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43화 (43/221)

043 각성 범죄자(1)

“……게이트의 진화 때문인가요?”

한율은 일반인을 능력자로 만들 수 있는 유일무이한 헌터.

이상남이 바로 핵심을 짚는 한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몬스터가 강해지고, 게이트가 넓어지고, 게이트 발생률이 증가했다. 이 현상은 모든 헌터들에게 나타난 메시지창을 통해 잠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몬스터는 계속 강해지고, 게이트는 계속 넓어져 마석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게이트 발생률도 빠른 속도로 늘어날 거라고 본다.”

이상남에 이어 이상민이 말했다.

“그래서 제게 후원한다고요?”

“지킬 힘이 있어야 마법사를 양성할 수 있으니까.”

“…….”

청일그룹의 후원.

“……청일그룹에 묶이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다. 길드를 만든다고 했으니 동맹이라는 말이 옳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길드와 청일그룹의 동맹.

“후원 방식은요?”

“당연히 장비와 영초, 영약.”

“대가는 청일그룹이 추천한 인물을 마법사로 만들어야 한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으음…….”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 그게.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난 한율이 대표실 문을 열었다.

“유리야.”

“네?”

“잠깐 하양이 좀 데려가도 될까?”

“…….”

“…….”

“잠깐이죠?”

“어. 아주 잠깐. 한 10분쯤?”

“긴데요. 너무 긴데요. 유라하고는 달리 만나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5분 안에 끝내 볼게.”

절반으로 줄였음에도 마음에 안 드는지 이유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양이를 내려놓고 다시 한율에게 말했다.

“5분이에요. 5분. 5분 되면 대표실 문 두들길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 그래. 하양아!”

앙!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오는 하양이.

한율은 자신의 앞에 멈춰 선 하양이를 품에 끌어안고 이상남, 이상민 부자가 기다리는 대표실로 돌아왔다.

“아이고, 우리 하양이. 아까 인사했어야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는 걸까.

이유리를 바라볼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 이상남, 관심 없는 척 자신을 바라보지만, 눈동자는 하양이에게 고정되어 있는 이상민.

“흠흠, 그래서 하양이는 왜?”

“얘가 인정한 사람들만 가르칠 겁니다.”

“……응?”

“엉?”

이상민이 고개를 갸웃했고, 헤벌쭉 웃으며 하양이를 바라보던 이상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봤다.

“율아. 무슨 말이냐.”

“얘가 능력도 쓰지만, 사람의 성향도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거든요.”

“성향?”

“선악을 볼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선한 자와 악한 자를 알아본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업에서 큰 효과를 보일 법한 능력에 이상민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 이상남이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였군.”

“예?”

“우리 하양이가 유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느냐.”

“…….”

“역시 유리가 천사라는 것을 알아본 거였어.”

“…….”

***

이상남 때문에 시간이 배 이상이나 소비하고 말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 즉 마중 나오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을 확인했다.

이유리, 최일현, 그리고…….

“…….”

“…….”

“…….”

고개를 숙여 빤히 하양이를 바라보는 배희연.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이유리의 품에 안겨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양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배희연을 바라봤다.

조용히, 그저 서로만 바라본다.

“아, 맞다. 오빠.”

“엉?”

“하양이는 강아지가 아니죠?”

“……응. 아냐. 정확한 종족은 모르지만.”

종족은 정령이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가 없어 얼버무렸지만, 강아지가 아니라는 것에 집중한 건지 이유리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배희연을 바라봤다.

“언니. 강아지 좋아하는데 알러지 때문에 못 만진다고 했잖아요.”

“아, 아가씨.”

사적인 이야기였는지 당황한 배희연이었지만, 이유리의 행동이 더 빨랐다.

이유리가 하양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배희연에게 내밀었다.

“안아 보세요.”

“하, 하지만…….”

“얼른요. 얼른.”

“……꿀꺽.”

뭐가 그리 긴장되는 걸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하양이의 모습에 몸을 부들부들 떨던 배희연이 조심스럽게 양손을 내밀었다.

킁킁.

할짝.

“아읏.”

야릇한 신음 소리.

몸을 흠칫 떤 한율과 최일현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고, 자신이 이상한 신음을 뱉었다는 걸 몰랐는지 배희연은 그대로 양손으로 하양이를 끌어안았다.

“으으읏.”

아랫입술까지 깨물며 행복의 비명을 참아 내는 배희연.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하필 그곳에 거울이 있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 안녕. 하, 하양아.”

앙!

“으으으으읏!”

하양이의 대답에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 배희연이 눈을 질끈 감고 이유리에게 하양이를 내밀었다.

“여, 여기요. 아가씨.”

“계속 안고 있어도 되는데.”

“제가 죽을 거 같습니다.”

행복사로.

이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 그럼 제가 대신 안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던 한율, 순간 고개를 돌린 배희연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이해합니다.”

“…….”

***

6월 14일 토요일.

“제일 먼저 도착한 건가?”

하루 종일 하양이랑 놀 생각이던 게 분명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한유라에게 양해를 구한 한율은 두 사람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 분수대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문자 또는 톡을 보내 위치를 물어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약속한 시각까지 30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한유라에게 받은 하양이 사진.

베란다 앞에서 배를 보이고 누운 채로 잠을 자고 있는 사진.

한율은 그 사진을 업로드했고, 사진을 올리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좋아요’ 버튼을 받자 혀를 내둘렀다.

“스타네. 그것도 슈퍼스타.”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린다.

한율은 댓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약속 시각까지 10분이 남았을 때, 한 사내가 빠르게 달려왔다.

“형!”

한율 님에서 형님, 형님에서 형.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린 한율이 잘생긴 청년, 연예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잘생긴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라이트닝?”

“혀어엉.”

“미안미안. 삼촌 때문에 잘생긴 얼굴을 숨기고 다니는 우리 불쌍한 수원이.”

“아, 혀엉.”

“미안미안. 이제 짝캡놈만 오면 되는 건가.”

“캡 형이요?”

“어.”

“저분 아니에요? 캡 형.”

“……?”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문수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수많은 사람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심벌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사내.

매우 더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긴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내.

“윈드 워리어. 그리고 라이트닝?”

“넌 그걸 꼭 들고 와야 했냐?”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으니까.”

“……하아.”

***

헌터들의 사망으로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이 경매품으로 올라온 헌터 협회가 관리하는 광진구 헌터 경매장.

“몇 개나 올라왔다고 했지?”

“쉰다섯 개라고 합니다.”

“하아. 야근하게 생겼네. 안 그래도 머리 아파 뒤지겠는데.”

자신도 모르게 양복 안쪽으로 손을 넣어 담배를 꺼낸 헌터 협회 소속, B급 헌터 양성진이 후배에게 말했다.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예.”

갑작스러운 게이트와 몬스터의 진화는 수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연한 이야기다.

한창 싸우던 도중, 갑작스럽게 몬스터가 진화한 것이다.

아슬아슬한 전투를 즐기던 헌터.

갑작스러운 무력 상승에 당황한 헌터.

마지막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던 헌터.

그들 모두가 게이트에서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로 다른 헌터들에게 구출되었고, 그들이 사용하던 장비가 유가족들의 결정 아래 경매장에 올라왔다.

헌터 경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야외 흡연장.

탁!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켠 양성진이 숨을 크게 들이쉬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으읍, 후우.”

게이트가 넓어졌고, 몬스터가 진화했다.

넓어진 것에서 끝이면 다행이다. 하지만 게이트 진화 이후에 소멸 작업을 진행하던 길드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몇 번을 소멸시켜도 위치가 고정되어 있던 게이트의 핵이 소멸할 때마다 위치가 바뀐다는 아주 짜증 나는 소식을.

실제로 헌터 협회에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길드의 설명대로 핵의 위치가 고정이 아닌, 랜덤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몬스터는 강해졌고, 핵의 위치는 랜덤으로 바뀌어 소멸 작업을 이어 가는 데 며칠이나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인 것은 A급 게이트.

대중들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헌터 협회 직원들은 들어서 알고 있다. A급 게이트를 소멸시키려던 헌터들이 전멸했다는 것을 말이다.

“반년밖에 안 남았다라…….”

A급 게이트 소멸 작업에 참가한 캐나다의 A급 헌터의 3할이 사망.

반년이나 남았다가 아닌, 반년밖에 안 남았다가 맞았다.

탁, 탁, 탁!

강하게 손가락을 털어 담뱃불을 날린 양성진이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짜증 나네.”

한 대만 피우고 임무에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다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 폐암으로 목숨을 잃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한 양성진이 다시 담배를 문 채로 숨을 크게 들이쉴 때였다.

콰아아아앙!

귓속을 파고드는 거대한 폭발음.

폭발음의 소리와 어울리는 지진.

양성진이 고개를 홱 돌렸다.

바로 뒤, 헌터 경매장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런 씹…….”

타악!

마나를 두른 손으로 담뱃불을 끈 양성진이 흡연장을 빠져나오며 무전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대답은 없다.

양성진이 자신의 팀이 아닌, 부대 통신으로 주파수를 변경하고 소리쳤다.

“보고!”

-스, 습격입니다!

“누가 헌터 경매장을 습격해!”

-각성 범…….

끊겼다. 하지만 끊기기 직전까지 들려온 보고를 듣고도 습격자를 알 수 있었다.

능력을 사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각성 범죄자.

타악!

양성진이 천천히 속도를 떨어트려 헌터 경매장 입구에서 멈춰 섰다.

“…….”

아무도 없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헌터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담배를 피우며 노가리를 깐 것처럼, 입구를 지키던 헌터들도 어딘가에 숨어 노가리를 까는 거다?

아니다.

한 명도, 단 한 명도 입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콰아앙!

실종보다 사망에 초점을 두어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찾으려 할 때, 그때 다시 발생하는 거대한 폭발.

양성진은 다시 앞으로 달려가며 무전기를 꺼냈고, 내부 경호를 맡은 부대가 아닌 헌터 협회로 주파수를 변경하고 소리쳤다.

“각성 범죄자들이 습격했다! 위치는 광진구 헌터 경매장! 다시 한번 말한다! 각성 범죄자들이 습격했다! 위치는 광진구 헌터 경매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