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아크럼(4)
치직.
-대장!
백색 가면의 머리가 아래로 향했다.
한율의 머리도 아래로 향했다.
타앙!
한쪽은 방아쇠를 당겼고.
카앙!
한쪽은 익숙하게 칼을 휘둘러 총알을 베어냈다.
“어, 왜.”
타앙! 카앙!
-큰일 났슴다!
타앙! 카앙!
“큰일?”
타앙! 카앙!
“아 씹.”
처음으로 짜증을 낸 백색 가면이 마나를 주입한 후에 칼을 휘둘렀다.
쉬이익!
초승달 형태로 날아가는 마나 소드.
콰아아아아앙!!
“크으윽!”
한율은 실드를 사용해 1차로 마나 소드를 막고, 캡의 방패를 이용해 2차로 마나 소드를 막아냈다.
실력 차이가 워낙 커 직접 충돌할 때와 마찬가지로 뒤로 주르륵 밀려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 번만 더 쏘면 그냥 죽여 버린다.”
“…….”
마나를 주입한 총알로도 죽일 수 없다.
한율은 권총을 든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렸고, 백색 가면의 눈이 무전기로 향하자마자 탄창을 갈아 끼우고 메모라이즈 마법을 외웠다.
“……뭐하냐?”
“쏘면 죽인다매.”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미친 새끼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백색 가면이 다시 무전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그래서 무슨 큰일?”
-청일 그룹이 떴습니다!
“누가 왔는데.”
-마녀! 마녀가 왔습니다!
“……?”
청일 그룹 소속, A급 헌터 배희연.
각성 범죄자들 사이에서 마녀라 불리는 배희연의 등장에 잠시 침묵하던 백색 가면이 한율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버틸 수 있냐?”
-……마년데요?
“마녀도 사람이잖아. 3분만 버텨 봐.”
-대장! 대…….
콰직!
백색 가면이 무전기를 박살 내고 다시 어깨 위에 칼을 올렸다.
“…….”
“……3분은 왜?”
“약속했잖아.”
약속?
“팔 자르겠다고.”
“개씹…….”
타악!
쉬이익!
“실드!”
콰앙!
***
한율이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매장에 잠입했다.
이 사실은 방송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
인질 구출 작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각성 범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작전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방해한 방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수원이 ‘동료’들이 잠입했다고 알린 것이고, 방송에서도 ‘헌터가 잠입했다’라는 사실만 공표한 것이다.
“…….”
경매장 입구.
통화를 마친 A급 헌터, 배희연이 스마트폰을 회수하고 고개를 돌렸다.
문수원이 버럭버럭 소리치며 지원을 요청했을 때와는 달랐다. 오리온 길드의 마스터, 유태광은 배희연의 시선이 향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결정하셨나요?”
“……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경매 참가자로 청일 그룹 사람이 있는 것인지, 자신들이 도착하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청일 그룹 경호팀이 도착했다.
청일 그룹.
대한민국 3대 재벌이라 불리는 청일 그룹이다. 당연히 경호팀 소속 헌터들의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헌터 협회 지원팀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경매장에 잠입해 상대하는 각성 범죄자들이 각성 범죄자 집단, 아크럼이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원팀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
변명이다.
인질들을 구출한 이상,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수호 길드가 바뀌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배희연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그녀를 따라 청일 그룹 소속 헌터들도 걸음을 옮겼다.
A급 헌터 1명.
B+급 헌터 2명
B-급 헌터 3명.
수십 명을 상대하기에는 매우 적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경매장 정문.
수하들을 이끌고 바리케이드를 친 회색 가면이 그런 청일 그룹 경호팀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무전기를 들었다.
“대장.”
A급 헌터, 배희연과 그가 선별한 최정예 헌터들.
“바로 튀어야 할 것 같…….”
콰아아앙!
바로 뒤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
아크럼 소속 헌터들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고, 청일 그룹 소속 헌터들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
한율은 문수원이 설명하기 전까지 경매장을 습격한 각성 범죄자들이 대한민국 최대 범죄 조직 중 하나인 아크럼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아주 당당하게, 그리고 아주 떠들썩하게 헌터 협회가 관리하는 경매장을 습격했기 때문에 최소 B급 이상 실력자들이라고 판단해 각성 범죄자들을 제압 및 사살하는 것이 아닌, 구출을 목적으로 움직였다.
쉬이익!
매서운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칼날.
한율은 실드 마법은 물론이고 방패를 들어 막을 수 없을 거라 판단하고는 황급히 몸을 비틀어 찔러 들어오는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이게 무슨…….”
말끝이 흐려지는 순간, 눈앞에서 느껴지던 백색 가면의 마나가 흔들렸다.
좌우?
상하?
아니다.
한율은 앞으로 몸을 날려 등 뒤에서 나타나 칼을 휘두르는 백색 가면의 공격을 피했다.
낙법으로 바닥을 구른 한율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백색 가면에게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어떻게 알았냐?”
“측면보다 뒤에서 나타나 팔을 베는 게 훨씬 편하니까.”
백색 가면은 자기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미친놈.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잠시 침묵하던 백색 가면이 허리를 살짝 숙였다.
“큭큭큭.”
“…….”
“크하하하하! 진짜 미친놈일세, 저거.”
한마디로 자신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어 앞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는 뜻이었다.
백색 가면은 허리를 90도까지 숙여 가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한율을 바라봤다.
“야, 마법사.”
“카아악, 퉤!”
외상은 없지만, 내상은 깊다.
한율이 대답 대신 피가 섞인 가래를 뱉고 바라보자 백색 가면이 천천히 칼을 늘어트린 채 물었다.
“팔 잘리기 싫지?”
“그럼 좋겠냐?”
“기회 하나 줄게.”
“씹새끼가…….”
내가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한율이 작게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무슨 기회.”
“딱 한 번.”
“…….”
“딱 한 번. 전력을 다해 공격할 거야. 막아 봐.”
“시바 새꺄. 그게 뒤지라는 말이랑 뭐가 달라.”
한율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하지만 백색 가면은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정면에서 나타나 오른팔, 아니, 네 입장에서 보면 왼팔이네. 왼팔을 노릴 거야. 딱 한 번.”
우우웅!
칼날이 푸른 마나에 뒤덮였다.
“막으면 살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팔도 안 자르고 갈 거야.”
우우웅.
백색 가면의 전신이 푸른 마나에 뒤덮였다.
“후우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백색 가면은 자기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미친놈이다.
한율은 크게 숨을 고른 후, 실드 주문을 외웠다.
“5초 세고 간다.”
공격하는 방향은 물론이고 공격 타이밍까지 알려 준다.
“오.”
실드 마법 준비를 마쳤다.
“사.”
“메모라이즈.”
메모라이즈 마법을 발동, 시간을 벌기 위해, 즉 방어에 집중했기에 저장해 둔 실드 마법 2종 사용 준비를 마쳤다.
“삼.”
우우웅.
캡의 방패에 마나를 둘렀다.
“이.”
자세를 낮추고 양손으로 방패를 잡았다.
“일.”
타악!
백색 가면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고 사라질 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격을 기다리던 한율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취소!”
“취소가 되겠…….”
한율의 앞에 나타난 백색 가면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칼을 휘두르기 직전, 무언가를 느낀 듯 백색 가면은 칼을 휘두르는 대신, 빠르게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확인했다.
수류탄들이 머리 위에 갑자기 나타났다.
“이런 미친놈.”
콰아아아앙!
***
CCTV실을 나와 1층으로 향할 때, 한율은 메시지창을 열어 레스터에게 부탁했다.
“거래 확인 좀 눌러 주세요.”
[레스트: 예? 올린 물건이 없습니다만.]
“거래창에 올린 물건들을 전부 꺼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서요.”
거래창에 올린 물건은 직접 터치해서 꺼낼 수도 있지만, 거래 취소를 이용해 꺼낼 수도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터치를 통해 하나씩 꺼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거래 취소를 통해 물건을 꺼낼 경우, 거래창에 올린 모든 물건을 한꺼번에 꺼낼 수 있다.
[레스트: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조심하십시오.]
더 이상 날아오는 메시지창은 없었다.
한율은 눈동자만 돌려 레스트의 거래창을 확인했고, ‘거래 확인’란이 초록색으로 물들자 바로 자신의 거래창으로 손을 뻗었다.
수류탄을 꺼낸다.
안전핀을 제거한다.
다시 거래창에 올린다.
하나하나 평범한 수류탄이 아니다.
마석을 갈아 만든 몬스터 전용 수류탄이다.
한율은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며 수류탄을 하나하나 꺼내 작업한 후,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
경매장 홀.
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직후, 회색 가면이 몸을 홱 돌리며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막아!”
대답 대신 다시 자세를 잡고 입구를 지키는 검은 가면 헌터들.
회색 가면은 빠르게 달려 경매장 홀로 들어섰다.
경매장 입구.
“먼저 가 보겠습니다.”
배희연도 회색 가면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도 팀원들에게 부탁한 후 몸을 날렸다. 정면을 뚫는 것이 어려웠기에 우측으로 달려가 창문을 파괴하며 안으로 진입, 검은 가면 헌터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기도 전에 앞으로 튀어 나가 경매장 홀로 들어섰다.
“…….”
“…….”
폐허나 다름없었다.
건설 당시에 마석을 사용했는지 건물이 와르르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들면 2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측 문을 통해 홀에 들어선 배희연은 물론 중앙 문을 통해 홀에 들어선 회색 가면 또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주변만 살피고 있을 때, 저 멀리 무대로 추측되는 장소, 천장이 무너지며 잔해가 쌓인 그곳에서 한 사내의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후두둑.
“대장!”
회색 가면이 소리쳤다. 하지만 백색 가면은 그를 바라보는 대신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미친놈일세.”
어떤 방법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십 개의 수류탄을 동시에 소환해 터트렸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지 몬스터용 수류탄을 머리 위로 소환해 터트렸다.
“뭐…….”
효과는 있었다.
힐끔 살이 드러난, 화상으로 붉게 물든 왼팔을 확인한 백색 가면이 실소를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야! 막으랬잖아!”
“마녀를 어떻게 막습니까!”
회색 가면이 큰 목소리로 반박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피식 실소를 터트린 백색 가면이 땅을 박차 수하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음?”
강당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는 배희연를 빤히 바라보던 백색 가면이 검을 회수하고 말했다.
“야. 걔 깨어나면 내 말 좀 전해 줘.”
“거절한다.”
“걔 상태를 보면 빨리 끝내는 게 좋을 텐데.”
“…….”
배희연이 고개를 살짝 숙여 아래를 확인했다.
기절한 한율이 눈에 들어왔다. 폭발의 영향인지, 헌터와의 전투의 영향인지 한눈에 보아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말하고 꺼져.”
“다음에는 안 봐줄 거야.”
백색 가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율이 쓰러진 장소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열심히 수련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