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거래창 사용법(1)
엿새, 아니 이미 하루가 지났으니 닷새다.
“생각보다 문제가 많은데.”
5일 안에 골든 베어의 웅담 300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토벌 시간은 물론, 해체 시간까지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 가며 토벌 활동을 진행해야 했다.
골든 베어의 사체를 해체해 웅담을 확보하는 일?
동산 해체소와 계약을 맺은 헌터이기 때문에 해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골든 베어의 사체.
윙 스네이크와는 달리, 골든 베어는 2m가 넘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한다. 즉, 지금까지와는 달리 모아서 가지고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공간 주머니가 필요한데…….”
달칵, 달칵.
청일 백화점 홈페이지에 들어간 한율이 검색란에 ‘아공간 주머니’를 적었다.
이름: 5급 아공간 주머니.
설명: 100Kg 아공간 주머니.
가격: 1,000만 원.
“……허허허.”
공간 능력자와 제작 능력자의 협력 작품, 아공간 주머니.
가장 등급이 낮은 아공간 주머니의 가격은 1천만 원.
“그럼 4급은 대체 얼마야.”
이름: 4급 아공간 주머니.
설명: 500Kg 아공간 주머니.
가격: 5,000만 원.
“백당 천인가.”
100Kg당 1천만 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한율이 3급 아공간 주머니의 가격을 확인하고 입을 쩍 벌렸다.
이름: 3급 아공간 주머니.
설명: 500Kg 아공간 주머니. 마나를 주입한 상태로 꺼내고자 하는 것을 생각하면 주머니에 보관 중인 물건‘만’ 꺼낼 수 있다.
가격: 10억 원.
“4급과 5급은 원하는 것만 빼낼 수 없다는 건가…….”
4, 5급 아공간 주머니는 한꺼번에 보관 중인 물건을 꺼내지만, 3급부터는 원하는 물건을 꺼낼 수 있다.
“인벤토리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스킬창도 있고, 감정 시스템도 있다. 상황을 쉽게 풀어 설명해 주는 설명창도 있는데 인벤토리와 신체 능력을 확인하는 스탯창이 없다.
아쉬운 마음에 작게 투덜댄 한율이 백화점 홈페이지가 아닌 중고시장 홈페이지로 이동하려는 순간, 검색란에 아공간 주머니까지 적어서 이제는 ‘Enter’만 누르면 되는 순간,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인벤토리?”
분명 헌터를 지원하는 지원 시스템 중에는 인벤토리가 없다. 하지만…….
“어, 으음……. 거래창?”
한율이 거래창을 열었다.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인벤토리처럼 생긴 거래창이 나타났다.
[레스트: 무슨 일이십니까?]
레스트의 메시지가 날아왔지만 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한율이 키보드 옆에 내려놓은 노트를 거래창에 올렸다.
수십 개의 정사각형 거래칸 중 딱 하나만 차지하는 노트.
“……레스트 님?”
[레스트: 예.]
“거래창 좀 써도 될까요?”
[레스트: 예?]
한율이 반문하는 레스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레스트: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머릿속으로 보관 중인 물건을 열심히 떠올릴 필요 없이 축소된 물건을 터치해서 빼낼 수 있다.
무게 제한도 없다.
거래창을 닫아도 거래는 중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집어넣은 물건이 밖으로 나오는 일도 없다
[레스트: 좋습니다. 저도 사용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
[레스트: 선물입니다. 정확하게는 보상이죠. 5일 안에 골든 베어의 웅담 300개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있지만, 매우 위험하니까요.]
이름: 마법 증폭 구슬(180).
설명: 마법 효과를 증폭시킨다.
효과: 마법 효과 15% 상승, 마나 회복 속도 5% 상승.
마법 증폭 효과만 가진 장비가 아니다.
5%에 불과하지만 두 가지 효과를 가진 장비.
한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래창에 올라온 푸른 구슬을 바라볼 때, 레스트의 메시지가 다시 날아왔다.
[레스트: 가치만 맞춰주십시오.]
***
골든 베어 토벌을 앞두고 고민하던 것은 두 가지.
헌터로서의 능력과 사체 보관.
“후우.”
자연스럽게 마나를 돌린 한율이 심장 위에 생성된 3개의 서클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3서클.
예상한 대로 브레이크 사건이 큰 경험이 되어 3서클에 오를 수 있었다.
3서클 마법을 습득하지 못했지만, 한 단계 상위 경지에 오르며 기존에 습득한 마법 효과가 두 배는 증폭된 상태다.
“거래창.”
한율이 아공간 주머니를 대신해 골든 베어 사체를 보관할 거래창을 열었다.
레스트는 벌써부터 거래창을 아공간 주머니로 사용 중이다.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한율이 거래창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바로 방을 나오지 않고 잠시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바라봤다.
마법 증폭 구슬.
레스트에게 선물 받은 마법사 전용 장비.
“…….”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벽에 기대어 놓은 K-7.
마법 증폭 구슬을 한 번, K-7을 한 번.
K-7 개머리판 부분을 개조해 초능력 강화 장비를 구입해 부착하거나, 레스트와 거래해 마법 증폭 장비를 부탁해 사용한다는 것이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방법이다.
“문제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거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마법 증폭 구슬에 한 가지 작업을 한 뒤, K-7을 들고 방을 나왔다.
브레이크 사건으로 휴교를 맞이한 청일고.
한유라가 방을 나오는 한율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뭐야?”
“능력 강화 구슬.”
“……아니.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라.”
왜 구슬을 왼팔에 올리고 테이프를 둘둘 말아 강제 부착(?)시켰냐는 것이었다.
한율이 한유라의 질문을 이해하고 총을 들었다.
오른손은 방아쇠, 왼손은 총기 아랫부분.
팔뚝에 강제 부착한 구슬이 있음에도 자세를 잡는 데 어색한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갈라고?”
“응.”
“…….”
같이 나가려고 했다.
편의점에 갈 일이 있어 한율과 같이 나가기 위해 기다렸다.
한율의 방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소파에서 일어났던 한유라, 그녀가 어색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켜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래, 몸조심하고.”
“오야.”
“아, 나가기 전에 식탁.”
“……?”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깔끔하게 치운 식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무 300g.
다진 마늘 작은 거.
두부찌개용 1모 작은 거.
대파 1단.
“……찌개?”
“김치찌개 하려고 했는데 부족한 게 있더라고.”
“고기는 안 넣고?”
“안 넣어. 따로 구워 먹을 거니까.”
따로 구워 먹어?
“어? 집에 고기가 있어?”
“남았잖아.”
“……?”
잠시 기억을 더듬던 한율이 한유라를 돌아봤다.
“꽃등심?”
“어.”
유라의 김치찌개와 꽃등심.
한율이 진지한 표정으로 제안했다.
“계란도 사 오면 안 될까?”
“왜?”
“김치찌개와 돼지고기잖아.”
“어.”
“그럼 계란말이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뭔 논리일까?
“……사 와.”
“앗싸!”
***
답십리 공원 입구.
검, 창, 도끼, 지팡이 등등, 자신의 능력에 맞는 무기와 갑옷을 착용한 헌터들이 아침부터 모여 있었지만, 시내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쓰윽 둘러보던 한율은 딱 한 명만 바라봤다.
“…….”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사내.
원형 방패를 들고 있는…….
타이트한 푸른색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상의와 연결된 푸른색 복면 형태의 투구를 쓴…….
“캡?”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한율은 캡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열 명 중 한 명은 관종이라더니.”
버스 정류장.
“……?”
버스를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모르는 건지 한율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걸음을 옮겼다.
“음?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있었나?”
한참을 걸어 게이트 입구에 도착하니 멍한 표정으로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는 헌터 협회 직원이 보였다.
똑똑똑.
“아, 죄송합…….”
책상을 두들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직원.
그가 이번에는 멍한 표정으로 게이트 입구가 아닌 한율을 바라봤다.
“……?”
“윈드 워리어?”
“예?”
“아, 아닙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든 협회 직원은 미소로 한율을 맞이했다.
하지만 출입 기록부를 작성한 그가 게이트를 통과했을 때, 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허, 허허허. 캡에다가 윈드 워리어라니.”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정신을 놓은 것도 잠시, 평범한 헌터들이 다가오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린 협회 직원이 서류 작업에 몰두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출입 기록부에 작성된 헌터를 확인하고, 오늘 아침에 받은 회의 종합 보고서를 확인하고, 일찍 퇴근을 하기 위해 미리미리 보고서를 작성하고…….
똑똑똑.
귓속을 파고드는 책상 두들기는 소리와 머리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
보고서 작성을 멈춘 협회 직원이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
“아닙니다.”
“…….”
“음? 왜 그러세요?”
“…….”
윈드 워리어는 그저 착각일 수 있다. 히어로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과는 다르게 군복을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캡이 들어간 다음에 군인이 나타났기에 윈드 워리어를 떠올렸을 뿐.
“이건 아니지.”
“예?”
“이건 아니지, 이건!”
***
골든 베어 게이트.
윙 스네이크 게이트에서 활동할 때처럼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탐지 마법을 사용한 한율은 사람이 없는 방향을 확인하고 움직였다.
골든 베어와의 첫 전투다.
한율은 반복해서 탐지 마법을 사용했고, 한 명인지 한 마리인지 알 수 없지만 동떨어져 있는 생명체를 발견하자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스으읍.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한 한율이 몸을 비틀어 전방을 확인했다.
옆으로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골든 베어.
K-7을 사용할까.
마법을 사용할까.
“……아이스 애로우.”
한율의 선택은 마법이었다.
쉬이익!
머리 위에 생성된 얼음 화살 세 발이 앞으로 날아갔지만, 마나의 유동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한율의 살기를 느낀 것인지 눈을 번쩍 뜬 골든 베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우웅!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파괴되는 얼음 화살.
하지만 한율이 생성한 얼음 화살은 총 세 발.
푸북!
쿠어어엉!
어깨와 복부에 얼음 화살이 박힌 골든 베어가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는 네 발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거리가 있다.
주문을 외우기에는 충분한 거리.
“디그.”
쿠어어엉!
한율은 땅굴 마법을 사용했다.
골든 베어가 그대로 땅굴에 발이 빠져 앞으로 넘어지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
마나를 주입한 총알.
충격을 흡수하는 털과 단단한 가죽이 특징인 골든 베어였지만, 한율이 사용하는 무기는 몬스터 토벌용 화기, K-7과 마나를 주입한 총알이다.
쿠어어엉!
골든 베어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고통을 무시하고 그대로 적에게 달려가거나, 황급히 방향을 틀어 나무 뒤에 숨거나 도망치는 것이 옳았지만, 골든 베어는 그저 몸을 웅크린 채 비명만 질렀다.
그런 놈의 행동에 한율은 눈을 빛내며 주문을 외웠다.
“어스 핑거!”
2서클 흙마법, 어스 핑거.
푸부북!
땅속에서 솟아오른 흙가시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골든 베어의 머리, 그리고 상체를 찔렀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이 컸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입만 벙긋거리는 골든 베어.
한율은 그런 골든 베어의 모습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좋아. 쉽게 풀리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