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49화 (49/221)

049 민초단이여!(1)

“……와.”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진짜 개판이었네.”

술 먹다가 습격 나서 달려가고.

달려가고 보니 헌터들이 없어 일단 잠입하고.

잠입하고 보니 각성범죄자들이 인질을 모조리 ‘사살’할 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인질들을 구출하고자 뛰어들었고.

“진심으로 빈다.”

인질을 구출하고 백색 가면을 만나고.

백색 가면의 공격을 막다가 이중 실드와 캡의 방패로 몸을 보호한 상태에서 거래창에 보관 중인 ‘안전핀’을 제거한 수류탄을 한 무더기로 떨어트리고.

“뒈졌기를.”

백색 가면의 사망을 바라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도 잠시, 한율이 고통을 참아 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끄응.”

양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침대 끝에 등을 기댄 한율이 몸을 살폈다.

“우와! 개판이네.”

고통을 참아 내며 소매를 걷어 보니 화상을 입은 왼팔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중 실드와 캡의 방패로 몸을 보호했어도 폭발의 피해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한율이 환자복 상의를 잡아당겨 상체를 확인했다.

“시바 새끼.”

실드 마법과 캡의 방패로 공격을 막았지만, 칼에 담긴 마나가 충돌과 함께 흩어지며 전신에 상처를 입었다.

백색 가면에게는 유희나 마찬가지인 전투였지만, 한율에게는 죽음을 각오한 사투(死鬪)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인가?”

화상을 입었지만 팔이 붙어 있다.

고통을 참아 내며 왼팔을 움직인 한율이 하반신까지 확인한 후에 주변을 둘러봤다.

“……청일 그룹이겠지?”

헌터 생활을 하며 벌이가 커졌지만,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VIP 병동 느낌의 1인실 병동에 입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청일 그룹에서 자신을 입원시켰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인질 중에 부자님이 계셨거나?’

패배하기는 했어도 목표였던 인질 구출은 성공했다.

그러니 자신이 VIP 병동에 입원할 수 있던 것은 경매장 인질 부자님이 도와줬거나, 청일 그룹이 도와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이제…….”

마나 호흡법을 돌리고 회복 마법을 반복해서 사용해도 부상을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율이 탁상 위에 놓인, 충전 중인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면을 켜니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했을 때부터 바꾸지 않은 기본 화면이 아닌 세 명의 소녀가 웃고 있는 배경 화면, 그리고 번호 형식이 아닌 패턴 형식의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유라 건가?”

중앙에 서서 브이를 그리고 있는 단발머리 소녀 유라의 사진에 한유라의 스마트폰이라 판단한 한율이 검지를 들었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드르륵.

탕!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고 있을 때 들려오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엽.”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 스마트폰 화면 중앙에서 브이를 그리고 있던 소녀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라야.”

“…….”

“내 방에 가서 책상 서랍 두 번째 거 열면 작은 상자 있거든. 그것 좀 가져와 줘라.”

“이…….”

“유라야?”

“이 개…….”

“…….”

한율은 그때 처음 알았다.

동생이 욕을 무척 찰지게 잘한다는 것을.

***

크으으응!

티슈를 건네받은 한유라가 바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안 창피하냐?”

“닥쳐!”

질문을 욕으로 받아친 한유라가 다시 티슈를 뽑아 들고 코를 풀었다.

욕을 하면서 울었다.

“몸은 어때?”

욕을 한바탕 쏟아 낸 후에야 상태를 묻는 우리 동생.

“아파.”

“그러니까 왜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새끼가 사람 구하겠다고 범죄자랑 싸워!”

“유라야.”

“……?”

“한 달은 지났는데.”

주먹을 쥔 유라가 팔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한율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팔을 내렸다.

“조심한다며.”

“조심했어.”

“……그게?”

“미친놈한테 걸려서 그래. 미친놈한테.”

백색 가면이 자신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간이 아니었다면 부상을 입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죽었겠지.

“3개월은 입원해야 한대.”

“일주일이면 충분해.”

“뭐?”

“유라야. 내 방에 들어가서 위에서 세 번째 책상 서랍을 열면 상자가 하나 있어. 그것 좀 가져와.”

“……영초 같은 거야?”

한율이 마법을 배우기 위해 영초, 영약을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 치유 효과를 가진 영초.”

“그게 있어서 함부로 몸을 굴리고 다녔냐?”

“아니. 미친놈한테 걸려서 그랬다니까?”

“……기다려.”

드르륵.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 때문일까, 자리에서 일어난 한유라가 바로 병동을 빠져나갔다.

자신이 입원한 병원이 어딘지 몰랐다.

하지만 집으로 향한 유라가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어디 보자.”

스마트폰은…….

“개박살 났겠지.”

경매장에 잠입하기 전, 스마트폰을 거래창에 던져 넣었다. 그러니 거래 취소로 인해 안전핀이 제거된 수류탄과 함께 무대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분명 수류탄이 ‘펑’ 하고 터지면서 스마트폰도 같이 ‘펑’ 하고 터졌을 터.

한율이 탁상 위에 놓인 TV 리모컨을 잡았다. 스마트폰으로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뉴스를 통해 상황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전원 버튼을 눌러 TV를 켜고, 번호를 눌러 지상파 3사 채널을 확인했다.

타악.

-우리 아들에게서 떨어져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명품으로 도배한 아줌마가 테이블 위에 하얀 봉투를 올렸다.

스으윽.

-흐음. 몇 장만 더 넣으시죠?

내용물을 확인한 예쁘장한 누나가 다리를 꼬고 턱을 치켜든 후에 하얀 봉투를 밀어냈다.

거절이 아닌 거래.

“……?”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우리 아들에게 꼬리를 쳤구나.

-아줌마도 돈을 노리고 회장님에게 달라붙으셨잖아요.

-감히!

촤아악!

촤아악!

부들부들 떨던 아줌마가 예쁘장한 누나의 비난에 물을 뿌렸다. 그러자 예쁘장한 누나가 자신의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뿌려 반격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

OST가 흘러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무섭다, 막장 드라마.

“상황 확인. 상황 확인.”

광고가 나오고서야 정신을 차린 한율이 지상파 채널로 돌렸다.

이번 채널도 뉴스 방송이 아니었다.

“…….”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유명한 여성 아이돌 그룹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솔로로 돌아온 짐승돌이죠. 라이…….

한율이 채널을 돌렸다.

“주말이었군.”

음악 방송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오늘이 금, 토, 일 중에 하나라는 것을.

-다음 뉴스입니다.

마지막 지상파 방송에서 예쁜 아나운서 누나가 나왔다.

뉴스 방송이다.

하지만 뉴스가 끝날 때까지 경매장 습격 사건에 대한 뉴스가 나오지 않았다.

한율은 고개를 갸웃하며 종합 편성 채널로 이동했다.

뉴스 전문 채널을 찾기 위해 열심히 버튼을 누르던 한율이 다시 리모컨을 내렸다.

물싸대기를 커피싸대기로 받아친 걸 크러시 누나가 잘생긴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내, 화면이 돌아가 손톱을 물어뜯는 명품 도배 아줌마가 나온다.

돈거래로 시작해 물싸대기와 커피싸대기로 이어지는 두 여성의 전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그리고 아줌마가 잘생긴 비서를 불러 뒷조사를 명령하는 것을 보아 방금 시청한 재방송보다 더 전의 이야기가 분명했다.

드르륵.

“……뭐 하냐?”

“어, 엉?”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한유라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야. 무섭네.”

“뭐?”

“막장 드라마.”

사람의 혼을 빼먹는다.

단 두 화, 그것도 전개가 이어지지 않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드라마를 시청하게 만들었다.

“뭐라는 거야. 이거 맞아?”

한유라가 상자를 내밀었다.

“어, 그거 맞아.”

레스트에게서 구입한 봉인 상자다.

한율은 바로 마나를 주입해 봉인을 풀었다.

화아악.

상자를 열자마자 병동 안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꽃향기.

“우……와…….”

한율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는 한유라를 힐끔 훔쳐본 후에 상자에 봉인되어 있던 새하얀 꽃을 감정했다.

이름: 플로네 화이트(500).

설명: 나무의 정령의 힘이 담긴 꽃.

효과: 내, 외상 완전 치유, 신체 강화(5~10%).

“민초단이여! 영원하라!”

한율은 민초를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한유라는 미친놈을 본 것처럼 오라비를 바라봤다.

“민초단 누님께서 주신 거야.”

“…….”

“……일단 나 치유할 테니까 병동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줘.”

“경호원 아저씨들이 앞에서 지키고 있어.”

“아무도 못 들어오게. 의사는 물론 간호사들까지.”

“……기다려 봐.”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이라고 생각한 건지 한유라가 바로 문 앞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한율은 문을 연 한유라가 경호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고, 경호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문 앞에 서 있던 경호원 중 한 명이 들어와 한율에게 물었다.

“네. 청일 그룹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유리를 치료하고 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아…….”

그 누구도 치료하지 못한 이유리의 장애를 치료해 준 사람이다.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동료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하는 경호원들과는 다르게 동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그런 한유라를 바라보며 엄지를 들었고, 동생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자마자 플로네 화이트를 꺼냈다.

내, 외상 완전 치유 효과만 지닌 영초라면 그냥 섭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플로네 화이트는 완전 치유 효과와 함께 신체 강화 효과까지 지닌 영초다.

한율은 바로 플로네 화이트를 입에 넣고 마나 호흡법을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