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98화 (98/221)

098 디펜스(2)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난간 앞으로 이동한 감위헌 대령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꼭 가부좌를 틀고 마나 호흡법을 외울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소설과 무협 영화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가부좌를 튼 채로 마나 호흡법을 외우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터트린 감위헌 대령이 실외 훈련장에 자리 잡은 헌터를 바라봤다.

바닥에 주저앉아 총기를 점검하는 전역복 사내.

분명 마법사인데 마법이 아닌 총기를 사용해 몬스터를 토벌하고 있는 사내.

“아니, 마법을 사용하기는 했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몬스터 토벌이 진행되자 긴장감이 떨어지게 되었고, 그 방심의 결과로 버그들이 수 미터 앞까지 접근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일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한율이 움직였다.

마법사 지망생들이 사용하는 디그 마법, 하지만 넓고 깊숙한 디그 마법을 사용해 적들을 땅속으로 파묻었고, 땅 속성 마법 ‘어스 핑거’라는 마법을 사용해 가시밭을 만들어 버그들의 속도를 떨어트려 정비할 시간을 만들었다.

“한율 씨 말이야.”

“예.”

부관이 바로 대답했다.

“B등급인가?”

“헌터 협회의 등록된 등급은 C+등급입니다. 하지만 반년 전에 등록한 내용이고, 등록한 이후 부산, 그리고 일본에서 큰 활약을 하며 성장의 기회를 얻으셨기에 B등급으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등록상으로만 C+등급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위험할 때에만 나서는 건가…….”

한율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던 전투라는 것을 떠올린 감위헌 대령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병사들에게도 마나 호흡법뿐만이 아니라 마법을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나 호흡법과는 다르게 마법은 재능의 유무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럼 아티팩트를 구입하는 게 좋으려나.”

감위헌 대령이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으며 한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띠디. 띠디.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작전 시간 30분 전에 알람이 울리도록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감위헌 대령이 몸을 돌려 수십 개의 화면을 띄운 모니터 테이블 앞에 도착하자마자 환영 능력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거리상 30분 후에 헌터 길드에 도착한다.

감위헌 대령이 무전기를 들었다.

“30분 후에 2차 공격이 진행됩니다. 마나 호흡법을 멈추고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

방아쇠를 당긴다. 탄창을 교환하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마나는 신체의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체 능력 향상에 집중하되, 위험할 경우에만 마법을 사용해 몬스터를 공격한다.

“손가락이 아프네.”

총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였기에 변수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마법 사용을 최소화한 채 몬스터를 토벌하니 손가락이 너무나 아팠다.

“막 쏴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최소 500마리다.

포탄에 피격당하고, 초능력에 휘말려도 입구를 통과해 실외 훈련장에 들이닥치는 몬스터는 수백 마리에 달했다.

그야말로 맨땅이 보이지 않을 지경인지라, 협회 소속 헌터가 말하는 대로 눈감고 쏴도 특등사수가 될 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만 집중했잖아요.”

“그건 그렇죠.”

집중해서 방아쇠를 당기던 한율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지향 사격으로 그냥 갈겼다.

막 쏴도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고, 실수 또는 변수가 발생해 위험에 처한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총기를 다루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주변을 살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탄창 교체?

옆에서 상황 보고 및 호위를 하고 있는 협회 소속 헌터의 도움을 받았다.

“후우. 이번이 몇 차였죠?”

“6차입니다.”

6차 습격.

동대문구 곳곳에 레온 길드의 지부가 설치되어 있어 마법사의 탑이 맡게 된 게이트는 총 일곱 개.

“마지막이네요.”

“네. 마지막입니다.”

“흐음.”

마지막 습격인 7차 습격을 앞두고,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허리에 꽂은 무전기를 조작했다.

“대령님. 한율입니다.”

-아, 예. 한율 씨.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7차 공격까지 남은 시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몬스터의 공격이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난간 앞에 서서 사람들을 살피던 감위헌 대령이었다.

한율은 난간 앞에 서 있던 감위헌 대령이 사라지자 다시 총기를 점검하며 기다렸다.

-10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십니까?

“아닙니다. 잠시 밖에 좀 살펴보기 위해서 물어봤습니다. 괜찮겠습니까?”

-5분 내로 자리로 복귀하신다면.

“감사합니다.”

한율이 무전기를 조작해 수신 버튼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전투에만 집중하던 한율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지만 한율은 시선을 무시하고 협회 소속 헌터와 함께 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흐미.”

몬스터의 이동 때문인지, 아니면 박격포와 원거리 능력자들의 공격 때문인지 무너진 건물들이 많았다.

사체를 치운 실외 훈련장 및 방벽 앞과는 다르게 몬스터의 사체로 이루어진 언덕 또한 수십 개가 넘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피해가 적은데?”

붕괴된 건물보다 붕괴되지 않은 건물들이 많았다.

“포격 및 원거리 능력자들의 힘을 차도 중앙에 집중시켰기 때문입니다.”

“재산 피해 때문에요?”

“가능하면 재산 피해가 적은 게 좋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다.

“뭐, 폭주한 게이트가 C급, 또는 B급 게이트였다면 재산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일단 전투기부터 띄웠겠지만.”

E급, D급 게이트의 폭주였기 때문에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협회 소속 헌터의 설명대로 C급, 그리고 B급 게이트의 폭주였다면 생존을 중점으로 하니 자신이 생각해도 전투기부터 띄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정도는 차가 다니지 않는 서울을 보겠네요.”

“그렇게 되겠지요.”

“신기하네. 서울에 차가 안 다닌다니.”

새벽에나, 그것도 가끔, 아주 가아끔 보는, 차가 다니지 않는 서울을 며칠이나 본다.

“공기는 맑겠네.”

“큭큭큭.”

한율의 혼잣말에 웃음을 터트렸던 협회 소속 헌터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태블릿PC를 켰다.

“확인해 보니 마지막 몬스터는 D급 게이트에 출몰하는 리빙 아머입니다.”

“소멸 횟수는요?”

“총 6회이고, 현재 4회까지 진행된 게이트입니다.”

“그러면 숫자가…….”

“600마리.”

600마리.

리빙 아머는 살아 움직이는 갑옷, 또는 무기를 말하는 것이니 마리보다는 개수라고 해야 할까?

‘리빙 아머.’

감정이 없는 몬스터, 리빙 아머.

다른 몬스터들처럼 생명력 또는 마나를 감지하고 움직이겠지만 폭주를 해도 조금이나마 감정이 남는 동물형 몬스터와는 다르게 감정이 없다.

“리빙 아머가 육백…….”

5서클부터는 성장 시스템 및 영초, 영약을 이용한 성장이 불가능에 가까워진 상태다. 하지만…….

한율이 다시 수신 버튼을 누르고 무전기를 들었다.

“감위헌 대령님.”

-예. 한율 씨.

“초반 공격 말입니다.”

-예.

“제가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예?

“가능하겠습니까?”

7차 공격 몬스터는 리빙 아머.

-리빙 아머는 속도가 느리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자리로 복귀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율과 감위헌 대령의 대화는 모두가 듣고 있는 상황이다.

방벽 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고, 건물 안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창문 앞으로 모여 한율을 찾았다.

높고 두꺼운 방벽에 의해 건물 내, 그리고 실외 훈련장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한율을 볼 수가 없었지만 한율과 감위헌 대령의 대화에 관심이 집중했다.

“어디 보자.”

무전기를 다시 허리에 찬 한율이 거래창에 보관해 둔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너 여기에 있지?”

-옙! 마법사의 탑에서 방송 중입니다.

“…….”

위급한 상황에서도 방송을 켠 스트리머 BJ코인이다.

이것도 직업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방벽? 건물?”

-방벽입니다!

한율이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댄 상태로 몸을 돌렸다.

방벽 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을 살피니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는 BJ코인을 볼 수 있었다.

“흐음. 카메라 좋은 거 쓰지?”

-형님. 저는 방송인입니다. 당연히 비싼 걸 쓰고 있죠.

“좋아. 잘 찍어라.”

-앗싸!

자신이 활약할 때마다 후원금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BJ코인의 환호성에 실소를 터트린 한율이 미리 만들어둔 그룹으로 문자를 날렸다.

[BJ코인 실시간 방송 확인 바랍니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방송을 봐라.

모든 마법사 지망생들이 마탑을 찾아온 것이 아니기에 방송을 언급한 한율이 스마트폰을 회수하고 총기에 달아 놓은 마법 구슬을 쥐었다.

“후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게이트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니 싸우는 게 무서워서 재능을 포기한 사람들의 숫자를 가능한 한 줄여야 했다.

작게 숨을 고른 한율이 메모라이즈 마법을 사용해 저장해 둔 마법을 수정하고 전방을 확인했다.

마석의 힘으로 살아 움직이는 무구, 리빙 아머와 대량의 마나를 품은 마나석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리빙 아머를 유인하는 헌터다.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한율을 발견하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은 헌터는 보고를 받은 건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넨 후에 다시 유인 작업에 집중했다.

“역시 가장 강력한 마법이 좋겠지.”

차도는 이미 몬스터의 피로 가득했다.

한율은 유인 임무를 맡은 헌터의 속도에 맞춰 주문을 외웠다.

점점 속도를 높인 헌터가 자신의 옆을 스쳐 가자 리빙 아머 무리를 바라보며 외쳤다.

“라인데인!”

파아앗!

상대는 감정이 없는, 그리고 지능이 없는 리빙 아머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 있도록 뇌전의 창 바로 밑에 마법진을 생성하지 않았다.

마법진이 생성된 곳은 리빙 아머의 머리 위.

갑작스러운 마나의 밀집 때문인지 잠시 걸음을 멈춘 리빙 아머였지만 유인 임무를 맡은 헌터가 들고 있는 마나석의 마나가 더 많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뇌전의 창이 떨어졌다.

콰과과광!

“메모라이즈 라인데인!”

최초의 라인데인이 떨어진 지역의 50M 뒤에 새로운 마법진이 떠올랐다.

뒤이어 전격의 창이 마법진을 통과해 리빙 아머 무리를 강타했다.

콰과과광!

“메모라이즈 라인데인!”

콰과과광!

두 번째에 이은 세 번째 라인데인도 마찬가지다.

거리를 두었지만, 그것은 분명 크라켄을 당시에 사용했던 3연격 라인데인이었다.

***

갑작스럽게 날아온 문자메시지.

마법사 지망생들은 그 문자메시지가 한율의 전화번호로 날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너튜브에 접속해 BJ코인의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메모라이즈 라인데인!

-콰과과광!

3연격 라인데인.

부산에서 발생한 브레이크 전투에서 공개되었던 마법사의 전격 마법.

마탑을 찾은 마법사 지망생들이, 숙소와 가까운 헌터 길드에서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마법사 지망생들이, 대사관으로 이동해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마법사 지망생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화면에 집중했다.

-후우! 윈드.

작게 숨을 고른 한율이 윈드 마법을 사용해 연기를 걷었다.

“미친.”

“허어.”

누군가는 욕설을 뱉었고, 누군가는 긴장이 확 풀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리빙 아머는 없었다.

라인데인이 떨어진 장소엔 거대한 구덩이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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