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검은 귀신 게이트(2)
좀비, 정식 명칭은 구울인 몬스터는 몸이 반으로 갈라져도 죽지 않았다. 영화처럼 머리를 자르면 사망하니 토벌은 무척이나 쉬웠지만, 이대한과 문수원은 나서지 않았다.
이대한?
방패에 살점, 썩은 피, 그리고 내장 파편이 묻어 거부했다.
문수원?
스피드를 살린 격투술로 몬스터와 싸우기 때문에 그도 거부했다.
그래서 한율이 나섰지만, 그가 나서자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다.
타앙!
자연스러웠다.
총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마나를 주입해 총알을 강화,
조준간을 단발로 저장하고 발사.
“어, 형님들.”
“응?”
“막 영화보면요.”
“어.”
“좀비들이 막 소리 내면서 몰려오잖아요.”
“…….”
잠깐의 침묵, 그 끝에 이대한과 문수원이 구울에 대해 조사를 한 한율을 돌아봤다.
“다르냐?”
“……같아.”
“오겠네?”
“오겠지.”
철퍽, 철퍽.
저 멀리서 들려오는 좀비의 발소리.
발소리가 겹쳐 몰려오는 좀비의 숫자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10마리 이상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징그러운 외형의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좀비 영화처럼.
그때였다.
“율이 형.”
“……응?”
“아까 희연 님에게 그랬잖아요.”
배희연 헌터님?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창백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문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스트 몬스터는 마나를 감지하고 몰려든다고.”
“그랬지.”
“그럼 게네들도 오겠네요?”
손가락으로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빛의 마나 구체. 라이트를 가리키는 문수원이다.
그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어 빛의 구체를 바라보던 한율이 말했다.
“오겠지.”
“게네들 형체가 없으니 막 벽도 통과하고 그러겠네요. 영화처럼.”
“어. 그렇겠지.”
타다닥.
한율이 대답과 동시에 이대한과 자리를 교체해 선두에 섰고, 뒤로 물러난 이대한이 문수원과 등을 맞대고 창밖, 그리고 단단한 벽을 경계했다.
스으윽.
반투명한 강아지가 벽을 통과했다. 몸의 절반만 내보인 채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여 주는 강아지다.
“조금 귀……엽기는 개뿔.”
작은 미소를 그렸던 문수원이 울상을 지으며 말을 정정했다. 벽을 통과해 모습을 드러낸 강아지는 상체만 내밀고 한율 일행을 바라본 게 아니었다.
강아지는 상체만 남아있었다.
“아아아! 율이 형 진짜 싫어!”
문수원이 팔을 뻗어 이대한의 뒷목을 잡고 강제로 자리를 교체했다.
하지만 벽에서 튀어나오는 고스트 몬스터를 경계하는 게 훨씬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끄어어어.
좀비들이 기이한 소리를 뱉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가 180도 회전한 인간, 하반신이 없는 인간 등 하드코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간들이 허공에 떠서 공허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한율!”
***
한율 일행만 하드코어 영화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고생하고 있는가?
아니다.
게이트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희연 일행도 고생하고 있었다.
“으, 으으으.”
눈을 감은 상태로 ‘철퍽철퍽’ 하는 소리, ‘끄어어어’하는 기이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유지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벽만 바라봤다.
하지만 벽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마나가 남아있던 탓일까. 반투명한 고어테스크한 유령들이 벽을 통과해 식당으로 들어왔다. 마치 투명한 막이 생성된 것처럼 주변을 쓰윽 돌아다니고 다시 사라졌지만, 유령의 등장을 목격한 그녀는 바로 양손을 옮겨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김세혁 때문일까, 아니면 유지수 때문일까.
무서웠다.
하지만 배희연은 유지수처럼 눈을 감지도, 귀를 막지도 못하고 정면만 응시했다.
철퍽……. 철퍽…….
좀비가 지나간다. 그것도 얼굴의 반이 짓뭉개진 좀비가…….
“정말 신기하네.”
식당을 배회하고 사라지는 유령을 관찰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김세혁이 고개를 돌려 배희연을 바라봤다.
“어, 희연 님?”
“왜요.”
“잠시 나가서 고스트 몬스터와 싸워 봐도 될까요?”
“왜죠?”
“아니, 고스트 몬스터를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요.”
“그걸 왜 지금 하려는 거죠?”
날카롭다.
김세혁은 아주 날카롭게 반응하는 배희연의 모습에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물러서서 다시 두 여인을 바라봤다.
한 명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한 명은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싫어서 정면을 바라보며 손을 부들부들 떤다.
‘뭔가…….’
재밌다. 막 동생들에게 하는 것처럼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솟았다.
문제는 장난을 치면 새하얀 빛이 식당을 가득 채울 것 같고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의 목을 썰어낼 것 같았다.
***
“허억, 허억.”
작게 숨을 고르는 이대한.
“시발한율 시발한율 시발한율.”
이제는 형이라는 호칭도 붙이지 않고 욕설을 뱉는 문수원.
“괜히 받았어. 아냐. 그래도 해야지. 시발시발.”
피와 살, 시체가 난무하는 바닥을 보고 싶지 않아 천장을 바라보며 후회하고, 용기를 내고, 또 후회하는 한율.
그렇게 10분쯤 흘러 김세혁과 같은 과인 이대한이 한율에게 물었다.
“필요한 마석이 몇 개라고?”
“135개.”
“그렇군.”
고스트는 마석을 파괴해야 토벌할 수 있으니 고스트 몬스터에게서 마석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
어렵나?
이대한이 다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욕설을 뱉는 한율을 불렀다.
“파트너.”
“왜.”
“고스트, 그리고 언데드는 빛에 취약하지?”
“어. 취약하지.”
“흐음, 그럼 마법 중에 그런 거 없나. 물건에 빛 속성 마나를 주입하는 마법.”
“있어. 마나 웨폰이라고.”
“왜 안 했지?”
“…….”
그러게?
왜 안 했을까?
한율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2서클 마법, 마나 웨폰을 두 사람에게 걸었다.
당연히 주문을 수정해 속성력을 더하고, 더하는 속성력을 빛으로 전환.
우우웅.
이대한, 그리고 문수원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였다.
“호오?”
작은 목소리로 탄성을 흘린 이대한이 방패를 띄워 빛의 마나가 남는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문수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율을 바라봤다.
“율이 형.”
“한율시발이라매.”
“욕이 안 나오면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진심을 다해 묻는 문수원에게 한율은 납득했다.
인정이지 씨발.
“그래. 우리 수원 동생.”
“무기 좀 빌려줘요.”
“총?”
“소리 나는 무기 말고.”
“군용 단검밖에 없는데.”
“그 짧은 거?”
“어.”
“왜!”
“아니. 그야 군대에서 배운 게 단검술이니까.”
“시발!”
아주 착했던 아이가 귀신을 보고 사나워졌다.
자신의 잘못이지만…….
한율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거래창에서 꺼낸 군용 단검을 내밀었다.
문수원이 군용 단검을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역수로 잡지 마. 그거 어렵다.”
영화나 게임에서 단검을 역수로 쥐어서 그런 걸까.
고개를 끄덕인 문수원이 단검을 바로잡자 한율도 총기를 회수하고 군용 단검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그럼 다시 출…….”
“마석을 구하려고 이곳을 찾은 거 아닌가, 파트너.”
“아씹…….”
시체의 몸을 헤집어 마석을 찾는다. 그래서 이대한의 말에 한율은 욕설을 뱉고 좀비의 사체에 군용 단검을 가져갔다.
이대한도 마찬가지다. 한율에게 군용 단검을 빌려 사체 해부를 도왔다.
문수원?
주변 경계 임무를 맡았다. 그렇게 복도를 가득 채운 좀비 사체를 해부해 마석을 확보할 때, 궁금한 게 생겼는지 잠시 고민하던 이대한이 단검을 회수하고 한율을 불렀다.
“파트너.”
“왜.”
“그 염력 마법으로 마석을 빼낼 수는 없는 건가?”
“…….”
침묵.
문수원이 고개를 홱 돌려 한율을 째려볼 때, 한율이 다시 해부를 하며 대답했다.
“좀비 몰려온다. 귀신 몰려오고.”
문수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때, 이대한이 말했다.
“마석을 구하러 온 거 아닌가. 그럼 자리를 잡고 애들 불러 모아 확보하는 게 더 좋지 않나.”
“…….”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야.”
“그래. 파트너.”
“닥쳐.”
“…….”
바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한율은 그의 입을 막았고, 해부를 마친 후에도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애들 부를게.”
“파트너?”
“오케이. 부를게.”
“파트너?”
***
11시에 시작해 저녁 5시에 끝난 게이트 활동.
“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피곤해 정신 병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몸을 축 늘어트린 채 걸음을 옮겨 출입 기록부를 작성하던 한율이 고개를 들었다.
“수호 길드에서 검은 귀신 게이트를 소멸시켜도 된다고 합니다.”
“안 할 건데요.”
내가 미쳤다고?
“그 보상을 한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안 할…….”
안 할 거다. 1층에 서식하는 좀비와 고스트를 토벌하는 것도 진이 빠지는데 더 상위의 몬스터와 싸울까.
토벌이 어렵냐?
그건 아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 한율이 진심을 담아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레스트: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둠의 마석 350개를 5일 안에 구해 주실 수 있습니까?]
“…….”
[레스트: 수십만 명의 목숨이 달렸습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수십만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단다.
[레스트: 350개를 5일 안에 확보해 주신다면 4서클 마법서를 전부 드리겠습니다.]
보상은 둘째 친다.
수십만 명의 목숨.
“하아아아……………….”
한율은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불안한 표정을 짓는 일행들을 무시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1회 소멸에 얼마 준답니까.”
“3억입니다.”
와!
C등급 게이트 소멸 작업 한 번에 3억이란다.
가격이 세다.
왜 이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했을까?
대충 예상이 갔지만 확인하기 위해 한율이 물었다.
“혹시 게이트의 변화 이후 소멸 작업 안 했나요?”
“네.”
“……그래도 지금까지 소멸 작업을 진행했으면 가디언에 대한 정보는 있겠네요. 가디언이 된 몬스터는 스펙터?”
“좀비입니다.”
“…….”
“잘라도 잘라도 몸이 바로 재생되는 것은 물론, 잘려 나간 신체도 움직이는 그런 좀비라고 합니다.”
진심으로 거부하고 싶다.
[레스트: 생각보다 위험하군요. 나흘 안에 가능하겠습니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지만 수십만 명의 목숨과 함께 제 목숨도 걸려 있습니다.]
참 적절한 타이밍에 날아오는 레스트의 메시지가 발목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낸 한율이 경매장 어플에 들어가 검색란에 어둠의 마석을 적었다.
경매장에 올라온 어둠의 마석은 없다.
단 한 개도.
“오늘 확보한 어둠의 마석이…….”
다섯 개.
C급 어둠의 마석 다섯 개.
“잠시만요. 저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직원에게 말하고, 동료들에게 말한 한율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 실드를 생성해 소리를 차단하고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레스트 님.”
[레스트: 예. 한율 님. 죄송합니다.]
“아뇨. 사과 받으려고 연락드린 건 아니고요.”
한율이 거래창을 열어 C급 어둠의 마석을 올렸다. 그러자 레스트의 거래창에 올라온 4서클 마법서.
자연스럽게 부족한 값을 계산한 한율이 C급 마석 다섯 개를 전부 올려 거래를 하고 레스트에게 물었다.
“C등급 마석이거든요. 이걸로 350개인가요?”
[레스트: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닙니다. 이 정도의 마석이라면 50개면 충분합니다.]
50개…….
반나절 동안 좀비 수백 마리, 고스트 수백 마리를 토벌해서 확보한 마석이 다섯 개에 불과하다.
“C급 마석의 배나 되는 어둠의 마나를 품은 마석은요? B등급이요.”
떠오른 메시지.
한율이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실드를 해제하고 헌터 협회 직원 앞으로 돌아와 말했다.
“1회에 4억이면 한다고 전해 주세요.”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연락도 안 하셨는데요?”
“리미트 4억 5천이었습니다.”
“…….”
한율은 멍하니 직원을 바라보다 수호 길드의 이름을 물었고, 문수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으며, 이대한은 작은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