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주문서(2)
이름과 나이, 능력을 확인한 김환성이 특이사항을 확인했다.
“……뭐 이리 길어.”
길다.
매우 길다.
“어디 보자. 5월 1일 전역……. 전역?”
“예. 전역 당일 각성했다고 합니다.”
“……불쌍한 놈.”
전역 당일 병역 면제 특혜가 있는 각성자가 되었다.
“억울한 군저씨. 음, 납득. 억울하지. 참 억울하겠지. 어디 보자. 그다음은…….”
김환성은 혀를 차고 다음 특이사항을 확인했다.
“윈드 워리어?”
“캡과 라이트닝. 두 사람과 함께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윈드 워리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갑옷을 착용한, 한 손에 방패를 들고 있는 사내와 붉은색 쫄쫄이 갑옷을 착용한 사내 사이에서 어깨를 축 늘어트린 한율이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는 사진이다.
“……어디 보자.”
다음.
“하양이 아빠입니다.”
“뭔 아빠?”
“하양이 아빠입니다.”
“하양이가 누군데?”
김환성의 질문에 임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응?”
“하양이요.”
“그래. 하양이. 걔가 누군데.”
“펫.”
“…….”
“…….”
“아, 아아!”
보고는 받았다.
펫을 소환한 각성자가 있다고.
하지만 세계의 변화가 찾아온 그날에 받은 보고였다. 게이트의 변화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리고 청일 그룹의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냥 흘려듣고 말았다.
“뒷장입니다.”
임지혜의 설명에 김환성이 서류를 뒤집었다.
“지혜야.”
“예, 협회장님.”
“이게 뭐냐?”
“하양이 사진이요.”
아주 귀여운 강아지가 배를 드러낸 채 잠을 자고 있는 사진.
스마트폰을 똑바로 바라보는지 눈웃음을 치고 있는 사진.
소녀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고 있는 사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김환성이 임지혜를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너무나 당당한 임지혜의 모습에 김환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보고서를 읽었다.
“……그래서 얘는?”
“치료를 목적으로 한 영초를 흡수해 부상을 완치해 내일 아침에 퇴원한다고 합니다.”
“흐음…….”
참 특이한 인간이다.
하지만 실력을 갖춘 특이한 인간이다.
“내일 몇 시?”
“11시입니다.”
“지혜야. 내일 스케줄은?”
“미뤄 둘까요?”
“어. 한번 만나 봐야겠다.”
***
오후 6시.
식사를 마치고 병동을 빠져나온 한율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끄으응…….”
어제는 치료에 집중하느라, 오늘은 아침부터 검사하고, 또 검사하고, 그 후에는 한유라가 도착해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옥상에 도착한 한율은 바로 기지개를 켜다가, 자판기가 보이자 잠시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쩝.”
지갑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쩔까?”
내일 오전에 퇴원이 잡혀 있어 한유라에게 교통비를 받았다.
“택시 말고 지하철 타면 될 것 같기는 한데…….”
택시비를 받았지만, 지하철을 탄다.
고민하던 한율이 고개를 돌려 뒤를 따라온 경호원들을 바라봤다.
“저기.”
“예, 도련님.”
“달달한 게 땡겨서 그런데.”
“……?”
“아니.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만.”
“…….”
경호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잠시 옥상에 설치된 자판기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율에게 말했다.
“카드밖에 없어서.”
“저도 만 원짜리밖에 없어서.”
“…….”
800원이 아까워서 그럴 리는 없겠지?
한율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걸음을 옮겨 벤치에 앉았다.
“아티팩트라…….”
한유라가 떠난 직후, 한율은 레스트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매우 바쁜 상황인지 답장이 날아오지 않아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4서클 마법을 배우고, 아티팩트 제작을 하고.”
손기술이 부족해 아티팩트 제작이 어려울 수도 있다.
“주문서 제작. 흐음.”
주문서는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종이에 마법진을 그리면 완성된다.
물론 마법진을 완벽하게 복사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마법진을 그려야 한다.
“형님들.”
“예, 도련님.”
벤치에 앉으라고 해도 뒤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던 경호원들이었다.
“마법 주문서 같은 거 팔면요.”
경호원들이 고개를 살짝 숙여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율을 바라봤다.
“돈 많이 벌까요?”
“……마법 주문서 말입니까?”
“네.”
“그………… 게임에서 나오는 일회용 마법 주문서 말입니까?”
“네.”
“마법 효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돈은 많이 벌 거 같습니다. 특히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자주 찾을 것 같습니다.”
“흐음…….”
한유라와 한국영의 안전을 위해 아티팩트 제작을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데에만 사용하기에는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도련님.”
대답해 주던 터프한 경호원이 아닌, 잘생긴 경호원이 한율을 불렀다.
“네?”
“마법 주문서라는 것도 만드십니까?”
“어제 한 단계 더 경지에 올라서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손재주가 없어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쉽습니까?”
“흐음, 대량 생산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렇군요.”
“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요?”
한율이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도련님?”
“네. 말씀하세요.”
“그 저희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건 조금…….”
“이상하다고요?”
경호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 대상은 한율이었지만, 두 사람을 고용한 것은 청일 그룹이었다.
한율이 대답을 회피하는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이상하지 않아요. 보고하라고 말씀드리는 거니까.”
“네?”
“스마트폰이 없어서.”
한율이 텅 빈 주머니를 탁탁 두들기며 대답했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 확인과 함께 청일 그룹에 제안, 또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주문 제작서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밝혔다.
터프한 경호원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선 뒤에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고, 잘생긴 경호원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에 주문 제작서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어떤 마법이 저장된 스크롤을 만드실 수 있으십니까?”
“잘 모르겠네요. 저도 스킬창을 통해 확인해 봐야 해서…….”
정확하게는 레스트에게 마법사들은 주문서 제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경지에 맞는 마법은 전부 주문 제작서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메모라이즈를 제외한 모든 마법을 주문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무엇입니까?”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종이랑 마석을 섞은 펜 정도?”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종이는 게이트에서 벌목하면 될 테고, 마석을 섞은 펜은 선물용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하는 데 어렵지 않겠군요. 다른 사람이 주문서를 생산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죠. 마법을 배워야 하니까요.”
잘생긴 경호원은 경호팀 소속, 그것도 배희연이 가장 신뢰하는 후배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율이 이유리를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한율이 마법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한율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경호원을 확인한 후에 자리로 돌아온 터프한 경호원을 바라봤다.
“부회장님이십니다.”
“아, 감사합니다.”
한율이 짧은 감사 인사와 함께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마법 주문서라고?
“네. ‘마법사’만이 생산할 수 있어서 예약제로 진행해야겠지만요.”
부회장, 이상민은 마법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퇴원하고 바로 진행하게?
“아뇨. 일단 연습해야죠. 그리고 아티팩트 제작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티팩트라면…….
“마나만 주입하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역시 ‘마법사’만이 제작할 수 있겠지?
“네. 이번에 4서클에 오르면서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유라랑 아부지에게 아티팩트, 또는 주문서를 주려고 했다가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분명 돈은 될 거다. 하지만 위험하겠지.
“네. 그래서 협업? 아니면, 대리 유통?”
뭐라고 해야 할까?
한율이 잠시 고민할 때, 청일 그룹의 부회장, 이상민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내일 몇 시에 퇴원한다고?
“오전 11시요.”
-그럼 그 시간에 맞춰서 찾아가마.
“……예?”
-주문서가 그 게임에서 나오는 그 주문서 말하는 거 맞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도 마법을 쓸 수 있는.
“네. 맞아요.”
-그럼 확실하게 돈이 되는 사업이다. 내일 아침에 찾아가마.
***
청일 그룹의 부회장, 이상민은 이상남의 뒤를 이어 청일 그룹의 대표가 될 사람이다.
헌터 협회 협회장, 김환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 중 한 사람이다.
당연히…….
“오랜만에 뵙습니다.”
헌터 협회 김환성과 청일 그룹의 이상민은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안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청일 그룹의 부회장 이상민이 보여 김환성은 바로 인사를 건넸고, 이상민 또한 헌터 협회 협회장과 안면이 있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았다.
“…….”
“…….”
“안 타십니까?”
“아, 타야죠.”
청일 그룹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날 줄은 몰랐던 김환성은 이상민의 물음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몇 층으로 가십니까?”
이상민을 호위하던 A급 헌터, 배희연의 물음.
“아, 8층입니다.”
“……한율 씨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배희연이 아닌 이상민이 그 말에 반응해 자연스럽게 물었다.
“예. 뛰어난 헌터이지 않습니까. 조금 특이하지만.”
“그렇죠. 율이는 뛰어난 헌터죠. 조금 특이하지만.”
율이?
김환성이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상민을 힐끔 훔쳐보았다.
하지만 말없이 침묵하자 이상민 또한 입을 꾹 다문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일정한 속도로 올라가 6층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우웅.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우는 진동 소리.
“아아…….”
“하아…….”
두 여인이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도 모자라 화면을 확인하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온 전화지?”
“문제라도 생겼냐?”
이상민이 배희연에게, 김환성이 임지혜에게 물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확인한 두 여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회장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협회장님.”
동시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도 모자라, 대답도 동시에 했다.
두 여인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상대방의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학생들 사이, 똑같이 아주 귀여운 미소를 그리고 있는 강아지 사진.
“…….”
“…….”
두 여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상대방에게 말을 건넸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네,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