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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8화 (8/221)

008 집으로(2)

탁, 타다닥타다닥.

신분증을 확인하며 키보드를 두들기던 여직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율 님. 언제 전역하셨나요?”

“일주일 전에……. 네? 전역이요? 각성이 아니라?”

“…….”

“…….”

“……아. 죄, 죄송합니다. 언제 각성하셨나요?”

“일주일 전에요.”

“호, 호호호. 아뇨. 전역 말고 각성이요.”

“네. 일주일 전이요. TV에 나오잖아요.”

자학 개그를 하듯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대답하는 한율.

여직원은 그런 그의 농담에 어색한 미소를 그리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어떤 능력을 각성하셨나요?”

“마법이요.”

“……네?”

“마법.”

“레비오사?”

게임보다는 영화를 먼저 떠올린 것이 분명하다.

한율은 그런 그녀를 위해 매직 미사일 한 발을 생성하고 대답했다.

“……매직 미사일. 이런 마법입니다.”

“마법…….”

“네. 마법.”

“……마법?”

“마법.”

“복수 능력?”

“네.”

“와아…….”

복수 능력자, 또는 다중 능력자라 불리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헌터로서의 기간이 오래된 이들이 대부분.

첫 각성부터 복수 능력을 사용하는 헌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희귀한 것은 분명했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린 여직원이 정신을 차리고 계속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모든 질문이 끝나 설명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어디 보자. 등급 심사 날짜는…….”

“필요 없습니다. 인애 씨.”

“네?”

한율의 대답이라 생각해 고개를 들었던 여직원이 한율 뒤에 서 있는 남성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어나지 마세요. 업무 중이잖아요.”

“아! 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려는 여직원을 만류한 남성이 고개를 돌려 전역복을 착용한 사내, 한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협회, 인사부에 소속된 김주혁이라고 합니다.”

“어, 음. 이번에 각성한 한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씀드릴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연속이다. 한율은 김주혁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주혁이 안내한 곳은 1층에 위치한 커피숍.

“주문하시죠.”

“사 주시는 겁니까?”

“네.”

“아이스 라테요.”

“알겠습니다. 그럼 앉아서 기다려주십시오.”

주문을 위해 김주혁이 떠나자 홀로 남은 한율이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잠깐에 불과하지만, 방송에 나온 탓인지 사람들이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저벅저벅.

달칵.

주문한 음료와 함께 김주혁이 돌아왔다. 한율의 앞에 아이스 카페라테를 내려놓은 그는 맞은편에 착석하자마자 명함을 꺼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인사부 대리, 김주혁이라고 합니다.”

“한율이라고 합니다. 아직 명함은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인사부 대리님께서?”

“인애 씨, 아, 그러니까 한율 님을 담당하시던 여직원께서 설명하실 내용입니다. 한율 님께서는 등급 심사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응?”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전에 위치한 도안숲 게이트 기록과 킬러 비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기록이 있어서 필요 없다는 것이니까요.”

“흐음.”

이해했다. 하지만 등급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을 뿐이다.

“방금 여직원께서 설명하실 거라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따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까?”

“아. 등급 심사가 필요 없으신 분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스카웃은 등급 심사 이후에 시작되고요.”

“……아하.”

협회 소속 헌터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이다.

한율이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명함을 받고 김주혁에게 물었다.

“군대 다녀오셨어요?”

“예.”

“그럼 제가 어떤 말을 할지 아시겠죠?”

“압니다. 우선 푹 쉬시고. 헌터로 활동할 때, 무소속이 아닌 소속 헌터로 활동하실 때 헌터 협회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한율이 다시 허리를 펴고 김주혁을 바라봤다.

“혹시 제가 알아야 할 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

전역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전역복을 입은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몇 시간 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킬러 비 브레이크 진압 작전에 참가한 헌터들이 감정 시스템을 이용해 한율의 전역복을 확인했고, 그 확인한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그럼 집에 가 봐도 될까요?”

“아, 예. 혹시 길드를 찾으신다면 헌터 협회도 한번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예. 그리고 한율 헌터님.”

“네?”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던 한율이 고개만 돌려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네던 김주혁을 바라보는 순간, 그가 빙긋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벅저벅.

타악.

보수 공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낡은 빌라.

승강기도 설치되지 않은 3층짜리 빌라.

잠시 팔짱을 끼고 빌라를 올려다보던 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그러고 보니.”

예전과는 다르다.

“취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어졌다.

“어디 보자.”

헌터가 아닌 집안의 가장으로서 해결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내 집 마련.

“아마 빡시게 일해도 시청역은 안 될 테고.”

헌터 협회가 자리 잡아 서울에서 가장 땅값이 높아진 시청역 인근은 아무리 빡세게 일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수백억부터 시작하니까.

“그래도 길드 근처가 좋겠지.”

집값은 비싸지만, 안전을 위해 협회 또는 길드 인근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유라 학비.”

3D 직종 중 하나인 사체 해체소는 돈을 많이 준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대학 등록금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첫 번째는 내 집 마련, 두 번째는 동생 대학 등록금 준비다.

“세 번째는 창업.”

직접 관리하기 위해서 창업을 세 번째 순위에 둔 것이 아니다.

“울 아부지도 좀 편안하게 사셔야지. 암. 그렇고말고.”

아부지.

참 고생하셨다.

일찍 엄니를 잃었음에도 장례식 이후, 자식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은 아부지.

아들과 딸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체 해체소에 취직한 울 아부지.

“편의점? 카페? 뭐가 좋을까?”

일단 집을 마련하고, 학비를 마련한 뒤에서야 창업을 고민할 수 있다.

집에서 놀게 한다?

아들, 한율은 아버지, 한국영을 안다.

사체 해체소를 때려치우면 아파트 경비원 자리라도 찾을 것이 뻔했다.

“어쨌든 빡시게 일해야겠…….”

“뭐 하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녀의 목소리.

팔짱을 끼고 빌라를 올려다보던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단발머리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소녀.

“고딩이 이 시간까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뭔 개소리야. 아직 여섯 시도 안 됐구만.”

“……글쿤.”

크게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다시 여동생, 한유라를 빤히 바라보는 순간,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야.”

“왜.”

“……아니다. 왜 집 앞에 서 있어?”

“열쇠를 잊어 묵어서?”

“어쩌다?”

어쩌다?

언제 잃어버렸더라?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트리니 토벌할 때였나? 킬러 비 때였나?”

“트리니?”

“몬스터.”

“…….”

킬러 비 브레이크가 처음이 아니었나?

“하아아…….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오야.”

***

“후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등을 두들긴 중년의 사내, 한국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체 해체소는 많이 힘들다.

경력?

상관없다. 경력이 길다고 해서 일이 안 힘들면 그건 일이 아니다.

“……으음.”

자신도 모르게 편의점 앞에서 멈춰 섰다. 뭔가를 잠시 고민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딸아이는 말한다.

동료들하고 놀다가 돌아와도 된다고.

하지만 딸아이가 홀로 집을 지킨다는 생각 때문인지 매번 거절하게 된다.

아들이라도 집에 있었다면 회식까지는 아니어도 편의점에 들러 소주라도 사서 들어가겠지만…….

“이 자식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소주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아들이 떠오르고, 아들이 떠오르니 점심 때 본 방송이 떠올랐다.

전역 당일에 각성했다고 소식을 전한 아들놈.

능력을 확인하겠다며 대전에 머무르던 아들놈.

전역복을 입은 채로 능력을 사용해 몬스터를 토벌하던 아들놈.

억울한 군저씨로 유명한 아들놈.

저벅저벅.

천천히 계단을 오른 한국영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달칵. 끼이익.

세상이 변해도 고3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은 변함이 없다.

문이 너무 낡아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영은 가능한 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저녁 6시, 송파구에 D급 게이…….

들려오는 TV 소리.

‘음?’

딸이 반겨 주는 평소와는 다르게, TV 소리가 자신을 반겨 주었다.

“다녀오셨어요. 식사는?”

“먹고 왔…….”

학교 체육복을 입은 딸아이. 그리고.

“다녀왔슴다.”

군대 체육복을 입은 아들새…… 아들놈.

“……언제 왔냐?”

“오늘요.”

“…….”

할 말이 많다.

무슨 능력을 확인하는 데 일주일이나 걸리냐.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왜 전역복을 입고 다니냐.

억울한 군저씨라는 별명은 왜 붙었느냐.

하지만.

“고생했다.”

아버지이지만, 전역자이기도 했기에 역시 이 말이 먼저 나왔다.

“모두가 가는 군대인데요, 뭘.”

“헌터는 안 가지.”

“…….”

“큭큭큭.”

한율은 입을 다물었고, 한유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영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웃은 한국영은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TV 앞에 자리 잡은 자식들에게 다가갔다.

“아빠. 씻고 와.”

바로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는 한유라의 행동에 방향을 틀어야 했지만.

10분 후.

“씻은 거 맞아?”

한국영은 대답 대신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를 가리켰고, 한유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딸내미의 눈치를 보며 냉장고를 열었다.

“음?”

맥주가 있었다.

“제가 사 왔어요.”

TV에 집중하면서 의문을 풀어 주는 아들놈의 말에 한국영은 피식 실소를 지으며 맥주 두 캔을 꺼내 자식들 옆에 앉았다.

달칵.

“아들아.”

“예. 아부지.”

“이제 어떡할 거냐?”

능력을 각성했다고 해서 모두가 헌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헌터, 국가에서 연락을 보내면 출동하는 헌터도 있다.

“헌터 해야지요.”

“……그러냐.”

“걱정 마세요. 꽤 좋은 능력을 각성했으니까요.”

“…….”

그러고 보니 무슨 능력을 각성한 걸까?

“경찰 방패를 만드는 능력?”

분명 방송에 나온 한율은 경찰 방패 같은 것을 만들었다.

“놉. 마법.”

“…….”

맥주를 들이켜던 한국영이 고개를 돌렸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가족들이 전부 모였을 때 물어볼 생각이었던 한유라도 고개를 돌렸다.

“마법?”

“마법?”

“마법.”

“레비오사……. 아, 그쪽이 아니라고 했지.”

“매직 미사일?”

“키야! 내 능력은 취향을 확인하는 능력도 있네.”

한유라는 영화를 먼저 떠올렸고, 한국영은 게임을 먼저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한율이 소파에 패대기쳐져 있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TV 켜. 소리를 줄이고.”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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