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윙 스네이크(2)
천재.
숲속에 버려져 있던 자신을 마법사의 탑, 일명 마탑이라 불리는 독립 길드로 데려온 마법사가 그렇게 불렀고, 마탑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만난 마법사들이 그렇게 불렀다. 심지어 마탑의 권유로 입학한 아카데미에서도 천재라 불렸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2년.
“으음, 너무 아쉽구나. 재능은 있지만, 신체가 따라주지 않는다니.”
재능?
있다.
마나 친화력?
남들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신체가 재능을 따라가지 못했다.
마나를 보관하는 마나 홀이 문제였다.
마법을 배우지 않은, 아니, 마나 호흡법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보다 작았다.
마나 로드도 문제였다.
일반인보다 좁았고, 대량의 마나를 받아들이면 바로 찢어질 정도로 얇았다.
성장기여서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2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2서클 마법사…….’
2서클 마법사.
문제는 마나 보유량은 1서클 마법사이며 2서클 마법을 사용할 경우, 좁고 얇은 마나로드가 마나를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해 심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법사를 꿈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방향을 돌리려 할 때, 차원 거래라는 기적이, 한율이라는 귀인이 찾아왔다.
‘3서클…….’
천천히 눈을 뜬 레스트가 작은 미소를 그렸다.
자신의 차원에서 자라는 영초와 영약은 효과가 없었지만, 한율의 차원에서 자라는 영초와 영약은 육체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습격이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일까. 마차를 훔쳐보는 사람이 없으니…….
“한율 님.”
[한율: 네. 또 필요한 거라도?]
“아뇨. 한 가지 마법을 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한율: 에? 저 이제 가진 영초가 하나도 없는데요.]
“괜찮습니다. 갑작스럽게 거래를 제안해도 바로 수락해 주셔서, 그러니까 감사의 의미로 전해드리는 거니까요.”
[한율: 오! 서비스인가요?]
“큭. 예, 그렇습니다. 서비스입니다.”
***
제기동역 인근, 느티나무 공원.
“스으읍, 후우.”
게이트를 발견하고 크게 숨을 고른 한율이 걸음을 옮겼다.
E급 몬스터 중 위험도 상위에 위치한 윙 스네이크여서 그런지 헌터는 적었다.
게이트 입구.
[5월 25일. 게이트의 문을 닫습니다. 레온 길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간판에 쓰인 글을 확인한 한율이 책상 앞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
“……?”
시간이 지나도 고개를 들지 않는 사내.
한율이 슬쩍 상체를 내밀어 핸드폰을 훔쳐봤다.
무슨 게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파티를 맺고 레이드 중이라는 걸.
“…….”
“…….”
생각보다 유명한 게임이었는지 구경만 하는데도 재밌었다.
한율이 헛기침을 토해 집중력을 깨트리는 대신 게임을 시청했다.
“좋아. 좋아.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 보죠.”
“…….”
동의한다. 얼마 안 남았다.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 위, HP바가 반이나 소모된 상태.
“페이즈 바뀝니다.”
붉은 드래곤이 입을 쩍 벌렸다.
브레스?
브레스인가!
“산개.”
화려한 장비를 착용한 캐릭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이후 캐릭터들이 모여 있던 장소로 화염 브레스가 쏟아졌다.
다시 돌진하는 캐릭터들.
“좋아. 좋아.”
“……꿀꺽.”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레이드.
한율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레이드를 지켜봤다.
레드 드래곤의 HP바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3분이 흘렀을 때.
“좋았어!”
“축하드립니다!”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한율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양손을 내밀었다.
짝!
“감사합니다!”
“이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레이드였습니다!”
“하하하. 레드 드래곤이 공략 난이도 톱텐에 들어가거든요. 하하하!”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네.”
“누구세요?”
“헌터요.”
“……?”
“……?”
***
“보자. 보자.”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탐지 마법을 사용, 윙 스네이크의 위치를 확인한 한율은 주문 수정에 들어갔다.
“폭발을 지우고.”
몬스터의 사체도 돈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폭발을 없애는 것이 수익에 유리하다.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자폭하기 전에 목숨을 취할 경우, 윙 스네이크 한 마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은 많다.
뱀 가죽, 독주머니, 독에 닿아 부식되지 않은 마석 등등.
“관통 효과를 조금 높이고.”
게이트로 향하는 도중, 레스트에게 물어 폭발을 없애는 방법과 관통을 없애는 방법을 배웠다. 뭐, 기술 거래는 기술 거래라고 오백 원짜리 동전을 꽤 많이 사용해야 했지만 말이다.
저벅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아주 천천히 걸음을 늦춘 한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윙 스네이크는 날개가 달린, 그리고 독을 품은 아나콘다라고 보면 된다.
어린아이 한 명쯤은 한입에 삼킬 것 같은 거대한 뱀.
‘뱀이라서 그런가?’
오싹했다.
“……매직 미사일!”
마법은 기합이 아닌 집중력.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영창을 마쳤음에도 완벽한 마나 화살이 한율의 어깨 위에 생성됐다.
바로 날릴 수 있다.
하지만 공격이 실패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달칵.
쉬이익!
방아쇠를 당겨 석궁에 걸려 있는 화살을 쏘자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던 윙 스네이크가 눈을 떴다.
푸욱!
지면에 박히는 화살.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몸을 움직인 윙 스네이크, 지면에 박힌 화살을 확인하고 바로 한율을 바라본 윙 스네이크가 빠른 속도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샤아아악!
기이한 울음을 터트리며 다가오는 윙 스네이크.
한율은 뒷걸음을 치며 석궁에 화살을 장착했고,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눈앞에서 입을 쩍 벌리는 윙 스네이크를 확인하고 마법을 사용했다.
“실드.”
파앗!
콰득!
한율의 머리를 무는 대신 푸른 방패, 실드를 무는 윙 스네이크.
영창을 끝낸 마법은 계속해서 마나를 주입한다면 취소되지 않고 유지된다.
한율은 바로 땅을 박차 뒤로 몸을 날리면서 맨 처음 준비해 둔 매직 미사일을 조종했다.
푸욱!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턱 아래를 관통해 머리를 뚫고 나오는 매직 미사일.
“……좋았으!”
화살을 쏘아 도발하고, 실드 마법으로 입을 봉쇄, 매직 미사일로 머리를 꿰뚫는다.
한율은 예상한 대로 일이 진행되어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이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팡!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액체가 윙 스네이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스으읍. 머리를 관통해도 바로 안 죽는 건가.”
독액을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윙 스네이크.
“그렇다면.”
죽은 것은 확실하다.
한율은 성큼성큼 걸어가 다음 마법을 사용했다.
“큐어.”
해독 마법, 큐어.
푸른빛이 윙 스네이크의 전신을 둘러쌌고, 오래 지나지 않아 푸른빛이 사라지자 주변을 경계하며 감정 시스템을 사용했다.
“감정.”
이름: 윙 스네이크 사체(10).
설명: 윙 스네이크의 사체.
간단하다. 이름도 간단하고 설명도 간단하다.
한율은 미소를 머금은 채 윙 스네이크의 사체를 회수, 다른 윙 스네이크를 찾아 움직였다.
“감정.”
화살을 쏘아 도발하고, 실드로 막은 후, 매직 미사일로 사냥했다. 여기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큐어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감정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름: 윙 스네이크 사체(8).
설명: 윙 스네이크의 사체. 독을 흡수했다.
“……큐어!”
바로 홀로그램을 없애고 큐어 마법을 사용.
이름: 윙 스네이크 사체(10).
설명: 윙 스네이크의 사체.
“좋았으!”
큐어 마법이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한율은 윙 스네이크에게 해독 마법, 큐어를 사용하면 자폭한 후에도 깨끗한 사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인 이상, 마법은 적아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한 마리당 50만 원.”
윙 스네이크는 독을 품어 상대하기 까다로우며, 생명의 위기를 느끼면 스스로 독주머니를 터트려 자폭하는 몬스터.
그래서 D급 몬스터 중에 가장 시세가 높았다.
“……탐지.”
화아악!
탐지 마법을 사용하니 반경 100m 안에 열다섯 마리의 윙 스네이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십오 곱하기 오십이면.”
750만 원.
7~8명이 한 팀이 되어 활동하는 일반 헌터와는 다르게 동료를 두지 않아 홀로 독식할 수 있다.
“흐흐…….”
골고루 해독 포션을 부어야만 깨끗한 사체를 얻을 수 있는 일반 헌터와는 다르게 해독 포션이 필요 없는 ‘마법사’다.
“흐흐흐흐.”
투자 비용은 0원. 수익은 750만 원.
“후헤, 후헤헤. 꺄르르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떠올리며 한율은 사냥에 나섰다.
***
저벅저벅.
발소리를 들은 사내가 자동 사냥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들었다.
“수고하…….”
“수고하십니다.”
“윙 스네이크 사체?”
“해독 스킬이 있어서요.”
밧줄에 묶인 수십 마리.
멍하니 수십 마리나 되는 윙 스네이크 사체를 바라보던 사내가 다시 억울한 군저씨를 바라봤다.
바닥을 굴렀는지 전역복이 매우 더러웠지만 그게 전부였다. 상처가 없었다. 무기로 추측되는 석궁도 깨끗했다.
“윙 스네이크 사체 처리는 이쪽에서 하시겠습니까?”
이쪽, 협회 길드.
한율이 사내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거래처가 따로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여기에 사인을.”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헌터는 게이트에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 번 사인을 한다.
한율은 사내가 내미는 서류에 사인을 한 뒤, 사내와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아, 네. 내일 뵙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은 사내가 점점 멀어지는 억울한 군저씨를 바라봤다.
“방어 스킬 능력자가 아니었나?”
참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너튜브에 들어가 억울한 군저씨가 나온 진압방송을 확인했다.
분명 경찰 방패를 만들어 아군을 보호하고, 자신을 보호하며 총을 쏘았는데…….
“음?”
억울한 군저씨가 윙 스네이크 사체를 어깨에 짊어진 채 편의점에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여성의 비명.
“…….”
딸랑.
억울한 군저씨가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며 편의점을 나왔다. 들어갈 때와는 다른 점은 사체를 어깨에 짊어지는 대신 일반 쓰레기봉투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는 것.
“큭큭.”
웃음을 터트린 사내가 핸드폰을 들었다.
레온 길드의 부탁이 있었다.
유망한 헌터를 발견하면 연락해 달라는 간단한 의뢰였다.
사내가 전화 아이콘을 클릭하는 대신, 게임 화면으로 돌아가 자동 사냥을 해제했다.
레온 길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소속된 헌터 협회도 부탁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공지했다.
억울한 군저씨와 길드 사이에 주선을 자제하라는.
이해하지 못했다. 방어 능력 사용자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중 능력자라면 그럴 수 있지.”
억울한 군저씨는 방패 스킬 사용자가 아닌, 두 가지 스킬, 아니, 현재까지 두 가지 스킬을 사용하는 다중 능력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