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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후우…….”
마법을 사용하는 한율의 영상만 편집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시청한 금발의 미녀, 엘렌이 작게 숨을 골랐다.
“힘들다.”
1차 면접과는 다르다. 1서클 실드 마법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모든 1서클 마법을 성공시켜야 했다.
함께 한국을 찾은 미국 헌터 협회의 추측에 따르면, 너무나 많은 지망생들이 탈락해 2차 면접을 준비하는 지망생들은 모두 합격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엘렌은 그들의 예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승이 될 마법사, 한율이 인정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30%는 탈락할 거야.’
한율은 하는 일이 많다.
청일 그룹과의 계약으로 주문서 및 아티팩트를 제작해야 했고,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게이트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마법사 지망생들의 교육까지 진행한다?
얼마 못 가 과로로 쓰러질 게 분명했다.
당연히 한율은 그리고 그를 지원하는 세 단체는 합격자를 더욱더 줄일 가능성이 컸다.
“스으읍! 후우우…….”
하나하나, 한율의 마법 강의에서 배운 1서클 마법을 복기하던 엘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커피머신 앞으로 이동했다.
캐러멜 마키아토가 마시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으으. 진짜 쓰던데.”
카페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엘렌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캐러멜 마키아토 버튼 대신, 에스프레소 버튼을 눌렀다.
아주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채워지는 검은 액체.
그냥 눈으로만 봐도 쓰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검은 액체.
“으으음.”
검은 액체, 에스프레소를 바라보던 엘렌이 고개를 돌려 냉장고를 바라봤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부으면?
그게 카페라테다.
“으으으으음.”
엘렌이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정수기를 바라봤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으면?
그게 아메리카노다.
“에휴.”
필요한 것은 맛이 아니다. 졸음을 쫓기 위한 카페인 충전.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온 엘렌이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
“……어디 갔냐?”
“옥상이요.”
“훈련?”
“네.”
“그거 훈련 맞냐?”
“…….”
대답 대신 침묵하는 협회 직원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쉰 사카이자와 하세가 바로 호텔 옥상으로 향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마법사가 될 인재다. 당연히 옥상 입구에는 헌터 협회 직원들이 경호를 서고 있었다.
“훈련 중입니까?”
“어, 음……. 네.”
망설였다.
하세는 대답을 망설인 헌터 협회 소속 헌터를 바라봤고, 그가 어색하게 웃자 한숨을 내쉬며 옥상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을 열자마자 입구가 아닌 옥상에서 경호를 서던 협회 소속 헌터들의 시선이 모여 하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네고 류노스케를 찾았다.
“호……오?”
또 미친놈처럼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주문을 외우는 건지 눈을 감은 채 주문을 외우고 있다.
하세가 그런 류노스케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띤 채 지켜봤다.
“파이어!”
눈을 번쩍 뜬 류노스케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커다란 불꽃이 생성됐다.
“흡!”
“……?”
대체 뭘 하는 걸까?
하세가 바로 앞에 생성된 불꽃 앞으로 양손을 뻗는 류노스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할 때, 촛불의 모습을 하고 있던 거대한 불꽃이 변하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변한다.
압축되는 것처럼 불꽃이 점점 작아지더니 류노스케가 오른팔은 하늘로, 왼팔은 땅으로 움직이자 길쭉한 불꽃이 되었다.
“흐으으읍!”
이상한 기합을 뱉으며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는 류노스케와 그의 손짓에 따라 변화하는 불꽃.
누군가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변화하는 불꽃을 바라봤고, 누군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탄성을 흘리며 류노스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놀라움은 단 10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크,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크하하핳핳 콜록콜록!”
큰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지만, 폐활량이 부족해 기침을 토하는 류노스케.
천재는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는 말이 정말인 걸까?
“진짜 재능은 있는데…….”
하세가 그런 류노스케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보조석에 앉아 태블릿PC를 조작하던 매니저, 배연성이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봤다.
방금 막 라디오 방송을 끝낸 유아리는 힘들지도 않은지 스마트폰을 이용해 마법 강의를 시청하고 있었다.
“유리야.”
“……넹?”
“괜찮아?”
“뭐가요?” 일하면서 공부하는 거.”
유아리가 원했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가수 유리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기획사는 반겼다.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가진 아이돌 가수가 탄생하는 것이니까.
“괜찮아요. 쪽잠 자면서 활동하는 게 한두 번인가.”
“……그래. 며칠 뒤면 끝나니까.”
2차 면접에 합격을 해도, 불합격을 해도 상관없다.
1차 면접에 합격한 순간부터 가수 유리의 스케줄은 두 배로 늘어났다. CF도 들어왔다.
2차 면접에 불합격을 해도 상관없다. 이미 가수 유리는 1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
“연예계 활동을 허락해 줄까?”
유아리가 스마트폰을 터치해 영상을 일시 중지시키고 고개를 들었다.
“모르죠.”
“안 물어봤어?”
“네.”
“……왜?”
“1차 면접 도중에 물어보는 건 좀 그렇잖아요.”
2차 면접이 남았는데 1차 면접 도중에 가수 활동과 마법사 수업을 함께해도 되냐고 묻는다?
적어도 현명한 행동이라 할 수는 없다.
설레발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가수로서의 인지도를 앞세우는 것처럼 보여 면접관들에게 안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도 컸다.
“뭐.”
“……?”
“허락 안 해 주면 관둬야죠.”
관둔다?
뭘?
아이돌을?
마법사를?
“어떤 걸 관둔다는 거야?”
“마법사요.”
때마침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 상태였다.
운전하던 로드 매니저는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운 후에 고개를 돌렸고, 스케줄을 확인하던 배연성은 태블릿PC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지, 진짜?”
“네. 언니들이랑 동생들한테 피해를 줄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재주가 있다.
로드 매니저가 아주 빠른 속도로 고개를 돌려 신호등을 확인한 후에 다시 이유리를 바라봤다. 배연성도 다르지 않았다.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왜?”
“율 쌤은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해 마법이라는 기술을 공개한 거니까요.”
한율이 마법이라는 기술을 공개한 이유는 대중에게 마법을 판매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성하지 않아도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초능력자를 만들기 위해서,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초능력자를 만들기 위해서 마법이라는 기술을 공개한 것이고, 마탑이라는 헌터 길드를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마법이라는 기술이 더욱더 사람들에게 친숙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마법사의 탑이라는 헌터 길드의 인지도를 더욱더 높이기 위해 설령 2차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기술’을 대가로 자신을 ‘고용’할 것이라고.
***
12월 12일, 저녁 23시 55분.
[능력이 진화합니다.]
[거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창.
“시벌?”
컴퓨터 앞에 앉아 2차 면접 합격자의 신상 기록부를 확인하고 있을 때 나타난 메시지창에 한율은 환호하는 대신 욕설을 뱉었다.
마법사 레스트 그리고 정령왕 에리얼과 의견을 나누며 차원 거래라는 능력에 대해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게이트의 변화 그리고 몬스터의 변화에 맞춰 차원 거래 능력이 진화한다는 가정이었다.
단서?
있다.
최초로 차원 거래 능력을 각성했을 당시, 그 시기에 맞춰 A급 게이트가 나타났다.
차원 거래 능력의 진화에 맞춰 게이트와 몬스터의 변화가 발생했던 것이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이면 의심을 해 봐야 한다.
“헛수고라고 해도.”
한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둘러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4층으로 이동했다.
어두컴컴한 연구실의 전등을 켜고, 곧바로 금고 앞으로 이동했다.
협회에 알리고, 청일 그룹에 알리고, 유지태 비서관의 개인 번호로 연락해 대비책을 세운다?
그게 옳은 일이다.
게임이 아니니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하지만 그 옳은 일도 시간이 있을 때나 옳은 일이다.
차원 거래 능력을 각성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A급 게이트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올라왔고, 게이트의 변화에 맞춰 차원 거래 능력이 진화했다.
[게이트가 변화합니다.]
[폭주까지 남은 시간이 단축됩니다.]
즉, 한율에게 지금 일어난 일은 ‘옳은 일’이라기보다는 ‘문제를 야기하는 일’에 불과했다.
금고 앞에 서서 번호를 누르던 한율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단축…….”
앞에 일부라는 단어가 붙어 있지 않으니 분명…….
우우웅!
한율이 왼손으로 통화 버튼을 터치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고, 오른손으로 미리 지정해 둔 금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네. 협회장님.”
-긴급 상황이다.
“확인했어요. 현재 서울에는 총 몇 개의 게이트가 있죠?”
-삼백하고도 여든일곱 개.
덜컥. 끼이익.
금고의 문을 열자 미리 제작해 둔 주문서가 담긴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율이 박스를 꺼내면서 물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 단축된 거죠?”
-아직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그렇겠지.
“…….”
방금 메시지창이 나타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김환성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박스를 꺼내던 한율이 아주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생각할 때, 김환성이 다급히 말했다.
-30시간.
“등급 관계없이 전부 30시간?”
기본적으로 게이트는 사나흘 전에 소멸 작업을 진행한다.
“30시간씩 단축된 거면 위험한 건 아니…….”
-그래. 아니, 뭐? 자, 잠깐!
갑작스레 김환성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말싸움을 하듯 송화기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한율은 상황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상황 정리 후에 이어질 김환성의 설명보다 수십 개의 알람창이 나타나는 것이 더 빨랐다.
[게이트의 등급에 따라 ‘폭주까지 남은 시간’이 단축됩니다.]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입니다.]
[A급 게이트가 30일 후 폭주합니다.]
[B급 게이트가 3일 후 폭주합니다.]
[C급 게이트가 3일 후 폭주합니다.]
[D급 게이트가 3시간 후 폭주합니다.]
[E급 게이트가 3시간 후 폭주합니다.]
-…….
“…….”
김환성이 입을 다물었고, 한율도 입을 다물었다.
희미하게 송화기를 타고 귀에 들려오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이거 모든 게이트겠죠?”
-그래…… 그렇겠지. 아니, 맞다. 모든 게이트다. 지금 야간 근무조가 보고 중인데 알람창에 쓰여 있는 대로 D, E급 게이트는 3시간, B급과 C급은 72시간으로 바뀌어 있다.
“…….”
-…….
“후우…….”
-하아…….
동시에 침묵하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위험했던 게이트가 최초로 등장 때와 똑같은, 아니 그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찾아왔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D급과 E급 게이트 먼저 정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2시간, 아니 1시간 이내에 다시 연락을 주마.
“네.”
복잡할 것이다.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경이 복잡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