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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3화 (13/221)

013 2서클(1)

처음에는 일명 007가방이라 불리는 검은 가방을 구입한 뒤, 은행을 찾아 인출한 일만 원권 지폐를 가득 채우고자 했다.

헌터라는 어엿한 직업으로 처음 번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냥 간단하게 가자.”

영초, 영약을 구입하는 데 500만 원을 썼으니 남은 돈은 650만 원.

전액을 일만 원권으로 뽑아 가져다주면 충격과 재미보다는 충격과 등짝 스매시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꿨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아버지와 동생을 내려다본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조작해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쏜다.

“으핫핫핫!”

아버지와 동생의 반응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트렸던 한율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에 헛기침을 뱉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대형 마트.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100원을 밀어 넣어 카트를 꺼낸 한율이 미리 작성해 둔 쇼핑 목록을 확인해 가며 이동했다.

선물?

주말에는 아버지도, 여동생도 시간이 남으니 5일 동안 바짝 번 뒤, 함께 백화점을 들를 생각이다.

“에이뿔 한우요. 꽃등심으로 10인분.”

한우!

그것도 그 유명한 꽃등심!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꽃등심이라는 부위.

사람들의 말로는 그냥 녹아내린다는 꽃등심.

한율은 아주 환한 미소를 짓는 사내에게 받은 꽃등심을 카트에 넣고 다시 이동했다.

“좋아.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으음.”

물끄러미 카트에 담은 한우를 바라보던 한율이 신음을 흘렸다.

“괜히 샀나?”

사람들이 한우, 한우 해서 한우를 샀는데, 꼭 사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삼겹살이나 잔뜩 사서 냉동실에 꽉꽉 채울 걸 그랬나?”

돌아가서 포장을 마친 한우를 건네준다?

엄청 찝찝하다.

“끄으으응. 하아아.”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고민하던 한율이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들었다.

-어, 도착했어?

“지금 마트 왔거든? 사야 할 거 있어?”

-벌써 돈 벌었어?

“어. 꽤 되는데 그건 집에 가서 알려 줄게. 필요한 거 말해 봐.”

-고추장 떨어졌다. 계란도 떨어졌고. 아. 시금치 무침 할 거니까 시금치도.

“……아니 그런 거 말고. 좀 비싼 거. TV 보면서 먹고 싶다고 생각한 거. 한우나 한우. 아니면 한우 같은 거.”

-……야.

“으, 응?”

화났다.

이유는 모르지만 화났다.

-그냥 사 오라는 대로 사 와. 과소비하지 말고.

“…….”

한율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10인분이나 구입해서인지 화려한 상자 안에 담겨 있는 한우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샀냐?

“……어. 사람들이 한우, 한우 그래서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한우, 한우 그런지 궁금하더라고.”

수입산 소고기, 또는 돼지 삽겹살.

-전역 기념이라고 생각해야겠네. 대신 다른 건 사지 말고.

“어.”

-내가 뭐 사라고 했어. 말해 봐.

“고추장하고 계란, 그리고 시금치 무침 할 거니까 시금치.”

-딱 그거만 사 와.

한유라의 단호한 대답.

천천히 고개를 숙인 한율이 한우만 채워진 카트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왜.

“내가 집에 가서 알려 주기는 할 건데. 내가 엄청 벌었어.”

-그럼 돈을 모아서 장비를 사!

옆을 스쳐 가는 부부가 고개를 돌려 바라볼 정도로 큰 목소리.

한율은 어색한 미소로 부부의 시선을 받아친 후, 자신도 모르게 떼어낸 핸드폰을 다시 귀 앞으로 가져와 말했다.

“고추장, 계란, 시금치 맞지?”

***

달칵. 끼이익.

“다녀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소름이 끼쳤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 한국영이 제자리에 서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TV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이 열기가 무섭게 들려야 할 한유라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던 한국영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소파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한유라가 보였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눈치를 살피는 한율이 보였다.

오빠와 동생이 아니라 누나와 동생.

그것도 사고 친 동생과 흥분한 누나의 모습.

“다녀왔다.”

“오셨어요. 밥은요?”

“먹고 왔다.”

“그럼 씻고 와요.”

“…….”

한율이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살려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집안의 ‘가장’은 한국영이지만, 집안의 ‘대장’은 한유라다.

한국영이 한율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유라의 화가 계속해서 쌓이면 옛이야기까지 꺼내 잔소리가 시작될 것을 알고 있기에 빠르게 몸을 씻고 나와 잠시 고민했다.

한율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을까.

한유라의 옆에 앉아 한율에게 잔소리를 할까?

아니면 그사이, 바닥에 앉을까?

한국영이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한유라 옆에 앉았다.

“오빠.”

“어.”

“몇 인분이라고?”

“너도 봤……. 10인분이요.”

10인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할 때, 한율과 한유라에게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무언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상자가 한국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게 뭐냐?”

“한우 꽃등심 10인분이요.”

대답은 한율이 했다.

한우, 그것도 꽃등심 부위라는 말에 환한 미소를 그렸던 한국영이 옆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에 다시 미소를 지우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3인분이면 충분했을 텐데.”

“이왕이면 각각 3인분씩은 먹어 봐야지.”

“하아아아…….”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구입했는데, 그걸 가지고 계속 뭐라고 할 수 없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한유라가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대체 얼마를 벌었는데?”

대체 얼마나 벌었길래 한우 꽃등심 10인분을 한 번에 샀느냐.

“흠흠!”

헛기침을 뱉은 한율이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소파에 앉아도 될까?”

“……뭐?”

“아냐. 여기서 해야지. 여기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해 돈을 쏜다는 계획이 망가졌다.

한율은 쭈구리처럼 양손으로 핸드폰을 두들겨 돈을 이체했다.

“유라야. 돈 쐈다.”

“아빠.”

통장을 관리하는 것은 한유라다. 하지만 이 시간에 통장 정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영을 불렀다.

한국영은 딸의 부름에 바로 인터넷 뱅킹에 들어갔다.

소파 옆에 앉아 있어서 함께 볼 수 있었다.

입금액: 5,000,000원.

“……지금까지 번 돈?”

침묵하던 한유라가 물었다.

“아니. 오늘 번 돈. 내일부터는 더 벌 수 있고.”

슬그머니 자세를 바꾸며 대답하는 한율.

말 한마디면 다시 무릎을 꿇릴 수 있다. 하지만 한유라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이게 총수익이야?”

“아냐. 반띵한 거. 네가 말한 대로 헌터로서 필요한 게 있으니까.”

“……내가 따로 조사해 보니 신입 헌터의 수익은 이 정도가 아닌데.”

“나는 솔로 플레이가 가능하니까.”

“…….”

“이제 다리 좀 풀어도 될까?”

“아니.”

그건 그거고.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한율은 바로 거절하는 동생 앞에 무릎을 꿇었다.

***

5월 20일 금요일.

화아악.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연기가 사라지는 순간, 한율이 눈을 뜨고 늘어난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심장 부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작은 원 안에 또 다른 원이 보였다.

“나이솨.”

2서클.

원 안에 원.

“레스트 님. 2서클에 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한율은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마다 레스트에게 마법 수업을 받고 있었다.

[레스트: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마법사의 교육을 받는 1서클 마법사가 2서클에 오르는 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으니까요.]

“즉, 3서클부터는 다르다?”

[레스트: 예. 또한, 한율 님께서는 재능이 없으십니다.]

뼈를 때리는구나.

[레스트: 제가 계속해서 교육을 하겠지만 뛰어난 스승을 둔 2서클 마법사가 3서클에 오르기까지 평균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은 생각하면…….]

“9개월?”

[레스트: 2년.]

와. 이건 너무한데.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레스트: 영약이나 영초를 열심히 섭취하시면 줄어들 겁니다. 물론 하루에 한 번, 마법서를 읽으시고요. 특히 마법서는 하루에 한 번, 마나 호흡법은 하루에 두 번씩 읽으시면 됩니다.]

“……이 나이에 공부라니!”

[레스트: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죠.]

“쩝.”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침대 위에서 내려와 상체를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끄으응. 그럼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레스트: 예. 저녁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넵. 몸조심하세요.”

[레스트: 한율 님도요.]

짧은 내용을 끝으로 더 이상 메시지창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나타난 것은 거래창.

{기술 거래, 레스트의 강의(20)가 끝났습니다.}

“그래. 안 나오면 섭하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은 책상 위에 준비해 둔 영초를 올렸고, 레스트 쪽에서 승낙 버튼을 누른 것인지 거래창이 사라지자 작은 노트를 챙겨 방을 나왔다.

새벽 5시.

한국영도, 한유라도 잠들어 있는 시간.

한율이 거실에 설치된 컴퓨터를 켰다.

“어디 보자.”

새로운 무기도, 새로운 능력도 차원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헌터 협회에 들어간 한율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게이트의 위치였다.

“윙 스네이크 게이트는……. 괜찮네.”

느티나무 공원에 나타난 윙 스네이크 게이트가 소멸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근처에 또 하나의 윙 스네이크 게이트가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둘 다 레온 길드니까.”

헌터 협회를 나온 한율이 레온 길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동대문구에 생성된 모든 게이트를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윙 스네이크 게이트 두 곳 모두 레온 길드가 관리하고 있었다.

“보자보자.”

국가에서 게이트 유지를 요청하지 않는 이상, 30일이 지나기 전에 소멸 작업에 들어간다.

“주말은 쉬기로 했으니까.”

레온 길드가 지정한 소멸 작업 날짜는 25일.

“오늘이 5월 20일 금요일이니까.”

레온 길드는 생성 후 23일이 지나면 소멸 작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한율이 활동할 수 있는 날짜는 금요일인 오늘과 월요일.

잠시 고민하던 한율은 월요일까지 느티나무 게이트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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