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브레이크(2)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내일도?”
“아뇨. 게이트는 핵이 파괴될 때마다 줄어들잖아요. 저는 해체소와 거래를 하고 있으니까요.”
“아아.”
이해했다. 원래는 내일까지 게이트를 확인하고 정리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지원군을 만나게 되어 일정보다 빨리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게 되었다.
“뭐, 윙 스네이크 사체가 꽤 쏠쏠하다 보니 또 윙 스네이크 게이트에 들어가겠지만요.”
“윙 스네이크 게이트라면…….”
파괴력이 너무 높아서 윙 리자드 토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데미지 계산에 실수가 있었던 것이지, 한율이 실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중기는 바로 눈을 빛냈다.
“레온 길드요.”
“아. 어딥……. 혹시?”
“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
청일고.
“유라야.”
“……응?”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헌터,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을 때였다. 자신을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에 한유라가 고개를 들었다.
책상에 앉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 유세희와 휠체어에 앉아 웃고 있는 친구, 이유리.
두 친구를 번갈아 바라보던 한유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누가 부른 거야?”
“내가 불렀다. 내가.”
“…….”
입을 내밀고 있던 유세희가 손가락으로 이유리의 정수리를 찍은 채로 물었다.
“유리랑 놀았다며?”
“어.”
“너무하네. 둘이서만 놀고.”
“선약이 있다고 한 건 넌데?”
“……아. 그르네.”
주말에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한 건 자신이었다. 선약이 잡혀 있어 거절했다는 것을 떠올린 세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유라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고, 이유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익숙해진 급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릴 때, 유세희가 말했다.
“후문에 생성된 게이트 있잖아. 그 게이트 정리 작업에 들어갔대.”
“D급 게이트?”
청일고 후문에 게이트가 생성됐고, 레온 길드는 고등학교 근처에 게이트가 생성되었기 때문에 헌터를 배치해 관리하는 것은 물론, 25~30일이 아닌 20일 동안 유지 후 소멸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유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유세희가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어. 다크 울프 게이트.”
“다크 울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유라가 신음을 흘리며 헌터 협회, 몬스터 도감 게시판에 들어갔다.
D급 몬스터여서 그런 걸까?
다크 울프를 검색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유라는 기본 내용을 살폈다.
일반 늑대 몬스터보다 지성이 높고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하고 닫으려 할 때였다.
“다크 슬로프?”
이유리의 책상 위에서 내려와 유라, 유리의 중앙에 쪼그려 앉아 함께 인터넷을 보던 유세희가 마지막에 적혀 있는 글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다크 울프의 최종 진화. 검은 피부가 특징인 라이칸 슬로프여서 다크 슬로프라고 하네.”
“줄임말인가?”
“아니. 감정 시스템으로 사체를 확인해 보니 이름이 다크 슬로프래.”
“헤에.”
고개를 끄덕인 유세희가 시간을 확인했는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한유라 또한 스마트폰을 끄고 수업 책을 꺼냈다.
“아, 유리야.”
깜빡했다.
한율이 말한 주말.
“응?”
“이번 주 주말…….”
띵, 동, 댕, 동.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한유라는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리를 향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아냐. 쉬는 시간에 다시 이야기하자.”
***
“끄으응! 생각보다 돈이 안 되네.”
여덟 명이 수익을 나누다 보니 가디언을 사냥하고, 백색 마석과 붉은 마석을 판매했음에도 평소 수익과 비슷했다.
아쉬움을 느끼며 경동시장을 나온 한율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고민하다가 비행기 모드를 켜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가끔 깜빡하고 그냥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는데, 그런 실수를 저지른 채로 레스트와 대화를 하던 도중에 핸드폰이 울린 아주 쪽팔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십니까?”
저벅저벅.
짧은 침묵.
[레스트: 예. 거래인가요?]
“지팡이는 못 구하셨죠?”
[레스트: 네. 아직 마차를 타고 이동 중입니다.]
“아쉽네요. 그럼 마법서는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거래 물품을 요청했다.
[레스트: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마법이 있으십니까?]
“깨끗하게 적을 쓰러트리는 마법이요.”
[레스트: 사체 판매 때문이군요. 으음! 어디 보자……. 아이스 애로우와 어스 애로우. 이 두 가지를 추천합니다.]
“잠시만요.”
불을 가까이한 곳에서 화염 마법을 사용하면 마법 효과가 올라간다. 그렇다면 아이스 애로우는 얼음을 가까이한 곳에서, 어스 애로우는 땅을 가까이 한 곳에서 효과가 올라간다.
“어스 애로우요. 자연 속성 보너스를 생각하면 아이스 애로우보다 어스 애로우가 낫겠네요. 다른 추천 상품 없나요?”
[레스트: 으으음. 아!]
“아?”
[레스트: 신체 강화 마법이 있습니다. 헤이스트, 스트랭스인데 한율 님은 군인, 그러니까 병사로 생활한 경험이 있으니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세 가지를 구입할게요. 잠시만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 한율이 은행을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거래를 진행했고, 세 권의 마법서가 눈앞에 떨어지자 변기에 앉아 마법서를 읽었다.
물론 이해하기 쉽게 레스트의 설명을 들으며 마법을 습득했다.
달칵, 쏴아아.
볼일을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율은 레버를 누르고 화장실을 나왔고,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채로 물었다.
“필요한 거 없으세요?”
[레스트: 폭탄이요.]
“……호위 임무를 맡고 계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레스트: 예. 호위 임무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떤 물건을 지키고 있길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한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30분 뒤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폭탄은 하나면 되나요?”
[레스트: 네. 하나면 됩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네. 몸조심하세요.”
한율이 인사를 건네고 핸드폰을 내렸다. 그는 비행기 모드를 해제한 뒤, 거대한 5층짜리 건물, 헌터 백화점이 아닌 그 옆에 세워진 2층짜리 건물, 총포상에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옵……쇼?”
전역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걸까.
카운터 앞에 앉아 TV를 시청하던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율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총 사려고 왔는데요.”
“권총?”
“소총이요.”
“……총기 구입 허가증은?”
한율이 국가에서 발급하는 총기 구입 허가증이 아니라 주민등록증 대신 지갑에 꽂아 둔 헌터증을 보여 줬다.
“……헌터?”
“옙.”
“근데 왜 전역복을?”
“작은 실수가 있었지요.”
“…….”
중년의 사내가 눈을 껌뻑이며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식 실소를 터트린 사내가 한율에게 물었다.
“김치?”
“네. 탄약하고 탄띠, 그리고 수류탄도 구입할게요.”
“잠시 기다리쇼. 김치하고 탄약은 여기 있지만, 탄띠는 창고에 있어서.”
“옙. 다녀오세요.”
한율은 웃으며 대답했고, 총포점 주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로 카운터에 몸을 기댄 채로 스마트폰을 켰다.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들어갔고, 검색란에 게이트를 적었다.
윙 스네이크 게이트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동대문구에서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하면 바로 뛰어가야 해서 게이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음?”
D급 게이트 하나가 한율의 눈에 들어왔다.
위치는 청일 고등학교.
“어?”
청일고?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한율이 게이트 확인을 위해 액정을 터치했다.
이름: 다크 울프 게이트(초원).
등급: D.
관리자: 레온 길드.
자유 활동 기간: 소멸 작업 진행 중.
“…….”
방금 함께 게이트 정리 작업을 진행했던 레온 길드 3팀이 떠올랐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받은 명함을 꺼내 연락을 취하려고 할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진동과 함께 메시지가 날아왔다.
- 알립니다. 게이트 폭주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위치는 다크 울프의 던전이라 불리는 D급 게이트, 장소는 청일 고등학교. 장소는 청일 고등학교입니다. 헌터들은 바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헌터들은 바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율이 고개를 홱 들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TV에서 흘러나오는 속보.
-알립니다. 게이트 폭주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위치는 다크 울프의 던전이라 불리는 D급 게이트, 장소는 청일 고등학교. 장소는 청일 고등학교입니다. 헌터들은 바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헌터들은 바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착각이 아니라는 듯이 다시 한번 들렸다.
게이트 폭주 현상이 발생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 주는 준비된 ‘기사’가 아닌 게이트 폭주 현상이 발생했다는 속보.
끼이익.
“음? 왜 그러십니까?”
“계, 계산!”
“예?”
“계산! 브레이크 발생!”
***
30분 전.
다크 울프 게이트.
“쿨럭! 미, 미친…….”
복부가 꿰뚫린 헌터가 피를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검은 털과 붉은 안광이 특징인 다크 울프 수십 마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쿨럭! 쿨럭!”
다크 울프?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다. 하지만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는 전멸했다.
“그냥 없앴……. 쿨럭!”
규칙대로 게이트 소멸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게이트 소멸 작업 날짜가 정해지는 순간, 그 시간은 소멸 작업을 진행하는 작업팀에 ‘독점 게이트’가 되기 때문에 욕심을 부렸다.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변이종 사체.
마석을 흡수하면 탄생하는 변이종을 탄생시키기 위해 다크 울프를 사냥, 사냥을 통해 확보한 다크 울프의 사체와 마석을 강제로 붙잡은 다크 울프에게 흡수시키고 사냥한 것이다.
저벅, 저벅.
크르르릉.
문제?
없었다.
하지만 한두 번으로 끝내야 할 변이종 사냥 작업을 수십 차례나 반복하니 문제가 생겼다.
검은 털과 붉은 안광이 특징인 늑대인간, 다크 슬로프가 동족의 비명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후각을 자극하는 동족의 피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게이트의 핵을 지키는 임무를 포기한 것이다.
“없앴어야 했어……. 쿨럭!”
핵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다크 슬로프가 움직였다. 핵을 지키고 있어야 할 놈이 핵을 지키지 않고 다크 울프를 이끌고 공격했다.
타악!
다크 슬로프가 땅을 박찼다. 헌터는 복부 위에 손을 올린 채로 무기를 들었지만, 놈은 너무나 빨랐다.
푸우욱!
검을 휘둘러 접근을 막아 내기도 전에 다크 슬로프의 오른팔이 왼쪽 가슴을 파고들었다.
털썩.
헌터는 그대로 고개를 떨궜고, 붉은 눈으로 헌터를 노려보던 다크 슬로프는 팔을 크게 휘둘러 사체를 다크 울프에게 넘기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