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준비(2)
“한율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받아 주고 바로 이상남을 바라봤다.
청일 그룹 사람도 아닌 자신이 청일 그룹을 방문한 상대에게 목적을 묻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서관님께서는 무슨 일로 청일 그룹을 방문하신 것입니까?”
“한율 님, 그리고 청일 그룹의 이유리 아가씨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말입니다.”
“…….”
이상남이 고개를 돌려 배희연을 바라봤고, 김환성이 고개를 돌려 임지혜를 바라봤다.
배희연과 임지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런 두 사람을 힐끔 훔쳐보는 것도 잠시, 유지태 비서관이 다시 이상남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회의에 참여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
이상남이 한율을 바라봤다.
작은 한숨을 내쉰 한율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임지혜가 떠나며 비어 버린 자리를 가리켰다.
“저기에 앉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벅저벅.
유지태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이상남은 그런 유지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율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군을 늘릴 방법은?”
“1서클 마법을 가르치죠.”
“……누구에게? 헌터에게?”
“아뇨.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
모여있는 사람들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확인한 한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영상을 찍어 공개합니다. 기초 마나 호흡법과 1서클 마법을 오픈하는 거예요.”
“그게 왜 아군을 늘릴 방법이냐?”
“제게 무슨 일이 있으면 2서클 마법 못 배우잖아요.”
맞다.
마법은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습득한 자가 기술을 배포하지 않으면? 그 기술은 오래가지 않아 사장된다.
기존의 공개된 기술을 거듭해서 발전시킨다?
가능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공개 기간은? 완전 오픈이냐?”
“네. 대신 기초 마나 호흡법, 그리고 기본 마법들만 가르칠 생각이에요. 마법을 배우고 싶으면 제 길드에 들어오면 된다고 하고요.”
“아군은 확실하게 늘어나겠군.”
“적도 늘어날 거 같은데.”
이상민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기술을 독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율,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접근할 거다.
“그래서 청일 그룹, 그리고 헌터 협회와 손을 잡았죠.”
“우리는 어제 알았다만.”
“에이, 그래서 안 도와주시게요?”
그건 아니지.
“그럼, 여기서 질문받습니다.”
한율이 회의실을 쭈욱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민이 다시 손을 들고 물었다.
“예, 부회장님.”
“삼촌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
“…….”
눈동자만 굴려 유지태 비서관을 가리키는 이상민의 모습에 한율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예, 삼촌.”
“나도 배울 수 있느냐?”
“어…… 음……. 일단 기초 마나 호흡법을 익혀 마나를 깨닫고, 영상을 통해 1서클 마법을 공부하면 가능하겠죠.”
“오!”
“대신.”
“……불길하군.”
“정답입니다. 재능이 없으세요.”
“쩝!”
“그럼 질문하실 분?”
다시 이상민이 손을 들었다.
부산에서 주문서를 사용할 때를 생각하면 마법을 상품으로만 보지 않는 게 분명했다.
“네, 삼촌.”
“기초 마나 호흡법이라고 했잖아.”
“글쵸?”
“그럼…… 상위? 상급? 기초보다 높은 마나 호흡법도 있느냐?”
“네. 제가 사용하고, 유리가 배운 게 상위 마나 호흡법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유리에게 돌아갔다. 청일 그룹 사람들만이 한율을 바라봤고.
“상위 마나 호흡법을 배우는 방법은?”
“못 배워요. 중위 마나 호흡법은 배울 수 있지만.”
“호오?”
“재능이 없으면 상위 마나 호흡법을 배워도 효과는 10년은 걸릴걸요.”
“쯧!”
이번에는 혀를 차는 이상민이었지만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공개하지 않는 최상위 마나 호흡법을 이유리에게 가르친 한율의 행동 때문이다.
“다음 질문 있으신 분?”
“질문이 있습니다.”
이번에 손을 들어 올린 사람은 유지태 비서관이다.
“네. 유지태 비서관님.”
“길드에 가입해 마법을 배우고 탈퇴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양이 소환.”
한율이 자세하게 풀어 설명하는 대신 하양이를 소환했다.
테이블 위에서 소환된 하양이.
한율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하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지태 비서관에게 말했다.
“얘가 성향을 볼 줄 알거든요.”
“성……향 말입니까?”
“네. 선악.”
“……선한 사람이어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마법을 배우고 탈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면접 보고 청일 그룹과 헌터 협회의 도움을 받아 조사할 겁니다.”
유지태 비서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뒷조사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럼 안 하고 베풀까요?”
“…….”
대답 대신 침묵했다. 뒷조사를 한다는 말이 불쾌한 게 아니다. 그저 비서관인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불법적인 일을 행한다고 해서 확인한 것일 뿐이었다.
“질문?”
이상남이 손을 살짝 들었다.
“예, 할아버지.”
“국내에서만 제자를 찾을 거냐?”
“……제자요?”
“기술을 가르치는 거 아니냐. 그럼 제자지.”
“그르네…….”
자신은 레스트의 제자.
이유리는 자신의 제자.
“아, 국내에서만 찾을 거냐고 물으셨죠?”
“그래.”
“아뇨. 전 세계에서 찾아야죠. 그래야 제가 안전하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지태 비서관이 다시 손을 들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네, 물어보세요.”
“마법은 각성을 하지 않았음에도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한다는 겁니까?”
“네.”
“오로지 재능과 성향만 보고?”
“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상위 마나 호흡법을 가르칠 거고요.”
한율의 답변에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유지태 비서관, 잠시 침묵하던 그가 다시 손을 들고 제안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갑자기?
유지태 비서관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한율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상남, 이상민 부자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그러죠. 뭐.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10분이면 될 것 같습니다.”
***
쉬는 시간.
회의실을 나온 유지태 비서관은 회의실 앞에서 대기하던 비서관실 직원들과 함께 미리 확인해 둔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했다.
청일 그룹 본사다. 하지만 직원들은 양복을 벗어 설치된 카메라 쪽으로 들어 올렸고, 유지태 비서관은 마나를 끌어올려 감각을 높인 상태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지?
“지금까지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유지태 비서관이 바로 한율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가르친다?
“예.”
-설득이 가능할 것 같나?
“상황을 보아하니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것인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확인차 내용을 정리해 물었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끄응. 아쉽군.
마법사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문서, 그리고 아티팩트라는 물건을 통해 거액의 부를 모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또 다른 마법사를 육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법사가 기술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할 경우를 예측해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마법사는 이익을 포기하고 마법사를 육성하고자 한다.
-헌터 협회의 반응은?
“헌터 협회는 각성 범죄자에게만 기술이 유출되지 않으면 상관없는 듯합니다.”
-청일 그룹?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국가가 그걸 허락하지 않으면?
“청일 그룹, 헌터 협회, 그리고 마법사와 척을 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그보다 더 최악이 있다?
“마법사가 대한민국을 떠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군. 정부로서도 헌터를 늘려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인도적인 결정을 내린 마법사를 존중해 어떤 조건도 달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전하게.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거부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것보다, 찬성함으로써 아주 작은 이익이라도 확보하는 것이 옳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법사에게 붙인 감시는 어찌할까요.”
-감시를 치우게.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뭐, 대기업과 최고의 무력 집단이 붙어 있었으니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예.”
반론은 없다. 청일 그룹,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이미 호위를 붙였을 것이다. 감시자들은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고.
유지태 비서관이 통화를 마치자마자 문자를 보내 감시자들을 물리고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10분이라는 짧은 휴식 시간에도 회의실에 남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율, 이상남, 이상민 부자, 그리고 김환성.
유지태 비서관은 자신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네 사람의 시선에 처음과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상부에서 한율 님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벌써요?”
유지태 비서관이 잠시 회의실을 벗어났을 때, 한율은 이상남, 이상민에게서 마법이라는 기술이 가져올 이익 때문에 그가 몇 번이나 질문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국가의 반대를 예상해 두 사람과 의견을 교환했다.
“예. 거부해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요.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고 하셨습니까?”
“어, 네. 그러려고요.”
“청일 그룹이 있고, 헌터 협회가 있고, 그리고 국가가 있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잠시 말을 멈추었던 유지태 비서관이 한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중파 방송도 함께 이용하시죠.”
“……방송?”
“예.”
“그리고 조건이 필요합니다.”
“길드 가입 조건이요?”
“예.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릴 겁니다. 그러니 제한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흐음…….”
각성을 하지 않아도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다.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게 분명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럼 문제는 허들을 어디까지 높여야 하느냐인데…….
잠시 고민하던 한율은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기초 마나 호흡법을 습득해 마나 홀 생성. 공개된 영상을 통해 1서클 생성 및 사용.”
“길드에 가입함으로써 얻을 특혜는?”
특혜…….
“초급 마나 호흡법. 이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중급 마나 호흡법. 마법은 마법서를 만들어 가입자들에게 배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