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세 번째 거래 대상(2)
레스트와 같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맞다.
“가치에 맞는 무공서로 계산하죠. 아, 그 보법이라고 하나? 보법 같은 걸로요.”
[언소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필사하겠습니다.]
필사?
[언소월: 그리고 실례가 안 된다면 첫 번째 거래 대상자.]
“……?”
[언소월: 첫 번째 거래 대상자가 다른 차원의 영초, 또는 영약으로 신체의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
한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 한 번도 레스트가 가진 신체적인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 정확하게 첫 번째 거래자(레스트)를 언급하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언소월: 너무나 쉽게 허락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설명을 할 때와는 다르게 메시지창이라는 것이 조금 늦게 뜬 것과 영약이 필요한 이유를 묻지 않을 것을 통해 추측했습니다.]
“두 번째 거래 대상자일 수도 있잖아요.”
[언소월: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런 영(靈)적인 존재에게 신체적인 장애가 존재할까요.]
“……와!”
[언소월: 아닐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죠.]
“왜요?”
[언소월: 추측이 틀린다고 해서 저에게 오는 불이익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언소월: 한식경이면 충분합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필사가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언소월: 그리고 만약 영약보다 비급이 더 가치가 높다면 요괴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하나만 보내 주십시오.]
“넵. 그러면 한식경…….”
한식경이 뭐지?
시간인 것은 알겠는데.
한율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을 열었다.
식경(食頃): 한 끼의 음식물을 먹을 만한 시간. 20~30분.
“아항. 넵. 그럼 기다리…….”
30분 이내에 연락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끄덕이던 한율이 말을 멈췄다.
비급을 받는다?
비급을 받는다고 해서 바로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소월의 도움을 받아 무공을 배워도 숙련도가 낮으니 전투에 사용하지 못한다.
“저 소월 님.”
[언소월: 예. 한율 님.]
“강시로 정정해도 될까요?”
[언소월: 알겠습니다. 그럼 강시 조종 술법과 함께 강시를 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오늘부터 마법사 한율도 소멸 작전에 참가한다.”
“……?”
회의 막사를 찾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김환성을 바라봤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감당해야지.”
변신 능력자, 채한수의 물음에 김환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율 님의 힘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조금 시끄러운데 괜찮은 겁니까?”
크라켄 토벌을 위해 부산을 방문했던 S급 헌터, 이강현이 손을 들고 물었다.
“공격에 힘을 실으려고 율이를 참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보조 능력 때문이다.”
보조 능력.
무소속 A급 헌터, 은신 능력 보유자 임세혁이 손을 들었다.
“신체 강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있고.”
한율과 대화하며 정말 다양한 보조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김환성은 임세혁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했다.
“다양한 보조 능력이 있으니까 율이 오면 다시 이야기하자.”
“알겠습…….”
임세혁이 대답을 미루는 김환성의 행동에도 아무런 불만도 갖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한 사내가 입구 천막을 걷으며 막사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전역 마크가 떡 하니 붙어 있는 군복을 착용한 20대 중반의 사내.
“……어,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잠시 당황하던 군복을 입은 사내, 한율이 조심스럽게 용서를 구하자 김환성이 다른 헌터들을 대표해 손을 흔들었다.
“네가 늦은 게 아니라 우리가 빠른 거다. 일단 앉아라. 마침 보조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아, 네.”
한율이 짧게 대답하고 바로 의자에 착석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물으마.”
“뭘요?”
“어제 이야기했던 지원.”
“……아아. 물어보세요.”
“신체 강화 마법 말고 또 어떤 마법이 있느냐?”
“일단 매직 아이라는 마법이 있습니다. 이 마법은 시각을 가진 구슬을 생성하는 마법으로 조종이 가능합니다. 주변 수색이 가능하고, 발각 시 다른 쪽으로 보내 몬스터를 유인할 수 있습니다.”
수색 및 적을 유인할 수 있는 매직 아이라면 몬스터와의 전투를 피해 움직이는 소멸 작전에 적합한 능력이었다.
“실드는 아시겠고, 신체 강화도 이야기했으니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머릿속을 정리하던 한율이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헌터들에게 대답했다.
“적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디그 마법, 지면이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없애는 그리스,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웹, 드레이크의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니 성공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환영을 만드는 일루전, 적이 다가오면 경고를 보내는 알람, 마나 소모 시 빠른 속도로 마나를 보충할 수 있는 마나 회복 마법…….”
계속해서 아군을 지원하는 마법이 한율의 입을 통해 헌터들에게 전해졌다.
“자, 잠시.”
멍하니 마법에 대해 듣고 있던 헌터가 손을 들어 한율의 입을 막았다.
“네. 궁금하신 거라도?”
“그걸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
“지금 한율 님이 말씀하신 마법만 14개인데요?”
“마법사잖아요. 기억해야죠.”
“…….”
질문을 던진 헌터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판매 중인 주문서의 종류가 적은 탓일까?
아니면 전투 마법으로 활약을 펼치는 영상이 많은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독특한 별명과 독특한 차림새 때문일까?
간단한 신체 강화 마법과 전투 마법에만 집중했던 헌터들은 고개를 갸웃했던 한율이 다시 지원 마법에 대해 설명하자 바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설명을 들었다.
***
한율은 처음 게이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붉은 아룡의 대지는 화산이 있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으음, 뭐라고 해야 할까.”
황무지를 바라보던 한율이 고개를 내렸다.
지면은 따뜻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화산은 없었고, 언덕이 많았다.
언덕과 언덕 사이.
거대한 공룡을 발견해 다시 한번 탄성을 흘리는 순간, 준비를 마친 이강현이 한율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알겠습니다.”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해야 할 일은 신체 강화 마법이 아니다. 신체 강화 마법은 몬스터와 충돌해야만 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인비저빌리티. 플라이.”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할 일은 투명 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하늘로 올라간다.
마나를 끌어올려 시력을 강화해 거대한 보석, 게이트의 핵과 날개가 있는 거대한 공룡, 가디언을 찾는다.
하루에 한 번씩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했지만, 소멸팀은 단 한 번도 가디언을 토벌하고 게이트의 핵을 파괴한 적이 없었다.
최초 격돌 시 가디언의 힘이 너무나 강해 A급 헌터가 사망하고 S급 헌터인 변신 능력자, 채현수가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망한 것이 아니니 빠르게 게이트를 탈출해 치료 능력의 도움을 받았지만, 무시무시한 가디언의 힘에 소멸팀은 토벌 대신 가디언을 유인해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더럽게 많네.’
날개를 가진 드레이크가 있었고, 날개가 없는 드레이크가 있었다. 크기가 작은 드레이크가 있었고, 다른 드레이크에 비해 거대한 드레이크가 있었다.
다르지 않은 것은 모두 붉은색 비늘로 뒤덮인 붉은 드레이크라는 것이었다.
“쩝, 물의 정령과 계약했으면 좋았겠네.”
제주도에 생성된 자연의 마나를 확보할 수 있는 게이트는 흙두더지 동굴이 전부였다. 그래서 선택하지 못하고 흙두더지 동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한율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생각을 비우고 다시 주변 탐색에 집중했다.
“찾았다.”
희미하지만 거대한 보석과 보석 앞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붉은 공룡을 볼 수 있었다.
“보자 보자…….”
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한율은 게이트 핵의 위치와 입구의 거리를 확인하고 몬스터의 이동을 확인해 이동 경로를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일직선으로 이동할 경우에 충돌하는 드레이크의 숫자는 스무 마리가 넘는다. 그러니 우회한다.
매직 아이를 이용해 적들을 유인하고,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소멸팀 전체에 투명 마법을 걸고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움직인다.
한율이 다시 마법을 컨트롤해 아래로 내려가 소멸팀과 다시 합류했다.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
“11시 방향입니다. 일직선으로 이동할 시에 충돌하는 드레이크는 스물두 마리.”
“최소입니까, 최대입니까?”
“최소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강현이 다시 한율에게 물었다.
“길이 있습니까?”
“네. 조금 우회를 하고 놈들을 유인하느라 대기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가능한 한 충돌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
찾았다가 아닌 만들었다.
몸을 숨길 수 없는 지형이라고는 언덕이 전부인 황무지에서 적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마리와 충돌할 것 같습니까?”
“다섯 마리요.”
스물두 마리와 다섯 마리.
생각할 것도 없다.
“저와 채한수 헌터 그리고 한율 헌터가 선두에 섭니다. 드레이크와의 충돌은 최소 5회이며, 게이트 핵과 접촉 시 지금까지 진행했던 것처럼 가디언을 유인한 후에 핵을 파괴합니다.”
***
가문의 저주를 극복했다.
이 사실을 알려도 되는 것일까?
마나 호흡법이라는 이계의 심법을 멈춘 후에도 눈을 감고 있던 언소월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가문의 저주를 극복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당연히 극복한 방법, 이계의 존재를 언급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괴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에서 이계라는 다른 차원, 그리고 점점 강력해지고 늘어날 수 있는 차원 균열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도 되는 것일까?
아니, 밝힌다고 해서 과연 믿어 줄까?
잠시 고민하던 언소월이 자신의 왼쪽 가슴을 확인했다.
푸른색 고리.
마법의 경지를 알려 주는 고리.
“…….”
잠시 고민하던 언소월이 한율의 말을 떠올렸다.
[한율: 1서클 화火 마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부분 번역이라는 글이 나타난 이후 글은 몇 번이나 나타났다 지워졌다를 반복했다.
번역(飜譯)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 언소월이 천천히 왼손을 들었다.
“화(火).”
화륵!
손바닥 위에 생성된 불꽃.
내공을 이용해 만든 불꽃, 마법이라는 주술을 사용해 만들어 낸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던 언소월이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불꽃을 없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가족들을 도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가족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언소월은 아주 작은 미소를 입가에 띠운 채 방을 나와 총관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