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아크럼(2)
‘다섯이라…….’
인질을 지키는 각성 범죄자는 다섯에 불과했다.
천장에 설치된 지지대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대한이 시간을 확인했다.
한율이 넘겨준 환약을 먹은 지 9분 30초.
30초만 지나면 시간이 다해 환약의 효과가 사라질 것이고, 갑작스레 느껴지는 마나에 반응해 각성 범죄자들이 움직일 것이다.
끼이익!
인질들의 훌쩍임만이 들려오는 조용한 경매장 내부에서 갑작스럽게 경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셋은 인질들을 경계하고, 둘은 경첩 소리가 난 중앙 문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어떤 새끼야!”
“모습을 드러내!”
“인질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으면 계속 개기던가!”
가면을 쓰고 있는 각성범죄자의 협박이 이어졌음에도 열린 문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하? 개긴다?”
협박을 한 각성 범죄자가 인질들에게로 향했다.
말로만 하는 협박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런 그의 행동을 옆에 서 있던 동료가 막았다.
“야, 멈춰봐. 강아지다.”
“뭐?”
인질들에게 다가가던 각성 범죄자가 동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개새끼가 여긴 또 어떻게 들어왔대?”
동료의 말대로 작고 귀여운 하얀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사실’을 증명하려던 각성 범죄자가 멈춰 섰고, 정문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은 각성 범죄자들 역시 무기를 회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 문 제대로 닫았지?”
“어. 잠그지는 않았지. 헌터들 나타나면 인질 한 명 죽이고 시작하려고.”
그 말에 인질들이 몸을 흠칫 떨었고, 이대한 역시 자신도 모르게 이를 바득 갈았다.
그때였다. 각성 범죄자가 동료에게 물었다.
“하지만 문은 닫았고?”
“그렇지.”
“그러면 개새끼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
문을 ‘열고’ 경매장을 방문한 강아지.
“자세 잡…….”
지휘권을 가진 각성 범죄자가 황급히 소리치고, 그 외침에 각성 범죄자들이 움직였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조금 늦었다.
“실드!”
파아앗!
카아아앙!
인질로 잡고 있는 민간인 중 한 명을 죽여 헌터들을 압박하려던 각성 범죄자의 검이 돔 형태로 생성된 푸른 막에 가로막혔다.
***
각성 범죄자들을 방심시켜야 했고, 각성 범죄자들의 시선을 모아야 했다. 그래서 하양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갑작스레 문이 열리면서 강아지 한 마리가 경매장에 들어온다?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하양이의 크기에 맞춰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문틈 사이로 인질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실드 마법을 생성했다.
날카로운 쇳소리에 맞춰 각성 범죄자들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향하자 오른발로 문을 걷어차며 경매장에 진입했다.
타앙!
퍼억!
“크윽!”
지금까지 기습으로 처리했던 놈들과는 달랐다.
총알 한 발로 각성 범죄자의 목숨을 끊어내지 못했다.
“부숴!”
각성범죄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난입한 헌터는 후순위다. 인질들의 확보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지휘권을 가진 각성 범죄자는 많은 것을 착각했다.
그 지시에 따라 그를 포함한 두 명의 각성범죄자가 한율을 향해 몸을 날렸고, 남은 둘이 푸른 막을 파괴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쉬이이익!
콰앙!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방패가 푸른 막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들던 각성 범죄자의 등허리를 강타했다.
“으쌰!”
“크윽!!”
퍼억!
천장에서 뛰어내린 이대한이 바닥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 다리를 뻗었다.
각성 범죄자는 황급히 양팔을 교차해 안면을 노리고 들어오던 발차기를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뒤로 주르륵 밀려나 인질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앙!
귀여운 울음소리에 맞춰 생성된 바람 화살이 각성 범죄자를 노리고 날아갔다.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날아오는 초능력!
자신의 목숨을 우선한 각성 범죄자가 이동을 멈추고 검을 크게 휘둘렀다.
날아오는 화살을 베어내고자 한 것이었지만, 바람 화살은 바람의 정령, 하양이가 만든 바람 화살이었다.
쾅!
“크아악!”
바람 화살은 마나를 두른 검과 부딪치기 직전 스스로 폭발해 각성 범죄자를 멀리 날려 버렸다.
***
방패를 막아내지 못해 바닥에 쓰러진 각성 범죄자.
이대한의 발길질에 인질들과 멀어진 각성 범죄자.
바람 화살의 폭발에 의해 벽에 처박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각성 범죄자.
그 셋을 확인한 한율은 씨익 미소를 그렸고, 한율을 죽이기 위해 달려가던 각성 범죄자들의 발걸음을 잡았다.
뒤를 돌아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리만 들어도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으니 되돌아간다?
등을 돌리는 순간, 눈앞에 있는 적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인질을 잡아!”
대장격 각성 범죄자의 외침에 앞으로 달려가던 범죄자가 멈춰 섰다.
다리에 무리가 갈 정도로 급하게 멈춰 선 범죄자는 바로 몸을 돌려 인질들을 향해 달려갔고, 대장격 각성 범죄자는 더욱더 속도를 높여 눈앞에 있는 적, 한율에게 달려갔다.
“메모라이즈.”
한율이 지향하던 총구를 달려드는 대장격의 각성범죄자에게 향하게 한 뒤 주문을 외웠다.
놈이 검을 들어 올려 총알을 막을 준비를 하자 저장해둔 마법을 사용했지만, 패착이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작은 태양이 머리 위에 생성되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날아갔다.
콰아아앙!
***
경매장 앞.
지원에 들어온 수호길드를 라이트닝, 문수원이 기쁘게 맞이했다.
하지만 수호길드는 진입 작전을 개시할 생각이 없는지 경매장만 힐끔힐끔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노골적인 수호 길드의 행동에 결국 문수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소리쳤다.
“안 들어갑니까!”
“기다려. 아직 정보가 부족하니까.”
“아니! 시…….”
욕이 나온다.
몸을 부들부들 떤 문수원은 크게 숨을 고른 후에 다시 광진구 수호 길드 오리온의 마스터, B+등급 유태광에게 말했다.
“도면을 드렸습니다. 적들의 위치도 알려 드렸어요, 특징 있는 적들의 복장도 알려 드렸고! 인질들의 위치도 알려 드렸죠!”
“…….”
유태광은 반응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자동차 보닛 위에 올려놓은 문수원이 건네준 정보만 읽었다.
“…….”
정보를 확인하고, 시간을 확인하고.
귓속말을 건네는 헌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정보를 확인하고, 시간을 확인하고.
문수원이 고개를 돌려 다른 오리온 소속 헌터들을 바라봤다.
표정 관리 능력이 뛰어난 유태광과는 다르게 오리온 소속 헌터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경매장을 바라보거나, 문수원의 시선을 느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유라도 압시다! 이유라도!”
문수원이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오리온 소속 헌터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갑갑함, 그리고 짜증이 난 문수원이 몸을 돌렸다. 홀로 경매장에 진입해 형들을 지원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때 그의 귓속을 파고드는 민간인이 시청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
-긴급 속보입니다. 광진구 경매장을 습격한 각성 범죄자 단체가 범죄 조직, 아크럼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민간인들은 광진구 경매장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바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광진구…….
“……!”
문수원이 고개를 홱 돌려 유태광을 바라봤다.
“개시발…….”
아크럼.
대한민국 최대 범죄 조직, 아크럼.
“아크럼이 무서워서 민간인을 포기한 거였어?”
멀리 떨어져 있는 민간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신체 능력과 감각이 상승한 헌터들은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불쾌한 표정으로 문수원을 째려봤고, 누군가는 쪽팔림에 고개를 돌렸다.
유태광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저 보닛 위에 펼쳐 둔 정보만 읽었다.
“저딴 게 수호 길드라고…….”
대한민국 최대 범죄 조직, 아크럼이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분명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이 도착할 때까지, 또는 아크럼이 모든 일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크게 실망한 문수원은 더 이상 수호길드의 행동을 재촉하지 않고 홀로 경매장에 잠입하기 위해 달려갔다.
당연히, 오리온 소속 헌터 중 그 누구도 문수원을 막지 않았다.
***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는 것을 보아 사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온몸에 화상을 입어 전투력을 상실했다.
한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 직전, 강당 위에 활동 가능한 범죄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총구를 겨눴다.
“음?”
“도망갔다.”
놓쳤다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주먹을 말아 쥔 이대한의 대답.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한율은 실드 마법을 해제했다.
“분명 지하에 있던 애들이 올라올 거야. 그러니 바로 도망치자.”
강당 위로 올라오며 이대한에게 제안을 한 한율이 인질들 앞에 섰다.
“걷지 못하시는 분 없으시죠?”
“…….”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는 민간인들.
한율이 그런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어 가려 할 때였다.
쉬이익!
한율이 몸을 돌리며 총을 겨눴고, 이대한이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인질들을 보호했다.
“하아, 하아. 형님!”
“……뭐야? 가면 쓴 애들 벌써 튀었어?”
최고 속도로 달려왔는지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있는 문수원이다.
한율이 총을 내리며 물었지만, 문수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크럼이래요.”
“아크럼?”
“네.”
대한민국 최대 범죄 조직, 아크럼.
아크럼 소속 헌터들은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감추고 다녔다.
“게네들은 광대 가면이 아니라 헬멧을 쓰고 다니……. 감정.”
한율이 바로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는 대장격 범죄자, 그의 광대 가면을 바라보며 감정을 사용했다.
이름: 백색 광대 가면(50).
설명: XXX가 제작한 광대 가면.
효과: 신체 능력 3% 증가. 강제 해제 시 폭발.
“……제작 능력자까지 영입했나 보네.”
신체 능력 증가 효과는 물론 강제로 가면을 벗길 시 폭발하는 효과까지 가졌다.
한율은 적들의 정체를 알게 되자 이마를 살짝 부여잡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바로 사람들 데리고 도…….”
콰앙!
말을 끝내기도 전에 들려오는 폭발 소리.
한율과 문수원, 이대한이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봤다.
문짝이 날아간 경매장 입구, 그곳에는 지금까지 만났던 검은 가면이 아닌, 백색 가면을 쓴 각성 범죄자가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
겨우 한 명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긴장했다.
“호오?”
탄성을 흘린 백색 가면이 잔상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캡, 이대한의 앞에 나타났다.
콰앙!
황급히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았음에도 이대한은 뒤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