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능력이 진화합니다(2)
성북구, 리빙 아머 게이트 앞.
라이트닝과는 눈인사를 하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캡은 무시한 한율이 협회 직원을 찾아가 도착을 알린 후, 편의점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게이트를 바라봤다.
“……무슨 마법을 저장해야 할까?”
메모라이즈 마법으로 저장할 수 있는 마법은 두 가지.
“방어 마법과 치료 마법이 낫겠네.”
주문을 외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찾아온다면?
마나를 부여한 K-7으로 대응하면 된다. 그러니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부상을 대비해 치료 마법과 방어 마법을 저장하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율은 메모라이즈 마법을 사용해 힐과 실드를 저장했다.
그 후 아무리 기다려도 게이트가 일그러지기만 할 뿐, 브레이크 특유의 빛 발생 현상이 일어나지 않자 스마트폰을 꺼내 너튜브에 들어갔다.
리빙 아머 게이트.
문수원에게 말로써 설명을 들었을 뿐이다. 너튜브에 들어간 한율은 리빙 아머 게이트를 검색란에 적었다.
한 달 전에 발생한 브레이크 방송을 발견하고 바로 클릭해 동영상을 시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영상 세 개를 시청한 한율이 고개를 살짝 들어 게이트를 확인했다.
“하아……. 대체 언제 폭발하는 거야.”
흔들리기만 할 뿐, 폭주하지 않는 게이트.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린 그가 이번에는 턱을 괸 채로 이번 브레이크에 참가하는 헌터들을 살폈다.
시작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인지 눈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라이트닝은 모습을 감춰 현재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캡이었다.
헌터들과 대화를 나누고, 장난식으로 다가와 사인을 요청한 헌터에게 진심을 다해 사인을 해 주고.
“율아! 우리 동상!”
“……?”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소녀, 아니 동안의 여인.
한율은 윙 스네이크 게이트에서 함께했던 파티원들과 함께 다가오는 한송이가 손을 크게 흔들자 왼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잘 지냈어?”
“네. 누나는요?”
“못 지냈어.”
“……다크 울프?”
한송이는 레온 길드 소속 헌터다.
한율이 최근에 발생한 문제를 언급하자,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레온 길드 3팀 팀장, 강중기가 다가왔다.
“고생하십니다.”
“하, 하하.”
할 말이 없던 강중기가 웃음을 터트리며 한율과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레온 길드가 성북구에 참가해도 되는 건가요?”
“국가가 지정한 소멸 불가 게이트니까요.”
“아하.”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손에 힘을 풀어 악수를 끝내고 다시 의자에 앉는 순간이었다.
“캡이다!”
한송이의 외침.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한창 헌터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는 캡을 바라봤다.
“윈드 워리어는 왜 캡이랑 같이 안 있고 여기 있는 걸까나?”
이유리와는 전혀 다른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묻는다.
“헤에. 이곳에 윈드 워리어를 따라 한 사람도 있는 건가요?”
“그러엄. 있지.”
“신기하네요.”
“…….”
“…….”
“율이가 윈드 워리어잖아.”
“누님.”
“엉. 동상.”
“윈드 워리어는 어떤……. 빌런? 아니, 히어로인가?”
빌런에서 히어로로.
“어쨌건 윈드 워리어의 능력은?”
“윈드 워리어도 능력이 있나?”
“슈퍼 워리어 수술받아서 강화 인간 되었잖아요. 캡처럼.”
“그리고 왼팔은 강철 팔!”
“그렇죠. 이제 윈드 워리어를 떠올리고 저를 보세요. 어때요? 닮았어요?”
“아니.”
“그럼 윈드 워리어 아니죠?”
“아니.”
“왜.”
말을 놓고 말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는지 한송이는 바로 대답했다.
“이미 사람들이 너를 윈드 워리어라고 부르니까?”
“…….”
“그래도 억울한 군저씨보다는 좋은 별명 아닌가?”
방긋 웃으며 묻는 한송이에 할 말이 없었다.
동안이어서 그런지 매우 귀여운 미소였지만, 한율에게는 소악마의 미소로 보였다.
***
“브레이크 발생까지 앞으로 30분!”
협회 소속 헌터의 외침에 헌터들이 마지막 정비에 들어갔다.
한율도 정비에 들어갔다.
K-7을 확인하고, 마나 호흡법을 돌려 마나홀, 그리고 보유 마나량을 확인했다.
10분, 20분, 그리고 25분.
파아앗!
5분의 오차가 있었지만 브레이크 특유의 빛 폭발이 발생해 모두가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일어난 현상은 몬스터가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폭주, 브레이크 현상이 아니었다.
화아악!
게이트가 스스로 사방으로 뿌리고 있던 빛을 흡수했다.
“……음?”
“뭐지?”
“빛을 흡수했다?”
“브레이크가 아닌 건가?”
처음 보는 현상이다. 그래서 의아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모든 헌터들 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게이트 감정이 가능합니다.]
[게이트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몬스터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뭐?”
“가, 감정!”
당황하는 헌터가 있었고, 상황 파악을 위해 감정 시스템을 사용하는 헌터가 있었다.
이름: 리빙 아머 게이트(4/6).
등급: D+.
서식 몬스터: 리빙 아머, 리빙 나이트 외 13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00:00:30.
***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한율의 눈앞에도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하지만 한율은 갑작스러운 게이트 및 몬스터의 등급이 진화한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셨지?”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다.
[게이트 감정이 가능합니다.]
[게이트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몬스터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메시지창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세 개의 메시지창이 아니라 다섯 개의 메시지창이 생성됐다.
[능력이 진화합니다.]
[거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미리 본 것처럼 레스트는 게이트의 이상 징후 발생에 맞춰 능력이 변화하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킬창.”
한율이 메시지창을 닫고 스킬창을 열었다.
이름: 차원 거래.
설명: 타 차원과 거래할 수 있습니다.
대상: 레스트. 거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설명 칸에 괄호 치고 ‘거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쓰여 있던 과거와는 다르다.
두 명으로 늘어나서인지 ‘대상’이라는 칸이 생겨났다.
한율이 레스트와 연락하기 위해 차원 거래 능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시기가, 장소가 아주 나빴다.
“브, 브레이크 발생!”
게이트와 몬스터의 등급 상승에 따른 혼란이 사라지기도 전에 일어나는 브레이크 현상.
한율이 능력 사용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절그럭, 절그럭.
걸어 나오는 리빙 아머.
외관상의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마나를 소모해 능력을 사용하는 각성자들이기에 차이점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무력치 50% 상승으로 추측됩니다!”
과거, 리빙 아머 브레이크에 참가했던 헌터가 큰 목소리로 외쳐 상황을 알렸다.
“일단 살아남는 데 집중하자.”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고, 몬스터가 헌터 그리고 군인들이 만든 포위망을 뚫지 못하도록 막아 내는 게 차선이었다.
한율이 메모라이즈 마법을 초기화하고 빠르게 다른 마법을 저장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주문을 외웠다.
“파이어볼!”
화르륵! 화르륵!
거대한 화염구체 여섯 개.
3서클에 오르며 파이어볼 마법을 사용하면 평균적으로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화염구가 생성된다.
메모라이즈 마법으로 저장한 파이어볼 마법과 직접 주문을 외워 생성한 파이어볼.
콰아아앙!
앞으로 날아간 여섯 개의 파이어볼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아직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공격하는 자신의 행동에 헌터들이 고개를 돌리자 한율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브레이크 발생!”
“……!”
몬스터가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브레이크.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다시 자세를 잡자 한율은 뒤로 물러서 다시 메모라이즈 마법으로 마법을 저장하고 다시 앞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거래 대상, 에리얼과 연결합니다.}
{상대의 수락을 기다립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목소리가 메시지로 변환되어 거래 대상에게 전해집니다.}
“이런 씹…….”
차원 거래 능력을 각성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 레스트와 연결됐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리얼: 어머어머, 이게 뭐지?]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창.
빠르게 주변을 살핀 한율이 리빙 아머에게 달려드는 헌터, 후방에서 능력을 사용하는 데 집중하는 헌터들을 확인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상황 설명은 간결하게.
지구의 상황을 알리고, 능력에 대해 알리고.
[에리얼: 어머어머. 이 나이에 이런 재밌는 일을 보게 될 줄이야.]
질문을 던질 시간은 없다.
“에리얼 님. 거래하시겠습니까?”
[에리얼: 네. 재밌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거든요. 좀 이따가 연락드려도 될까요?”
[에리얼: 몬스터와 싸우는 중이신가 보네요.]
“네.”
[에리얼: 그럼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겠네요.]
“……네?”
[에리얼: 직접 움직일 수는 없지만. 어디 보자. 아가야 이리 오렴.]
메시지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메시지창을 닫지 못하고 말해 그대로 자신에게 전해졌다.
[에리얼: 그럼 제 말대로 마나를 움직이며 제 말을 따라 하세요.]
“이렇게 갑자기요?”
[에리얼: 위험한 상황이잖아요.]
“……그렇죠.”
[에리얼: 그러니까요. 따라 해 보세요. 한율 님에게 나쁜 일은 없을 테니까요.]
메시지 내용을 보면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에리얼: 걱정이 많으시네요. 아니, 어쩔 수 없는 건가. 계약이요. 제 딸아이와 계약을 해요.]
계약…….
“어, 정체를 묻는 게 실례가 될까요?”
[에리얼: 어머어머. 아직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정령왕, 에리얼이라고 해요.]
“…….”
차원 거래 두 번째 대상은 정령.
‘미친…….’
그것도 정령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