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현질의 문제점(1)
[레스트: 흐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 이렇게 말하면 되겠군요. 오래 걸립니다.]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를 참 힘들게 하시네요.”
[레스트: 한율 님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서클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대량의 영초, 영약을 흡수해 마나 홀을 키우셨습니다. 마나의 길, 마나 로드 또한 영초, 영약을 흡수해 튼튼하게 만드셨죠.]
영초, 영약.
일종의 템빨이다.
[레스트: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진다는 지구의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셨고요. 마나를 이해하고 마법을 이해해 서클을 생성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시스템.
일종의 치트다.
[레스트: 그렇기 때문에 제 예상으로는…….]
“예상으로는?”
[레스트: 오래 걸립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끄응…….”
위력만 따지자면 5서클 상위 공격 마법과 동일한 4서클 마법, 라인데인.
한순간이었지만 5서클 마법사의 힘을 엿보았던 한율은 레스트에게 조언을 구했다.
5서클 경지에 오르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현질이 문제가 되다니…….”
작은 목소리로 한탄하던 한율이 다시 눈앞에 떠 있는 반투명한 홀로그램 메시지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지금보다 더 현질하면 5서클에 오를까요?”
[레스트: ……현질이 뭡니까?]
“돈으로 강해지는 거? 지금처럼 대량의 영초, 영약을 흡수해 마나 홀을 키우고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을 하는 거죠.”
[레스트: 한율 님.]
“넵.”
[레스트: 크라켄이라는 대형 몬스터, 그리고 그 대형 몬스터, 크라켄이 이끄는 강력한 몬스터를 토벌하셨죠?]
“토벌했지요.”
[레스트: 벽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레스트: 아시겠죠?]
“넵.”
시스템의 힘, 영초와 영약의 힘으로 5서클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나이에 공부라니……. 이 나이에 공부라니!”
[레스트: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고 하죠. 사흘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끝으로 레스트와의 대화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 따로 준비하실 거라도 있으세요?
[레스트: 마법, 그리고 마나와 관련된 서적을 보내 드릴 생각입니다.]
진짜로 교과서랑 참고서를 준비해준단다.
[레스트: 그럼 사흘 안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연락기다리겠슴다.”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넨 한율이 가만히 메시지창을 노려봤다.
“공부라…….”
공부.
“존나 싫다.”
그래도 어쩌랴.
먹고 살라면, 정확하게는 살아남으려면 공부해야지.
달칵.
콰아아아.
메시지창을 치운 한율이 변기 레버를 누른 후에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익.
“어? 아, 죄송합니다. 조금 길었죠?”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젊은 사내.
“아뇨.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화장실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빙긋 웃으며 말을 받았지만 한율은 한 번 더 사과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 실력을 키울 방법은 없다는 건데.’
정확하게는 마법의 힘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흐음…….’
자리로 돌아온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아으으으.”
“귀, 귀여워.”
“솜뭉치가 살아 움직인다. 솜뭉치가 살아 움직여.”
“으와아아아아!”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 잠을 자는 새하얀 강아지를 보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 여성 헌터와 그런 강아지를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헌터들.
‘정령의 힘을 키워야 하나.’
정령 육성 방법은 간단하다.
바람의 정령이라면 바람을 가까이하고, 불의 정령이라면 불을 가까이한다. 가까이하는 자연의 마력이 담겨 있으면 더 좋다.
여기서 말하는 마력이 담긴 자연이란 무엇일까?
불 속성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불의 마석, 물 속성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물의 마석 등을 말한다.
“영초, 영약도 있지.”
자연의 힘이 담긴 영초, 영약도 있다.
구하는 게 더럽게 어렵지만.
한율이 핸드폰을 꺼내 바람의 마석, 또는 아주 드물지만 바람의 힘이 담긴 영초, 영약을 확보할 수 있는 게이트를 검색해봤다.
“협곡? 비행 몬스터?”
뭐라고 적어야 하지?
불의 마석, 영초라면 화산, 또는 화염 몬스터가 서식하는 게이트를 찾으면 된다.
하지만 바람은 난감했다.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검색란에 작성한 ‘게이트’라는 글자를 지우고 ‘바람의 마석’을 새로 적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감정 시스템을 이용해 확인한 바람의 마석.
이름: C급 바람의 마석.
설명: 자연의 힘이 담긴 마석.
효과: 바람 속성력 상승(1~3%).
바람 속성력 상승.
‘윈드 커터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보면 되나.’
2서클 마법, 윈드 커터처럼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 상대를 공격하는 몬스터가 있다.
‘마나를 추출, 추출한 마나를 하양이에게 넘기면 되려나?’
일단 해보자. 안 되면 영초, 영약을 확인해 보고.
한율이 다시 검색란을 터치해 자연의 마나가 담긴 영초, 영약을 확인했다.
이름: 버닝 플라워.
설명: 불의 마나를 흡수한 꽃.
효과: 화염 속성력 상승(0~0.5%).
구하는 게 더럽게 힘들뿐더러 100개를 복용해야 0.5% 저항력을 올릴 수 있다는 극악의 확률을 자랑했다.
그래도 장비가 아닌 신체에 속성력을 쌓을 수 있다는 이유로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런데 상태창이 없는데 속성력이 오른 건 어떻게 알 수 있지?”
감정 시스템이 있고, 스킬창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신체 능력을 수치화해서 보여 주는 상태창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염 속성력을 쌓으면 화염 속성력이라는 스킬이 생긴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대답.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한율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캡, 이대한을 확인하고 속성력 스킬을 확인했다.
이름: 화염 속성력.
설명: 화염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효과: 화염 속성력(1%).
“오호.”
이러면 이해할 수 있다.
“라인데인을 높일 생각인가?”
“응? 라인데인?”
아.
뇌전 속성 마법, 라인데인.
당연히 뇌전 속성력을 올리면 라인데인의 위력도 높아질 것이다.
“오!”
“……생각도 안 했나 보군.”
“야, 딱 반년 됐다. 각성한 지 이제 반년이다.”
“……반년 만에 B급 게이트의 가디언을 토벌하는 각성자라.”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린 이대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새하얀 구름이 아래에 깔려 있는 푸른 하늘.
“일본이라…….”
“…….”
“야.”
“……왜 부르나. 파트너.”
“일본말 할 줄 아냐?”
“곤니찌와.”
“오.”
“이랏샤이마세.”
“오…… 오?”
“하잇.”
“…….”
***
일본, 후쿠오카 공항.
“일본 협회, 에무라 이사요시라고 합니다.”
“한국 협회 소속, 임성현이라고 합니다.”
검은 정장을 착용한 30대 초반의 남성,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이사요시가 임성현의 자기소개를 듣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지원 요청을 받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토벌을 시작하고 싶으니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검은 정장의 사내 이사요시는 바로 헌터들을 데리고 공항을 빠져나와 입구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버스가 출발하고 몇 분 후,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사요시가 버스에 설치된 TV를 틀고 준비된 마이크를 잡았다.
“본부로 이동하기 전, 짧은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던 헌터들이 눈을 떴고, 핸드폰을 만지던 헌터들이 고개를 들었다. 거래창을 열어 전투에 쓰일 물건들을 살펴보던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전체 지도를 보여 주던 화면이 빠르게 확대되어 일본, 야마구치현을 띄웠다.
“우리 일본은 게이트 폭주를 확인하자마자 야마구치현에 방어선을 설치했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일본 헌터들이 몬스터를 토벌하는 방송 화면이다.
“처음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2차 공격, 어인 기사들을 포함한 크라켄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야마구치현을 확대해 보여 주는 지도다.
처음 보았던 지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다에서 시작된 빨간 선, 그리고 그 빨간 선이 ‘나가토시’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피난시킨 덕분인지 지상으로 올라온 어인들은 나가토로 향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야마구치시가 더 크지만, 거리상 나가토시가 더 가까워 폭주한 몬스터들이 나가토를 먼저 공격한다고 파악했습니다.”
인구 밀도는 나가토시보다 야마구치시가 더 높다. 하지만 바다에서 습격한 어인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인간들을 습격하려면 멀리 떨어져 있는 야마구치시보다 나가토시를 먼저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도 나가토시로 이동합니까?”
“아닙니다. 크게 우회해 나가토시로 이동해 자국 헌터들과 합류해 움직여야 하는데, 그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일본 헌터들과 합류해도 대화의 어려움이 문제가 되어 합류 후 방어가 아닌 협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양쪽에서 쌈 싸 먹는다?”
“……예?”
쌈 싸 먹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이사요시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동료로 추측되는 헌터가 팔꿈치로 질문을 하던 헌터의 옆구리를 푹 찌르고 대신 물었다.
“아, 그러니까 후방으로 돌아 들어가 포위섬멸 한다는 거죠?
“아, 그렇습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쌈 싸 먹습니다.”
“풋!”
몇몇 헌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런 대한민국 헌터들을 바라보던 이사요시는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 브리핑을 이어 갔다.
브레이크 현상에 의해 폭주를 했다고 해도 체력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몬스터들은 저녁에는 휴식을 취하고, 아침에만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새벽녘에 움직여 이동한 몬스터들을 둘러싸 포위망을 형성하고 마나를 풀어 몬스터들을 깨워 놈들을 분산시킨다.
동쪽은 일본 헌터들이, 서쪽은 대한민국 헌터들이.
“아,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