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지반 다지기(1)
끼이익, 달칵.
“수고하세요.”
“예, 좋은 하루 되십시오.”
운전기사와 마찬가지로 방긋 웃은 한율이 다시 쓰레기봉투를 짊어졌다.
“치이이이일.”
세금을 내도 700만 원 아래까지 내려갈 리가 없었다.
“배애애애액.”
갑작스러운 턴과 함께 백.
“오오오오.”
허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
“시이이입.”
허리를 구부려 십.
타악.
“마하아아안 원.”
걸음을 멈추고 마무리.
“흐음. 간만이네.”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길을 잃지 않고 커다란 공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멍하니 공장을 바라보던 한율이 모자를 고쳐 쓰고 경비실 앞에 서서 창문을 두들겼다.
드르륵.
“무슨 일로 오셨……. 응?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이야. 여기는 세대교체가 없네.”
한번 품은 사람은 스스로 나갈 때까지 버리지 않는 사장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율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어! 그래! 국영이 아들! 분명 이름이…….”
“한율입니다.”
“그래. 한율이. 전역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아버지 뵈러 왔냐?”
“예. 정기적으로 거래도 하고요.”
“……응?”
한율은 대답 대신 쓰레기봉투를 툭툭 두들기고 다시 물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아, 아아. 그래. 들어가 봐라. 너는 방학마다 알바 뛰러 왔으니까 안내도 필요 없지?”
“네. 그럼 수고하세요.”
“그려. 들어가 봐.”
“옙!”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 지은 한율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쿵쿵.
치이이익!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십 대가 넘는 기계와 회색 작업복을 착용한 사람들.
힘든 일이다. 하지만 힘든 만큼 들어오는 돈이 크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적은 있어도 부족한 적은 없었다.
“진짜 오랜만이네.”
방학마다 아버지를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던 해체소.
얼굴이 익숙한 사람도 있었고, 낯선 사람도 있었다. 정작 중요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율이 몸을 돌렸다.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간 그가 찾은 곳은 사무직원들의 일터.
똑똑, 끼이익.
“실례합니다.”
“예. 누구십니까?”
무표정으로 업무를 하던 것도 잠시, 익숙하게 영업용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던 중년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무실 앞에서 모자를 벗은 상태였고, 휴가를 받으면 꼭 한 번씩 퇴근 시간에 맞춰 찾아왔다.
아르바이트 시절 자주 만난 것도 있고 직원보다 아르바이트생이 더 많은 소형 기업이어서 직원들의 관계가 좋은 것도 있다.
“아저씨.”
“이야, 오랜만이네. 언제 전역했냐?”
동산 해체소의 사장, 김동원이 웃으면서 묻자 한율이 대답 대신 주변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아, 들어와. 들어와. 커피? 녹차?”
“커피로 주시면 감사하겠슴다.”
“…….”
김동원 사장이 걸음을 멈추고 한율을 돌아봤다.
“……왜 그러세요?”
“아니. 많이 바뀐 것 같다 싶어서. 아닌가. 원래 그랬나?”
“군대잖아요.”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왔기 때문에 대화를 나눈 시간이 길지 않았다. 회식이라도 데려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한국영이 아들,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어서 어려웠다.
“군대…….” 과거와는 다르게 실전을 치르는 군대.
김동원 사장이 피식 웃더니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냈다.
“그래서. 취업하려고?”
“아뇨. 일자리는 찾았어요.”
“음? 그래?”
“넵.”
“무슨 일?”
“헌터요.”
“…….”
“…….”
“……?”
김동원 사장이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보려고 할 때, 힐끔힐끔 한율을 훔쳐보던 20대 후반의 여사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 억울한 군저씨!”
“쩝! 예, 억울한 군저씹니다.”
한율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고, 김동원 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 대리. 억울한 군저씨가 뭐야?”
“전역 당일에 헌터로 각성한 헌터요.”
“…….”
전역? 헌터?
김동원 사장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척 봐도 묵직해 보이는 대형 쓰레기봉투를 한 손에 들고 공장을 찾아온 전역한 군인.
“헌터?”
“옙. 헌터로 취업했습니다. 그래서 소량 거래 좀 하려고요.”
“우리야 좋지. 뭔데. 앤트? 트리니? 늑대나 여우?”
휘이익, 쿵.
한율이 대답 대신 쓰레기봉투를 다시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콰직.
“어우 씹.”
다시 쓰레기봉투를 들어 올린 한율이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입구를 개봉했다.
“……윙 스네이크?”
“옙.”
“윙 스네이크는 얼마 안 되는데.”
“독 뺀 윙 스네이크.”
“독 뺀? 제거했다고?”
“예. 독을 제거한 윙 스네이크 사체.”
김동원 사장이 눈을 빛냈고, 힐끔힐끔 대화를 훔쳐 듣던 사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독을 제거하지 못한 윙 스네이크 사체는 가격이 매우 낮다. 바로 가공 작업을 진행하는 대신, 해독 작업을 먼저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동원 사장이 다시 쓰레기봉투 안쪽을 확인했다.
총 열다섯 마리.
“독을 제거했다고?”
“일단 하나 가지고 가서 확인해 보세요.”
“고맙다. 강 사원.”
김동원 사장의 부름에 강 사원이라 불린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그렇게 강 사원이 장갑을 착용한 채로 윙 스네이크 한 마리를 들고 사무실을 나서자 김동원 사장의 시선이 다시 한율에게 돌아갔다.
“열다섯 마리가 최대냐?”
“아뇨. 할 일이 있어서 일찍 끝냈어요. 최소 서른 마리?”
“흐음.”
삼십.
길드와 거래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소형 기업인 동산 해체소는 임시 파티나 개인플레이를 하는 하위 등급의 헌터들과 거래하는 해체소다.
“큰 고객이었구나.”
“값만 잘 쳐주시면, 되는 대로 마석도 판매할게요.”
“윙 스네이크는 언제까지?”
“언제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게이트를 바꾸기 며칠 전에 말씀드릴게요.”
해독 작업을 거쳐야 해체 작업에 들어가다 보니 해체소에서도 윙 스네이크 거래를 하지 않을 뿐, 윙 스네이크 사체를 찾는 사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김동원 사장이 다시 윙 스네이크 사체를 살폈다.
깨끗하다. 일격에 목숨을 빼앗은 것인지 아주 깨끗한 윙 스네이크 사체였다.
“이 정도 품질을 유지하면 마리당 50. 마석은 정가.”
50만 원이면 기본 시세.
사체의 가격이 훼손에 따라 하락하는 것을 생각하니 말 그대로 정가를 주고 구입하겠다는 뜻이었다.
‘뭐, 내가 봐도…….’
매직 미사일 때문에 생겨난 훼손을 제외하고 아주 깨끗한 윙 스네이크였다.
개당 50만 원이면…….
“진짜로 750만 원?”
“그래.”
“D급 마석 세 개를 주웠으니까.”
E급 마석은 50만 원, D급 마석은 세 배인 150만 원.
“1,200만 원. 헌터는 세금도 줄여 주니까 1,080만 원 정도?”
“허, 허허…….”
“헌터 일일 지출액을 생각하면 얼마 안 될 텐데?”
“……얼만데요?”
“포션을 구입해야 하고, 무기도 매일매일 정비해야 하니 대충 100만 원.”
“…….”
“1,080만 원이라고 해도 평균 6인 파티로 움직이는 헌터들의 플레이를 생각하면 떨어지는 돈은 대충 180만 원. 뭐, 한번 들어가면 열다섯이 아닌 수십, 운이 좋으면 수백 마리를 사냥하니 돈이 늘어나겠지만. 열다섯 마리면 개인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얼마 안…….”
설명을 멈춘 김동원 사장이 한율을 바라봤다.
“……율아.”
“옙, 사장님.”
“솔플? 그래서 혼자 온 거냐?”
“옙.”
“……허. 허허. 허허허.”
***
군인들은 헌터들과 함께 브레이크 진압 작전에 참여한다.
위험도가 낮은 게이트에 참여하는 일이 많다고 해도, 국가 소속 능력자들이 참전해 과거보다 현저히 낮아졌다고는 해도 실전은 실전이다.
동료가 목숨을 잃거나,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야 치료할 수 있는 큰 부상을 입는 실전을 겪으니 군대를 다녀온 이들 중 열에 일곱은 성격이 크게 변해 버린 채로 전역했다.
“흐음.”
물끄러미 1층을 살피고 있던 김동원 사장이 한율, 그리고 한국영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웃으며 말을 건네는 한율과 그런 아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한국영.
“차가워지는 것보다는 낫지.”
예능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니 그보다 더 밝은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다.
하지만 지인 중에 군대를 다녀오고 현실과 벽을 쌓은 이가 있다 보니 오히려 안도가 되었다.
“흠흠.”
헛기침과 함께 몸을 돌린 김동원 사장이 사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회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매우 큰 고객이 왔으니 빨리 움직여야겠죠? 물론 게이트를 바꾸기 전에 연락을 준다고 했으니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것도 거래처에 알려 주세요.”
“네!”
***
“끄으응! 오늘만 고생하자.”
청량리역.
이번에는 윙 스네이크 사체가 있어 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후 5시에 느티나무 공원으로 사람을 보내 준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다음부터는 느티나무 공원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다시 느티나무 공원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려 했던 한율이 자연스럽게 꺼내 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어, 왜.”
-몇 시에 와?
“일곱 시쯤?”
-난 여섯 시. 밥은?
“집에서 먹을게. 아. 아부지 체크카드 네가 가지고 있지?”
-응. 왜?
“아. 이번…….”
한율이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이내 재밌는 생각이 났는지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도착하기 전에 연락줄게.”
-알았어.
툭.
한유라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자 한율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그린 후에 고개를 들었다.
경동시장.
대전의 약재 거리처럼 영약 및 영초를 판매하는 시장이었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대전과는 달리 메이커, 즉 이름과 명성이 있는 상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영약이라면 뭐든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드르륵.
“계십니까?”
옆으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선 한율이 카운터 앞에 앉아 있는 상점 주인, 부채와 민소매가 매우 인상적인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장사하나요?”
“그럼 내가 뭐 하는 것 같으냐?”
“쉬는 거 같은데요. 장사는 끝났지만, 퇴근 시간이 남아 쉬는 것 같은 느낌?”
“…….”
뭐지 저건?
인상을 찌푸린 채 손님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노인이 부채를 흔들면서 물었다.
“약 사러 왔냐?”
“네. 영초, 또는 영약이요.”
“왼쪽 진열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한율은 무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진열대 위에 놓인 영초와 영약을 하나씩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