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레스트의 가설(2)
[에리얼: 그러니 차원의 벽을 통과하면서 시간도 어그러졌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이 다섯 개의 공간이 되어 5회 이상 게이트의 핵을 파괴해야 게이트가 소멸한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에리얼: 게이트를 소멸할 때마다 게이트 내에 몬스터가 줄어든다고 하셔서요.]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게이트의 핵은 뭘까요?”
[에리얼: 그러게요. 뭘까요?]
“네?”
[에리얼: 오래 산 저도 처음 겪는 일이에요. 방금 말씀드린 시간이 어그러졌다는 것도 그저 제 생각에 불과하고요.]
“아, 그렇죠. 하하하.”
정령‘왕’이기에 알 거라고 생각했다.
[에리얼: 아, 그리고 한율 님.]
또 중요한 이야기일까.
“네. 말씀하세요, 에리얼 님.”
한율이 진지한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대답하는 순간, 그녀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에리얼: 이거 마음에 드네요. 초록색 아이스크림.]
“……민트초코요?”
[에리얼: 민트초코라고 하나요. 이거 맛있네요. 다음에도 이걸 보내 주시겠어요?]
세상에, 마상에…….
정령계에 민초파가 탄생했다.
“네, 네. 다음에도 보내 드릴게요.”
[에리얼: 흐음, 민트초코라. 이름도 마음에 드네요.]
“하, 하하하하…….”
***
-몬스터의 진화, 그리고 게이트의 진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십시오. 어제부터 오늘까지. 총 10시간 확인 보고서입니다. 여길 보시면 아시겠지만, 게이트와 몬스터의 진화 이후, 게이트의 생성률도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씻고 나온 한율,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하던 한율이 귓속을 파고드는 사내들의 대화에 몸을 돌렸다.
아들이 헌터여서인지, 몬스터와 관련된 직장을 다녀서인지 한국영은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 아래, ‘초대자, 게이트 연구소 소장 강성한’이라는 소개글.
“늘어났대요?”
“평균적으로 90개에서 110개가 탄생하던 게이트가 140개에서 150개로 늘어났다고 하더구나.”
“50% 증가라…….”
“오늘 국회에서 회의를 한다고 하더구나.”
“헌터 협회가 아니라?”
“게이트의 진화, 몬스터의 진화, 게이트 생성률 증가로 소멸 불가 게이트와 관련된 법안을 고치거나 없애기 위한 회의라고 하더구나.”
“헤에. 일을 하기는 하는구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뭐, 자신들이 싸우는 게 아니다 보니 반대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하더구나.”
“집 앞에 소멸 불가 게이트가 생성되어야 정신 차리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밥 먹으라는 한유라의 외침에 한국영과 함께 이동했다.
앙!
개밥그릇 앞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하양이.
“……너 그거 먹어도 되는 거냐?”
앙!
상관없다는 대답.
“……아, 육체는 진짜가 아니지.”
계약을 맺은 정령은 자연의 마나로 이루어진 육체를 통해 계약자와 함께한다.
앙!
“마나로 이루어진 육체라고 믿기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쪼그려 앉아 하양이를 쓰다듬은 한율이 식탁에 앉았다.
“우……와.”
“허허.”
한율이 탄성을 흘렸고, 한국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만드는 게 귀찮다며 아침에는 절대로 올라오지 않는 잡채와 갈비찜을 시작으로 추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반찬들.
탁.
“먹어.”
국도 된장국이 아니다.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이다.
“……하양이의 영향인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는 한국영을 따라 한율도 고개를 돌려 밥그릇에 얼굴을 집어넣고 있는 하양이를 바라봤다.
사료가 마음에 들었는지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는 하양이였다.
“……왜 그래?”
하양이는 한율의 패밀리어.
한율이 하양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한유라가 식사를 멈추고 물었다.
“하양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뭔가 잊은 거 같아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먹은 거 같다.
“뭐였더라?”
전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웅.
그때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스마트폰의 진동.
한율은 갈비찜을 들어 올린 채 스마트폰을 꺼냈고,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대로 갈비찜을 밥그릇 위에 내려놓았다.
[내 번호야(한송이). 우리 한율이 골든 베어 게이트에서 활동한다고 했지?]
***
⤷ 하양아! 우리 하양아!
⤷ 오늘도 찾아왔다! 하양이그램!
⤷ 오늘도 조금 늦었네?
간간이 보이는 어제 만난 여성 헌터들로 추측되는 댓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던 한율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라이트닝에게 물었다.
“미안. 뭐라고 했지?
별그램 댓글을 읽고 있어서 라이트닝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
“등급 재조정이요. 언제 하실 거예요?”
“등급 재조정?”
“어? 문자 안 왔어요?”
우웅.
한율이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헌터 등급 재조정 심사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헌터 협회의 문자.
“왔네.”
“날짜는요?”
“6월 23일.”
“아, 아쉽네요.”
“너는 언젠데?”
“6월 19일이요.”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캡을 돌아봤다.
“짝캡아. 너는?”
“6월 13일이다, 파트너.”
“그럼 오늘까지네?”
“등급 심사 마치고 다시 함께해야지.”
“내가 미쳤냐?”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한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5시까지 함께 활동을 하니 남은 시간은 4시간.
“빡세게 돌고 빠빠이 하자고.”
“반드시 찾겠어, 윈드 워리어.”
“반드시 도망치겠어.”
“큭큭큭.”
만담과도 같은 두 사람의 대화에 라이트닝이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해 3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전투를 멈춘 한율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음. 다들 수고했다.”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는 라이트닝과 고개를 끄덕이며 간만에 정상적인 말을 하는 캡.
한율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잠시 고민했다.
함께 활동한 시간이 있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함께 싸운 시간이 있어서 그냥 작별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밥이나 먹을까?”
“밥이요?”
“어. 물론 옷 갈아입고.”
“저야 상관없지만…….”
헌터 대 헌터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다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문수원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고 캡을 돌아봤다.
“벗고?”
“갈아입고. 뭘 벗어.”
“으으음…….”
“싫으면 너 빼고 만나고.”
바로 고개를 돌리는 한율의 행동에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밥 먹자.”
“쯧.”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찬 한율이 날짜를 확인했다.
6월 14일은 마침 토요일.
“6월 14일에 만나자고. 저녁 식사로 하고. 학생이 있으니까 고기로. 술은 금지.”
“금지? 그냥 우리끼리만 먹으면 될 거 같은데.”
“금지.”
“아쉽군.”
함께 술잔을 나누며 친분을 쌓으려 했던 캡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 한율이 시간과 장소를 설명하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진짜로 빠빠이다.”
“토요일에 봬요, 형.”
“오냐. 짝캡도 잘 지내고.”
“다시 만날 거다. 등급 심사 끝내고 다시 이곳으로 올 테니까.”
“내가 이곳으로 못 올걸.”
“……응?”
“나 D급 헌터.”
“뭐?”
캡이 되물었고, 문수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 D급이요? 형이 D급?”
“어. D급.”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어.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인맥이 좋아서?”
***
“하양아!”
“나는 보이지도 않나 보네.”
“하양아!”
장난하는 것처럼 자신의 말에 다시 한번 하양이를 부르며 양손을 뻗는 이유리의 모습에 한율이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하양이를 소환했다.
“하양이 소환.”
파아앗.
작은 빛의 폭발.
이어 들려오는…….
앙!
하양이 특유의 울음소리.
“하양이는 오늘도 예쁘네!”
앙!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이유리를 발견한 하양이가 눈웃음을 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쉬이익!
바람을 조종해 공중으로 떠오른 하양이가 바로 이유리의 품에 뛰어들었다.
“오구오구. 잘 지냈어?”
앙!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하양이.
이유리는 하양이를 쓰다듬으며 한율과 함께 청일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을 찾았지만, 그녀는 하양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하양이를 안은 채로 치료를 받았고, 하양이를 쓰다듬으며 마법 수업을 받았다.
“오빠. 그럼 나도 3서클 되면 패밀리어 소환할 수 있어?”
“……응?”
수업을 마치고 잡담을 나눌 때 나온 이야기.
“패밀리어. 하양이.”
“어……. 그게.”
하양이가 정령이라는 것을 속이기 위해 레스트에게 패밀리어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는 계약을 해야 하거든?”
“오빠는 안 했잖아.”
“헌터여서 그런가. 나는 스킬창에 패밀리어 소환이라는 스킬이 생성되어 있더라고.”
“글쿠나. 어쨌든 나도 패밀리어를 만들 수 있다는 거네?”
“그렇지.”
“그럼 패밀리어로 계약하면 걔도 능력을 써?”
“아니.”
“그럼 그냥 애완동물인데.”
뭔가 아쉬워서 잠시 고민할 때, 한율이 말했다.
“능력을 사용하는 귀여운 몬스터랑 계약하면 되지.”
“……어? 그래도 돼?”
“당장은 안 되고.”
“오빠가 지킬 힘을 쌓으면?”
한율이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킬 힘이 생기면 공개할 생각이다.
마법사를 양성할 수 있다고.
“그때가 되면 계약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허락하겠지. 하양이도 계속 얼굴을 내밀 테니까”
“오빠.”
“어.”
“빨리 힘을 길러. 도와줄 거 없어?”
“큭큭큭.”
패밀리어와 관련한 이야기, 하양이그램에 관련된 이야기, 마법에 관한 이야기, 치료에 관한 이야기 등등, 오랫동안 이유리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때였다.
끼이익.
“치료는 끝났고?”
문을 연 이상남이 얼굴만 살짝 내민 채로 물었다.
“네. 끝났어요, 할아버지.”
“음. 그럼 유리야. 하양이랑 밖에서 기다려 줄래? 율이하고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이유리가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양이를 다시 품에 끌어안은 채로 대표실을 나왔다.
한율과 이유리가 차지하고 있던 대표실에 한율과 이상남,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이상민이 소파에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율아.”
“예, 할아버지.”
“청일그룹으로서 네게 후원을 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