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하양이(1)
D+등급 몬스터가 된 리빙 아머는 단단했다. 여전히 속도가 느리지만 세 번 공격해야 파괴되던 갑옷이 다섯 번은 공격해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으아아. 바쁘다 바뻐.”
혀를 삐죽 내민 한송이가 다시 마나를 끌어올렸다.
“파이어 스피어!”
화르륵!
한송이의 머리 위에 생성된 화염의 창.
화염의 창은 헌터들이 없는 게이트 입구로 날아갔다.
초능력은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그래서 원거리 능력자들은 아군이 없는, 적들이 밀집된 게이트 주변에만 사용해야 했다.
물론 컨트롤이 뛰어나면 근접 능력자들을 도울 수 있겠지만, 한송이는 오로지 파괴력에 집중한 원거리 능력자였다.
“송이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송이가 고개를 돌렸다.
절그럭! 절그럭!
넘어진 동료가 보였고,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똑바로 달려오는 리빙 아머가 보였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한송이가 양손으로 지팡이를 잡았다.
“이압!”
쾅!
장비에 마나를 주입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고 말았지만, 지팡이를 크게 휘둘러 리빙 아머를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이씨. 똑바로 안 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할 시간은 없다.
한송이는 손을 살짝 든 동료가 다시 리빙 아머를 상대하자 바로 그의 실수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지팡이를 들었다.
“끄응.”
지팡이에 너무 많은 마나를 소모했다.
“마나 보충하고 올게요.”
“예? 아, 예. 그러시죠.”
너무 놀랐는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던 헌터가 한송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아.”
저벅저벅, 털썩.
후방, 군인들이 만든 바리케이드 앞까지 이동한 한송이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콰앙! 콰앙!
카앙! 카앙!
원거리 능력자들이 일으키는 폭음, 근접 능력자들이 일으키는 쇳소리.
한송이는 멍하니 전장을 바라봤고, 동료들이 모두 부상 없이 싸우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돌려 전장 곳곳을 살폈다.
“캡 캡이당……. 이상하네. 캡 짱이네. 아니 이것도 이상한데…….”
푸른 가죽 갑옷의 사내.
방패를 던지며 앞으로 달리고, 공중으로 튕겨 나간 방패를 염력 능력으로 회수해 넘어진 헌터를 대신해 적의 공격을 막아 준다.
“우와우와.”
실력 없는 관종은 병신이지만, 실력 있는 관종은 호감이다.
영화처럼 방패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캡은 실력자였다.
영화를 관람하듯 캡의 활약을 지켜보던 한송이가 정신을 차리고 그다음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사내를 찾았다.
쉬이익!
흐릿한 잔상과 함께 사라진 노란 쫄쫄이 사내.
노란 쫄쫄이 사내는 리빙 아머 뒤에 나타나 갑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갑옷을 파괴하는 대신,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접근해서 정확하게 마석만 파괴한다. 또한, 캡처럼 사람을 지키는 것도 잊지 않았는지, 리빙 아머를 처치할 상황임에도 헌터를 구하기 위해 포기한다.
“라이트닝…….”
그 누구보다 활약하고 있는 두 사람.
한송이가 캡, 라이트닝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유니버스를 만들어 준 상대를 찾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총과 마법을 무기로 사용하는 한율은 후방에 배치되어 두 사람보다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마나를 주입한 총알을 쏘는 것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대체 무슨 마법을 준비하길래?”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계속 중얼거리는 한율.
쉬이익.
“……바람?”
마나가 느껴지는 바람.
바깥이 아닌 안쪽에서, 정확하게 한율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를 품은 바람이 일었다.
한율이 손을 내밀었다. 그가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들어 올리자 마나를 품은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어 다시 한율에게 돌아갔다.
쉬이익!
손바닥 위에 생성된 회오리.
“바람 마법인…….”
회오리는 금방 사라졌다.
중요한 것은…….
한율의 손바닥 위에 네 발로 서 있는 생명체.
“꺄아악!”
***
“…….”
꼬리를 좌우로 맹렬하게 흔드는 생명체.
앙!
‘왕’ 하고 우는 게 아니라 ‘앙’ 하고 우는 생명체.
“이거 그거 아닌가?”
TV에서 자주 나오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
“포메라니안이다! 포메라니안! 꺄아악! 귀여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대답.
한율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고, 화염 능력 각성자, 한송이가 눈을 반짝이며 손바닥 위에 서 있는 새하얀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포메라니안.”
앙!
맞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포메라니안.
앙! 앙!
“꺄아악!”
다시 비명을 지르는 한송이와 열심히 한율을 올려다보며 우는 포메라니안.
포메라니안이 갑자기 꼬리를 축 늘어트리며 한율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꼬리를 세우고 울었다.
앙!
“응?”
그냥 울었을 뿐이다. 하지만 소리를 타고 날아온 마나가 자신의 몸에 스며들자 울음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름을 지어 달라고?”
앙!
“…….”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귀여운 생명체.
새하얗고 폭신한 털이 정말 부드러울 거 같다.
“……하양이? 아니면 사탕이?”
앙!
“어? 하양이가 좋아?”
앙!
“어, 음. 네가 좋다면 나도 상관없지만.”
앙! 앙!
다시 울음을 터트린 포메라니안, 하양이가 손바닥에 머리를 비볐다.
“음, 그래서 하양아?”
앙!
“뭐 잘하니?”
앙?
고개를 갸웃하는 하양이.
“꺄아아아악!”
이어 다시 옆에서 들려오는 한송이의 비명.
너무 큰 비명 소리에 옆으로 한 걸음 내디뎌 거리를 벌린 한율이, 울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능력을 알려 주는 하양이를 빤히 바라봤다.
바람을 조종할 수 있고, 바람의 마나를 사용하는 힘을 증폭시킬 수 있다.
“……윈드 애로우.”
한율이 실험하듯이 바로 윈드 애로우를 생성하고 하양이를 바라봤다.
앙!
하양이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특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쉬이이익!
머리 위에 생성된 바람 화살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앙!
하양이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윈드 에로우는 점점 크기가 커져 화살이 아닌 창으로 바뀌었다.
“…….”
한율이 멍하니 창이 되어 버린 윈드 애로우를 바라봤고.
“꺄아악! 우리 하양이는 능력도 있어!”
한송이가 비명을 지르며 감탄했다.
쒜에에엑!
앞으로 날아가는 창이 되어 버린 윈드 애로우.
콰아아앙!
한율은 게이트 입구에 떨어진 윈드 애로우, 자신이 만들고 하양이가 강화시킨 윈드 애로우가 일으킨 폭발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떨어트렸다.
여전히 손바닥 위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하양이.
“이야. 짱인데?”
앙!
***
인기 BJ를 꿈꾸는 너튜브 방송인.
다크 울프 게이트를 방송했던 스트리머, 코인이 전역복을 입은 마법사를 빤히 바라보다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려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마법사가 생명체도 소환합니까?”
⤷ 생명체를 소환하면 그게 마법사냐? 신이지.
⤷ 정령 아냐?
⤷ 장난하냐. 정령은 정령사지. 마법사가 어떻게 정령을 소환하냐?
⤷ 시박. 지구에 마법사가 딱 한 명인데. 니가 어떻게 아냐?
⤷ 욕했냐?
⤷ 욕했다.
⤷ 어디 사냐?
⤷ 알아서 뭐 하게?
⤷ 쫄았네. 새끼.
⤷ 야, 어디 사냐?
⤷ 제주도.
⤷ 운 좋았다고 생각해라.
시끄러운 실시간 댓글창.
눈으로 댓글을 정리하던 BJ코인이 가장 가능성이 있는 댓글을 발견하고 말했다.
⤷ 영화 보면 그 뭐냐, 패밀리어인가? 마법사를 도와주는 동물 같은 거 나오잖아. 그 패밀리어라는 거 아닐까?
“아, 패밀리어. 그러네요. 패밀리어인가 보네요.”
BJ코인이 다시 카메라를 전장으로 돌렸다. 당연히 카메라가 향한 곳은 전역복을 입은 사내, 억울한 군저씨와 윈드 워리어로 유명하지만, 일단은 마법 능력을 각성한 총 쏘는 마법사다.
“그런데요……. 진짜 귀엽게 생겼네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싸우는 것이 힘들었는지 처음에는 정수리에, 그다음에는 어깨 위에 강아지를 올리더니 그마저도 번거로운지 가슴주머니에 강아지를 넣었다.
너무 작아 얼굴만 쏙 내밀고 있는 새하얀 강아지.
⤷ 동감한다. 진짜 귀엽네.
⤷ 지구의 생명체가 아니다. 저건.
⤷ 화신이다. 화신.
⤷ 화신?
⤷ 귀여움의 화신.
실시간 댓글창이 귀여운 강아지로 인해 한창 시끄러울 때,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계속 사내를 도와주면서도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강아지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카메라를 향했다.
⤷ 이쪽 본다!
⤷ 와. 진짜 귀엽게 생겼네.
⤷ 짱 귀엽네. 포켓멀…….
⤷ 포켓멀?
⤷ 포켓+애니멀. 포켓멀…….
⤷ 진심으로 글 쓴다. 구리다.
⤷ 이름 모르잖아, 이 새끼들아.
⤷ 포켓멀이 아니라 포켓독 아니냐?
⤷ 포켓+도그냐?
⤷ 존나 구린데?
⤷ 1차는 그거, 2차는 맹독처럼 치명적으로 귀여워서 포켓독.
⤷ 오, 일리 있어.
⤷ 그래도 구려. 코인아. 가서 이름 물어보고 와라.
날아오는 후원금 5만 원.
“형님. 너무 위험한 퀘스트입니다. 계좌 불러 주십시오. 돌려드리겠습니다.”
⤷ 뭐가 위험해. 최전방이 아니라 후방이잖아. 거기다 너 각성자라며.
“D급 각성자인데요.”
⤷ 쟤네들은 D+라매. 거기다 헌터들 때문에 후방에 배치된 헌터들에게 다가가는 애들도 없고.
“아. 그르네.”
등급이 상승했지만, 그래도 D+등급이다.
결정을 내렸는지 BJ코인이 억울한 군저씨, 또는 윈드 워리어라 불리는 총 쏘는 마법사에게 달려갔다.
“저, 저기요!”
“네?”
“강아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얘요?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아는 걸까?
앙!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모자라 눈을 초승달처럼 휘는 강아지.
BJ코인은 갑작스러운 후원 폭주에 깜짝 놀랐지만, 목적을 잊지 않고 물었다.
“예.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어…….”
“꿀꺽.”
“하양이요.”
“……예?”
“하양이.”
“……털이 하얘서 하양이?”
“네.”
⤷ 귀엽기는 한데…….
⤷ 그러게. 귀엽기는 한데…….
⤷ 뭔가 짜증 나네. 대충 지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울컥한 시청자들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릴 때였다.
앙?
얼굴만 쏙 내밀고 있던 하양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 하양아!
⤷ 하양아!!
⤷ 하양아!!!
***
빨빨빨빨빨.
빨빨빨빨빨.
그냥 보이는 모든 게 신기했던 것 같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하양이가 갑자기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이리 와. 이리 와.”
“이거 맛있어.”
쪼그려 앉아 열심히 손을 흔드는 여성 헌터부터, 개껌을 이리저리 흔들며 하양이를 유혹하는 여성 헌터까지.
“어디서 구해 온 거지?”
멍하니 하양이의 행동을 구경하던 한율이 여성 헌터가 들고 있는 개껌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때, 하양이가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짧은 다리를 놀려 여성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이리 와. 이리.”
“언니한테 와. 언니한테.”
“응? 하양이 암컷이었어?”
“엄청 귀엽잖아. 암컷 아닐까?”
잠시 친구와 대화를 나눈 여성 헌터가 다시 개껌을 열심히 흔들었다.
하지만 하양이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서서 여성 헌터들을 올려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