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소방청(1)
12월 6일.
헌터 길드, 마법사의 탑의 1차 면접이 종료되자 1차 면접에 합격한 마법사 지망생들은 제각기 수련에 들어갔다.
첫째 날, 면접을 통과한 마법사 지망생이 기자에게 붙잡혀 2차 면접시험 내용을 알렸기 때문에 수련 시간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뭐, 예상보다 많은 가입 신청자가 포기하고 귀국하다 보니 2차 합격자는 모두 합격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긴장감이 살짝 떨어졌지만, 말 그대로 가설에 불과했기 때문에 1차 합격자들은 바로 수련에 매진했다.
서울 동대문구, 마법사의 탑.
“후우.”
정문 앞까지 배웅 나온 한율이 깊은 한숨을 내쉬는 유지태 비서관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일도 줄어들 텐데 왜요?”
“면접 포기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스파이를 보낸 국가는 분명 마법사의 탑과 교류 중인 헌터 인사 비서관실에 연락을 취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니 사무실로 복귀해도 그는 쉴 시간도 없이 외교관들을 만나야 했고, 사방에서 오는 전화를 받으며 끔찍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 분명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김환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헌터 길드가 마법 유출을 목적으로, 또는 한율을 회유하고자 사람을 보냈다. 사전에 차단되기는 했지만 스파이를 직접 만나 처치했으니 길드에서 사람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한율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마지막 면접관, 이상민에게 물었다.
“삼촌도요?”
“기업에서도 스파이를 보냈으니까.”
“응? 흔한 일이에요?”
“그래. 기술을 빼내기 위해, 기술자, 또는 과학자를 빼내기 위해 스파이를 보내는 것은 우리 쪽에서는 흔한 일이지.”
역시 경험치가 다르다.
“그럼 2차 면접 때…….”
“그래. 고생해라.”
“옙.”
한율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김환성, 이상민이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 차에 올랐고, 유지태 비서관이 똑같이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고 차에 올랐다.
마탑을 빠져나가는 수십 대의 차량.
한율은 정문을 통과한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몸을 돌렸다.
정문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분명 공지사항을 인터넷에 올렸을 텐데.”
“돈이 되니까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한율이 상체를 반쯤 틀어 하양이를 끌어안은 청일 그룹의 경호팀장, 배희연을 바라봤다.
“돈이요?”
“네.”
조회 수를 위해, 시청률을 위해.
한율이 다시 상체를 돌려 정문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기자들이었다.
“인터뷰해도 오겠죠?”
“네. 옵니다.”
“무시하면 막 이상한 글 올리겠죠?”
“그럴 리가요. 마탑의 뒤에는, 한율 님의 뒤에는 나라가 있고, 대기업이 있고, 협회가 있습니다.”
화풀이로 이상한 기사를 올려 세 집단과 척을 지고 싶은 신문사, 그리고 방송국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메이저급 언론사에서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 한율은 배희연의 말에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에 몸을 돌렸다.
***
“농업이라…….”
마법사 지망생, 김덕배 덕분에 떠올릴 수 있는 전투 외의 마법 사용처, 농업.
농업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법을 사용해 발전을 꾀할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그저 몬스터의 위협, 게이트의 위협 때문에 전투에 사용할 방법에만 집중해서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니지. 다른 사람이라면 할 수도 있겠네.”
매주, 시간이 없어도 매달 정신 교육을 받았다.
브레이크 전투에 참가했고, 각성 범죄자 진압 작전에 참가했다.
타 부대가 민간 지원을 나설 때, 헌터를 지원해 전투 지원 작전에 참가했다.
“머릿속에 싸움밖에 없으니 생각을 못 했지.”
생각이 전투에 집중된 탓에 마법이라는 효율적인 기술을 전투에만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껴 작게 한숨을 내쉰 한율이 노트북 앞에 앉아 한글 파일을 열었다.
“일단은 농업인가?”
김덕배는 말했다. 마나를 흡수해 영양가가 높아진 농작물을 생산한다. 여기서 마나를 흡수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방법은 마나 집약 마법진을 새긴 아티팩트를 논 곳곳에 배치시키는 것이다.
“훔쳐 갈 가능성이 있으니. 땅에 묻는 것보다 설치하는 게 나을 거 같고…….”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회복 마법으로 성장력을 높일 수 있으려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회복 마법을 이용해 농작물의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레스트에게 물어봐 찾으면 되고, 그게 어렵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보다 더 힘을 쌓은 이후, 정령의 존재를 밝혀 땅의 정령의 힘을 빌린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땅의 정령’까지 한글 파일에 작성했던 한율이 ‘←’키를 눌러 작성된 글을 지우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농사는 농사꾼에게 맡겨야 하니 이건 덕배 씨 오면 같이 고민하고.”
분야: 농업
1. 마나 집약 마법진을 그린 마나석을 논에 설치한다. 절도 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땅에 묻는 대신, 따로 장비를 제작한다. 이 장비는 청일 그룹의 도움을 받는다.
2. 회복 마법이 성장력, 그리고 농작물의 영양가를 높일 수 있는지 실험한다. 이 실험에 성공할 경우, 마나 집약 마법을 그린 마나석 제작을 전면 철회, 마나 영양제(포션) 조제에 길을 잡고 움직인다.
3. 농사 전문가인 김덕배 씨 주도로 연구를 진행한다.
“다음은 공업인데…….”
‘분야: 공업’까지 작성했던 한율이 미간을 살짝 모은 채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거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수면 시간 그리고 휴식 시간을 제외한 18시간을 잘게 쪼개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연구 및 새로운 마법 사용처 확인 및 실행까지 추가한다?
근시일 내에 과로로 쓰러질 게 분명했다.
사인은 과로사가 되겠지.
“……나중에, 나중에 하자. 나중에.”
한율이 마우스 위에 손을 올렸다. 한글 파일을 닫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해 ‘삭제(D)’ 위까지 옮겼지만, 왼쪽 버튼을 클릭해 휴지통으로 보내는 대신 폴더를 만들어 그 안에 숨겼다.
“뭐 하냐?”
“아, 중요한 일.”
“그렇……. 아, 미안.”
갑자기?
갑자기 찾아와 뭐 하냐고 묻더니 중요한 일이라고 하니 갑자기 미안하다고 말한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던 한율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한유라를 바라봤고, 얼굴이 살짝 붉어진 그녀의 모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냐.”
“아냐. 오빠도. 음, 오빠도 남자니까. 그렇지. 오빠도 남자지.”
“뭔 개소…….”
한율이 고개를 홱 돌렸다.
모니터.
자신이 새로 만든 폴더의 이름은 직박구리.
압축 프로그램을 설치할 경우에 생성된다는 새 이름 폴더.
“그거 아냐!”
“아냐. 미안해. 내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어야 했는데.”
“아니라고 했다.”
“미안.”
“야! 네가 확인해 봐!”
“이게 미쳤나!”
***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마법 사용처를 늘리는 건 미루기로 했습니다.
“예?”
-마법사는 한 명인데, 그 마법사가 하는 일이 너무 많잖아요.
“하긴…….”
유지태 비서관은 복귀하자마자 마법 사용처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제안서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가 놓친 맹점인 ‘마법사는 한 명이다’라는 사실을 한율이 지적하자 곧바로 보류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인했다.
“안 하는 것은 아니죠?”
-네. 김덕배 씨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파일을 닫고 ‘이름 바꾸기’를 클릭해 맨 뒤에 기한을 ‘기간 미지정’으로 수정했다.
“미루는 것은 연구가 필요한 일, 직접 발품을 팔아서 실행하는 일 등, 기존에 하던 작업에 새로운 작업이 더 추가되는 것에 한정되는 것입니까?”
-네? 그건 왜요?
“아, 어느 기관에서 기획서를 보내와서 확인차 질문드리는 겁니다.”
-그건 따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까?
“예. 어떻게 보면 주문서 제작 의뢰, 그리고 아티팩트 제작 의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느 기관에서 주문서, 그리고 아티팩트가 필요해서 헌터 인사 비서관실에 기획서를 보냈다는 말씀이네요?
“예.”
-그냥 의뢰하면 되잖아요.
“공무원이지 않습니까. 구입하고자 하는 주문서, 그리고 아티팩트는 당연히 세금으로 구입하게 되니 기획서로 작성되어 위쪽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 기관의 대빵이 우리 길드에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마법사 육성을 위해 대통령 각하가 지원하고, 청일 그룹이 지원하고, 헌터 협회가 지원하는 마법사의 탑으로요?”
-눈치 보여서 못하겠네요.
“예. 그래서 직접 찾아와 전달하더군요.”
-직접?
“네.”
-기관 대빵이?
“네, 기관 대빵이.”
***
대체 어디서 날아온 기획서일까?
유지태 비서관은 국가에서 구입하기로 한 주문서의 양을 축소시키는 것까지 감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만남을 요청했다.
“어디일까요?”
교육 준비를 끝내고 찾은 기숙사 식당.
각 단체에서 파견 나온 헌터들이 후식으로 나온 귤을 까먹으며 한율의 물음에 저마다 의견을 냈다.
“농업 관련 기관이 아닐까요?”
김덕배라는 사내의 등장으로 마법을 이용한 농업 발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헌터 인사 비서관실만이 아니었다.
청일 그룹 또한 어떻게 하면 마법을 이용해 농업을 발전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공업 아닐까요?”
“확실히.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농업보다는 장비를 제작하는 공업 쪽의 요청을 먼저 들어줄 거 같은데.”
청일 그룹 소속 헌터에 이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헌터 협회 소속 헌터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헌터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추측을 입에 담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이 아주 조용히 귤만 까먹고 있는 국가 소속 헌터들을 바라봤다.
“알고 계세요? 오늘 오는 손님.”
“그……게…….”
“어차피 30분 후에 만날 텐데.”
서로를 훔쳐보며 고민하던 국가 소속 헌터들이 맞은편에 앉아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한율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방청입니다.”
“소방청?”
“예.”
대체 왜 방어 주문서의 양을 줄이면서까지 새로운 주문서를 구입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으음? 소방청? 경찰청은요?”
한 헌터의 물음에 다른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경찰청이 나옵니까?”
“어? 행정안전부 아래 소방청하고 경찰청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