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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세 번째 거래 대상(1)
호남성 진주.
9대 문파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호남을 대표하는 가문에 관해 물어보면 누구나 첫 번째로 소리를 내는 가문이 있었다.
진주언가.
오래전부터 호남성을 대표하는 가문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요괴의 침공.
요괴들이 인간들을 공격하며 권법, 그리고 강시술이 특기인 진주언가가 호남성을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에서 강시술은 금기였지만, 요괴들은 그런 금기까지 깨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였기에 숨겨진 특기였던 강시술을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벅저벅.
하지만 진주언가에는 강시술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혈족의 저주.
강시술이라는 금기에 손을 댄 탓인지, 아니면 운명이었는지 100년에 한 명, 무공을 배우지 못하는 약골(弱骨), 아니 뼈가 부드러운 연골(軟骨)의 아이가 태어났다.
평범하게 무공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였다면 불운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마다 태어나는 그 아이는 천재였다.
때로는 정치, 때로는 요리, 때로는 음악, 때로는 건축.
저벅저벅.
타악.
걸음을 멈춘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권사를 바라봤다.
“……소가주.”
“소가주가 아닙니다. 가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반박한 병약한 청년이 권사에게 부탁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100년마다 태어나는 연골의 아이.
무공을 배우지 못하는 대신, 뛰어난 기억력과 비상한 두뇌를 얻은 진주언가의 장남, 언소월은 안으로 들어간 무사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문을 열자 감사 인사를 건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후우.”
연골이 아이라고 해도 가주가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전략의 천재가 가주를 맡은 적이 있었고, 직접 펼치지는 못하지만 무공을 창시하는 천재가 가주를 맡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소월은 가주직을 포기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인간과 요괴의 전쟁에서 가주는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라.’
가주직을 포기할 당시에 언소월을 떠올린 강골(强骨)의 사내, 언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오늘 안에 결재해야 할 서류입니다.”
“그래.”
“그럼 이만.”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돌린 언소월을 가만히 바라보던 언태산이 물었다.
“번복할 생각은 없느냐?”
언소월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바로 몸을 돌려 자신의 아버지이자 진주언가를 대표하는 무인, 언태산에게 대답했다.
“예. 소가주직은 소양이가 더 어울립니다.”
“그러냐.”
“예.”
“…….”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자 진주언가의 장남, 언소월을 가만히 바라보던 언태산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결재가 끝난 서류는 사람을 보내 전달하마.”
“예.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언소월이 집무실을 벗어나 총관실로 향했다.
합! 합!
진주언가의 권사들이 훈련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진주언가의 권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소가주라…….’
아쉬움?
“…….”
잠시 걸음을 멈춘 언소월이 훈련 중인 권사들을 바라봤다.
아쉬움은 없었다. 정확하게는 소가주라는 자리에 아쉬움은 없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공.
언소월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총관실에 도착하자마자 서류를 가져오는 총관실 문사들.
언소월은 의자에 앉자마자 책상에 쌓이는 서류를 확인하고 손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소매가 올라가며 얇은 팔목이 드러나자 잠시 멈칫했다.
‘이제 와서…….’
소가주직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 오랜 시간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겨 내지 못한 언가의 저주였다.
쓰윽, 쓰윽.
언소월이 빠른 속도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확인이 필요한 서류는 오른쪽으로, 결재가 필요한 서류는 왼쪽으로.
가주의 결재가 아닌 총관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는 바로 붓을 들어 결재했다.
“일선 상단의 지원금이 조금 비는군요. 무슨 일이 있죠?”
“상행 도중에 요괴의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건축 비용이 조금 높아졌습니다. 이유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총관실 문사가 빠른 속도로 문서를 찾기 시작했다.
“아, 건축에 들어가는 재료의 가격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요괴인가요?”
“그렇습니다.”
“…….”
고개를 끄덕인 언소월이 다음 문서를 가져왔다.
고용 무인의 급여.
“후우.”
예상은 했다. 요괴와의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물가가 상승하리라는 것을, 무인의 가치가 높아지리라는 것을.
‘하지만 너무 빠른데.’
고민하던 언소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있습니까?”
소리도 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흑의인.
“요괴의 무력이 상승했습니까, 아니면 늘어났습니까?”
“……둘 다입니다.”
“호남 인근에도 요괴가 나타났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토벌대를 구성할 생각이니 위치를 확인해주십시오.”
“예.”
흑의인이 대답과 함께 다시 어둠 속으로 걸어가 모습을 감췄다.
요괴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정파, 사파, 새외 그리고 황군은 손을 잡았다. 권력을 위해, 단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에는 요괴들의 무력이, 그리고 숫자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고개를 든 언소월이 창밖을 확인하고 문사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몇 장 안 남았는데요.”
“…….”
오늘 확인해야 하는 보고서만 수백 장이었다. 문사는 수십 장으로 줄어든 미확인 문서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언소월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문사들의 인사를 받은 언소월이 다시 손을 뻗어 미확인 문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다섯 장, 열 장.
“끄으응.”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른 후에야 작업을 마친 언소월이 총관실을 나오자마자 기지개를 켜고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것도 잠시, 제자리에 서서 고민하던 언소월이 방향을 틀었다.
부웅! 부웅!
늦은 저녁임에도 개인 수련장에서 수련 중인 청년이 있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무공을, 그것도 언태산과 마찬가지로 권법을 배우는 데 아주 좋은 강골(强骨)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동생이자 현 소가주, 언소양.
“…….”
가만히 언소양의 수련을 지켜보던 언소월은 다시 걸음을 옮겼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요괴와의 전쟁은 점점 심화(深化)될 것이다. 언젠가는 진주언가의 모든 무인이 전장으로 향할 일도 일어날 것이다.
요괴의 습격을 받아 모든 사람들이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일이 발생해도 자신은 아버지, 그리고 동생과 함께 싸우는 대신 몸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다.
권법을 배우지 못하니 강시술을 배운다?
연골의 아이는 뼈가 약하고 부드러운 것도 모자라 아주 연약한 단전을 가지고 있다.
“…….”
무공이 아니어도 좋다.
“싸울 힘이 있었으면…….”
아버지와 동생, 가족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노력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힘을 바라는 언소양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차원 거래 능력자, 한율의 거래 대상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목소리가 메시지로 변환되어 거래 대상에게 전해집니다.}
***
{거래 대상, 언소월과 연결합니다.}
{상대의 수락을 기다립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목소리가 메시지로 변환되어 거래 대상에게 전해집니다.}
매일매일 하고 있는 주문서 제작을 마치고 침대에 눕는 순간이었다.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운 한율이 눈앞에 떠오른 설명창을 확인하고 작은 미소를 그렸다.
‘왔다아아아아!’
정말 오래 걸렸다.
[언소월: 주……술인가?]
“아닙니다. 주술이 아닙니다.”
[언소월: 누구십니까?]
“저는 한율이라고 합니다.”
[언소월: ……저는 호남 진주 태생, 언소월이라고 합니다.]
호남? 진주?
[언소월: 허면 이 기현상은 주술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아,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율이 바로 입을 열었다.
레스트와 거래하고, 에리얼과 거래를 하며 설명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간간이 들어오는 언소월의 질문에 답을 해가며 설명을 이어 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설명을 마칠 수가 있었다.
[언소월: 차원이라……. 그렇군요.]
“……믿으세요?”
[언소월: 예.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고, 질문을 할 때마다 바로바로 대답해 주셨으니까요. 거기다 실제로 화폐도 제 손에 있고요.]
거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실제로 거래를 했다. 지구의 화폐와 언소월의 차원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교환하는 거래를 통해서다.
“…….”
한율이 고개를 내려 손에 들고 있는 화폐를 확인했다.
어딘가 묘하게 익숙한 문자가 찍혀 있는 화폐다.
“일단 원활한 거래를 위해 확인하겠습니다. 무엇을 판매하실 수 있으십니까?”
[언소월: 가문의 무공은 어렵지만 무공 그리고 강시 정도입니다. 한율 님께서는 무엇을 판매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마……. 무공? 강시?”
[언소월: 예. 무공과 강시입니다. 그래서 한율 님은 무엇을 판매하실 수 있으십니까?]
‘미친…….’
마법, 정령 다음은 무공이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던 한율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답했다.
“마법, 그리고 화약……. 화약이라고 해야 하나. 화약을 사용하는 무기. 요괴가 몬스터를 말하는 거면 요괴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판매할 수 있습니다.”
[언소월: 마법이 뭡니까?]
“어…….”
무협이다.
“주술이요. 주술.”
[언소월: 주술……. 다른 차원의 주술이라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영약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언소월: 영약 말입니까?]
“예. 영약이요.”
[언소월: 여, 영약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한율이 언소월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의 요청대로 거래창을 열어 영약 하나를 올렸다.
[언소월: 신체 능력 강화?]
“…….”
뭔가 레스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언소월: 하, 하나 구입하고 싶습니다. 구입할 수 있습니까? 가치는 맞추겠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