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엔젤 트윈스(1)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힐끔 회의실에 설치된 벽시계를 확인한 이상남의 제안에 사람들이 등받이에 몸을 편안히 기대거나 기지개를 피며 휴식을 취할 때, 회의가 일상인 듯 능숙하게 서류를 정리한 유지태 비서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그럼 다음 회의는 언제입니까?”
“흐음……. 율아.”
이상남이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한율이 참가해야 진행되는 회의였다. 한율이 참석하지 못하면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지 간에 무의미한 시간낭비에 불과했다.
“내일 11시. 어떠세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린 이상남, 이상민, 그리고 유지태가 비서의 도움을 받아 스케줄을 확인하고 긍정을 표했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율 님.”
“네.”
“내일 뵙겠습니다.”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는 한율에게 유지태는 미소로 화답한 후, 이상남, 이상민 부자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네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부드럽게 진행됐네요.”
이상남이 회의실을 벗어나는 유지태를 가만히 쳐다보던 한율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유지태 비서관이 말하지 않았느냐. 거부해 봤자 자신들에게 좋을 게 없다고.”
청일 그룹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헌터 협회와의 관계가 틀어진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법사와의 관계가 틀어지며, 최악의 경우 이번 일에 가장 중요한 마법사가 국가를 떠날 수 있다.
전 세계가 각성자를 우대하고 있으니 마법사, 특히 각성을 하지 않아도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각성자가 이민을 고려한다면?
어떤 나라건 온갖 이득을 안겨주며 이민을 추진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설 나라는 미국, 러시아 등 초강대국이다.
“그럼 일본 가서 실컷 고생하고 왔으니 바로 저녁이나 먹…….”
식사를 권유하려던 이상남이 쭈뼛쭈뼛 한율에게 다가가는 세 소녀를 발견하고 계획을 변경했다.
“30분 후에 식사나 하러 가자.”
“……네.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한율도 봤다. 뭐, 보지 않아도 이유리가 마나를 품고 있으니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상남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회의실을 나왔고, 이상민이 걱정스레 세 소녀와 한율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 회의실을 나왔다.
적당히 하라고 말하기에는 자신의 딸, 이유리와 딸의 친구들이 저지른 일이 너무 큰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보물(능력)을 지킬 힘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보물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폭풍으로.
“오, 오빠.”
“그래. 우리 엔젤스.”
“에, 엔젤스?”
세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바라봤다. 그러자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한율이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천사라고 부른다며. 어르신도 천사같이 착한 아이들이라고 하고. 그런데 그런 천사 같은 아이들이 세 명이네? 그럼 엔젤스지.”
“…….”
얼굴이 시뻘게지는 세 소녀.
한율은 그런 세 소녀를 바라보며 큭큭 웃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휠체어를 탄 천사, 이유리의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괜찮아. 언젠가는 밝힐 일이었잖아.”
“그, 그래도…….”
“괜찮다니까. 너도 커보면 알겠지만,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이번만 해도 봐. 부산 다녀오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일본까지 다녀오게 되었잖니.”
“……히, 히잉.”
욕을 듣는 것보다 더 감정을 흔든다. 한율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유리의 모습에 또 한 번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한유라를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인 한유라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유세희는 황급히 가방에서 민트 초코 우유를 꺼내 내밀었다.
이유리?
눈을 꼭 감은 채 한유라를 바라보던 그녀는 유세희가 자신의 손을 잡아 민트 초코 우유를 건네주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민트 초코 우유를 마셨다.
“그래서 아이들하고 어르신들 상태는?”
“킁. 괘, 괜찮아요. 히이잉.”
“에구구.”
새로운 손수건을 꺼내 다시 이유리의 눈물을 닦아 주는 한유라와 아예 가방을 옆에 끼고 민트 초코 사탕의 껍질을 까서 직접 입에 넣어 주는 유세희다.
이유리?
처음과 같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민초 사탕을 입안에서 천천히 굴렸다.
“그럼 지금 유리가 3서클인가?”
“네, 오빠.”
“…….”
“히잉. 죄송해요.”
“또 뭐가?”
“3서클에 오르지만 않았다면…….”
3서클에 오르며 화려한 이펙트(?)가 일어나 마법사를 육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율이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고, 한유라가 다시 눈물을 닦았으며, 유세희가 민트 초코 빵을 직접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렇게 5분.
진정이 됐는지 글썽이는 눈으로 민트 초코 빵을 먹는 이유리를 빤히 바라보던 한유라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두 소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응?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
한유라가 고개를 젓고 손가락으로 유세희를 가리켰다.
“궁금한 거라도 있어?”
“응.”
“마법?”
“응.”
“그럼 아까 물어보지?”
“……우리 상황에서 방금 전 회의에서 마법에 대해 질문을 던지라고?”
사고를 친 그녀들이 정재계 유력 인물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마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뭔 배짱으로?
“오빠.”
“어.”
“나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 아냐.”
“알지. 눈치는 더럽게 빠르다는 거.”
“……이상하다?”
“뭐가.”
“왜 욕처럼 들리지?”
한유라는 실소를 터트렸고, 이유리는 쿡쿡 웃었다.
사고를 친 다음이어서 그런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유세희가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오자 한율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궁금한 건?”
“나도 마법 배울 수 있어?”
“배우는 건 어렵지 않지.”
“오!”
“문제는 재능이 없어서 오래 걸린다는 거?”
“……얼마나?”
“부회장님.”
“10년?”
“에이, 그 정도까지 재능이 없는 건 아니고.”
“오오.”
“한 8년?”
“허어어.”
10년은 배워야 마나 홀이 생성되고 1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상민의 재능에 버금가다니…….
한율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유세희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하는 게 좋겠지.’
한 번에 다 터트리면 진짜 망한다.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안 먹었어?”
인상을 화악 찌푸린 한유라의 물음에 한율이 배를 잡고 대답했다.
“아침에 먹은 기내식이 전부야.”
***
한유라, 한국영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한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회의를 여는 것이었다.
거창하게 가족회의라고 한 것 치고는 그냥 거실에 앉아 함께 TV를 시청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일단 이사 가죠.”
“……대체 일본에서 얼마나 번 거야.”
“어디 보자…….”부산에서 주문서를 판매했다.
브레이크 전투에 참가해 참가수당을 벌었다.
일본의 요청을 받아 크라켄을 토벌하면서 포상금을 받았다.
일본 헌터 협회의 정식으로 고용되어 뒤처리 작업에 참가했다.
귀국 도중, 해외 영업부 일본 영업팀 팀장인 강복남에게서 계약금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라야.”
“왜?”
“전학 가는 건 싫지?”
“…….”
진심인가?
진짜 많이 벌었어?
표정으로 묻는 한유라를 향해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전학 가는 건 싫……. 아, 싫은 게 당연하겠네.”
친구도 친구지만 수능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학?
미친 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미리 설치해 둔 부동산 어플을 터치해 시장에 나온 물건들을 확인했다.
대답도 듣지 않고 일을 진행하는 한율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한유라가 옆으로 이동해 스마트폰을 훔쳐봤다.
‘아파트는 아니고……. 주택가도 아니고…….’
아파트?
그냥 화면을 밀어 아래로 넘겼다.
주택?
마찬가지다.
잠시 찾고 있는 건물이 있는지 멈칫했지만…….
“오빠.”
“어.”
“건물 사게?”
찾고 있는 건물이 진짜 건물이었다.
그것도 5층 이상짜리 건물.
“어.”
“……왜?”
“길드도 만들어야 하잖아.”
“길드를 집 아래에다가 만들게?”
“어. 그게 안전하지 않을까? 실제로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이름 있는 길드들은 건물을 구입해서 윗집에는 길드원 가족들이 살 집, 아랫집은 길드 사무실, 옆 건물은 수련장으로 만들잖아.”
“그렇기는 한데…….”
“……?”
뭐가 문제냐는 듯이 바라보는 한율을 한유라가 멍하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얼마를 번 거야?”
“건물 살 정도는 되더라고.”
“미친…….”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반년밖에 안 된 헌터가 벌써 건물을 구입할 정도로 부를 축적했단다.
“야.”
“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터치해 부동산 어플을 빠져나온 한율이 헌터 경매장 어플을 터치해 갑옷 하나를 보여 줬다.
“……미친. 뭐 이리 비싸!”
“한 번이라도 목숨을 구해 주는 물건이잖아. 비쌀 수밖에 없지.”
갑옷 가격이 어지간한 빌라가와 동일하다.
스마트폰을 터치해 헌터 경매장을 나온 한율이 다시 부동산 어플을 이용해 시장에 나온 건물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음?”
좋은 건물은 아니다.
좋은 땅.
“헤에.”
청일고와의 거리도 짧고 몇 분도 안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청일 고등학교.
이름 그대로 청일 그룹이 후원하는 고등학교 근처이며 버스 정류장도 가까운 탓에 매우 비쌌지만…….
‘살 수 있네?’
크라켄을 토벌하며 벌어들인 수익, 뒤처리 작업 비용으로 들어온 금액이 생각보다 컸다.
A급 게이트 소멸 작업이라는 불행과 B급 게이트 브레이크라는 불행이 겹쳐 일본이 지불한 보상은 50억과 크라켄 한 마리당 20억이라는 추가 보상금이 있다.
뒤처리 작업?
크라켄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크게 받았다.
주문서?
50만 원과 150만 원짜리 주문서를 대량으로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