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각성 범죄자(2)
-각성 범죄자들이 습격했다! 위치는 광진구 헌터 경매장! 다시 한번 말한다! 각성 범죄자들이 습격했다! 위치는 광진구 헌터 경매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의 목소리.
“어떤 새끼냐?”
검은 가면을 쓴 사내의 물음에 뒤를 따르던 사내들이 고개를 숙였다.
“쯧. 예상보다 빨리 도착할 거 같으니까 빠르게 끝내자.”
백색 가면의 사내들은 입을 열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개를 한 번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후, 앞으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걸리겠냐?”
검은 가면의 물음에 회색 가면이 대답했다.
“1시간 정도요.”
“꽤 기네?”
“게이트 등급 상승 때문에 수호 길드들이 매우 바쁘더라고요.”
“호오?”
“그걸 알고 오늘 하기로 결정하셨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회색 가면.
검은 가면은 피식 실소를 터트린 후, 단검을 꺼내 우측으로 던졌다.
푸욱!
기둥을 뚫고 그 뒤에 있는 헌터의 심장에 박히는 단검.
“솔직히 말야.”
“예.”
“그게 아니었어도 오늘은 반드시 해야지.”
수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그들이 사용하던 비싼 장비들이 경매장에 올라왔다.
헌터 장비를 구입하는 것이니 헌터들이 경매장을 방문한다?
방문한다. 하지만 B등급 이상 헌터들은 직접 경매장을 방문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경매품을 확인한 후, 길드의 도움을 받아 대리 구매자를 보내거나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통해 경매에 참여한다.
직접 발품을 팔아 물건을 구입하는 것보다 대리 구매자를 보내고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 더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헌터 세 명이 사람으로서 만나는 자리.
“이상하게 밖에서 고기 먹으면 쌈을 안 싸 먹게 되더라.”
“그래요?”
“어, 그냥 파채랑 삼겹살을 먹거나, 소주에 삼겹살을 먹거나 하더라.”
“전 밖에서도 쌈 싸 먹는데.”
잘생긴 학생이 열심히 쌈을 싸서 먹는 모습.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집은 한율이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심벌 가방을 들고 나타난 사내, 짝캡을 바라봤다.
대기업 회사원처럼 훈훈한 외모의 사내.
“등급은?”
“C플러스.”
“흐음. 어떻디?”
“어떻냐니?”
“재심사 방법.”
“마나량을 확인하고, 심사위원과 대련, 마지막으로 기록.”
기름장에 고기를 살짝 찍은 짝캡이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하자 쌈을 싸 먹던 문수원과 된장찌개를 뜨던 한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록?”
“기록이요?”
“게이트 활동 기록.”
마나량을 확인하고, 전투 기술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전투 경험을 확인한다.
“설마 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너 그…….”
코스프레……. 아니.
“활동복 입고 갔냐?”
“입고 갔다. 헌터니까.”
“와…….”
문수원이 탄성을 흘렸다. 동의한다. 전국에서 몰려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이 모이는 협회로 캡의 모습을 하고 방문하다니.
“신기하더군.”
“……니가?”
“아니. 거기에서 얼음 여왕을 만났다.”
“와, 개판이었겠네.”
캡과 얼음 여왕이라는 있을 수 없는 만남.
한율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잠시 고민하던 문수원이 캡에게 물었다.
“A급 헌터, 얼음 여왕이요?”
“A급 헌터?”
“얼음 여왕 코스……. 얼음 여왕의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헌터분이 계세요. A급 헌터인데.”
“…….”
이곳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헌터계인가, 아니면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코스프레 세계인가.
“맞아. A급 헌터, 얼음 여왕.”
“우와. 부럽다.”
“부러워?”
한율이 고개를 홱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문수원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빠르게 화면을 터치하고 한율 쪽으로 스마트폰을 돌렸다.
“오! 미인이네.”
백금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성.
화려한 은백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
“그래서 아이돌보다 더 인기가 많아요.”
“실력 좋고, 예쁘고, 얼음 여왕하고 비슷하기도 해서?”
“네.”
고개를 끄덕인 문수원이 다시 한번 부럽다는 표정으로 캡을 바라본 후, 다시 쌈을 싸 먹기 시작했다.
“파트너”
“이름을 불러. 이름을.”
“한율.”
“어.”
“소주 한 병만 시키자.”
“…….”
캡과 마찬가지로 소주가 땡기기는 했다.
한율은 고개를 돌려 문수원을 바라봤고, 그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소주를 기다리며 식사를 이어 가고, 소주가 도착해 한 잔씩 주고받으며 식사를, 그리고 대화를 이어 가고.
고기 전문 판매점, 돼지당을 찾고 두 시간.
“그만 나갈까?”
비빔냉면으로 입가심을 마친 한율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은…….”
“나눠서 하죠.”
“됐다. 나랑…….”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던 한율이 캡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름이 뭐냐?”
“캡.”
“별명 말고.”
“이대한.”
“반띵하자.”
“반띵?”
“학생한테 돈 받을라고?”
“그렇군.”
문수원이 무척이나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율과 이대한은 같이 내겠다는 그를 무시하고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
콰아아앙!
귓속을 파고드는 거대한 폭발음.
딱딱하게 굳은 한율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고, 문수원과 이대한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시불 계산이요. 빨리해주세요.”
“각성 범죄자들 출현했어요.”
“위치는 광진구 헌터 협회장.”
폭발의 원인, 그리고 폭발의 장소를 확인했다.
하필 몬스터가 아닌 범죄자의 등장.
인상을 찌푸린 채 고민하던 한율이 고개를 홱 돌려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사람.”
“네.”
“……?”
“사람 죽여 본 적 있어?”
한율의 질문에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딸꾹.”
결제를 하던 돼지당 아르바이트생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했다.
“혀, 형은 해 보신 적 있어요?”
“없어. 하지만 본 적은 있지.”
“에?”
“군인은 브레이크 때문에 출동하는 것보다 각성 범죄자 때문에 출동하는 게 많거든.”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죽는 걸 본 적은 있다.
살해당하는 사람이 적일 때도 있고, 아군일 때도 있었지만…….
“일단 수원이는 사람들 대피시키는 데 집중해.”
“네? 네.”
“그리고…….”
고개를 돌린 한율이 캡, 이대한에게 물었다.
“할 수 있겠냐?”
“……해야지.”
“못하면 그냥 죽는 거야.”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대한.
다시 몸을 돌린 한율이 여전히 딸꾹질을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드 주세요.”
“아, 예.”
“그럼 수고하세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넨 한율이 고기 전문점 돼지당을 나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자리에 서서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각성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경매장과 매우 가까웠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속을 말하지 않는 헌터는 죽여.”
“……그냥?”
“물을 시간이 있겠냐?”
“후우…….”
긴장이 되는지 이대한이 작게 숨을 고르고 심벌 가방에서 방패를 꺼내 오른손에 들었다.
“하양아.”
파아앗.
소환된 하양이가 그대로 도약해 바지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헤이스트.”
파아앗.
3서클 신체 강화 마법, 헤이스트.
“스트렝스.”
파아앗.
3서클 신체 강화 마법, 스트렝스.
“헤이스트는 속도, 스트렝스는 힘이다. 지속 시간은 1시간. 어차피 도착해서 한 번 더 써 주겠지만 기억해 둬.”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마법을 소개한 한율이 상체를 살짝 숙이자 두 사람도 똑같이 자세를 잡았다.
타악!
앞으로 달려가는 한율.
타악! 타악!
그 뒤를 따라가는 이대한과 문수원.
경매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늘어나 달릴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범죄자의 습격이라는 문자는 헌터에게만 수신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구경하기 위해 경매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망치기 위해 경매장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경하기 위해 경매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헌터도 보였다. 하지만 경매장으로 향하는 사람보다, 경매장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살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도망치는 것이었다.
“옥상으로! 실드!”
세로가 아닌 가로로 생성된 실드.
한율이 실드를 밟고 옥상으로 올라가자 이대한, 문수원도 똑같이 실드를 밟았다.
높은 곳에서 보니, 그리고 마나로 신체를 강화하니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헌터 경매장이 보였다.
“수호 길드가 왜 있는데.”
광진구 수호 길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조용한 헌터 경매장 주변을 확인하고 이를 바득 간 한율이 더욱더 속도를 높여 달려갔다.
“하아, 하아, 하아.”
헌터 경매장 입구.
무릎을 잡고 숨을 고른 한율이 고개를 들고 헌터 경매장 입구를 바라봤다.
“수원이는 여기서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빠져나오면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줘.”
“네. 조심하세요.”
“오야.”
장난스럽게 대답한 한율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거래창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거래창.
한율이 거래창 안으로 손을 뻗어 K-7을 꺼냈다.
“……마법이에요?”
“아공간 마법.”
역시 속이는 데에는 마법이 최고다.
“갑옷은?”
문수원에 이어 이대한이 물었다. 그러자 K-7을 점검하던 한율이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빨았어.”
“…….”
“그럼 너는.”
이대한이 아무 말 없이 옷을 잡았다.
찌이익!
왜 이 더운 날씨에 반팔이 아니라 검은 티셔츠, 그것도 가을에나 입을 법한 긴팔 티셔츠를 입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검은 티셔츠를 찢고, 청바지를 찢고. 상의와 연결된 복면을 쓰고.
준비가 철저한 그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자세를 잡고 이대한에게 말했다.
“탐지 마법으로 적의 위치를 확인하며 움직일 거다. 잘 보조해라.”
“파트너를 믿어라. 윈드 워리어.”
말이 떨리는 걸 보니 긴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율은 그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피식 웃었다.
“오냐,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