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게이트 소멸 작전(1)
“그럼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임시로 신설된 토벌 작전 부서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단상에 오른 김환성은 회의 종료를 알린 후에 고개를 살짝 숙여 회의에 참석해 준 대표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드르륵.
회의가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회의가 끝났음에도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율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단상에 남아 눈짓을 주는 김환성, 그리고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하양이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희연 님.”
“네, 한율 님.”
고개를 돌려 보니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 정확하게는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하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배희연이 보였다.
“……불러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럼 하양이가 잠에서 깨지 않습니까.”
“…….”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배희연을 따라 발키리 길드의 마스터를 힐끔 훔쳐본 후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발키리 길드라…….’
한율이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들어가 발키리 길드를 검색했다.
동작구 수호 길드, 발키리.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처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길드답게 헌터는 물론 일반인 직원까지 전부 여성으로 이루어진 길드다.
아름다운 여성 헌터들로 이루어진 길드여서일까?
간단하게 발키리 길드를 확인한 한율은 화면을 아래로 내렸고, ‘페가수스’라는 발키리 길드의 팬 카페가 눈에 들어오자 헛웃음을 터트리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구.”
각 부서의 부장들을 내보내고 비서, 임지혜와 함께 다가온 김환성이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앓는 소리를 냈다.
“여기서 이야기하시게요?”
“올라가면 또 일해야 한다. 기껏 면접과 관련된 일을 끝냈는데.”
“큭큭큭.”
마법사의 탑 가입 면접과 관련된 일을 끝내자마자 새로운 일이 찾아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김환성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린 한율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왜 남으라고 하셨어요?”
“넌 어떻게 움직일 거냐.”
“어떻게라뇨?”
“용병이 되어 지원이 필요한 팀과 합류해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할 거냐, 아니면 따로 팀을 꾸려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할 거냐.”
“아아.”
마탑의 대표로서 회의에 참석했지만 현재 헌터 길드, 마법사의 탑에서 활동이 가능한 헌터는 단 한 명, 한율뿐이었다.
“따로 팀을 꾸릴게요.”
“팀원은?”
“캡이랑 라이트닝.”
“셋이서?”
“네.”
“가능하겠냐?”
“C급 게이트를 소멸시킨 적이 있어요.”
“……아? 아아, 검은 귀신?”
11월 말.
한율은 호위들을 입구에 대기시킨 후, 라이트닝, 그리고 캡이라는 별명이 붙은 헌터와 함께 검은 귀신 게이트를 소멸시켰다.
“이건 시간 싸움이다.”
“그럼 성장이 필요한 헌터를 붙여 주세요.”
“그들과 함께 게이트 소멸 작업을 진행한다?”
“네.”
“호위는?”
한율이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배희연을 바라봤다.
배희연과 함께한다.
“호위 문제는 해결됐네. 아, 혹시 남은 주문서 있냐?”
“네. 어제……. 아니, 오늘 새벽 방어전에서 예상과는 다르게 소모량이 적어서 꽤 있어요.”
“팔아주라.”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배희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작게 한숨을 내쉰 김환성이 임지혜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행해.”
“네. 청일 그룹과 연락해서 주문서를 구입하겠습니다.”
“…….”
대답은 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임지혜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린 김환성이 여성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한율에게 물었다.
“저기에 뭐가 있냐?”
“하양이가 자고 있어요.”
“……아항.”
단번에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은 김환성이 한율과 함께 실소를 터트리고 다시 대화를 나눌 때였다.
앙!
잠깐이지만 강당을 가득 채우는 강아지의 귀여운 울음소리.
“……깼나 보네.”
“그런가 보네요.”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여인의 품에서 벗어난 하양이가 정령술을 사용해 날아올랐다.
쉬이익! 터억!
한율의 머리 위에 착지한 하양이.
“잘 있었냐?”
앙!
김환성의 인사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울음을 터트린 하양이가 그대로 한율의 머리 위에 배를 깔고 누워 버렸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소리.
한율과 김환성이 고개를 돌렸다.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이 길드원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
한율과 김환성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배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배희연 헌터.”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
“…….”
대화는 끝이었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던 두 여인.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이 먼저 배희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김환성?
아니다. 그녀는 김환성을 지나 한율을 바라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발키리 길드의 이연희라고 합니다.”
“아, 네. 마법사의 탑에 한율이라고 합니다.”
배희연 때와 마찬가지였다. 대화는 끝났다.
한율은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머리 위에 누워 있는 하양이에게 향한 것을 느끼고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
“아닙니다. 그저.”
“그저?”
“……아닙니다.”
고개를 저은 이연희가 한율에게 한 번, 김환성에게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다시 배희연에게 목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렸다.
“하양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네.”
강당을 벗어나는 발키리 길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김환성이 혀를 찼다.
한율이 동의하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크네.”
가만히 입구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던 미청년, 문수원이 탄성을 흘렸다.
개인 용병으로서 지원이 필요한 팀에 합류에 게이트 소멸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을 때, 한율에게 연락이 왔다.
팀을 꾸려 함께 활동하지 않겠냐고.
고민은 짧았다.
단 한 번도 호흡을 맞춘 적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 소멸 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이들과 함께 소멸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셨습니까?”
너무 오랫동안 입구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본 탓일까.
입구에 서 있던 헌터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문수원이 바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율이 형을 만나러 왔는데요.”
“약속을 잡으셨습니까?”
“네. 문수원이라고 합니다. 이번 게이트 소멸 작전에서 함께 팀을 이루기로 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헌터가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연락을 취한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문수원은 바로바로 대답했다.
“확인됐습니다. 본관 건물 4층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아, 함께 가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그런데 여기서 기다려도 될까요?”
“괜찮겠습니까?”
“네. 상관없습니다. 그럼.”
고개를 살짝 숙인 헌터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방치된 문수원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디 보자.”
한율과 캡, 이대한은 B급 헌터.
자신은 C급 헌터.
이번 게이트 소멸 작업은 사흘 안에 대한민국에 생성된 모든 C급, 그리고 B급 게이트를 소멸하는 것이니 속도전이 될 것이다.
“그럼 C급 게이트에서 활동한다는 건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문수원이 검색 항목을 터치해 ‘C급’을 눌렀다.
서울에만 서른다섯 개의 게이트가 있다.
“흐음.”
신음을 흘린 문수원이 게이트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번 사건으로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들어간 것인지 게이트의 이름, 등급, 출현 몬스터, 폭주까지 남은 시간뿐만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항목이 생겼다.
어떤 게이트는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고, 어떤 게이트는 ‘대기 중’이라고 적혀 있다.
툭툭.
“일찍 왔군.”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
미소를 그린 문수원이 화면을 끄고 고개를 돌렸다.
“형도 일찍…….”
“……?”
“……안 추워요?”
“안 춥다. 들어갈까?”
“먼저 들어가세요.”
“……?”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푸른 가죽 갑옷의 청년이 걸음을 옮겼다.
자신과는 다르다. 확인 절차를 밟지 않고 그대로 입구를 통과해 본관으로 향하는 푸른 가죽 갑옷를 입고 별이 그려진 원형 방패를 손에 든 청년.
문수원은 5분 정도 제자리에 서서 다시 스마트폰을 만진 후에 입구를 통과해 본관으로 향했다.
입구를 통과하고 실외 훈련장을 가로질러 본관에 도착.
“호빵도 팔 줄은 몰랐네.”
“피자 호빵도 있어.”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귓속을 파고드는 여인의 목소리.
문수원이 고개를 돌렸다.
“편의점?”
본관 1층에 편의점이 있다.
“……왜 편의점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한 문수원이 걸음을 옮겨 편의점 입구로 이동했다.
“……?”
호빵을 물고 있는 세 소녀.
“우와. 존나 잘생겼어.”
사과 머리를 하고 있는 소녀의 중얼거림에 단발머리 여인이 바로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고는 호빵을 양손에 든 상태로 물었다.
“누구세요?”
“아, 문수원이라고 합니다. 율이 형이 불러서 왔습니다.”
“우리 오빠요?”
우리 오빠?
아, 그러고 보니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한 번 더 고개를 꾸벅 숙인 문수원이 어색함을 느껴 몸을 돌리려고 할 때,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소녀가 호빵 기계에서 호빵을 꺼내 내밀었다.
“드실래요?”
“아, 네. 감사합니다?”
“뭘요. 그런데 우리 오빠 아직 협회에서 안 돌아왔는데.”
“……?”
동생이 두 명이었나?
아니, 세 명이었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던 문수원이 입구에 서 있던 헌터의 안내를 떠올리고 대답했다.
“4층으로 가라고 하던데요.”
“아하. 저희도 4층으로 가야 하는데 같이 가죠.”
“어, 네.”
고개를 끄덕인 문수원이 앞서 걸어가는 세 소녀를 따라 이동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럼 수원 씨는 오빠하고 같이 게이트 소멸 작업을 진행하는 건가요? 아, 저는 이유리라고 해요.”
다시 호빵을 한 입 베어 문 이유리라는 소녀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문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한이 형이랑 같이하지 않겠냐고 해서.”
“글쿠……. 대한이 형?”
“네. 먼저 도착해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으응?”
길이 엇갈렸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세 소녀.
문수원은 그런 소녀들을 바라보다가 호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