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준비(1)
들켰다.
짜잔 하고 들켰다.
“이거 진짜 위험한 거 같은데…….”
마법 주문서라는 물건이 등장하고 며칠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마법 주문서를 제작할 수 있는 마법사라는 존재가 각성을 통해 탄생하는 게 아닌, 재능과 노력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일 그룹이 전력을 다해 정보를 차단해도 최대한으로 막을 수 있는 기한은 일주일.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 익명 사이트에 들어간 한율은 ‘보육원을 찾아온 천사’라는 제목의 글이 생성되자 자연스럽게 그 글을 클릭했다.
[삭제된 게시물입니다.]
“빠르다.”
빠르다. 보육원, 그리고 천사라는 단어가 들어온 글이 생성되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하지만 10분, 20분, 30분이 넘도록 익명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생성과 삭제 사이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인터넷 익명 사이트에서만 소문이 흐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빛의 폭발을 목격한 사람도 많다.
각성?
보육원의 아이가 각성을 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실제로 화제 전환을 위해 청일 그룹에서 진행하고 있는 거짓 정보가 바로 ‘보육원의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문제네.”
이유리는 보육원의 어린아이들만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통화를 해 보니 요양원을 방문해 어르신들을 치료했다고도 했다.
물론 그들이 자신을 치료해 준 이유리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들, 그들의 가족들이 ‘실수’를 할 수가 있다.
술을 먹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족과 똑같은 고통을 겪는 지인들을 만나 실수할 수가 있다.
그들의 실수가 없어도 대한민국은 사방에 CCTV가 설치된 국가다.
보육원에서는 CCTV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요양원과 같이 CCTV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장소에서 치료 행위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청일 그룹의 예측대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알려질 게 뻔했다.
실제로…….
우우웅.
“여보세요?”
-마법사. 만들 수 있는 거냐?
“누가 그래요?”
-보육원 조사 도중에 이상한 것을 알게 되었다. 청일 그룹이 지원하는 보육원에서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한 아이들의 상처가 나았더군. 그래서 청일 그룹이 지원하는 요양원도 조사했지. 그러다 CCTV를 보고 걷지 못하시던 어르신, 지금을 걸으실 수 있는 어르신의 방에서 이유리 양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
-보육원에서 빛이 발현했을 때, 그때 그 보육원에 이유리 양이 있었고.
“…….”
-다시 물으마. 마법사. 만들 수 있는 거냐?
“정확하게는 육성할 수 있습니다.”
육성(育成).
길러서 자라게 한다는 뜻이다.
-마법은 기술이었군.
“네. 기술이죠.”
-……왜 감췄느냐?
김환성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거든요.”
-최악?
“감금, 납치, 협박 등등.”
-…….
“감금은 국가에서 할 거 같았고, 납치는 타국, 또는 각성 범죄자들이, 협박은 길드에서 할 것 같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협회장님. 몬스터 토벌 부대가 가장 많이 참가하는 작전이 뭔지 아시잖아요?”
-…….
대답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율은 대답했다.
“각성 범죄자 진압 작전이에요. 분명 몬스터 토벌 부대인데 마석을 섞은 탄환 등 몬스터 토벌용으로 화력이 높아진, 헌터에게도 통하는 무기를 사용한 각성 범죄자 진압 작전이죠.”
-……본 적이 있구나.
“각성 범죄자 길드에서 유망한 인재를 납치한 사건이 있었어요. 뭐, 비공식 작전이었지만.”
한율은 그 작전에 참가했다. 헌터 협회와 협동해 진행한 작전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율은 평범한 군인이었기 때문에 헌터 협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협회장님도 솔직하게 말하면 아니라고 확신하실 수 없으시잖아요.”
-…….
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다.
하지만 그 대답이 없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내일 아침에 한국으로 돌아가 청일 그룹하고 준비해야죠.”
-마법사 육성 사실 공개에 대해?
“네. 예상한 시간보다 빠르지만 어떻게든 해 봐야죠.”
-그럼 나도 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청일 그룹으로 찾아가겠다.
“예. 궁금한 거 있으면 그때 물어보세요. 전부는 아니어도 괜찮다 싶은 물음에는 답해드릴게요.”
-그래. 후우…….
대답, 그리고 한숨이 이어지며 통화가 끊어졌다.
한율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다시 스마트폰을 터치했다.
“쓰으읍! 어떻게 해야 하나.”
***
인천 공항.
한국 헌터 협회에서 연락을 취했는지 한율은 아침이 찾아오자마자 배희연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왔냐?”
“오셨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것을 대비했는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한국 헌터 협회, 협회장 김환성, 그리고 청일 그룹 경호팀과 합류한 한율은 바로 경호팀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건가요? 본사? 백화점?”
“본사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드르륵.
검은색 밴.
한율이 배희연과 함께 검은색 밴에 올랐고, 김환성은 타고 온 자신의 차량에 탑승했다.
“전부 모인 거죠?”
배희연은 자신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한국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경호팀 부팀장에게 묻는 게 옳다.
“예. 가족분들도 모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유리의 실수는 청일 그룹의 실수다. 경호팀 부팀장이 대답과 동시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자 한율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똑같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4서클 마법사.
하급 정령사.
주문서 제작자이자 아티팩트 제작자.
인지도는 ‘윈드 워리어’, ‘억울한 군저씨’, ‘마법사.’
인맥은 청일 그룹, 헌터 협회.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한율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부드럽게 도로를 달린 벤은 거대한 빌딩 주차장에 도착했다.
드르륵.
“미안하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용서를 구하는 사과의 말을 들은 한율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청일 그룹 부회장, 이상민.
“아.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잖아요.”
예상보다 빨리 밝혀졌고, 하필 주문서의 등장으로 자신에게 시선이 모였을 때 벌어졌지만, 어찌 되었든 일어날 일이었다.
차에서 내려 이상민, 김환성과 함께 이동했다. 자동문을 통과해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 회의실로 직행했다.
끼이익.
드르륵.
이상민이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회의실 안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는 한유라와 유세희,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껴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이유리.
일어나지 않고 있다가 회의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눈인사를 건네는 한국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확인하던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는 이상남.
“고생했다.”
“돈 받고 하는 일이었는데요, 뭘. 그런데 할아버지는 은퇴 안 하세요?”
“이 상황에서 무슨 은퇴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상남이 껄껄 웃었다.
실소를 터트린 한율이 경호팀 부팀장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이상민 또한 이상남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 바로 준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옳겠지.”
이상남이 자연스럽게 말을 뱉자 몸을 흠칫 떠는 이유리가 고개를 숙였다.
한율이 그런 이유리를 확인하고 이상남에게 눈짓을 주었지만, 그는 고개를 한 번 젓고 다시 입을 열었다.
“율아.”
“……네.”
“어떻게 할 거냐?”
“공개해야죠, 뭐.”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애매하게 숨기는 것보다 사실을 밝혀서 아군을 늘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군.
이상남과의 대화가 시작되자 눈앞에 놓인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던 사람들이었다. 한율은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현재로서는 최선이지.”
적이 늘어났다. 그러니 아군을 늘려 숫자를 맞춘다.
“그저 어떻게 아군을 늘릴 생각이냐는 거다.”
“일단…….”
말끝을 흐려 사람들의 시선을 재차 집중시킨 한율이 다시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따르르릉.
회의실에 설치된 전화기가 울렸다.
“분명 1시간은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불쾌?
아니다. 이상남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연락을 했다는 것은 자신의 명령을 무시할 정도로 긴급한 일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수화기를 든 이상남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침묵하던 그가 갑작스레 인상을 찌푸렸다.
“올려보내게.”
달칵.
방문 허락과 동시에 수화기를 내린 이상남, 그의 시선이 김환성에게 향했다.
“협회장님.”
“예. 회장님.”
“보고했습니까?”
보고? 헌터 협회의 대표인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잠시, 김환성도 이상남에 이어 인상을 찌푸렸다.
“푸른 지붕입니까?”
“예.”
푸른 지붕.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한율이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을 위해 대신해서 말했다.
“청와대를 말하는 겁니다.”
***
“안녕하십니까. 헌터 인사 수석 비서관실, 헌터 인사 비서관 유지태라고 합니다.”
40대 초반의 사내.
잘생긴 외모에 소녀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한율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상대를 살피듯 바라볼 때 배희연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로 상대를 경계하듯 바라봤다.
“헌터?”
“에? 헌터?”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깜짝 놀란 유세희가 고개를 홱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어. 헌터야.”
“역시 마법사, 한율 님이십니다. 유지태라고 합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말을 받은 유지태 비서관이 한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