은 시간은 4일.
남은 게이트 소멸 횟수는 총 2회.
“……아슬아슬한데.”
민간 의료 부대는 전부 탈출했다. 방어선을 설치하기 위해 고용한 인부들도 전부 돌아갔다. 제주도에 남은 사람은 B급 헌터와 게이트 소멸팀 참가를 거부하는 대신 방어 작전에 참가한 A급 헌터, 마지막으로 철수 명령을 거부하고 제주도에 남은 일부의 일반인들이 전부였다.
“어떻게 할까요?”
처음에 약속한 대로 소멸팀을 해체하느냐, 아니면 소멸팀을 유지해 게이트 소멸 작전에 집중하느냐.
하루 차이여서 애매했다.
게이트 입구에 서서 소멸팀의 복귀를 기다리던 김환성이 옆에 서 있던 임지혜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유지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
“신기하지 않냐?”
“네?”
“아니, 율이 참가했다고 이렇게까지 작전 성공률이 높아질 줄은 몰랐잖냐.”
그건 그랬다.
한율이 참가하자 작전 성공률이 대폭으로 상승했다.
드레이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량의 마나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이목을 끄는 탐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게이트 핵의 위치를 파악했다.
충돌할 것 같으면 마법을 사용해 적들을 유인하고 이동했다.
운이 필요했던 소멸 작전은 운에 기대지 않게 되었다.
“이건 율이의 능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마법사의 능력이 뛰어나서일까.”
“굳이 나눌 필요가 있습니까?”
한율이 마법사다.
“하긴.”
임지혜의 물음에 실소를 터트린 김환성이 마나를 감지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멸팀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성공?”
“성공했습니다.”
게이트 소멸 작전이 성공할 때마다 작은 미소를 그렸던 이강현이었다. 김환성은 이강현뿐만이 아니라 소멸팀에 소속된 모든 헌터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다친 사람이라도 있느냐?”
“아뇨.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가디언의 움직임이 변했습니다.”
“변해?”
“네.”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돌린 이강현이 대자로 뻗어 있는 한율을 바라봤다.
***
타악!
이강현, 그리고 늑대인간으로 변신한 채현수가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드레이크에게 달려갔다.
앞으로 튀어 나간 두 사람 중에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이강현.
그는 공중에 띄운 마나를 두른 검 세 자루를 조종했다.
슈슈슉!
목적은 드레이크 토벌이 아니라 드레이크를 유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진 세 자루의 검은 드레이크의 시야를 피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날아갔고, 드레이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입을 쩍 벌려 브레스를 뿜었다.
화르르륵!
브레스를 사용하는 드레이크와 기다렸다는 듯이 우측으로 몸을 날리는 S급 헌터.
“흡!”
중심을 잃어 몸을 비틀거리는 이강현을 확인한 채현수가 무릎을 굽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타다다다닥!
드레이크는 크다. 당연히 몸집이 큰 만큼 움직임이 느려서 채현수는 늑대인간으로 변신했다.
앞으로 달려 나간 채현수가 높이 도약해 주먹을 뻗었다.
콰앙!
거대한 폭발.
드레이크의 고개는 살짝 돌아갔고,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지른 채현수는 뒤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굴러 다시 이강현의 옆으로 돌아온 채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디언인 드레이크를 유인하면서 바닥을 구르는 일은 말 그대로 일상이 되었다.
“온다!”
“흡!”
채현수 그리고 이강현이 마나를 끌어올렸고, 채현수의 주먹질에 브레스를 끊은 드레이크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쿠구구궁!
대량의 마나를 한순간에 개방해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드레이크의 공격.
이강현과 채현수는 마나를 끌어올려 버텼고, 날개를 접은 드레이크가 몸을 낮추자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고 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브레스, 압박.
그다음 드레이크가 하는 행동은 두 가지다. 앞발을 크게 휘둘러 공격을 하거나.
쾅!
앞으로 몸을 날려 거대한 몸체로 공격하거나.
이강현과 채현수가 양옆으로 몸을 날렸고, 공격이 실패한 드레이크는 이강현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꼬리를 이용해 채현수를 공격했다.
콰과과광!
마나를 두른 검 한 자루로 드레이크를 막아설 수 없어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수십 자루의 검을 동시에 조종해 점점 가까워지는 드레이크의 머리를 공격하는 이강현.
“흡!”
부분 변신을 통해 날개를 만들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올라 꼬리를 피하는 채현수.
공중으로 날아오른 채현수가 손톱을 길게 늘어트린 후에 양팔을 크게 휘둘렀다.
쉬이익!
카아앙!
비늘을 베지 못하고 그대로 마나로 돌아가는 마나 손톱이었지만 목적은 적의 시선을 자신들에게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강현을 힘으로, 그리고 수십 자루의 검을 동시에 조종해 드레이크의 시선을 끌고 채현수는 빠르게 비행하며 드레이크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렇게 S급 헌터들이 드레이크의 시선을 끌 때, A급 헌터들이 게이트 핵을 노리고 빠르게 달려갔다.
S급 헌터들은 드레이크의 시선을 끌고 A급 헌터들은 게이트 핵을 파괴한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지만, S급 헌터들은 드레이크의 시선을 끄는 데 최선을 다했고, A급 헌터들은 게이트 핵을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몇 번이나 같은 방식을 사용해서일까.
아니면 점점 줄어드는 게이트 핵을 통해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눈앞에 있는 적에게만 집중하던 드레이크가 고개를 홱 돌려 게이트 핵을 노리고 있는 A급 헌터들을 바라봤다.
“……!”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