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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35화 (35/221)

035 세트(1)

사람이 없어서 대화를 나누는 거다.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면 계속 무시할 생각이었다.

“수원아.”

“예, 형님.”

“…….”

‘형’에서 ‘형님’이 되어 버렸다. 순간 멍하니 문수원을 바라보게 되었던 한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쪽팔려서 복면 쓰는 거지?”

“네.”

진심이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문수원은 그저 장비가 좋아 어쩔 수 없이 관종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는 관종이 딱 한 명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함께하잖아?”

“네.”

“한 세트가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네.”

“어, 엉?”

“중요한 것은 팀원의 실력이지, 팀원의 성격이 아니잖아요.”

“…….”

정론이다.

디자인이 아무리 이상해도 능력만 좋으면 써야 하는 것이 헌터 세계다.

“수원아.”

“예, 형님.”

“사람들이 엄청나게 쳐다볼 거다.”

“괜찮아요. 복면 썼잖아요.”

아, 그르네.

얼굴 전체가 알려진 사람은 자신, 하관만 알려진 사람은 캡과 라이트닝, 아니 문수…….

“아, 그리고 라이트닝이라고 불러 주세요.”

“……왜?”

“이름 알려지면 얼마 못 가 신상이 알려질 거고, 그러면 저 학교 못 다녀요.”

자신의 보디 슈트를 슬쩍 훔쳐보는 문수원, 아니 라이트닝.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은 한율이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억지로 고개를 돌려 캡을 바라봤다.

“너도?”

“함께해야지. 파트너.”

“몇 살이냐?”

“스물셋.”

“아씹…….”

동갑이다.

“역시 친구.”

“넌 안 돼.”

“……훗.”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리는 캡.

한율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캡이 말했다.

“도망치고 쫓고.”

누가 도망치고 누가 쫓는 걸까.

“네가 세뇌당했을 때가 떠오르는군.”

“난 세뇌 당한 적이 없단다. 짝캡아.”

이를 바득 간 한율이 다시 캡을 바라봤다.

저 인간, 캡을 사랑하는 짝캡은 윈드 워리어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윈드 워리어는 캡의 영원한 파트너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실력은 좋아.’

포이즌 골든 베어와의 전투에서 실력을 검증했다.

5일, 아니 포이즌 골드 베어 때문에 하루를 낭비했고, 레온 길드에 1회 소멸 작업 때문에 하루를 또 낭비했다.

남은 시간은 사흘. 그중 하루를 구입에 쓰는 걸로 결정했으니 남은 시간은 이틀.

‘이틀 안에 삼백 개는 불가능.’

이틀을 낭비한 탓에 부족한 수량은 구입해서 채울 생각이었지만, 만약 캡과 라이트닝, 두 사람과 함께하면 ‘구입’하는 웅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웅담은 내 거.”

“웅담이요?”

“어.”

“그거 이미 검증됐잖아요. 곰의 웅담하고는 달리 어떠한 효능도 없다고.”

곰의 쓸개는 약재로 쓰인다. 하지만 동물형 몬스터, 골든 베어의 쓸개는 그 어떤 치료 효과도 없었다.

“필요해서 그래.”

“저는 상관없어요.”

한율은 허락하는 문수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후, 억지로 고개를 돌려 캡을 바라봤다.

“너는.”

“파트너의 부탁을 무시할 수는 없지.”

“…….”

아.

그냥 수원이 도움만 받아야 하나…….

“그래. 사람들을 피해서 움직이면 되지. 피해서 움직이면.”

탐지 마법이 있다.

“그래서 이름은?”

“캡이라고 부르면 된다. 파트너.”

“아주 썅…….”

***

“흐읍!”

쉬이익!

오른팔을 크게 휘두른 캡이 앞으로 달려갔다.

콰앙!

안면과 충돌하고 튕겨 나간 방패.

캡은 염력 능력으로 회수, 골든 베어 앞에 서서 오른팔을 뻗었다.

푸우욱!

방패가 안면을 그대로 찍어 버렸다.

방패가 단단한 건지, 캡의 신체가 단단한 건지.

“그러고 보니.”

방패는 확인하지 않았다.

“감정.”

이름: 캡의 방패(400).

설명: 김지현이 만든 방패.

효과: 피해 40% 감소.

“시바.”

400이다.

처음 보는 가치 400짜리 방패.

쿠어어엉!

동족의 위험에 빠르게 달려온 골든 베어, 놈이 울음을 터트리며 앞발을 휘두르자 캡은 황급히 방패를 회수하고 양팔로 방패 손잡이를 잡았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뒤로 밀려나는 캡과…….

쿠어어엉!

얼마나 단단했는지, 발톱이 부러지고, 발목이 부러져 울부짖는 골든 베어.

한율의 시선이 다시 캡에게 향했다.

골든 베어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막았음에도 흠집 하나 없다.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어.”

“아씹. 감탄하고 있는데.”

시간만 되면 명대사를 뱉는 캡의 모습에 한율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마법을 사용했다.

“어스 애로우.”

바람 속성 마법, 윈드 애로우는 형체가 희미하다. 그래서 시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지만, 파괴력이 약했다.

화염 속성 마법, 파이어 애로우는 화살 계통 마법 중 가장 강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숲이라는 지형에서 사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쉬이익! 푸욱!

땅속에서 튀어나온 어스 애로우.

어스 애로우는 캡을 공격한 골든 베어의 아래턱을 파고들어 정수리를 찢고 하늘 위로 솟구쳤다.

대지 속성 마법, 어스 애로우는 파괴력만 보면 화살 계통 마법 중 중간 정도 된다.

하지만 흙을 이용하는 마법이어서 생성 장소의 제약이 크지 않다.

쿠웅!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골든 베어.

“……파티가 좋기는 하네.”

라이트닝이 빠르게 움직여 적들을 혼란시키면, 캡과 자신이 한 마리씩 토벌한다.

“수원아. 더 가능하겠냐?”

“네. 적응이 끝나서 네 마리까지는 가능할 거 같아요.”

“그러면 한 번에 여섯 마리라는 건데.”

자신과 캡이 한 마리씩 맡으니 여섯 마리와 동시에 싸울 수 있다.

“거래창.”

아주 작은 목소리로 거래창을 활성화한 한율이 골든 베어의 사체를 확인했다.

56마리.

반나절 만에 56마리를 사냥했다.

짜악!

손뼉을 쳐서 두 사람의 시선을 모은 한율이 제안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벌써요?”

“벌써는 무슨, 다섯 시다. 다섯 시.”

한율의 대답에 문수원이 보디 슈트 안쪽으로 손을 넣어 시계를 꺼냈다.

“……헐.”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것처럼 호흡이 맞아 전투가 빠르게 진행된 것도 있지만, 탐지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한율 때문에 계속 골든 베어와 싸우게 되어 시간 개념을 상실했다.

“내일 아침 9시.”

“입구에서 기다릴까요?”

“아니. 안에서 기다려.”

힐끔 캡을 훔쳐보며 말하는 한율의 모습에 문수원이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사체 처리는 내가 맡아도 될까?”

“저는 상관없어요. 따로 계약한 해체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면.”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너도 괜찮냐?”

“상관없다, 파트너.”

“그놈의 파트너…….”

이제는 짜증도 안 난다.

한율은 손을 휘휘 저은 후, 다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헤어지자.”

“응? 같이 안 나가고요?”

“같이 나가면 또 유니버스라고 떠들 텐데?”

“……아하.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는 문수원이 힘을 모았다.

한율이 자연스럽게 마나를 움직이는 문수원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약속이라도 있었어?”

“아뇨. 학원이요.”

“헌터 학원? 훈련장이 아니라?”

“네. 영어 학원이요.”

“……헌터인데?”

“부모님께서 어느 정도 지식은 갖춰야 한다고.”

옳은 말이다.

“그래. 내일 보자.”

“옙, 형님! 내일 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허리를 꾸벅 숙인 문수원이 몸을 돌렸다. 그는 바로 능력을 사용해 게이트로 달려갔다.

그렇게 캡과 남게 된 한율은 잠깐의 고민 끝에 그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넸다.

“너도 내일 보자.”

“그래, 파트너.”

몸을 돌린 캡이 성큼성큼 걸어 시야에서 멀어졌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

“……이게 잘한 일일까.”

한유라에게 분명히 말했다.

캡과 라이트닝, 두 사람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 말을 하고 단 하루 만에 두 사람을 만났고, 만난 것도 모자라 파티를 맺고 활동했다.

“안 들키면 되는 거지. 안 들키면.”

***

“무지 많네.”

트럭을 가득 채운 골든 베어의 사체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영진이 한율에게 물었다.

“또 강해졌냐?”

“아뇨. 오늘은 파티.”

“캡이냐?”

“……윈드 워리어 코스프레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캡을 언급하는 건지.”

“캡 옆에 군인이 있으니까?”

“환장하겠네.”

한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터트린 이영진이 스마트폰을 꺼내면서 물었다.

“계산은 어떻게 해 줄까?”

“계좌번호 받았으니까 제게 주세요. 아, 영수증도 찍어서 보내 주시고요. 웅담은 따로 빼 주세요. 아부지에게 부탁해 두었으니 아부지에게 전달해 주시고요.”

“오냐. 그래서 라이트닝은?”

“…….”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째려보았고, 그의 눈빛에 몸을 움찔한 이영진이 빠르게 메모를 하고 트럭에 올랐다.

“내일 보자.”

“네. 수고하세요.”

“다음에는 캡과 함께 보면 좋을 거 같다.”

“……해체소를 바꿔야 하나.”

“하하하하!”

바꿀 리가 없다.

가족이 일하고 있는 평균 시세보다 조금 높은 금액으로 구입해 주는 해체소니까.

“그러면…….”

이영진을 만나 사체를 처리했으니 다음으로 할 일은 약재 거리에서 영초를 구입하는 거다.

하지만 이영진을 기다릴 동안 이유리와 통화해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끝내니 청일그룹에서 연락이 왔다.

대리 구매를 해 주겠다고, 그러니 바로 아가씨를 치료해 달라고.

한율이 약재 거리로 향하는 대신, 청일 백화점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청일 백화점.

“한율 님?”

지하철역을 나와 크게 기지개를 켤 때였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흑발의 미녀가 있다.

허리춤에 백색 검집을 차고 있는 부드러운 미소로 지닌 미녀다.

“……누구시죠?”

“…….”

미소가 순간적으로 차가워졌다.

“청일그룹 경호팀 팀장, 배희연이라고 합니다.”

특유의 차가운 표정에 익숙해서 순간 누군가 했다.

“……아, 아아. 게이트 앞에서 레온 길드 헌터랑 맞짱 뜨던!”

“…….”

또 한 번 미소가 차가워진 배희연은 곧바로 본래의 부드러운 미소로 돌아와서 말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옙.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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