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디펜스(1)
철컥, 철컥.
K-7을 정비하고.
꾸욱! 꾸욱!
마법 구슬을 왼팔 팔뚝에 고정한다.
“감정, 감정, 감정.”
감정 시스템을 이용해 장비를 확인한다.
“후우!”
2시 50분.
점검을 마친 한율이 주변을 둘러봤다.
방벽 위에 자리한 이들이 있었고, 창문을 활짝 열어 둔 건물 안에 자리한 이들이 있다. 자신처럼 실외 훈련장에 설치한 모래 포대 뒤에 자리한 이들도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할 몬스터는 뭐죠?”
한율이 자신의 옆에 자리 잡은 협회 소속 헌터에게 물었다.
바로 태블릿PC를 켠 협회 소속 헌터가 인터넷 지도를 열어 게이트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버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 버그?”
“네. 버그.”
“…….”
“…….”
한율이 딱딱하게 고개를 돌렸다.
“바퀴벌레요?”
“네. 뭐, 바퀴벌레와는 달리 날개가 없지만요.”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바퀴벌레를 닮은 몬스터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던 한율이 작게 숨을 골라 마음을 안정시켰다.
아직 모른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숫자는 소멸 작업 횟수에 따라 줄어든다.
“소멸 횟수는?”
“…….”
협회 소속 헌터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설명을 포기한 듯이 태블릿PC를 한율에게 내밀었다.
이름: 버그 굴 게이트(0/8).
등급: E+.
서식 몬스터: 버그, 파이어 버그, 아이언 버그 외 8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0:0:08.
“왜죠?”
“5시간 전에 생성되었습니다.”
“…….”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E급, D급 게이트의 폭주다.
당연히 12월 14일, 11시 55분 전에 생성된 모든 게이트가 이번 현상에 휘말렸다.
“……많을까요?”
한율뿐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훈련장에 자리 잡은 이들이 고개를 돌려 협회 소속 헌터를 간절하게 바라봤다.
“E급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대충 200마리 정도입니다. 소멸 작업 횟수가 제로인 게이트가 폭주한 것이니…….”
“천육백?”
“네. 천육백.”
1,600마리나 되는 바퀴벌레가 몰려온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쳐 몇몇 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고, 상상력은 뛰어난데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했다.
“그다음은요?”
“스파이더입니다.”
“……거미?”
“네.”
“바퀴벌레 다음은 거미?”
“……네.”
“소멸 횟수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2회 남았습니다. 등급은 D급이며 일반적으로 D급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숫자가 300마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600마리?”
“네.”
협회 소속 헌터는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한율은 안심하는 대신 ‘바퀴벌레 다음은 거미’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을 켰다.
22시 58분.
2분만 지나면 E급, 그리고 D급 게이트가 폭주한다.
한율은 잠시 꺼 둔 무전기를 켜고 오더를 내렸다.
“준비하세요. 2분 남았습니다.”
***
쿠구구구궁!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넘어질 정도의 지진과 함께 마나의 밀도가 상승하자 한율이 작게 숨을 골랐다.
‘점점 짧아지려나…….’
반년도 지나지 않아 게이트가 또 위험한 쪽으로 변화했다.
‘아니면…….’
한율이 한쪽 눈을 감았다.
“반년이냐…….”
둘 중 하나다.
반년마다 게이트가 위험한 쪽으로 변화하거나.
“옵니다!”
-준비!
지휘권은 한율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휘권을 가진 인물은 수도 방어 사령부에서 찾아온 대령.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사령관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한율이 조준간을 단발에서 반자동으로 바꾸고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아니면 점점 짧아지냐.”
반년도 지나지 않아 세 번째 게이트 변화가 찾아오거나.
-폭파!
어느 쪽이든 시간은 매우 부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콰앙!
차도에 미리 설치해 둔 폭탄이 폭발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던 버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포격!
휘이잉! 콰앙!
옥상에 자리 잡은 박격포가 포탄을 날렸다.
연속적으로 일어난 폭발로 인해 시야를 가리는 검은 연기가 생성되었지만, 대령은 멈추지 않았다.
적은 1,600.
그것도 선봉대에 선 적들의 숫자가 1,600이었기 때문이다.
-방벽 위의 헌터들은 공격 후 바로 마나를 회복한다!
“파이어 스피어!”
“아이스 랜스!”
방벽 위에 자리 잡은 헌터들이 초능력을 사용했다.
생명력을 감지하고 몰려오던 버그들이 폭발에 휘말려, 초능력을 막지 못해 그대로 소멸되었지만 버그 굴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버그는 일천 마리가 넘는다.
방벽 위에 서 있던 헌터들이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기초 마나 호흡법을 외워 마나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대기!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 이들이 있는 것 같았다. ‘타앙’ 하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대령의 명령에 한율이 방아쇠와 손가락 사이를 벌리고 전방을 바라봤다.
바리케이드의 경우는 정석대로 입구에 세울 경우 도리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를 가로막기에 입구가 아닌 훈련장의 끝, 그러니까 건물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 세웠다.
검은 연기를 뚫고 다시 버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대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아직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헌터 길드는 도로 한복판에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다.
환영 마법사, 그리고 대량의 마나를 품은 마나석을 이용해 유인하고 있는 버그들이 실외 훈련장 및 건물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사선에 들어오는 것은 방향을 꺾었을 때, 일직선(→)으로 달려오다 방향을 꺾어 입구를 통과할 때(↴)였다.
그래서 한율을 비롯한 헌터 그리고 총기로 무장한 일반인들은 대령의 명령에 따라 대기했다.
버그들이 활짝 열려 있는 방벽과 방벽 사이에 설치한 정문을 통과했다.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버그가 입구를 통과했다.
쉬이잉! 콰앙!
건물 옥상에 설치한 박격포가 계속해서 포탄을 쏘아 내 방벽 뒤에 버그들을 공격하고 마나를 회복한 헌터들이 방벽 뒤에 버그들을 공격했다.
방벽을 통과한 버그들을 공격하는 이?
없다.
대한민국은 원딜의 나라다.
당연히 폭발에 의한 연기는 생성되지 않았고, 점점 거리도 좁혀지니 징그러운 버그의 모습이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와 몇몇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다시 이어지는 대령의 ‘대기’ 명령에 공격은 멈췄다.
가까워진다.
점점 가까워진다.
-발사!
대령의 명령.
두두두두두두!
총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예상보다 적들의 숫자가 많은바! 대기 중인 C급, B급 헌터들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공격에 집중한다!
성장을 위한 전투에 집중한다.
하지만 몹들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다.
이미 충분한 대화를 나눠 전술적 결정한 상태였기에 대령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이는 없었다.
그렇게 C급, B급 헌터 및 훈련장 그리고 건물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입구를 통과한 버그를, 그 외의 사람들, 방벽 위에 자리를 잡은 헌터와 옥상에 자리 잡은 헌터들이 방벽 밖에 있는 버그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전용 화기가 통하지 않는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은 너무나 많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아닌데 버그의 사체가 산처럼 쌓였다.
-마법사 부대!
1서클 마법사 지망생들로 이루어진 부대는 두 부대로 나눠 한쪽은 방벽 위에서, 한쪽은 실외 훈련장에서 실드 마법을 사용해 아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맡은 임무는 ‘실드’를 이용한 아군 지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율이 공개한 마법은 여덟 가지.
파이어, 아쿠아, 윈드, 어스, 라이트, 다크, 실드 그리고 디그.
실드와 마찬가지로 땅 구덩이 생성 마법, 디그는 고서클 마법사가 되어도 자주 쓰이는 마법이었기에 실드와 함께 공개한 것이었다.
-디그!
“디그!”
“디그!”
마법사 지망생들이 디그 마법을 사용해 버그 사체로 이루어진 작은 언덕을 땅속에 묻었다.
시체가 쌓여서 만들어진 작은 언덕은 살아 있는 적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개일 경우다. 수십 개나 되는 언덕은 적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벽이 되고, 아군의 공격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된다.
***
지휘를 하던 감위헌 대령은 생각했다.
‘편한데?’
편하다.
지형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전장을 아군에게 유리하고, 적에게 불리하도록 바꿀 수 있다.
1서클 마법에 불과하기에 쉽게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고, 하급 마법사이기에 대량의 인원이 필요하긴 하지만 얻게 되는 이점에 비하면 무척이나 사소한 결점이다.
이게 끝이냐?
아니다.
파이어 마법은 야영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고, 포션이 없어 지혈에 어려움을 겪을 때 매우 고통스럽지만 지혈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아쿠아? 윈드?
아쿠아는 물이 부족할 때, 윈드는 길을 잃었을 때 매우 유용한 마법이다. 실드나 디그는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주문을 외우는 시간.’
캐스팅 속도.
캐스팅 속도의 문제로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긴 곤란할 수 있겠지만 전투 외, 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마법으로 대다수 해결이 가능했다.
‘곧바로 건의해야겠군. 보고서와 계획서를 써야겠어.’
일반 병사들에게도 마법을 배우게 한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뒤다.
감위헌 대령이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버그들 때문이었다.
10분.
20분.
30분.
-남은 버그는 대략 300마리입니다.
지휘하는 부대가 아닌 사령부와 연결해 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보고에 감위헌 대령이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남은 버그는 300마리입니다. 화기를 다루는 일반인들 및 B급 헌터들을 제외하고 모두 마나 호흡법을 사용해 마나를 회복합니다.”
감위헌 대령이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무전기를 내리고 이어폰을 가볍게 두들겼다.
“환영 마법사는?”
환영 마법사 및 속도와 관계된 헌터들은 독자적으로 움직여 몬스터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나름의 지능이 있는 B급 몬스터라면 자신들을 유인하고 있다고 판단해 거대한 마나 또는 생명력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작지만 대량의 생명력이 모여 있는 곳을 공격하겠지만, 폭주한 게이트는 E급 게이트와 D급 게이트에 불과했다.
환영 마법사와 헌터들은 작전대로 움직여 몬스터들을 헌터 길드로 유인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간다면…….”
큰 피해 없이 E급, D급 게이트의 폭주를 막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사흘 후에 일어날 C급, 그리고 B급 게이트의 폭주와 30일 후에 일어난 A급 게이트의 폭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