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41화 (41/221)

041 레스트의 가설(1)

끼이익.

머리를 털며 화장실을 나오니 소파에 앉아 하양이와 놀아 주는 한유라를 볼 수 있었다.

에리얼과의 대화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레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것.

“하양이 좀 계속 부탁할게.”

“어.”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문을 잠그는 것과 동시에 대화창을 열었다.

“레스트 님. 대화 가능하세요?”

대답은 없다. 한율은 머리를 털며 기다렸고, 어느 정도 물기를 털어 냈음에도 연락이 없자 들고 있던 수건을 의자에 걸고 책상 위에 올려 둔 스마트폰을 잡았다.

“어디 보자…….”

역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실시간 검색어.

“꽤 지난 거 같은데.”

상황이 정리되고 두 시간 정도 지났는데도, 여전히 하양이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재밌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한율이 실시간 검색어 1위, ‘하양이’를 클릭했다.

⤷ 전 세계 최초! 펫의 등장!

⤷ 강한 것도 모자라 귀엽기까지 한 하양이의 등장!

⤷ 마법사의 펫, 패밀리어에 대해 알아보자!

화려한 기사 제목부터, 황당한 기사 제목, 심지어…….

⤷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펫의 아빠! 대한민국의 윈드 워리어!

“…….”

자연스럽게 기사를 클릭한 한율이 비추천을 누르고 하양이에게 집중된 기사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가슴주머니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 있는 새하얀 강아지 사진.

그다음으로 들어온 사진은 여성 헌터들과 놀고 있는 사진.

리빙 아머 파편을 가지고 노는 사진.

빌딩을 올려다보는 사진.

고개를 갸웃하는 여성 헌터를 따라 고개를 갸웃하는 사진.

“기자가 아니라 팬 아냐?”

하양이 사진만 아홉 장이나 되었다. 기사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람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귀여운’ 패밀리어.

[레스트: 늦어서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

한율이 상체를 일으켜 세워 침대에 앉아 대답했다.

“레스트 님이 예상한 일이 벌어져서요.”

[레스트: 예상한 일? 아, 이상 현상에 맞춰 능력이 성장했군요.]

메시지창은 진화라고 했다. 하지만 헌터가 성장하면 능력도 성장하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레스트: 차원 거래는 다른 차원과 거래를 하는 능력이죠.]

“그렇죠.”

[레스트: 게이트는 다른 차원이고요.]

“네.”

차원 거래 능력을 각성한 후, 게이트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레스트: 그래섭니다. 게이트에 이상 징후가 발생할 때, 차원 거래 능력도 성장하지 않을까.]

아니, 그러니까…….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레스트: 확인이 안 된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걸 감안하고 들어주십시오. 어디 보자. 차원과 차원 사이에는 벽이 있다.]

“벽?”

한율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지만, 레스트는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레스트: 마나도, 공기도, 당연히 생명체도 넘어가지 못하는 벽, 설명을 위해 이 벽을 차원의 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돌아가 어떠한 문제가 발생해 차원의 벽에 균열이 생겼고, 그 결과 다른 차원의 공간이 깨진 균열을 타고 다른 차원, 지구로 넘어왔다.]

“게이트?”

[레스트: 예. 일단 여기서 잠시 설명을 멈추겠습니다.]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

[레스트: 확인을 위해서입니다. 그쪽은 빠른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5월 1일, 게이트 또는 몬스터와 관련된 사건이 있는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잠시만요.”

한율이 다시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란에 ‘5월 1일’을 작성했고, 검색하기가 무섭게 나타나는 기사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음?”

몬스터, 또는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은 없었다. 그래서 한율은 다시 검색란을 클릭 ‘5월 1일 몬스터 게이트’를 썼다.

“A급 게이트?”

하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5월 1일, 캐나다에 A급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기사.

A급 게이트는 과거를 포함해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 현상이 있었습니다.”

게이트의 등급에 따라 브레이크 발생 시간은 다르다. 당연히 낮은 등급은 빠르고, 높은 등급은 느리고.

3개월 후 브레이크 발생이라는 마지막 기사 내용을 확인한 한율, 그가 대답을 기다리는 레스트에게 말했다.

“A급 게이트가 생성되었네요.”

[레스트: 역시 그렇군요. 분명 한율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헌터의 성장에 맞춰 능력도 성장할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통해 성장 지원 시스템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차원 거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헌터가 아무리 마나를 다루는 방법이 능숙해져도, 헌터가 몬스터와 싸우며 지원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더라도…….

[레스트: 차원 거래 능력은 헌터를 대상으로 한 능력이 아닌, 다른 차원의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능력이니까요.]

“즉, 능력이 성장한다는 것은…….”

[레스트: 차원의 벽에 생긴 균열이 커졌다. 물론 가설에 불과합니다.]

레스트가 다시 한번 ‘가설’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정답인 거 같은데.’

A급 게이트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차원 거래라는 다른 차원의 생명체와 거래하는 능력을 각성했다.

전 세계에 나타난 게이트의 등급이, 몬스터의 능력이 상승하는 것과 동시에 능력이 진화했다.

‘균열의 벽이 커져 또 다른 차원과 연결됐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율이 다시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넘어온 게이트는 레스트 님이 살고 있는 차원의 일부다?”

[레스트: 그걸 확인하기 위해 여행 중입니다.]

“……네?”

[레스트: 차원 거래의 선택을 받고 일주일 후, 이런 가설을 떠올렸습니다. 그저 확신이 없어서 말씀드리지 못했을 뿐이죠.]

“그 말은!”

한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스트: 예.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어둠의 대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인간이 살지 않는, 몬스터가 지배하고 있는 대륙이죠. 참고로 저번에 주신 웅담은 대륙으로 향하던 도중에 방문한 섬에서 쓰였습니다.]

***

[한율: 그, 그래서 어둠의 대륙의 상황은.]

거대한 배.

몬스터가 지배하고 있는 대륙, 어둠의 땅을 바라보던 레스트가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나타난 수십, 수백 개의 게이트 중 하나.”

레스트가 고개를 돌렸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곳에는 숲이 있었다. 몬스터들이 절벽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숲, 전투 중인지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숲이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크게 대륙을 돌아 다시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숲이 아닌 황무지가 있었다.

거리를 잰 것은 아니지만 눈대중으로 보아도 배와 대륙 사이에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하나는 분명 제가 살고 있는 차원에서 넘어가 게이트가 된 것일 겁니다.”

나타나지 않는 메시지창.

여전히 대륙의 상황을 묻는 메시지창이 보이자 레스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에 연결된 차원과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한율: 네. 그럼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시오.”

[한율: 그리고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타나지 않는 메시지창.

레스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둠의 대륙을 바라봤다.

“차원을 넘어가며 변화가 생긴 걸까.”

지구에 나타난 게이트는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면, 한 번도 아닌 최소 5회 이상 파괴해야 소멸한다.

“이건 좀 고민해 봐야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레스트가 몸을 돌렸다.

대륙 동쪽의 끝에 위치한 데모트 왕국.

데모트 왕국은 어둠의 대륙에서 몬스터들이 넘어올 가능성을 생각해 주기적으로 용병을 모으고, 군대를 모아 어둠의 대륙을 찾아간다.

배에서 내려 어둠의 대륙을 조사하는 것이 아닌, 어둠의 대륙을 빙글빙글 돌고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설을 확인할 수가 있어 의뢰를 받아들였다.

“제독님.”

데모트 왕국민이 아니기에 제독 각하가 아닌 제독님이었지만 해군을 이끄는 중년의 사내는 웃으며 그의 부름에 반응했다.

“오, 어서 오게. 일은 끝났나?”

“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빙긋 웃으며 대답한 제독이 자연스럽게 어둠의 대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군. 꼭 공간이 이동 마법을 타고 넘어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그러게요.”

“어떻게 보는가?”

“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신기하다고 생각하는가.”

“위험하죠.”

“위험하다?”

“예.”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 레스트가 제독을 따라 어둠의 대륙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공간 이동 현상이 어둠의 대륙에 한정되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으니까요.”

***

[에리얼: 우리 쪽에는 자연계 괴물이 있죠.]

“자연계 괴물이요?”

[에리얼: 완전한 정령이 아닌 반정령. 정령으로 진화하던 도중, 잘못된 방향으로 변화한 정령이죠.]

자연계 몬스터와 관련된 게이트는 많다. 한율은 오늘 나타난 게이트를 확인했고, 자연계 몬스터가 지배하는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없……. 아.”

차원 거래를 통해 연결된 차원이 정령계였다.

차원의 벽에 생긴 균열이 커져 지구와 연결된 차원은 아마 수십 개나 될 것이다.

거래 대상의 차원에서만 공간이 넘어와 게이트가 된 것이었다면?

레스트의 차원은 이미 멸망했어야 했다. 그만큼 수년 동안 수백, 수천 개의 게이트가 나타났고, 그 게이트는 무척이나 넓었으니까.

[에리얼: 그런데 차원의 벽이라…….]

“에리얼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에리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잖아요.]

게이트라는 세상이 커지고, 게이트에 살고 있는 몬스터가 강해지는 것과 동시에 차원 거래라는 다른 차원과 거래하는 능력이 진화했다.

에리얼의 말처럼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에리얼: 으음. 그러면 그 가설이 맞는다고 하면 차원의 벽을 넘으며 시간도 어그러졌나 보네요.]

“네?”

[에리얼: 게이트는 핵을 파괴한다고 해서 바로 소멸하는 게 아니잖아요. 최소 5회 이상 파괴해야 소멸하지.]

“……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