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2)
“오빠.”
“응?”
“캡이랑 라이트닝이요.”
“…….”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장난을 좋아하는 소악마 소녀가 아닌 순수한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주 착해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어.”
“진짜 똑같이 생겼어요?”
똑같이?
“복장은 똑같았지. 얼굴은 못 봤어.”
“역시 히어로. 정체를 감추는구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이유리.
“……오빠.”
“어.”
“캡은 진짜 방패를 무기로 썼어요?”
“……어.”
“역시 캡이야.”
“음. 유리야?”
“네?”
순수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유리.
“캡의 팬이니?”
“네! 멋지잖아요! 캡!”
뭐, 인정한다.
멋지지.
“유리야.”
“네.”
“근데 걔는 음, 뭐라고 할까. 팬? 어, 그래. 팬이잖아. 캡을 사랑하는 열혈 팬이어서 캡을 따라한. 그런데도 걔가 궁금해?”
“그 정도로 똑같이 따라했으면 인정해 줘야죠! 같은 팬으로서!”
“…….”
“아아. 아메리카 캡이랑 코리아 캡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아메리카에도 캡이 있었구나.
당연한 건가.
히어로 영화, 캡은 미국 영화니까.
“…….”
“그런데요, 오빠.”
“어.”
“라이트닝은 진짜 빨라요?”
“그쪽도 팬?”
“영화는 봤어요!”
“……어. 빠르더라.”
약간의 텀이 있을 뿐, 쉼 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얼굴에는 진지함만이 가득해 무시할 수가 없었다.
3층, 장비 제작실.
“다녀올게!”
한율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 이유리를 피해 황급히 안으로 도망쳤다.
***
지하 3층, 장비 제작실 1호실.
“팬입니다.”
장비 제작실 안쪽에서 만난 안내인을 따라 도착한 1호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중년의 사내를 멍하니 바라본 한율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예? 팬이요?”
“예. 팬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팬은 처음이다.
한율은 어색한 표정과 어색한 말투로 반응하고 말았지만, 그런 반응조차 감정을 흔든 것인지 사내가 탄성을 흘리고 양손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이쪽으로.”
“아, 예.”
한율이 먼저 자리에 앉고, 그다음 1호실 담당자가 자리에 앉았다.
“사인 가능하겠습니까?”
“……진짜 팬이세요?”
“예. 팬입니다.”
“허, 허허…….”
“윈드 워리어가 짱이죠.”
“…….”
캡의 영원한 파트너, 윈드 워리어.
아, 그분의 팬이구나.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한율이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하자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1호실 담당자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갑옷을 제작하신다고요?”
“네.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조끼로 해 드리면 될까요?”
“네?”
“검은색 가죽조끼요. 안쪽에 입는 천 갑옷은 왼팔만 은색으로…….”
“아뇨!”
“아…….”
아쉽다는 듯이 탄성을 흘리는 1호실 담당자였지만, 한율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단호한 한율의 표정에 그제야 포기했는지 작은 한숨과 함께 백스페이스를 꾸욱 누른 뒤 다시 키보드 중앙으로 손을 올렸다.
“그럼 원하시는 디자인이라도.”
“가죽 갑옷이요.”
“조…….”
“조끼 말고! 왼팔만 은색인 천 옷 말고!”
“원하시는 것은 가죽 갑옷, 디자인은 마음대로.”
“검은 조끼와 왼팔만 은색인 천 옷 조합 제외.”
“……예. 그럼 가장 편한 디자인으로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금액에 맞춰 효과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금액을 어느 정도로 보고 오셨습니까?”
다크 울프 게이트 사건에서 받은 포상과 레온 길드에서 받은 보상, 그리고 변종 토벌 보상까지.
“5억이요.”
목숨을 한 번 구해 줄 수 있는 갑옷 제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적은 금액이다. 또한, 의뢰로 받을 정도의 금액도 아니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다른 의미에서 아쉬움을 머금은 채 유지한 채 키보드를 두들겼다.
“안쪽에 들어가셔서 옷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맞춤형 갑옷 제작이니 신체검사가 필요하거든요.”
“네.”
한율은 짧게 대답하고 안쪽 신체검사실로 들어갔다.
“쩝, 아쉽네.”
진정한 윈드 워리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나 아쉬워 입맛을 다신 1호실 담당자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가장 편한 디자인.
“……윈드 워, 아니 한율 님에게 가장 편한 디자인은 역시 그거지.”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연 1호실 담당자가 검색란에 글을 적었다.
전역복.
***
청일 백화점 푸드 코트.
“제대로 한 거 맞지?”
“가장 편한 디자인으로 해 준다고 했으니까 걱정 말고.”
비빔냉면을 먹으며 말하는 한율이 너무나 못 미더웠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한유라가 자신의 입 앞까지 찾아온 김밥을 확인하고 입을 벌렸다.
“오빠.”
김밥으로 한유라의 입을 막은 이유리의 부름에 흠칫한 한율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으, 응?”
“그럼 내일은 캡이랑 같이 게이트에 가세요?”
“…….”
“아니면 캡과 라이트닝?”
“약속 안 잡았는데.”
“아…….”
너무나 아쉬워하는 모습이 1호실 담당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두 분 모두 골든 베어 게이트에서 활동하니 또 만나서 함께 다녔으면 좋겠다.”
혼잣말인지, 자신의 갑옷을 제작해 주는 청일그룹의 아가씨로서의 요구인지…….
할 말이 없어 한율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단무지를 집으려는 순간, 또 한 번 눈에 들어오는 진지한 이유리의 얼굴.
한율이 화제 전환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
“유리야. 손.”
“……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을 내미는 이유리.
한율이 손목을 잡은 채로 마나를 움직였다.
“힐.”
파아앗!
푸드 코트에서 일어나는 푸른빛의 폭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한율의 갑작스러운 능력 사용에 최일현이 몸을 움찔할 때, 푸른빛이 이유리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어때?”
“뭐가요?”
“치료 마법이야. 방금 그거.”
“오오. 마법.”
탄성을 흘린 이유리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피다가 왼손, 손등에 붙이고 있던 반창고를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우와. 진짜 치료됐네. 신기하다.”
“…….”
다리가 아닌 왼손 손등에 생긴 작은 상처를 확인한다.
다리 치료를 포기한 것과 같은 그녀의 행동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한율이 다시 특유의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내밀었다.
“유리야. 손.”
“손.”
한율이 다시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는 주문을 외우는 대신, 마나를 전이했다.
“으으음.”
간지러웠는지 작게 신음을 흘린 이유리가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한유라의 시선에 배시시 웃었다.
‘음?’
한유라에게 무언의 부탁을 받은 직후, 집으로 돌아온 한율은 레스트에게 부탁해 마나를 이용해 육체를 확인하는 방법을 배웠다.
‘마나?’
유리에게서 마나가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손을 뗀 한율이 이유리를 불렀다.
“유리야.”
“네. 오빠.”
“병명이 뭐야?”
“모른다고 하던데요. 마나가 하반신에 집중된 것을 보아 마나와 관련된 병이라고 하는데.”
“그렇구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네. 푸드 코트 나가셔서 오른쪽이요.”
한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계세요?”
[레스트: 무슨 일이십니까?]
“하반신 마비 환자인데요. 마나를 이용해 신체를 확인해 보니 허리 쪽에 뭉쳐 있는 마나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치료 방법이 있을까요?”
[레스트: 예. 잠시만요.]
말한 것처럼 정말 잠깐이었다.
한율이 거래창이 생성되자 바로 레스트가 올린 마법서를 확인했다.
이름: 개량형 마나 드레인 마법서(250).
설명: 3서클 마나 드레인 설명서.
[레스트: 치료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개량한 마나 드레인 마법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마나를 흡수하는 마법이죠.]
“아, 흡수하라고요?”
[레스트: 마나가 뭉쳐 장애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니 뭉쳐 있는 마나를 제거하면 되죠.]
“…….”
마나가 문제이니 마나를 제거하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부작용은 없죠?”
[레스트: 치료를 목적으로 개량한 마나 드레인 마법입니다. 생기와 마나를 동시에 흡수하는 일반적인 마나 드레인과는 다르게 마나만 흡수하는, 아주 천천히 환자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흡수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만 어떠한 부작용도 없습니다.]
“오호? 잠시만요.”
거래창을 인벤토리로 사용하는 중이다.
한율은 자신의 거래창, 넣을 수 있는 것은 다 넣은 거래창을 정리하기 위해 변기칸으로 이동했다.
문을 잠그고 거래창에 보관 중인 물건을 꺼낸 한율이 거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타나는 레스트의 마법 설명 메시지를 읽으며 뚜껑을 닫은 변기칸에 쌓아 놓은 물건을 다시 거래창에 올렸다.
레스트가 쉽게 설명했지만 3서클 마법답게 30분이나 걸렸다.
[레스트: 일단 해 보시고 효과가 없으면 다시 연락주십시오.]
“다른 방법이 있나요?”
[레스트: 마나를 흡수하는 마석이 있습니다. 그걸 보내 드릴 생각입니다.]
“옙. 그럼 수고하세요.”
[레스트: 수고하십시오.]
***
“뭐야, 변비야?”
“쿡쿡쿡.”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후식까지 해치우고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한유라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묻자 이유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유리야. 손.”
“또요?”
“응.”
힐 마법을 사용했을 때부터 한율이 하고자 하는 일이 뭔지 알고 있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청일그룹이 전력을 다해도 해결하지 못한 병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대 가득한 한유라의 시선에 이유리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다시 손목을 잡은 한율이 시동어를 외웠다.
“……마나 드레인.”
파아앗.
허리 쪽으로 마나를 이동시킨 후에 발동한 마나 드레인.
한율은 손가락을 타고 조금씩 흘러들어 오는 이유리의 마나를 확인하고 더욱더 마나 컨트롤에 집중했다.
상대방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정말 극소량이 손가락을 타고 넘어오는 마나.
레스트가 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빠?”
너무 오랫동안 마법을 사용하는 한율의 모습에 불안감이 생겼는지 한유라가 그를 부르고, 최일현이 그를 말리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순간, 이유리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어……라?”
마법의 대상이 흘리는 탄성에 한유라, 그리고 최일현이 고개를 돌렸다.
“하, 하하…….”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이, 이게 왜 움직이지?”
“…….”
한유라가 입을 다물었고, 최일현이 뒤로 물러섰다.
잠시 고민하던 최일현이 스마트폰을 꺼내 움직이는 이유리의 엄지발가락을 촬영했다.
글자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율 씨가 유리 아가씨의 병을 치료하고 계십니다.]
우우웅.
짧은 보고와 함께 방금 찍은 영상을 첨부해 전송하자마자 진동하는 스마트폰.
뒤로 물러선 최일현이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집중하고 계셔서 통화가 불가능……. 예? 아,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