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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00화 (100/221)

100 게이트 폭주(2)

김환성에 이어 관리팀 팀장, 인사팀 팀장의 설명까지 진행되었을 때였다.

[레스트: 한율 님, 대화 가능하십니까?]

“…….”

한율이 눈앞에 떠오른 대화창을 잠시 바라보다가 옆에 앉아 있는 배희연에게 속삭였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예.”

한창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한율은 무릎을 살짝 굽히고 허리를 숙인 상태로 이동해 강당을 빠져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화장실이 어디죠?”

“저쪽입니다.”

회의 도중에 화장실을 찾는 사람은 한율만이 아니었는지 협회 소속 직원은 자연스럽게 위치를 알려 줬다.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율은 눈이 마주친 직원에게 목 인사를 한 뒤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변기 칸으로 이동했다.

달칵.

“실드.”

파앗.

문을 잠그고 실드를 생성해 소리를 차단하고.

“대화창. 레스트.”

차원 거래 능력을 사용했다.

“무슨 일이세요?”

[레스트: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게이트가 변화했습니까?]

“어, 네. 변했습니다. 그쪽에도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레스트: 몬스터의 능력이 1.5배 상승했습니다. 마나도 마치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것처럼 늘어났고요. 그렇군요. 또 게이트가 변화했군요.]

“네. 어제저녁에 게이트의 폭주라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잠시만요.”

[레스트: 아, 괜찮습니다. 혹시 차원의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드린 것이니 다시 연락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레스트: 예. 그리고 게이트의 변화가 발생하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네. 죄송합니다.”

[레스트: 아닙니다. 그럼.]

레스트와의 대화는 끝났다.

“대화창. 에리얼.”

한율이 이번에는 에리얼과 연락을 취했다.

“에리얼 님. 혹시 정령계에 무슨 일이라도 발생했나요?”

[에리얼: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이쪽 세계에서는 게이트의 변화, 레스트 님의 세계에는 몬스터의 강화라는 일이 발생해서요.”

[에리얼: 그러네요. 조금 귀찮은 일이 발생했네요.]

“어, 제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에리얼: 으음, 알고 계셔도 되겠네요. 아니, 알고 계셔야겠네요. 마치 어딘가로 새어 나가는 듯이 자연의 마나가 줄어들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저와 다른 왕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건 말 그대로 임시방편.]

자신의 세계는 게이트가 폭주하고, 레스트의 세계는 몬스터의 힘이 강화되었으며, 에리얼의 세계는 정령의 힘이 약화됐다.

“도울 방법은요?”

[에리얼: 자연의 힘이 담긴 마석.]

“아. 알겠습니다.”

[에리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니 급하게 움직이실 필요는 없어요. 거기다 흡수를 위해 모으신 자연의 마석 모두를 보낼 필요도 없고요. 그저 열 개를 모으셨다면 그중 한두 개만 보내 주세요. 당연히 가치에 맞는 물건으로 교환해 드릴게요.]

“그럼 자연의 마석을 모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자연의 마나가 줄어든 현상은…….”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

“10시간 전에 일어났나요?”

[에리얼: 네. 혹시 그쪽에서 일어난 폭주도?]

“네. 10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럼 자연의 마나석을 모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에리얼: 부탁드릴게요.]

한율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없앴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나오는 대신, 다시 대화창을 열어 레스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레스트: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게이트의 변화에 따라 차원 거래 능력도 상승한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이번에 연결된 거래자는 누구입니까?]

“아직 찾고 있다고 하네요.”

[레스트: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한율이 작별 인사를 건네고 다시 메시지창을 닫았다.

“스킬창.”

이름: 차원 거래.

설명: 타 차원과 거래할 수 있습니다.

대상: 레스트. 에리얼. 거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레스트와 연결될 때에도, 에리얼과 연결될 때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10시간이 지났는데도 거래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찾는다고 해도 바로 새로운 능력을 얻는 것은 어렵겠지만.’

차원 거래를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기술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술서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율이 버튼을 눌러 물을 내리고 세면대 앞으로 이동해 손을 씻었다.

다시 회의가 벌어지는 강당으로 이동하자 처음 보는 여인이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도 나왔나요?”

“아뇨. 그리고 지금 단상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재정부 부장입니다.”

“아, 수익?”

“네.”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려 단상 위를 바라봤다.

들어올 때쯤에 설명을 마친 것인지 재정부 부장은 손을 든 길드의 대표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었다.

“재정부 설명이 끝나면 끝?”

한율이 배희연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협회장님과 함께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더 없으니 끝이라고 생각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자세를 바로 하고 단상 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뭔가 허전한데?’

고개를 숙이니 보이는 것은 화장실을 다녀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회의 내용이 쓰인 설명서와 명패.

한율이 자신의 몸을 살폈다.

중요한 물건은 전부 거래창에 보관 중이었다. 유일하게 들고 있는 것이라고는 스마트폰이었지만, 스마트폰 역시 건빵 주머니에서 자리하고 있었다.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설명서에 재정부장과 길드 대표의 대화 내용을 작성 중인 배희연이 보였다.

“아.”

그래, 배희연이 보였다.

“하양이 어디 갔습니까?”

“……놀러 갔습니다.”

삐진 듯 입을 살짝 내민 채로 대답하는 배희연이다. 네? 놀러요?”

“네.”

짧은 대답과 함께 배희연이 고개를 돌려 한율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

잠들어 있는 하양이와 그런 하양이를 품에 안은 채로 등을 토닥이는 여인이 있었다.

***

한율이 화장실을 간 직후.

끄아아앙.

“심심해요?”

입을 크게 벌렸던 하양이가 배희연을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계약자인 한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되는 자리라고.

정령계로 따지면 큰 사건이 발생해 정령왕들이 모여 회의하는 자리라고.

그래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배희연을 바라보던 하양이가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책상 위로 이동했다.

토도도.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린 하양이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설명서 위에 떡하니 올라서 오른발로 ‘네’라는 단어를 툭툭 두들겼다.

“쿡쿡쿡. 그럼 밖에서 놀고 계실래요?”

밖에서?

잠시 배희연을 올려다보던 하양이가 다시 설명서를 가만히 읽더니 ‘아니다’라는 단어를 툭툭 두들겼다.

이후.

툭.

“여?”

툭.

“기?”

툭. 툭툭툭.

“여기서 놀아도 돼요?”

단어를 하나하나 조합해 문장을 만든 하양이.

자리가 자리였다. 그리고 회의 주제가 너무나 무거웠다. 그래서 배희연이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큰 눈을 깜빡이던 하양이가 그녀의 손등을 핥았다.

“……큿! 됩니다. 대신 조심히 노셔야 하는 거 아시죠?”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대신 고개를 끄덕인 하양이가 몸을 돌렸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책상 위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이야. 진짜 귀엽네.”

“얘가 하양인가 보네.”

“와! 나도 마법사가 되면 하양이 같은 펫을 계약할 수 있으려나.”

책상 위에서 워킹을 하는 하양이.

고개를 갸웃했던 중년인은 이내 피식 실소를 흘렸고, 젊은 헌터는 귀엽다는 듯이 하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양이는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정령이다.

그야말로 인싸.

하양이는 눈이 마주친 헌터를 향해 눈웃음을 쳤고, 머리를 쓰다듬는 헌터와 만났을 때는 헌터의 손바닥에 머리를 비볐다.

그렇게 헌터들과 인사를 하며 책상 끝에 도착했을 때, 하양이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좌우를 번갈아 확인했다.

한율은 세 번째 줄에 자리했다.

위로 올라갈까.

아래로 내려갈까.

고민하던 하양이가 무언가를 느낀 듯이 귀를 쫑긋 세우더니 아래층,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끌어안아도 하양이는 반항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 내려놓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을 끌어안아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지만, 하양이는 바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자연의 마나를 품은 여인.

“귀여워라.”

“얘가 하양이죠?”

“응. 그런 거 같아.”

“사진에 보정이 하나도 안 들어간 게 분명하네요.”

불의 마나를 품은 여인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불의 정령왕은 좋아하는 왕이다. 그래서 하양이는 천천히 다가오는 여인의 손바닥에 머리를 가볍게 비비고 다시 바람의 마나를 품은 여인을 올려다봤다.

“안녕?”

앙.

“어우야…….”

탄성과 함께 미소를 그리는 바람의 마나를 품은 여인.

지금까지도 몇 명이지만 바람의 마나를 품은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그 누구보다 많은 바람의 마나를 품고 있었다.

에리얼 님까지는 아니어도…….

상급 정령에 버금가는.

끄아앙.

익숙한 마나에 잠식되어 또 한 번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한 하양이가 다시 눈에 힘을 주려 할 때였다.

토닥. 토닥.

바람의 마나를 품은 여인이 하양이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너무 지루해 잠이 오던 상황에서 바람의 마나를 품은 여인을 만나고, 여인의 품에 안겼다.

끄아앙.

꿈뻑.

자면…….

꿈……. 뻑…….

안 되는데…….

***

“누구?”

“라이벌이죠.”

“네?”

“하양이는 저보다 저 여인이 좋은가 봅니다.”

아하.

헌터로서의 라이벌이 아닌 하양이 팬으로서의 라이벌.

“그래서 누군데요?”

“구로구 수호 길드인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한율이 다시 여인을 바라봤다.

하양이와 계약한 이후, 다른 자연의 마나는 몰라도 바람의 마나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을 한 번, 배희연을 한 번 바라보곤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하양이는 배희연 님을 더 좋아하니까.”

“하양이는 제 품에서 잠든 적이 없습니다만.”

“하양이는…….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패밀리어라서.”

“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흘린 배희연이 고개를 돌렸을 때,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도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

“…….”

짧은 침묵도 잠시 발키리 길드의 길드장은 잠들어 있는 하양이를 더욱더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고, 배희연은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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