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윙 스네이크(1)
한율은 차원 거래가 아닌 성장 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나는 ‘마법’이라는 초능력을 각성했다고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지금은 무슨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던 한율이 고개를 들었다.
리X지 세대, 한국영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은 실드와 매직 미사일이요.”
“오오! 마법사의 기초 중의 기초 마법, 매직 미사일과 실드.”
“큭큭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오빠.”
“어, 왜.”
“일단 쉰다고?”
“아니.”
쉬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오니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목표가 떠올라서 그럴 수가 없더라고.”
“목표?”
앞치마를 착용한 채로 식사하던 한유라와 눈을 반짝이던 한국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한율을 바라봤다.
“어. 목표.”
“그게 뭔데.”
“내 집 마련, 학비 마련, 그리고 창업자금 마련.”
학비 마련이라는 목표를 듣고 콩나물무침을 입에 넣던 한유라가, 창업이라는 목표를 듣고 된장국을 뜨던 한국영이 모든 동작을 멈추고 한율을 바라봤다.
“오빠.”
“율아.”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유라는 다시 대학 준비하고, 아부지는 지금 일을 때려치워도 경비원 자리라도 찾으실 테니 좀만 기다려요.”
“……오빠. 나 대학 생각 없어.”
“없어도 일단 가.”
한유라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을 포기했다.
“율아.”
“아부지도요. 일을 그만두라는 말은 안 할 테니 야근이라도 그만 해요.”
아버지 한국영은 자식들을 위해 기회만 되면 야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몰래 준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족과 대화를 나누니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몰래 준비한다?
좋다. 두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유라는 입시 준비를 매우 늦게 시작할 것이고, 한국영은 야근 수당을 받기 위해 건강도 생각하지 않고 야근을 할 것이다.
그래서 알렸다. 부담을 느끼더라도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
출근과 등교를 준비하는 가족들을 따라 한율도 나갈 준비를 했다.
“잘 먹었다. 아부지, 그리고 유라야. 버스 앞까지 같이 가자.”
“…….”
입을 열어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한율은 그런 두 사람을 힐끔 훔쳐본 후, 신발장 앞에 앉아 군화를 신었다.
‘너무 이르……기는 개뿔. 시간도 없는데.’
벌써 5월이다. 일반적으로 11월 중순에 수능 시험이 있으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벌써 13년이다. 아부지가 건강을 포기하고 돈을 벌던 것이.
달그락, 쏴아아악.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와 물이 쏟아지는 소리.
“아, 설거지.”
깜빡했다. 한율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한유라를 확인하고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미안. 깜빡했다.”
“됐어.”
탁탁.
가볍게 대답하고 신발을 신는 한유라와 입을 꾹 다문 채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한국영.
한율은 두 사람과 함께 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적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한유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왜.”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왜 아직도 전역복을 입고 있어?”
“게이트 가야 하니까.”
“……그러니까. 왜 전역복을 입고 있냐고.”
“작업복이니까. 새로 구할 때까지는 계속 입어야지.”
타악.
한유라와 한국영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뒤늦게 걸음을 멈춘 한율이 상체를 틀어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작업복?”
“어.”
“전역복이?”
“어.”
“작업복이 전역복이라고?”
“엉.”
“……왜?”
“이게 이래 보여도 효과가 붙은 전역복이니까.”
“군인들은 효과가 붙은 전투복을 입어?”
“그건 아니고. 백색 마석이라는 거 주웠는데, 전역복이 백색 마석을 흡수했어.”
“…….”
***
버스 정류장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배웅한 한율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핸드폰 가게였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전역하셨나 봐요.”
“네. 그래서 폰 하나 만들라고요.”
“이쪽으로 오세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사내가 한율이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려는 것을 단호하게 끊었다.
“아, 일반폰 말고 헌터폰으로 부탁드릴게요.”
“아, 헌터폰 찾으……. 예? 헌터폰이요?”
“네.”
“……아! 억울한 군저씨!”
“하, 하하.”
방송의 힘이 크긴 컸나 보다.
한율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폰을 마련하자마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디 보자.”
아침 식사를 거르고 계속 자려고 했다.
하지만 군대에 익숙해져 있던 몸은 6시 30분이 되자 자동적으로 눈이 팍 뜨였다.
정보는 전날 저녁에 거실에 설치된 유라의 컴퓨터로 미리 모아두었다.
“일단 가까운 지역하고 몬스터는…….”
동대문구에 위치한 던전은 무수히 많다. 그중 신입 헌터가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은 총 셋.
“개미와 뱀, 그리고 트리니.”
레드 앤트가 가득한 동굴형 던전이 하나,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는 윙 스네이크가 서식하는 정글형 던전이 하나, 트리니가 서식하는 산악형 던전이 하나.
“끄으응.”
모두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레드 앤트.
단단한 껍질이 온몸을 뒤덮고 있어 공격력이 낮은 만큼 방어력이 높은 몬스터.
“패스.”
매직 미사일의 파괴력을 생각하면 레드 앤트의 갑옷(껍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무리를 짓고 활동하니 한 번 접촉하면 한꺼번에 5~6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윙 스네이크?”
레드 앤트와는 다르게 무리를 짓고 활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윙 스네이크는 레드 앤트, 트리니와는 다르게 독을 품고 있었고, 생명의 위기를 느끼면 스스로 독주머니를 터트려 주변에 독을 뿌려 D급 몬스터 중 가장 까다로운 몬스터로 불렸다.
“트리니, 아니면 윙 스네이크인데.”
트리니 던전으로 향할지, 윙 스네이크 던전으로 향할지.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율이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일은 잘 해결되셨어요?”
[레스트: 다행히 잘 풀렸습니다. 부식용 독으로 함정을 파니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레스트: 뒤처리가 남아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대략 이틀 뒤?]
“그럼 이틀 뒤에 다시 연락드릴까요?”
[레스트: 아뇨. 3시간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거래 가능하겠습니까?]
자신에게 유리한 급거래다.
이건 못 참지.
한율이 걸음을 멈췄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그는 지하로 내려가며 대화를 이어 가는 대신, 편의점 앞으로 이동해 레스트와 대화를 나눴다.
“필요한 건요?”
[레스트: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병? 통?]
“크기는요?”
[레스트: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으면 합니다.]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액체를 담는 통.
뭐가 있을까.
딸랑.
“수고하세요.”
귓속을 파고드는 맑은 종소리와 여성의 목소리.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한율은 편의점을 나오는 여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레스트에게 물었다.
“안에 물이 들어가 있어도 되나요?”
[레스트: 네. 상관없습니다. 그럼 3시간 뒤…….]
“아뇨. 잠시만요.”
한율이 레스트의 말을 끊고 몸을 돌렸다.
딸랑.
“어서 오세요.”
한율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고 걸음을 옮겼다.
타악.
“얼마죠?”
“800원이요.”
“여기요.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인사를 받으며 나온 한율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뚜껑을 땄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화장실로 향해 문을 잠그고 거래창을 열었다.
“……옴마?”
이름: 1등급 샘물(15).
설명: 없음.
“15나 된다고?”
세종대왕님보다, 이순신 장군님보다 월등히 높다.
한율이 고개를 갸웃할 때, 레스트의 메시지가 앞에 나타났다.
[레스트: 안쪽이 비치는 것을 보니 유리로 된 밀폐 용기입니까?]
“아뇨. 플라……. 아하.”
이해했다.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거였네.’
20세기 기적의 소재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과학이 아닌 마법이 발전한 레스트의 차원을 생각하면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의 가치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플라스틱 물통과 영초의 가치는 총합 30.
[레스트: 당장 필요한 마법이 있으십니까?]
“잠시만요.”
공격 마법? 아니면 방어 마법?
그것도 아니면…….
“치료 마법도 있을까요?”
[레스트: 마나가 아닌 신성력을 쓰는 신성 마법보다 떨어지지만, 치료 마법이 있기는 합니다. 한율 님의 경지를 생각하면 힐 마법과 큐어 마법이 있겠군요.]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초급 치료 마법 힐과 큐어.
“큐어 마법으로 부탁드립니다.”
***
한 번 거래를 할 시, 한율은 총 두 차례에 걸쳐 거래를 한다.
마법서 구입을 위해, 즉 상품 거래를 한 번.
가르침을 받기 위해, 즉 기술 거래를 한 번.
하지만 오랜 대화 끝에 가르침, 기술 거래는 동전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나, 새로운 거래 대상을 찾을 수 있는 한율과는 달리, 자신은 새로운 거래 대상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맨 처음,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율을 압박한 것은 다소 의도적이었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배려하게 되면, 이후에도 거래를 할 때마다 불리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조금 압박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이후에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상황, 그리고 능력을 고려해 서로를 배려하며 거래하고 있었다.
오래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한율: 그럼 이틀 뒤에 다시 연락주세요.]
“네. 몸조심하십시오.”
[한율: 옙.]
짧은 내용을 끝으로 더 이상 메시지가 날아오지 않았다.
금발의 사내, 레스트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에 마차에서 내렸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복면의 사내들과 그런 그들을 둘러싼 용병들.
“찾으셨습니까?”
“예.”
레스트는 고용주, 상행을 이끄는 상인이 황급히 달려와 묻자 한율에게 받은 물통을 가볍게 흔들고서 복면의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레스트는 그들이 쏟아 낸 피를 물통에 담았다.
성큼성큼 걸어온 용병들이 복면의 사내들을 처리하자마자 마차에 올랐다.
“그럼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상인의 외침과 함께 다시 출발하는 마차.
상품을 실은 마차에 올라 잠시 침묵하던 레스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