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면접(1)
게이트와 몬스터의 출현으로 총인구는 크게 줄었다.
그중 헌터는 1%, 4천만 명이다.
게이트가 위험한 쪽으로 변화하자 각성자의 숫자도 늘어났지만, 게이트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휘말려 사망한 헌터들이 많아 여전히 1% 선을 유지하고 있다.
“각성을 하지 못했지만 마법의 재능이, 마나 감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을 리가 없죠. 예상하고 있는 재능 보유자의 수는 헌터와 동일하다고 예상합니다.”
1층.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던 한율이 유지태 비서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4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대한민국에 머무른다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각국에서 보낸 입국 명단을 확인한 결과, 입국자는 총 칠천 명이었습니다.”
“……헤에.”
감탄사?
캔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며 잠시 설명을 멈춘 유지태 비서관이 예상한 것처럼 탄성을 흘린 한율에게 물었다.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시는군요.”
4천만 명 중에 겨우 7천 명이다. 이상하게 여겨야 정상이었지만 한율의 반응은 너무나 담담했다.
“예상가는 게 있어서요.”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두려움.”
“…….”
“…….”
“맞습니다. 우리 쪽도 두려움 때문에 재능을 포기한 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지태 비서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을 했음에도 헌터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헌터 중에도 몬스터와 싸우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가진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을까.
지금은 법률로 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마법사도 헌터로 분류될 것이고, 헌터는 브레이크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는 법률로 인해 몬스터와의 전쟁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능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도 있습니까?”
“마법은 기술이자 학문이라는 것.”
각성자는 각성을 맞는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생긴 초능력 사용법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너무나 쉽게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르다.
마나를 느껴야 하고, 마법을 이해해야 한다. 방송을 통해 열심히 설명을 했음에도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마나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마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뭐, 공부에도 대기만성형이 있으니,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차후에 이를 알아차려 ‘마법사의 탑’을 찾아 면접을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이유도 아십니까?”
“……세세하게 가면 수십 가지가 넘지 않나요?”
한율의 말대로 더욱더 깊숙이 파고들면 입국자의 수가 칠천 명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수십 가지나 된다.
쿡 하고 웃은 유지태가 캔커피를 옆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버리고 태블릿PC를 내밀었다.
“아, 일단 전해 드리겠습니다.”
“뭘요?”
“오늘의 유망주라고…… 해야 하나.”
“……?”
고개를 갸웃하며 유지태 비서관을 바라보던 한율이 태블릿PC를 켰다.
영화배우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다.
한율은 다시 고개를 들어 유지태 비서관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유지태 비서관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자 태블릿PC 화면을 터치했다.
이름: 엘렌 알렉시아.
국적: 미국.
나이: 21세.
면접 번호: 101번.
특이 사항1: 미국 S급 헌터, 카일 알렉시아의 여동생.
특이 사항2: 11월 8일, 1서클 생성.
특이 사항3: 스파이 가능성 0%.
“아하.”
오늘의 유망주라고 하기에 뭔가 했다.
“옆으로 밀면 다른 유망주?”
“예. 오늘은 두 명입니다. 미국과 한국.”
한율이 바로 화면을 옆으로 밀었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 나타났다.
“……에? 진짜?”
“예. 진짭니다.”
청일 그룹의 김태산이 방문했기에 오늘이 면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 유아리(유리).
국적: 한국.
나이: 20세.
면접 번호: 57번.
특이 사항1: 여성 아이돌 그룹, 식스센스 서브 보컬.
특이 사항2: 11월 12일, 1서클 생성.
특이 사항3: 스파이 가능성 0%.
특이 사항4: 주문서 제작자, 또는 아티팩트 제작자 희망.
엘렌과 유리, 아니 유아리의 신상 기록.
페이지를 돌려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신상 기록을 읽은 한율이 하단 ‘2/2’라는 페이지 수를 확인하고 물었다.
“유망주에 대한 보고서라면 다른 날에 면접 보는 유망주에 대한 보고서도 있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날짜별로 PDP를 제작해 두었죠.”
“감사합니다. 그러면…….”
한율이 태블릿PC를 옆구리에 끼고 유지태 비서관에게 말했다.
“다시 피로의 방으로 돌아갈까요?”
“하아…….”
피로의 방.
수백,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면접실이다.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을 한 유지태 비서관이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
“3년 차 여성 아이돌 그룹, 식스센스의 메인 보컬입니다. 귀여운 외모와 밝은 성격으로 제육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있는 멤버이며, 방송계에서는 예능 아이돌이라 불립니다. 현재 출연하는 예능은 세 개. 아, 음악 방송 MC도 맡고 있습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한율, 그가 김태산의 설명을 멈추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응? 제육이요?”
“예. 제육.”
“제육볶음 할 때 그 제육?”
“제6감, 그래서 제육.”
“…….”
“…….”
“아, 아아. 팬클럽?”
“예.”
선글라스를 낀 터프한 남성,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설명하는 제육, 김태산이다.
“태산 씨.”
“예, 부회장님.”
“…….”
“……?”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취미다. 상관이라고 해서 부하의 사적인 취미까지 터치할 수는 없다.
잠시 머뭇거렸던 이상민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태블릿에 집중했다.
성격을 물어봤는데 유리, 아니 유아리라는 여성 아이돌 가수의 경력을 알게 된 한율도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율도 이상민처럼 태블릿PC를 이용해 다른 면접자를 살폈다.
똑똑똑.
끼이익.
헌터 협회에서 지원 온 협회 직원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대기하고 있던 열 명이나 되는 남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앉으세요.”
긴장했는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열 명의 남녀.
한율은 자리를 권유했고, 열 명의 남녀가 의자에 착석하자마자 하양이를 소환했다.
“하양이 소환.”
앙!
책상 위에 소환되자마자 귀여운 울음을 터트리는 하양이.
한율이 귀여운 하양이의 등장과 함께 긴장이 살짝 풀어진 사람들을 확인하고 빙긋 웃었다.
“방송 또는 공문을 통해 들으셨죠. 면접은 하양이가 봅니다.”
“……?”
“그러면 여기 있는 면접관들은 누구냐.”
한율이 가장 좌측에 앉은 유지태 비서관을 바라봤다.
“55번, 58번 면접자.”
55번, 58번 면접자들이 유지태 비서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11월 29일에 마법 강의 영상이 올라온 홈페이지에 새로운 공문을 올렸습니다. 확인하셨죠?”
11월 29일.
한율은 헌터 협회, 헌터 인사 비서관실 그리고 청일 그룹 사람들과 오랜 회의를 걸쳐 마법 강의 영상을 업로드 한 홈페이지에 새로운 소식을 올렸다.
내용은 마법사의 탑, 마법사의 탑 지부에 대한 것.
마법사의 탑에 가입한 마법사는 중급 마나 호흡법과 함께 한율에게 직접 마법을 배울 수 있다.
1년 이내에 각국에 설치된 마법사의 탑 지부는 초급 마나 호흡법과 함께 한율이 직접 제작한 마법서 번역본을 통해 마법을 배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탑 지부는 소속과 관계없이 마법사라면 마법을 배울 있다는 것이다.
선발대를 시작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어느 정도 안정되면 공개할 사실을 미리 밝히기로 한 것이었다.
결과?
한국으로 향하는 항공권 30%가 환불되었고, 입국한 마법사 유망주 20%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예.”
자국의 언어가 아닌 한국어로 대답하는 세 명의 외국인.
유지태 비서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일 그룹의 부회장, 이상민을 돌아봤다.
“51번, 53번 면접자도 확인하셨죠?”
“예! 확인했습니다!”
이상민이 고개를 끄덕인 한율을 돌아봤다.
“하양아?”
앙!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면접자들을 쭈욱 살핀 하양이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한율이 유지태 비서관 그리고 이상민이 면접자들의 번호를 다시 불렀다.
“마지막입니다. 51번, 53번, 55번, 58번.”
“…….”
“면접자들은 청일 그룹, 헌터 협회 그리고 대한민국, 즉 국가가 협력해 신변조사를 합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51번, 53번, 55번, 58번.”
드르륵.
51번, 53번, 58번 면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면접장을 빠져나갔다.
아직 남아 있는 55번 면접자.
“경상남도.”
드르륵.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김환성이 ‘경상남도’를 언급하자 55번 면접자도 자리에서 일어나 면접장을 빠져나갔다.
“…….”
“꿀꺽.”
국가의 스파이, 또는 길드의 스파이라면 당연히 탈락 대상이다.
하지만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간에 네 명이나 되는 면접자가 탈락한 것이다. 당연히 남은 면접자들의 표정이 다시 긴장으로 굳어졌다.
“52번, 54번도 나가 보세요.”
“……!”
“나가 보세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조사한 내용을 확인해 보니 범죄 이력이 있네요.”
“어, 어렸을 때의 실수입니다!”
“하양이는 인간의 성향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범죄 이력만 보면 59번 면접자도 탈락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양이의 면접을 통과했습니다.”
“…….”
“저는 분명 말했습니다. 하양이가 면접을 보고, 하양이의 선택을 믿고 면접을 진행한다고.”
“…….”
“참고로 마법 중에는 최면 마법이 있습니다. 해 볼까요?”
52번, 54번 면접자가 이를 바득 갈았다.
하지만 헌터인 김태산 그리고 한율이 노려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면접장을 나갔다.
쾅!
“분명 인터넷에 올리겠네.”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인생이 끝장날 텐데.”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상 기록이 자신들의 손에 있다.
분명히 면접 시에 신변정보를 조사하겠다고 공지했고, 그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
이렇게 확보된 사실을 직접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허위사실에 대한 반박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확인을 마친 길드 및 타 국가의 스파이들에게 탈락통보를 하지 않고 면접을 진행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으로 경고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제 남은 면접자는 57번, 59번, 60번.
한율이 남은 면접자들을 돌아보고 빙긋 웃었다.
“그럼 바로 면접을 시작할까요?”
“네!”
한 명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 명은 하양이를 바라보며, 한 명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대답했다.
“그럼 바로 1서클 마법 실드 사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