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37화 (37/221)

037 능력이 진화합니다(1)

“수고하세요.”

“예, 좋은 하루 되세요.”

이른 아침에 찾아온 청일 백화점 배송 트럭이다.

잘 포장된 박스를 받아든 유리는 배송직원이 떠나자 곧바로 박스를 열었다.

“……음?”

뭔가 익숙한 무늬.

한유라가 박스에서 한율의 갑옷을 꺼냈다.

“…….”

디지털 무늬.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보고 있는 무늬.

달칵, 끼이익.

“하아암, 벌써 일어났어?”

마침 방에서 나오는 한율.

한유라는 한량처럼 느릿느릿 걸어오는 한율을 보고 손에 들고 있는 갑옷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거 뭐냐?”

“……갑옷이죠?”

“내가 그걸 물어본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합니다.”

“설명해 봐.”

전역복을 벗기기 위해 의사도 묻지 않고 의뢰를 넣었다. 그것도 빠르게 벗기기 위해 이유리라는 인맥을 사용했다.

전역복을 똑 닮은 게 아니다.

그냥 전역복.

“공짜래.”

“……음?”

“공짜. 무료.”

“왜?”

“고맙다고.”

고마운 일이 뭐가 있을까?

“……유리?”

“응. 그래서 무료로 준대. 문제는 반나절만 지나면 완성이 될 정도로 제작이 진행된 상태라는 것.”

“완성되기 직전이어서 디자인 변경을 요청할 수 없었다?”

“내 돈 주고 하는 거면 디자인 변경을 요청했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 한율이 유라의 옆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 돈 주고 제작한 게 아니어서 디자인 변경을 요청할 수가 없더라고.”

“……좋아?”

“능력?”

“어.”

“효과가 두 개나 붙어 있더라.”

이미 벌어진 일이다.

디자인을 무시하고 효과에만 집중한 한유라가 한율에게 군복을 넘겼다.

“감정.”

이름: 강석호의 윈드 워리어 갑옷(350).

설명: 제작 능력자, 강석호가 만든 갑옷.

효과: 피해 20% 감소. 방어 마법 효과 15% 증가.

“진짜 디자인만 빼면 완벽하다.”

정확하게는 이름과 디자인이다.

하지만 한율은 이름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유라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갑옷은 이쯤에서 넘기고.”

“넘겨? 또 할 말이 있어?”

“캡과 라이트닝.”

진심으로 뜨끔했다.

“만난 거 아니지?”

“응. 안 만났어.”

미안, 만났어.

“야. 내가 미쳤다고 게네들하고 같이 다니겠냐?”

내가 미쳐 가지고 게네들하고 파티 맺고 활동하고 있어.

“걱정 마. 걱정 마. 함께한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니까.”

최선을 다해 감춰 볼게. 그러니 걱정 마.

“……오빠.”

“어. 말해.”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나 진짜 쪽팔려. 그러니까…….”

“…….”

“믿어도 되지?”

“응.”

너무 참견한다고 생각한 걸까?

“미안. 오늘 아침은 오빠가 좋아하는 걸로 해 줄게.”

방긋 웃은 한유라가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율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이번만이야. 이번만.”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다.

한율은 딱 이번 게이트에서만 함께하고, 이후는 서로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라야. 도와줄까?”

“아침 망치려고? 그냥 씻기나 해.”

“넵.”

***

라이트닝, 문수원은 문제가 없다. 쟤는 장비 제작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이트닝이 되어버린 ‘창피함’을 아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율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왼쪽, 나란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캡을 보았다.

캡.

라이트닝, 문수원과는 다르다. 히어로 영화, 캡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이 인간은 자신을 따라다닐 것이 분명했다.

‘아쉽지만…….’

진심으로 부탁한 한유라가 떠올랐다.

“바꾼다.”

게이트를 바꾼다.

“예?”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에 라이트닝이 반응하자 한율이 고개를 살짝 흔든 후, 턱짓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다섯 마리다. 준비하자.”

“예.”

“오케이.”

라이트닝이 제자리에 서서 몸을 풀었고, 캡이 방패를 던지려는 듯이 상체를 비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타악.

잔상과 함께 사라진 라이트닝.

쾅!

한율이 라이트닝의 잔상이 사라질 즈음에 발생한 소닉붐을 듣고 자세를 잡았다.

쿠어어엉!

곰의 울음소리.

쿵! 쿵! 쿵!

가벼운 땅울림.

“짝캡아.”

“흐읍!”

라이트닝과 골든 베어 두 마리.

캡이 한율의 부름에 방패를 날렸다.

쉬이익!

“또 흔들리네.”

열 번 던지면 여섯 번은 궤도가 흔들린다.

“걱정 말라니까. 파트너는 걱정이 너무 심해.”

그는 신체 강화 능력을 각성한 헌터가 아닌, 염력 능력을 각성한 헌터.

콰앙!

캡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능력을 사용했고, 궤도가 바뀐 방패가 골든 베어와 충돌하고 튕겨 나오자 다시 능력을 사용해 방패를 회수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

“아, 그러고 보니 그거 아시죠?”

그거?

휴식을 취하던 한율과 캡이 고개를 돌려 라이트닝을 바라봤다.

“그거라니?”

“브레이크요. 일주일 후에 발생하는 브레이크.”

“아아.”

대전의 킬 비 게이트처럼, 서울에도 소멸시키지 않고 유지하는 게이트가 있다.

D급 게이트, 리빙 아머 게이트.

리빙 아머의 사체는 금속 장비의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소멸 금지 게이트로 선정한 것이었다.

“해 봤냐?”

“네. 해 봤죠. 형님은 참가한 적 없으세요?”

“난 군인이었으니까.”

“아, 아아…….”

5월 초에 각성한 전직 군인, 한율이다.

문수원은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후, 한율을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갑옷이에요. 단단한 게 장점이죠. 약점은 갑옷 안쪽에 존재하는 마석.”

“마석을 파괴해야 해?”

“마석의 마나로 움직이는 몬스터여서 어쩔 수 없어요. 강제로 갑옷과 마석을 떼어 낸 헌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감정 시스템을 사용해 확인해 보니 설명창에 변질된 마나를 품은 마석이라고 적혀 있었대요.”

변질된 마나는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치유 능력자들도 있을 테니 위험하지는 않겠네.”

“네.”

마석을 파괴하는 순간 일어나는 현상, 그러니까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변질된 마나를 소멸시키기 위해 치유 능력자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흐음……. 어떤 변종이 탄생하냐?”

다크 울프 게이트처럼 브레이크 현상 발생 시, 그 게이트에서 다수의 가디언, 그리고 다수의 변종이 튀어나온다.

“가디언은 그냥 갑옷이 아닌 투구, 갑옷, 그리고 방패와 검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리빙 아머 나이트고요. 변종은……. 으음, 제가 본 변종은 마나를 품은 철로 된 리빙 아머가 아닌 은으로 된 리빙 아머, 청동으로 된 리빙 아머였어요.”

“재질이 다르다는 거네. 설명해 줘서 고맙다.”

문수원이 한율의 인사에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아! 그런데요.”

“어. 말해.”

“그때는 따로…… 움직이는 거죠?”

힐끔 캡을 훔쳐보며 묻는 라이트닝.

캡이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 할 때, 한율이 먼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어. 따로 움직여야지.”

“어째서지, 파트너!”

우리는 임시 파티지 정식 파티가 아니니까.

그런 대답에 캡이 이해하고 넘어갈까?

“뭉쳐 있으면 위험에 처한 헌터를 구하는 데 늦잖아.”

“…….”

“…….”

“……그렇군. 리빙 아머를 쓰러트리는 것보다 사람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다니. 역시 내 파트너야.”

***

라이트닝, 그리고 캡과 파티를 맺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레스트: 정말 감사합니다.]

100개의 웅담을 구입하는 것으로 300개의 웅담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율이 레스트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바로 손사래를 쳤다.

“뭘요.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레스트: 그래도 감사 인사는 드려야죠.]

“하, 하하. 더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레스트: 식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3서클 마법서로 거래하고 싶은데, 배우고 싶은 마법이 있으십니까?]

“사흘 뒤에 리빙 아머라는 몬스터와 싸웁니다.”

[레스트: 마석의 마나로 움직이는 갑옷 유령 말입니까?]

“네. 그쪽에도 있나요?”

[레스트: 그렇습니다. 흐음, 리빙 아머면 디그 마법이면 충분합니다.]

“……1서클 마법이요?”

[레스트: 예. 마석의 마나로 움직이는 리빙 아머는 점프를 못 하니까요. 그냥 구덩이에 떨어트리면 됩니다.]

“쓰러트리는 건요?”

[레스트: 갑옷 내부에 있는 마석을 파괴하는 것은 전사들이 할 일이죠.]

“아하!”

레스트는 정식 마법사다. 자신처럼 근접 전투도 가능한 마법사가 아닌 뒤에서 마법을 사용해 적을 쓰러트리는 마법사다.

“그러면 무슨 마법을 배워…….”

고민하던 한율, 피식 실소를 터트린 그가 레스트에게 물었다.

“어떤 마법이 있나요?”

3서클 마법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레스트: 아, 설명을 하지 않았군요. 3서클 마법에는…….]

점점 길어지는 메시지창.

“오!”

마법의 이름, 그리고 이어지는 마법 효과를 읽으며 고민하던 한율이 중간에 나온 마법을 확인하고 탄성을 흘렸다.

“메모라이즈 마법을 배우겠습니다.”

3서클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메모라이즈 마법을 이용해 저장할 수 있는 마법은 2개.

4서클 경지에 오르면 4개.

5서클 경지에 오르면 6개.

6서클 경지에 오르면 8개.

[레스트: 메모라이즈 마법 말입니까? 지금 당장은 효율이 떨어질 텐데요.]

“저는 무기를 사용하는 마법사잖아요.”

[레스트: 아하!]

이번에는 레스트가 탄성을 흘렸다.

“쌀과 밀가루, 고기랑 채소, 과일, 그리고 조미료를 준비하면 될까요?”

[레스트: 조미료요?]

“설탕, 소금, 후추?”

[레스트: 후추는 귀족들만 사용하는 조미료입니다. 매우 비싸서 욕심을 내는 사람이 있을 테니 후추는 빼 주십시오. 쌀과 밀가루는 30인분, 고기랑 채소는 60인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쌀과 밀가루도 60인분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레스트: 처음 마을 주민들에게 설명할 때, 아공간 주머니에 쌀과 밀은 30인분만 챙겨 두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비상용으로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은 바로바로 거래를 진행해도, 필요할 때 바로 거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레스트: 일리가 있네요. 그럼 100인분씩 부탁드리겠습니다.]

괜히 제안했나.

“……쇼핑도 힘들겠네.”

[레스트: 예?]

“아뇨. 그럼 준비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레스트: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화 종료를 알리듯 나타나지 않는 메시지창.

[레스트: 아, 그리고.]

골목을 빠져나올 때쯤에 다시 나타나는 메시지창.

뒷걸음을 쳐 다시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긴 한율이 레스트의 부름에 응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레스트: 아주 사소하더라도 게이트, 또는 능력에 변화가 생기면 연락주십시오.]

“게이트 또는 능력이요?”

[레스트: 으음……. 아니군요. 게이트의 이상 징후 발생에 맞춰 능력이 변화하면 연락주십시오.]

게이트의 이상 징후에 맞춰 능력이 변화한다?

그런 일이 있을까?

“어, 일단 알겠습니다.”

[레스트: 그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일단 확인은 해 봐야 하는 일이니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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