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신대길 114(1)
정령계는 평화롭다. 그래서 한율과 거래하는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은 자신의 즐거움 그리고 정령들이 즐길 수 있는 물건을 구입했다.
하지만 레스트는 달랐다.
“자연의 마나석이 있냐고요?”
[레스트: 예.]
“뭐, 생산되기는 하는데요.”
[레스트: 그럼 자연의 마나석 확보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길드는 신설했다. 아직 사람을 모으지 않았을 뿐, 헌터 협회 협회장 김환성의 도움을 받아 길드를 신설했다.
이미 외부에서는 길드를 마탑이라 부르고 있어서 길드의 이름은 ‘마법사의 탑’으로 정했다.
“잠시만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며 캘린더를 열었다.
12월 1일.
대략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길드 사무실로 사용할 건물이 완공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보내 마법이라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국가에서 면접 시기를 늦춰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작업은…….”
면접 날짜가 정해지자 그 전에 완공 짓기 위해 청일 건설은 두 배, 아니 세 배나 되는 인력을 지원했고, 한율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오늘 아침 청일 건설 직원의 보고에 따르면 자신의 도움이 없어도 기한 내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한율이 다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시간과 수량 좀 알려 주시겠어요?”
[레스트: 일주일 내로 135개 이상입니다.]
“…….”
생각보다 구체적인 수량에 잠시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던 한율이 다시 물었다.
“일주일 내로 자연의 힘이 담긴 마석 135개……. 속성은요?”
[레스트: 어둠입니다.]
“……어둠?”
[레스트: 예. 영혼계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어, 죄송하지만 사용처를 알 수 있을까요?”
***
[한율: 어, 죄송하지만 사용처를 알 수 있을까요?]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데모트 왕국.
몬스터가 지배하는 대륙, 어둠의 대륙이라 불리는 지역을 조사하기 위해 데모트 왕국의 의뢰를 받아 바다를 건넜던 레스트는 이후, 왕국의 요청으로 데모트 왕국에 머무르게 되었다.
몬스터를 토벌하거나, 데모트 아카데미 임시 교사가 되어 움직이거나, 군과 협력해 어둠의 대륙에서 일어난 공간 이동 현상이 대륙에서도 발생했는지를 조사하거나.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작은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성벽 위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레스트가 도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든 하늘 아래, 보기만 해도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던 거대한 숲은 생기를 흡수하는 언데드들에 의해 오랜 가뭄이 찾아온 썩어 버린 숲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율: 진짜 죄송한데요. 뭔가 어둠이라고 하니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물론 레스트 님을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레스트가 다시 생성된 한율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작은 미소를 그렸다.
“리치라고 아십니까?”
***
리치의 탄생.
마법사의 탑, 제국, 그리고 신전이 대대적으로 네크로맨서 토벌을 진행하던 도중, 도주자를 놓쳤고, 그 도주자가 리치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도주한 흑마법사가 리치가 된 장소가 하필 데모트 왕국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는 것이다.
복수를 위해, 그러니까 언데드를 모으기 위해 바로 마탑, 제국, 신전을 공격하는 대신 데모트 왕국을 공격해 언데드를 모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럼 빛의 마석 같은 게 좋지 않을까요?”
[레스트: 어둠의 마석으로 피난민들을 숨길 생각입니다. 고스트, 또는 언데드 몬스터에게서 구할 수 있는 마석의 힘으로 마법진을 생성하면, 언데드들은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자신들과 같은 언데드로 보게 됩니다.]
방어를 위해, 힘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어둠의 마석이 필요하다.
“135개면 충분해요? 전투에 쓰일 것도 보낼 수 있는데.”
[레스트: 총 말씀이십니까?]
“네. 빛의 마석을 간 마탄을 채운 총기요.”
[레스트: 한율 님.]
“네?”
[레스트: 일반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살상 무기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총이나 수류탄이라는 물건처럼 반나절 연습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전쟁을 불러옵니다.]
“……그럼 어둠의 마석만?”
[레스트: 네. 마탑, 제국, 신전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리치의 공격을 막아 내면 충분하니까요.]
“그럼 일주일 안에 마석 모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레스트: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참고로 변질된 마석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레스트와의 대화가 종료되었다.
자연스럽게 눈짓으로 메시지창을 치운 한율이 귀에서 떼어 낸 스마트폰을 앞으로 가져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역시 게이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디 보자. 위치는…….”
한율이 자연스럽게 지도를 열었다.
분류란에 ‘고스트, 언데드’를 작성 후 터치.
“위치는…….”
서울에는 없다.
“그나마 가까운 곳은…….”
하나 있다.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길 114.
“…….”
잠시 눈을 비빈 한율이 다시 게이트를 확인했다.
이름: 검은 귀신 게이트(4/8).
등급: C-
서식 몬스터: 다크 위스퍼, 스켈레톤, 구울 외 11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368:26:30.
중요한 건 이름도, 서식 몬스터도, 폭주까지 남은 시간도 아니다.
위치.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길 114.”
자연스럽게 ‘거리뷰’를 열어 위치를 확인한 한율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생성 장소는 바, 밖이겠지?”
한율이 헌터 게시판으로 이동해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검은 귀신 게이트를 확인했다.
“시발!”
휴식 시간이 주어졌는지 웃으며 한율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사장. 갑자기 무슨 일이야. 협박이라도 받았어?”
“……일이 생겨서 게이트 활동을 해야 하는데요.”
“그래?”
“네.”
“그게 왜?”
한율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진 사내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검은 귀신 게……. 미친.”
검은 귀신 게이트.
위치는 곤지암읍 신대길 114.
“그, 그래도 거기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 게, 게이트에서 나오고.”
한율이 다시 스마트폰을 돌렸다. 다시 헌터 전용 게시판으로 화면을 바꾼 그가 모여든 인부들에게 화면을 보여 줬다.
제목: 검은 귀신 게이트 바뀜
내용: 원래는 거대한 묘지형 게이트였잖아. 게이트의 변화가 일어나고 한 번 찾아갔거든? 지형이 변화했다. 정신 병원으로.
⤷이거 진짜임. 나도 이 글 읽고 찾아가 봤거든? 진짜 정신 병원으로 바뀜.
⤷나도 궁금해서 한 번 갔다가 지리고 왔다.
⤷풋! 농담도 심하네.
⤷세 번째 댓글 주인이다. 지리고 왔다. 게이트 밖이랑 게이트 안이 똑같다. 존나 무서움.
“…….”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그럼 다른 데 가면 되잖아요.”
일당이 높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마법 때문인지 매일매일 공사장을 찾은 대학생의 말에 몇몇 인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때, 한율이 말했다.
“어둠의 마석이 필요한 일이어서요.”
“……어둠의 마석을 구할 수 있는 다른 게이트는 없어요?”
“없어요. 있기는 한데 울릉도까지 가야 해요.”
“…….”
“…….”
“그럼 새로 게이트 생길 때까지 안 가실?”
그럴 수는 없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둠의 마석이 필요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물었다가 책임감을 지게 된 상태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한율이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한율이 전화번호를 터치하고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오랜만이군, 파트너.
“야, 오랜만에 파티 짜고 게이트나 돌래?”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보던 인부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가는 그의 행동에 놀라움과 함께 두려움이 찾아와 뒷걸음을 쳤다.
-등급은?
“C- 등급인데 몬스터가 많아서 성장이 빠를 거야. 내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게이트 도는 거다 보니 마석도 비싸게 구입할 거고.”
-좋다. 장소는?
“아, 내가 데려갈게.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에 있거든.”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에 위치한 것은 맞다.
다른 의미로.
-출발은?
“내일 아침. 서울 밖에 있는 게이트여서 모여서 같이 갈 거니까. 내가 데리러 갈게.”
-알겠다.
“그래. 내일 보자.”
방긋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넨 한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인부들, 경악하는 인부들을 무시하고 다시 전화번호부를 터치했다.
-형님!
“그래. 동생아. 오랜만에 게이트나 돌래?”
-저야 좋죠.
“그럼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게. 며칠 정도는 머무르며 움직일 거니까 준비 철저히 하고.”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한율이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어 냈다.
“두 명 확보.”
“우리 사장 무서운 사람이었네.”
“혼자 죽기 싫어서 친구를 끌어들이다니.”
“사, 사장님 나쁜 사람이에요?”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가 이틀에 한 번꼴로 회식을 해서 친해진 사람들에게 물었다.
“응. 나쁜 사람이야.”
“돈 많이 줍니다. 우리 사장님.”
“돈만 많이 주는 나쁜 사람이야.”
그렇게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이상한 세뇌를 할 때, 한율이 다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그래. 율아.
“일이 생겨서 게이트를 가야 해서 연락드렸어요.”
-그래. 경호원들을 준비하마. 아, 유리도 전투 훈련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유리도 이번 활동에 참여시켜도 되겠느냐?
“유리요?”
-그래.
“아뇨.”
-응? 안 돼?
“남양 신경 정신 병원.”
-응? 갑자기 정신 병원?
“곤지암 병원에 생성된 게이트.”
-……유리는 다음에 데려가거라.
“네.”
***
이상남은 바로 비서에게 부탁해 경호팀에 연락했다.
“희연이냐?”
-네, 회장님.
“율이가 볼 일이 생겨서 게이트를 가야 한다고 하니 경호팀 좀 모으거라.”
-많은 사람이 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공식적인 업무가 없으니 제가 직접 경호하겠습니다.
“…….”
A급 헌터, 배희연의 호언장담에도 이상남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 음. 그럼 우리도 인력 소모가 줄어드니 좋기는 하겠지만 괜찮겠냐?”
-네. 분명 헌터 협회에서도, 국가에서도 경호팀을 붙일 것이고, 그들 또한 B등급 이상인 헌터들일 겁니다. 예. 문제는 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닌데.
“곤지암 정신 병원이라는데?”
-예. 알겠……. 예?
“곤지암 정신 병원에 생성된 게이트.”
-…….
“희연아?”
-…….
“희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