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검은 귀신 게이트(4)
검은 귀신 게이트의 몬스터는 언데드 그리고 고스트.
다시 한번 고민에 잠겼던 한율이 빛 속성 마법을 지우고 방어 마법을 저장했다.
무기 점검 완료.
방어구 상태 확인.
메모라이즈 마법 확인.
고개를 끄떡인 한율이 이대한과 문수원을 바라봤다.
이대한은 방패를 던지고 회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가끔 능력을 사용해 방패 테두리에서 칼날이 튀어나오도록 조작했다.
문수원은 자신이 빌려준 군용 단검을 휘두르거나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게이트 밖에서 주변을 경계해야 하는 김태산과는 달리 게이트 안에서 한율을 기다려야 하는 세 사람.
“가디언을 토벌해야 하잖아요.”
“……?”
“한 분은 같이 가야 할 거 같은데.”
“왜죠?”
나올 줄 알았다.
한율이 배희연의 물음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가디언이잖아요.”
“…….”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경호팀과 함께하고 싶다.
한율이 제안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제안하려 했던 김세혁이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여인을 바라봤다.
창백해진 유지수와 찰나에 불과하지만, 몸을 부르르 떤 배희연.
“제가 갈까요?”
배희연이 고개를 돌려 유지수를 바라봤고, 유지수가 고개를 돌려 배희연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두 사람이 같이 게이트 앞에 서서 게이트를 배회하는 유령을 지켜보고 좀비들을 지켜본다?
“제가…….”
“제가…….”
동시에 입을 열었던 배희연, 유지수가 바로 말을 멈췄다.
한율 일행을 따라간다?
기다리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다려도 지옥이고, 따라가도 지옥이다.
“팀장님. 이번에는 제가 들어갈까요?”
배희연이 환한 미소를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까아악! 까아악!
게이트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은 홀로 정신 병원 입구에 서서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한율의 이론에 따르면 게이트 밖에 ‘나오는 것’은 진짜 귀신.
배희연이 고개를 홱 돌려 한율을 째려보다가 좋은 수가 생겼는지 빠르게 입을 열었다.
“하양이와 함께 기다릴 수 있을까요?”
“네?”
“네.”
“어, 진심으로요?”
“네.”
“…….”
한율이 잠시 침묵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하양이를 소환했다.
앙!
아주 귀여운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잠시.
“…….”
“하양이 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한율에게 인사를 건넨 하양이가 고개를 홱 돌려 정신 병원 옥상을 바라봤다.
“……하양이 님?”
크르르.
“하양이 님?”
앙! 앙! 앙!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옥상을 노려보는 하양이.
멍하니 그런 하양이를 바라보던 배희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건물 옥상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건물 옥상.
“그러고 보니 까마귀들이 건물 옥상이 아니라 나무 위에 앉아 있네.”
귓속을 파고드는 이대한의 중얼거림.
배희연이 고개를 돌렸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았다.
하양이처럼 인간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옥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
고스트는 이능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토벌하기 어렵고, 좀비는 재생 능력이 높고 혼합독을 품고 있어서 토벌이 까다로웠다.
다만 원거리 능력자가 있고, 고스트와 언데드의 상극인 빛 속성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C-등급은 검은 귀신 게이트는 D등급 게이트보다 위험도가 떨어진다.
문제는…….
“하아. 진짜 싫다.”
너무나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들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가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묘지가 정신 병원으로 바뀌며 게이트의 크기가 줄어들어 탐지 마법을 사용해 핵의 위치를 찾을 수 있어 좀비와 스펙터를 토벌하며 움직였다.
정신 병원 건물 옥상 앞.
삐걱거리는 문 앞에 선 한율이 작게 숨을 고르고 휴식을 제안하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거나 벽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빛 속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서 몬스터 토벌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마석 확보 그리고 계속해서 몰려드는 끔찍한 외형의 몬스터들 때문에 찾아온 정신적인 피로.
“와! 진짜 심장 멈출 뻔했다, 그때.”
벽에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율의 말에 바닥에 쪼그려 앉아 휴식을 취하던 문수원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고 물었다.
“언제요. 1층? 2층? 3층?”
“2층. 3층은 그래도 나았잖아.”
3층은 좀비가 아닌 스펙터로 가득했다. 하지만 2층은 좀비로 가득했다. 그것도 1층을 배회하는 좀비들과는 다르게 최신 좀비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들처럼 엄청난 신체 능력과 ‘달리기’ 기능이 추가된 좀비로 가득했다.
빛을 발견하고 고개를 홱 돌린 좀비.
입을 쩌억 벌린 채 달려오는 좀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던 좀비들을 떠올린 문수원이 몸을 부르르 떨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율의 말대로 진짜 심장이 멈출 뻔했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좀비가 아니라 달려오는 좀비라니!
그것도 방에서 뛰쳐나와 고개를 홱 돌려 인간들을 바라보고 달려오는 좀비라니!
“뭐, 심장이 멈춘 것은 아니지만…….”
비명을 지르던 두 사람이 떠올라 피식 실소를 터트렸던 이대한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율과 문수원이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휴식을 취하게 되자 문수원은 등에 업고 있던 여인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허리에 기다란 칼을 차고 있는 검은 양복의 미녀.
A급 헌터, 배희연.
그녀는 2층에 올라 방에서 뛰쳐나온 좀비들이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뒤로 주춤 물러섰고, 입을 쩌억 벌리며 달려오자 그대로 기절했다.
“파트너.”
“왜.”
“어떻게 할까? 우리만 들어갈까?”
“…….”
한율이 잠시 고민했다.
가디언을 토벌한 후에 배희연을 데려오면 되지 않을까?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그녀와 함께 가디언과 전투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한율이 걸어가 벌어진 문틈 사이를 이용해 옥상을 확인했다.
검은 보석이 허공에 떠 있었고, 그 앞에 좀비 한 마리가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3m가 넘는 거대한 좀비다.
썩어 버린 왼팔은 언제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썩어 버린 신체에서 떨어져 나간 살점은 헌터 협회 직원이 전달한 정보처럼 살아 움직이듯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마나를 느꼈다.
하지만 핵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거대한 좀비가 고개를 돌려 옥상 입구를 바라봤다.
“오우씹!”
표현이 안 됐다.
“우리만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그렇게 심각한가?”
그렇게 외형이 심각한가?
“으음,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단계로 나누잖아?”
“어.”
“1층은 1단계에 불과했어.”
“2층은?”
“2단계.”
“……3단계냐?”
“10단계.”
“…….”
호기심이 생겼다. 이대한이 천천히 걸어가 한율처럼 문틈 사이로 얼굴을 가져가 옥상을 확인했다.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이대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12단계인데?”
***
천천히 눈을 뜨니 금이 간 천장이 보였다.
검은 핏자국이 남은 천장.
“……!”
황급히 상체를 일으켜 세운 배희연이 양손을 더듬어 칼을 잡았다. 바로 돔 형태의 실드가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말이다.
“하아아…….”
진짜 싫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녀는 귀신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진실이다.
그녀는 징그러운 게 싫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영화가 좀비 영화였고, 제일 싫어하는 게이트가 A급 게이트가 아니라 곤충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였다.
과거, 등급이 낮은데 몬스터가 품은 마나가 등급에 맞지 않게 너무 거대한 게이트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성장이 빨라질 수 있음에도, 높은 등급의 마석을 확보할 수 있음에도 그 게이트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곤충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였기 때문이다.
배희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주변을 확인했다.
“……한율 님?”
한율이 보이지 않았다. 문수원도, 이대한도 보이지 않았다.
배희연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정신 병원 옥상 입구인 것으로 추측된다.
우측에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좌측에는 삐걱거리는 문이 있었으니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배희연이 한율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고 그대로 휘둘러 실드를 파괴하고 옥상 문을 열었다.
“한…….”
크아아아아!
좀비가 있다. 지금까지 보았던 좀비는 좀비라고 부르기에도 우스울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한 좀비가 있었다.
뚜두둑!
거대한 좀비가 목뼈가 부러질 정도로 고개를 홱 돌렸다.
파악!
살을 뚫고 튀어나온 목뼈.
“…….”
크아아아!
거대한 좀비가 배희연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런 좀비를 정면에서 목격한 배희연은…….
털썩.
“시발한율…….”
문수원처럼 한율을 욕하고 다시 기절했다.
***
다음 날.
배희연은 유지수와 교대했다.
“큭큭큭.”
아니, 정확하게는 교대하려고 했다.
한율 일행은 유지수에게 1층에는 어떤 적이, 2층에는 어떤 적이 나타나고 가디언은 어떤 몬스터인지 알려 줬다.
하지만 무의미한 경고였다. 게이트의 변화로 핵의 위치가 매번 바뀌는 것도 모자라 몬스터의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게이트에 진입해 한 걸음 옮기자마자 사방에서 좀비들이 뛰쳐나왔다.
고개를 홱 돌려 안전 지역을 벗어난 한율 일행을 바라봤고, 이내 입을 쩍 벌린 채 달려왔다.
그 결과?
배희연과 유지수가 기절했다.
“율이 형.”
“응?”
“다음에 제안할 때는요.”
“어.”
“문자로 먼저 알려 주세요. 게이트의 이름, 출몰 몬스터. 게이트가 생성된 장소까지.”
충혈된 눈동자와 짙은 다크서클.
한율은 잘생긴 미소년에서 어두운 소년으로 바뀐 문수원을 보고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응. 다음에 도움이 필요하면 게이트의 이름,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게이트 생성 위치까지 상세하게 적어서 문자 보낼게.”
“……형.”
“응?”
“다음에는 이런 게이트에 데려오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시발한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