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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83화 (83/221)

083 검은 귀신 게이트(1)

한율은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었다.

그래.

믿었었다.

어제저녁 11시까지만 해도 그는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었다.

검은 귀신 게이트를 방문하기 전날 밤. 한율은 메시지창을 열어 레스트 그리고 바람의 정령왕인 에리얼에게 물었다.

귀신은 존재할까요?

에리얼은 이렇게 대답했다.

[에리얼: 귀신이 뭐죠?]

귀신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는지 에리얼은 오히려 되물었다.

레스트는 이렇게 답했다.

[레스트: 스펙터 말입니까? 지상을 떠나지 못한 영혼이 마나를 흡수, 허나 완벽하게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몬스터화한 영혼.]

한율은 그 대답을 듣고 다시 물었다.

영혼이 마나를 흡수, 온전하게 마나를 흡수하면요?

[레스트: 정령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제약이 생기지만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그 영역을 지키는 정령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그 영역을 수호하는 영혼.

달리 말하면…….

‘지박령.’

한율이 고개를 살짝 돌려 힐끔 세 사람을 살폈다.

배희연, 유지수, 문수원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탐지 마법 사용 결과, 생명력은 감지하지 못했지만 대량의 마나가 완벽한 형체를 이룬 채 이동 중이라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배희연은 아예 검에 마나를 주입한 채 사방을 경계할 것이고, 유지수는 정신을 잃고 기절, 문수원은 놀랄 일이 있으면 바람처럼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귀신은 게이트, 몬스터가 지구를 침공하면서 존재하게 되었다.”

“야이 개…….”

“예?”

“아닙니다.”

입을 연 사람은 이대한이 아니라 김세혁이다.

유지수의 딸꾹질을 듣고 욕설을 뱉을 뻔한 한율이 고개를 살짝 젓는 순간, 이대한이 김세혁에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마나라는 이능의 힘이 귀신을 존재하게 했다고.”

“마나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김세혁이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한율 님은 마법사이니 답해 주실 것 같네요. 귀신은 존재합니까?”

“……모르는데요.”

“아는 것 같은데. 아까도 몬스터가 존재하고 초능력자가 존재하는데 귀신이 없겠냐는 김세혁 헌터님의 말에 침묵하지 않았나, 파트너.”

이대한의 추궁은 날카로웠다.

김세혁보다 만만한 이대한이었기에 그 말을 무시하고 저 멀리 보이는 게이트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뒤를 따라오던 세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어 한율을 붙잡았다.

“알려 주세요.”

“모르는 게 더 무섭거든요!”

“혀, 형님.”

마나라는 이능의 힘을 사용하고 몬스터라는 영화 또는 게임에서나 나오는 괴물들과 싸우는 사람들이어서 그럴까.

귀를 막거나 무시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물었다.

한율이 작게 심호흡을 하고 세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순화해서 레스트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즉, 존재한다는 거군요.”

스르릉.

검을 꺼내 드는 배희연.

“몬스터가 되거나 수호신이 된다는 말입니다만?”

“수호신? 지박령을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갑작스레 신체 강화에 사용하는 마나량을 높인 문수원이다.

“어, 엄마아아.”

다시 한번 부모님을 찾는 유지수.

“…….”

한율이 잠시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원아.”

“네, 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경호하는 거니까 토벌에 참가하지 않겠지만 너는 참가하니까 묻는 건데.”

“……?”

“게이트 활동 가능하겠냐?”

“네.”

망설임이 없는 대답.

“왜?”

“게이트 밖의 몬스터는 진짜 귀신이고, 게이트 안의 몬스터는 몬스터니까요.”

아닌데…….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공간이니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도 귀신이다. 하지만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최대한 비밀로 하기로 했기에 한율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정면을 바라봤다.

낡고 허름한 식당.

다리가 부러진 식탁과 널브러진 의자, 그리고 사람들의 낙서와 검은 자국이 가득한 식당 중앙에 생성된 거대한 게이트.

-히히히.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성의 웃음소리.

“……!”

마나라는 이능의 힘이 귀신을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네 남녀는 주변을 경계하는 대신 그대로 땅을 박차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

“……꿀꺽.”

마나라는 이능의 힘이 ‘귀신’을 실존하는 진실로 만들었다.

“마, 마나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 마법사가 하는 말이어서 그런지 정말 그럴듯한 이야기네요.”

말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머릿속은 이미 귀신은 존재한다고 받아들였다.

정신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차량을 세우고 도청 장비에 귀를 기울이던 미 대사관 남직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선배, 털털한 성격의 여 선배가 창백한 표정으로, 그리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도청을 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야근할 때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야근은 절대 하지 않는 여 선배였다.

“선배?”

남성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여 선배의 어깨를 잡았다.

“……꺄아아아아악!”

***

“미친. 똑같아.”

“시, 시바.”

게이트를 통과했건만 장소는 같다.

곤지암 정신 병원 1층 식당.

“파트너.”

“왜, 왜!”

왜 소리 지르냐는 듯이 한율을 바라봤던 이대한이 방패를 왼팔에 장착하며 물었다.

“이런 게이트가 많아질까?”

“내가 아냐?”

“모르냐?”

“몰라.”

“하지만 던전의 모습이 현대화되는 현상은 또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일어났던 일은 두 번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한 번 일어난 일이니까.”

히히히히.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

우우웅.

배희연이 경호라는 임무도 잊고 무기에 마나를 주입했다.

화아아악!

유지수는 전신에 빛의 마나를 둘렀다.

“경호팀은 전투하면 안 되는데요.”

“……왜죠?”

“헌터는 몬스터를 토벌하며 성장하니까요.”

“우리는 성장하면 안 되는 건가요?”

“많이 까칠해지셨네요.”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을 째려보는 배희연의 눈빛에 한율이 뺨을 긁적이다 물었다.

“그럼 흩어져서 활동할까요?”

“왜죠!”

“아니, 경호팀이 몬스터 나오자마자 작살 낼 거 같으니까 그렇죠.”

“…….”

“아니면 게이트 입구에서 기다리시는 건? 게이트 입구는 안전 지역으로 지정되어 브레이크가 올 때까지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않으니까요.”

“…….”

배희연이 고개를 돌려 함께 한율을 경호하게 된 두 남녀를 바라봤다.

유지태가 보낸 경호원 유지수는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김세혁은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른 입구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한율 님에게 수작을 부릴 놈들이 찾아오면 게이트 입구에 있는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될 테니.”

“네. 아, 그리고 가능하면 마나 사용은 줄이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왜죠?”

“어, 아까 말했잖아요. 고스트 종류의 몬스터는 영혼이 마나를 잘못 흡수한 결과로.”

“……마나를 느낀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마나를 감지하고 찾아온다?”

“네.”

“왜죠?”

유행언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던 한율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배희연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전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니 브레이크가 찾아올 때까지 접근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반적으로는요. 하지만 게이트가 넓지 않고. 실제로 브레이크 시간이 남았음에도 브레이크가 일어난 폭주 사건이 있잖아요.”

청일고 습격 사건.

배희연이 침을 꿀꺽 삼키고 한율에게 물었다.

“마나를 두르지 않은 칼로 귀신을 벨 수 있습니까?”

“…….”

대답 대신 고개를 젓는 한율.

배희연은 유지수와 똑같이 창백해진 얼굴로 한율을 바라보고 말았다.

***

“못 베냐?”

“영혼.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야. 이능의 힘을 담지 않는 물질로 공격해도 그냥 통과할걸.”

“진짜 귀신이군,”

“귀신이지. 시발.”

“……귀신을 싫어하나?”

“어. 귀신이 무서운 건 아냐.”

이대한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떨어트려 한율의 왼팔을 봤다.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손을 떨고 있었다.

“그런가?”

“어.”

“그럼 공포 영화도 못 보겠군.”

“못 봐. 싫어한다니까.”

“귀신의 집은?”

“안 가. 말했잖아. 싫어한다고.”

“담력 체험은?”

“안 해. 몇 번이나 말하게 만드는 거야! 싫어한다고!”

“……그렇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한율이 싫어한다고 우겨 이대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는 문수원을 바라봤다.

게이트 밖에서는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던 애가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게이트 안의 존재는 몬스터, 게이트 밖의 존재는 귀신이라고 결론지어서 그런 것일까?

‘음?’

그러면 한율도 같은 결론을 내야 정상이 아닌가?

이대한이 다시 한율을 바라봤다. 게이트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욕설을 뱉고 있었다.

“…….”

뭔가 있다. 아직 감추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먼저 알려 주기 전까지 물어볼 생각은 없다. 이대한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고, 철퍽 하는 이상한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방패를 앞으로 세우고 말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들었어.”

바로 총기를 꺼내 자세를 잡고 주문을 외우는 한율과 양팔에 마나를 두르고 달려 나갈 자세를 취하는 문수원.

철퍽……. 철퍽…….

갯벌, 또는 진흙탕을 걸으면 나올 것 같은 소리.

게이트 밖과는 다르게 어둠이 찾아온 저녁 시간대였던 정신 병원.

“라이트.”

한율이 마법을 사용해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빛의 구체를 생성했다.

환한 빛이 주변을 밝혔고.

그 순간, 한율과 문수원이 주춤 뒤로 물러섰고, 이대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끔찍하군.”

“와! 시발, 와!!”

“으, 으으으으.”

철퍽. 철퍽.

금발의 외국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의 절반이 썩어 버린 금발의 외국인이.

불가능에 가까운 방향으로 다리가 뒤틀린 금발의 외국인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왼팔을 덜렁덜렁 흔드는 금발의 외국인이.

“좀비?”

“정확한 이름은 구울이지만 뭐, 좀비가 더 익숙하네.”

좀비나 구울이나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는 것은 동일하니까.

작은 목소리로 정식 명칭을 알려 주었던 한율이 이대한에게 물었다.

“먼저 할래?”

“그래. 확인은 해 봐야 하니까.”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 이대한이 팔을 크게 휘둘러 마나를 두른 방패를 던졌다.

쉬이익!

퍽!

너무나 쉽게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킨 방패.

잠시 앞으로 쓰러져 꿈틀거리는 좀비를 바라보던 이대한이 초능력을 사용해 방패를 회수……하다가 눈앞에서 멈춰 세웠다.

피와 살점, 그리고 내장이 묻어 있는 방패.

“파트너.”

“어, 물 마법 써 줄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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