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커피 마시다가(2)
가디언, 변종을 제외하고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0시 0분을 주기로 다시 생성, 아니 소환……. 아니, 등장하기 때문에 게이트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토벌하고 복귀했는데도 확보한 땅의 마석은 단 두 개에 불과했다.
“어둠의 마석보다 더 오래 걸리네.”
검은 귀신 게이트에서 활동하며 어둠의 마석을 확보할 당시에는 변질된 마나를 품은 어둠의 마석도 확보해야 하는 마석에 포함되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흙두더지 동굴과는 달리 한 번 돌 때마다 네 개는 확보할 수 있었다.
“아, 가디언.”
정정한다. 가디언은 무조건적으로 어둠의 마석을 뱉었으니 한 번 게이트를 돌 때마다 확보할 수 있던 자연의 마석은 세 개였다.
“정말 안 나오는 물건이었네.”
게이트에서 확보할 수 있는 땅의 마석은 평균 2~3개.
흙두더지 게이트는 대략 25일 후에 폭주하…….
“어라?”
못 오지 않나?
아룡의 대지로 인해 제주도는 전쟁터로 바뀌니까.
“어디 보자.”
바로 인터넷을 켜 게이트 지도에 들어간 한율이 흙두더지의 동굴을 관리하는 수호 길드를 찾았다.
“……한라르방?”
뭐지?
“한라봉과 돌하르방을 합친 건가?”
한율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하단 우측에 적혀 있는 주소를 클릭했다.
“와, 진짜였어?”
돌하르방이 한라봉을 들고 있는 그림, 그게 바로 한라르방 길드의 길드 문양이었다.
***
크리스마스?
신년?
날을 잡아 기념을 할 정도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E급, D급 게이트의 폭주로 인해 도시는 엉망이 되어 모든 인력이 피해 복구 작업에 뛰어들어야 했고, 헌터들은 사흘 후에 벌어진 C급, 그리고 B급 게이트를 소멸시키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지나쳤고, 신년을 지나쳤다.
1월 5일.
A급 게이트가 폭주하기까지 10일밖에 남지 않은 1월 5일.
“감정.”
이름: 붉은 아룡의 대지 게이트(3/8).
등급: A-.
서식 몬스터: 드레이크, 레드 드레이크, 레드 와이번 외 12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238:08:32.
자신도 모르게 감정 시스템을 사용해 게이트의 정보를 확인한 김환성이 다시 게이트 입구를 바라봤다.
A급 게이트, 붉은 아룡의 대지의 소멸 작업은 1월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완벽한 준비를 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C급, B급 게이트 소멸 작전이 끝나고 일주일이라는 휴식 시간을 부여한 후,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하는 S급, A급 헌터, 그리고 게이트 소멸이 실패할 시에 일어나는 제주도 방어전을 위해 B급 헌터들을 제주도로 불렀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바로 진행하지도 않았다. B급 게이트를 이용해 게이트 소멸팀이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게이트 소멸팀이 A급 게이트에 뛰어든 날짜는 12월 29일.
“여덟 번 도전해서 두 번 성공이라.”
사흘간 세 번 도전해 전부 실패하고 나흘째가 되었을 때, A급 게이트를 1회 소멸시켰다.
게이트를 소멸시킬 때마다 서식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드니 안심했지만, A급 게이트는 역시 달랐다.
몬스터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다섯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여섯 번째 도전에서 한 번 더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었지만, 소멸팀은 말했다.
몬스터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운.
드레이크의 이동 경로가 겹치지 않아 시간을 들이더라도 한 마리씩 토벌할 수 있는 운.
중요한 전투 도중 드레이크가 지반이 약한 땅을 밟아 버리는 드레이크에게는 실수, 소멸팀에게는 기회.
그런 운과 기회가 중요하다고 했다.
“입구에서 마나가 흘러나옵니다!”
입구 앞에서 대기 중인 헌터의 외침에 김환성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소멸시킬 때에도 게이트의 입구에서 커다란 마나의 유동이 발생한다.
하지만 소멸이라고 하기에는 예상하고 있던 시간보다 3시간이나 빨리 마나의 유동이 일어났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예상한 김환성이 입구를 바라볼 때, 그의 예상처럼 부상을 입은 헌터들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왔다.
“치유 능력자!”
큰 목소리로 치유 능력자를 호출한 김환성이 성큼성큼 걸어가 S급 헌터들의 앞에 섰다.
“후우.”
“하아, 하아, 하아.”
왼쪽 어깨를 부여잡은 검의 주인과 대자로 뻗어 거칠게 호흡을 고르는 변신 능력자.
“이번에는 무슨 상황이냐?”
“드레이크 세 마리의 동선이 겹쳤습니다.”
“와, 씨바.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수고했다. 내일 다시 도전해 보자.”
“…….”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헌터가, 아니 그런 헌터이기에 운에 맡기는 작전을 하는 것이었으니 기분이 좋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나도 내일 참가하마.”
“……그냥 밖에서 대기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저씨. 아저씨 늙었거든요.”
“아직 40대다. 그리고 강현아. 너도 그러기냐?”
김환성이 고개를 홱 돌려 검의 주인, 이강현을 째려봤다.
“아뇨. 그게 아니라.”
당황해 고개를 홱홱 돌린 이강현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협회장님이 없으면 지휘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또 갑작스레 게이트가 변화할지도 모르는데.”
어떠한 변수가 또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A급 헌터임에도 협회장, 김환성은 소멸 작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일단 방법을 찾아보마.”
“네.”
“아이구. 죽겄네. 죽겄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검의 주인, 이강현과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변신 능력자, 채한수.
김환성은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에 A급 헌터들에게 다가가 똑같이 격려를 하고 그들을 호텔 또는 의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민간 건물로 보냈다.
“후우…….”
남은 시간은 10일.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이틀 전에 게이트 소멸 작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하였으니 남은 시간은 8일이다.
8일 안에 A급 게이트를 5회 소멸시켜야 한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게이트 입구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김환성의 물음에 임지혜가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하다 보니 속도가 너무 늦습니다. 하지만 폭주까지 사흘 정도 남았을 즈음에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가?”
“아뇨. 일부가.”
대한민국처럼 수많은 나라가 A급 게이트 소멸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S급 헌터를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초반에 이야기가 나왔던 폭주 후 소멸을 이용해 A급 게이트를 무너트리기로 결정했다.
“방법이라……. 방법…….”
방법이 필요하다.
소멸팀의 실력을 상승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장비?
소멸팀이 사용하는 무구 모두가 유명한 대장장이들이 직접 제작한 최고급 장비였다.
인력 추가?
인력을 추가한다면 A급 헌터가 아닌 S급 헌터를 추가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S급 헌터 모두가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S급 헌터가 아직 한 명 정도 남아 있었다. 문제는 각성 범죄자, 그것도 범죄 조직인 아크럼 소속이니 협력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컸다.
‘방법……. 방법…….’
쓸 수 있는 방법은 전부 사용했…….
“협회장님.”
“……?”
“한율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할 일이 있다며 약속한 대로 주문서, 아티팩트만 보내며 따로 활동하고 있던 헌터 겸 마법사, 한율.
“……지혜야.”
“네.”
“마법 중에도 신체 강화 마법이라는 게 있었지?”
“있었습니다.”
“그게 버프 능력자의 능력과 중복되던가?”
“……초능력과 마법은 별개의 기술……. 제가 알기로는 겹쳐지는 것이 아니라 더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환성이 몸을 돌렸다.
“율이는?”
“회의 막사로 모셨습니다.”
“완전 합류냐 임시 합류냐?”
“경호원들과 함께 도착한 것으로 보아 완전 합류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
“한율을 합류시킴으로써 무진장 욕을 먹겠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A급 게이트 소멸 작전이다. 분명 마법사 한율을 소멸 작전에 참가시킴으로써 헌터 협회는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한율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해도 초능력 외에 몬스터를 토벌하고 게이트 활동이 가능한 마법이라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너무나 쉽게 위험한 전장에 내보냈다는 이유로 말이다.
“A급 게이트가 폭주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폭주한 게이트는 통합된다. 즉, 게이트 생성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정체불명의 조각도 8개가 아닌 1개밖에 확보하지 못한다.
폭주해도 욕을 먹고, 폭주하지 않아도 욕을 먹는다면?
“그래. 언젠 욕을 안 먹은 적이 있기는 했냐!”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뭘 하든 욕을 먹는다. 일을 잘해도 더 잘할 수는 없었냐, 일을 잘 못 하면 내 그럴 줄 알았다 등등.
저벅저벅.
힘차게 걸음을 옮긴 김환성이 입구를 활짝 열었다.
“율아! 도와…….”
“어머머머머.”
김환성이 말을 멈췄고, 뒤를 따라오던 임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책상 위를 바라보다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앙!
냥!
서로의 몸을 껴안고 책상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하얀 강아지와 갈색 고양이.
“쟨 뭐냐?”
“새로운 패밀리어요.”
“……패밀리어를 복수로 들일 수 있냐?”
“네.”
“그,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김환성이 다시 한율을 바라보며 소멸팀 참가를 부탁하려 할 때였다.
“이름이 뭔가요? 갈색이는 아닐 테고.”
“커피요.”
“어머, 귀여운 이름이네요. 왜 커피인가요?”
“커피 마시다가 계약했거든요.”
“…….”
유래가 참 그랬지만 귀여운 이름인 것은 맞다.
임지혜가 고개를 끄덕이자 헛기침을 한 김환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율아 부…….”
“커피도 사람을 좋아하나요?”
“네.”
한율이 대답과 함께 손가락으로 하양이와 커피를 가리켰다. 그러자 다시 고개를 돌려 하양이와 커피를 바라본 임지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귀여운 동물들.
“지혜야.”
“네. 협회장님.”
“하양이랑 커피랑 놀고 와라.”
“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임지혜가 앞으로 달려가 하양이와 커피 앞에 섰다.
하지만 바로 두 천사를 끌어안는 대신 한율에게 물었다.
“놀아 줘도 될까요?”
“네.”
쉭!
한율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양이와 커피가 임지혜의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저벅저벅.
인사도 없이 막사를 나가는 임지혜.
잠시 고개만 돌려 그런 임지혜를 바라보던 김환성이 한숨을 내쉬고 한율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