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1)
[레스트: 성장 지원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까요.]
“성장 지원 시스템이요?”
[레스트: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1서클이 2서클 경지에 오르는 것과 2서클이 3서클 경지에 오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
2서클에 오른 직후, 레스트는 3서클 경지에 올라가는 데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율은 2서클에 오르고 몇 달도, 몇 주도 아닌 며칠 만에 3서클 경지에 올랐다.
[레스트: 헌터는 헌터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몬스터 토벌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장한다고 그러셨죠?]
“예. 그랬죠.”
[레스트: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그 경험을 녹여 내릴 재능이, 그리고 시간이 없으면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몬스터 토벌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장하는 것은…….]
“성장 지원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스트: 예. 그게 아니면 전투만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경험치, 아니 레벨 시스템이라고 해야 하나.”
스킬창, 감정 시스템과는 달리 확인이 불가능한 미확인 지원 시스템, 레벨(Level) 시스템.
[레스트: 다음에 한번 확인해 보시죠.]
“어떻게요?”
[레스트: 몬스터를 토벌 전에 마나를 돌려 신체를 확인하고 마나홀의 크기를 확인한 뒤, 몬스터 토벌 후에 다시 마나를 돌려 신체를 확인하고 마나홀의 크기를 확인하는 거죠.]
“아…….”
[레스트: 평범한 몬스터가 아닌 변종, 또는 가디언이라 불리는 몬스터를 토벌하고 성장이 빨라졌으니 일반 몬스터를 확인한 후에도 변종 또는 가디언을 토벌해서 확인해 보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매번 감사합니다.”
[레스트: 아닙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재촉은 없다. 수고했다는 말을 끝으로 메시지창이 나타나지 않자 한율은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메시지창을 닫고 스마트폰을 내렸다.
“흐음.”
미확인 지원 시스템, 레벨 시스템.
“……아, 알려지기는 했네.”
자신이 임의로 지은 레벨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성장 지원 시스템은 알려졌다.
헌터는 게이트 활동 시간만큼 성장한다는 설명으로 말이다.
달칵, 끼이익.
“다녀왔습…….”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고민을 마친 한율, 그가 신발장 앞에 서 있는 한유라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
“……아. 김치찌개랑 계란말이.”
“…….”
“지, 지금 다녀올까?”
“……하아아.”
깊은 한숨을 쉰 한유라가 손가락으로 한율의 방을 가리켰다.
“옷 갈아입고.”
“그냥 갔다 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한유라의 압박.
“넵.”
한율은 대답과 동시에 군화를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왔지만…….
“전역했잖아! 전역!! 전역!!!”
군대에서 받은 체육복을 입고 방을 나오는 한율을 보며 한유라가 발작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간 한율이 검은색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를 입고 나왔다.
“됐지?”
“……다녀와.”
“옙.”
대체 왜 화가 난 것일까?
한율은 동생의 불합리한 처우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유를 묻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 한율이 빌라를 나오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날렸다.
[아부지. 드디어 우리 유라 사춘기를 맞이한 것 같슴다.]
우우웅.
문자를 날리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한율이 화면 중앙에 쓰여 있는 ‘아부지’라는 단어를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예, 아부지.”
-……아들.
“예.”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아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우리 아들이 아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아들.
“아부지.”
-왜.
“아부지 아들이 헌터인데요. 그것도 만기 전역한 군인이기도 하고요.”
-그래. 그래서 부끄럽구나.
“……아하.”
누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나 보다.
“또 사진 올라왔어요?”
-사진?
“넵.”
-사아아진?
“네. 사아아진.”
-기사가 올라왔다, 이 새꺄!
쩌렁쩌렁한 울림에 한율이 앞으로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멀리했다.
“어……. 아…… 지 핸…… 문…… 나…… 에 이…… 기 하…….”
어, 아버지,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뚝!
반복해서 말끝을 흐린 한율이 통화를 종료하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는 라이트닝.
2위는 캡.
3위는 내일 날씨.
4위는…….
“…….”
윈드 워리어.
눈을 부릅뜬 한율이 4위에 올라온 실시간 검색어를 터치했다.
⤷ 현실에서나 가능한 유니버스!
⤷ B등급 몬스터를 토벌한 히어로들!
“…….”
불안하다. 하지만 확인을 해야 대처가 가능하다.
침을 꿀꺽 삼킨 한율이 상단에 위치한 ‘Hot 기사’를 터치했다.
“허어억!”
굳이 본문기사를 읽을 필요가 없다.
라이트닝, 캡, 그리고 자신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는 사진과 제목만으로 기사 내용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뒤로 가기 버튼을 터치한 한율이 다른 기사를 확인했다.
캡과 윈드 워리어가 함께하는 사진.
캡과 라이트닝이 대화를 나누고, 윈드 워리어가 무심한 표정으로 뒤를 따르는 사진.
띠링.
유세희의 이름으로 날아오는 코코아톡.
[유세희: 한유라, 한국영, 계룡대, 마법사, 억울한, 군저씨, 각성, 헌터.]
[한율: ……뭐 하냐?]
[유세희: 세뇌됐어요?]
타악!
한율이 거칠게 화면을 터치해서 코코아톡을 종료했다.
***
“순간 반짝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 이번에는.”
한유라의 말에 한국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을 갖춘 관종 헌터는 평범한 관종이 아닌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B급 몬스터를 토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사를 통해 확인한 사람들은 C급 헌터 세 명이 B급 몬스터를 토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율아.”
“넵.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한율입니다.”
“그래.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아들. 이제 장비를 바꾸자.”
“갑옷 비싸던데.”
한율의 반응에 한국영이 손을 뻗어 바로 옆에 있는 소파 쿠션을 잡았다. 던지지는 못했지만, 던지는 시늉까지 갔던 그가 쿠션을 내려놓고 다시 한율을 바라봤다.
“저축 많이 했잖아. 솔로 플레이여서 수익이 높고.”
“그래도 무기와는 다르게 많이 비…….”
“이미 의뢰했어.”
말을 끊은 한유라.
“의뢰?”
“응. 유리에게 부탁해서 의뢰했어.”
“어, 음. 내 의사는?”
“필요했어?”
필요하다고 대답하면?
40% 확률로 한국영이 잡았던 소파 쿠션이 날아올 것이고, 60% 확률로 리모컨이 날아올 것이며, 80% 확률로 한유라가 오른 다리를 뻗을 것이다.
“필요 없지. 우리 동생이 나를 위…….”
“닥쳐.”
“넵.”
***
헌터 협회가 들어옴으로써 가장 많이 땅값이 오른 서울 중구에 위치한 커다란 저택.
휠체어를 끌고 방을 나온 유리가 방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똑똑똑.
“누구냐.”
“할아버지. 전데요.”
저벅, 저벅, 저벅.
끼이익.
“우리가 문을 두들기면 들어오라고만 하시면서.”
뒤에서 들려오는,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던 유리의 아버지, 이상민의 한숨.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이유리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문을 연 이상남을 보고 방긋 웃었다.
“할아버지.”
“아이고. 우리 손녀. 힘들게 왜 여기까지 왔누. 부르면 바로 달려갔을 텐데.”
“허, 허허허.”
뒤에서 울려 퍼지는 이상민의 웃음소리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이상남이 불만 있냐는 표정으로 노려보자 이상민은 입을 꾹 다물고 다시 TV를 시청했다.
아들내미의 반항을 찍어 누른 이상남이 다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손녀를 바라봤다.
“그래 우리 손녀, 뭐 필요한 거라도 있니?”
“네. 헌터 갑옷을 의뢰하고 싶어서요.”
“헌터 갑옷?”
“네. 유라가요. 갑옷 바꿀 때가 되었다고 의뢰 가능하냐고 연락했어요.”
“율이 거?”
“네, 율이 오빠 갑옷.”
“……하긴. 녀석은 백색 마석 바른 옷을 입고 다녔으니. 이제 바꿀 때도 됐지.”
상황을 파악한 이상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유라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휠체어를 밀어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손녀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회장님으로 변한 이상남이 아들내미를 바라보았다.
“…….”
“…….”
오랜 침묵 끝에 깊은 한숨을 내쉰 이상민이 두 손을 들었다.
“내일 아침에 발주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오라고 연락하마.”
“……아버지.”
“어.”
“지금 예약된 물량만 한 달은 쌓였습니다.”
“인재다.”
유리 친구의 오빠가 아닌 인재로 평한다.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늦은 아들을 위해 이상남이 힌트를 주며 방으로 향했다.
“억울한 군저씨. 인터넷에 쳐 봐라.”
쿵!
다시 닫히는 방문.
청일그룹의 차기 대표 이상민이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들었고, 인터넷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1위, 캡.
2위, 라이트닝.
3위, 윈드 워리어.
“음? 재개봉하나?”
***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윈드 워리어’가 올라온 다음 날.
한율은 한유라와 함께 청일 백화점을 찾았다.
“유라야! 그리고 율이 오빠!”
미리 약속이 되어있었는지 백화점 입구에서 손을 흔드는 이유리를 보고 한율은 똑같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유리야!”
“진짜 쪽팔려서.”
한유라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멀리서 인사를 건네던 이유리가 큰 소리로 웃었다.
이유리는 앞에 선 한율과 한유라가 최일현에게 인사를 건넨 후에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바로 방긋 웃으며 물었다.
“갑옷 바꾸……. 아니지. 갑옷을 안 입고 활동하셨으니까, 이번에 갑옷 사신다면서요.”
“어. 유라가 바꾸래.”
“……쿡쿡쿡.”
알고 있다.
한유라와 톡을 하며 한참을 웃었으니까.
“청일그룹은 의뢰 제작 시, 의뢰인 신체에 맞춰 제작하기 때문에 오시라고 했어요. 약속이 있던 것은 아니죠?”
“응.”
위험한 변종의 탄생으로 게이트를 한 번 소멸시킨다고 공표되었다.
첫날은 물론 그다음 날도 레온 길드의 결정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300개 전부는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구입하기로 결정했기에 시간이 남았다.
“그럼 바로 제작소로 안내할게요.”
한율, 그리고 한유라가 앞서 이동하는 이유리, 최일현을 따라 이동했다.
자동문을 통과한 이유리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위층이 아닌 아래층, 지하 3층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