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집으로(1)
킬러 비 던전 브레이크.
막았다. 으레 있는 일이었기에 깔끔하게 막았다.
“어, 임시 헌터 신분증을 발급받으신 한율 님! 한율 님 계십니까!”
모래 자루 위에 앉아 있던 한율이 자신을 부르는 사내의 외침에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요!”
“아! 거기 계……시…….”
“큭큭큭.”
양복을 착용하고 달려오던 사내였다. 점점 속도를 줄인 그가 한율의 복장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소리 죽여 웃었다.
“어, 음. 헌터 한율 님 맞으십니까?”
“예. 병사 한율이 아니라 헌터 한율입니다.”
“푸하하하하!”
다시 큰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는 병장 최현과 중사 강찬혁.
한율은 그런 두 사람을 째려본 뒤에 다시 헌터 협회 관계자를 바라봤다.
“……아! 억울한 군저씨!”
“맞습니다. 작전수당 지급 때문에 오셨나요?”
“네. 현금과 마석, 계좌 이체 방법이 있습니다.”
“현금으로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
“그리고요.”
관계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도?”
“제가요.”
“예.”
“기차표를 끊고 왔거든요.”
“……예.”
“환불 되나요?”
“…….”
관계자가 눈을 깜빡였고, 한율이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푸하하하하!”
다시 들려오는 병사들의 웃음소리.
“……아, 예. 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한 시간이면 됩니다.”
영업용 미소와 함께 말을 마친 관계자가 참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한 형.”
병장 최현이 한율을 불렀다.
“응?”
“바로 갈 거야?”
“그럼? 안 가고 여기 처박혀 있을까?”
“에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밥.
다른 말로 점심 식사.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병사들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강찬혁 중사를 바라봤다.
“……뭐? 왜?”
“강찬 중사님.”
“강찬혁 중사님.”
“아, 나 제대했지. 그럼 찬이 형.”
“그럼 혁이 형이 맞지 않나?”
“더 자연스럽잖아요.”
“그래서 왜.”
“밥 먹고 들갑니까?”
“으음. 소령님께서 허락하면 그래야지. 점심 타임이 끝났으니까.”
병사들이 동료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작게 환호했다.
“군카? 갠카?”
군용카드.
개인카드.
한도가 있는 군용 체크카드로 고를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이다.
“당연히…….”
병사들이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강찬혁 중사는 그들의 기대감을 무너트렸다.
“군카지.”
“에이.”
“우우우. 짠순이.”
“야. 짠돌이지. 짠순이가 아니라.”
“아, 그러네. 우우우. 짠돌이.”
병사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하지만 부대 최강 짠돌이 강찬혁 중사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시꺼. 군카다.”
“한 번쯤은 갠카도 쓰십시오. 강찬 중사님.”
“맞습니다. 어떻게 한 번을 안 쓰십니까.”
다시 한번 병사들이 야유를 던졌다. 하지만 강찬혁 중사는 당당하게 버텼다.
짠돌이, 강찬혁 중사.
맨몸으로 야유를 받아 내는 그의 모습에 병사들이 한숨을 내쉬며 포기하려 할 때, 병사들을 구원할 존재가 나타나 강찬혁 중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퍼억!
“좀 써라. 좀 써. 병사들에게 쓰는 게 그렇게 아깝냐?”
“소대장님. 중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넌 중사이기 전에 헌터이기도 해서 돈 많이 받잖아, 이 자식아.”
틀린 말은 아니다. 군(軍)은 헌터를 모집하기 위해 일반인보다 더 많은 급여를 준다. 뭐, 그만큼 위험한 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럼 오늘만 소대장님께서.”
“……내가 헌터냐? 내가 헌터였어? 우와, 처음 알았네. 내가 헌터였다니.”
“쩝.”
“얌마. 율이도 있다. 한 번쯤은 쏴라. 너 저 녀석 전역할 때까지 쏜 적도 없잖아.”
“그거야 타이밍이…….”
“타이밍은 개뿔. 네가 저 녀석하고 참가한 작전이 몇 갠대.”
***
소대를 넘어 작전에 참가하는 ‘전투 부대’에서 가장 짠돌이라 불리는 강찬혁 중사에게 얻어먹은 한율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대전역으로 향했다.
헌터 협회가 추가로 지급해 준 돈이 있다.
한율은 바로 기차표를 구입한 후, 튀김소보루를 사서 로비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바로 빈자리를 찾는 할아버지를 발견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말이다.
“어디 보자. 스킬창.”
벽에 등을 기대고 튀김소보루를 먹던 한율이 스킬창을 열었다.
이름: 차원 거래.
설명: 타 차원과 거래할 수 있습니다. (거래 대상: 레스트)
“흐음…….”
짧은 신음과 함께 고민하던 한율이 다시 튀김소보루를 입으로 가져갔다.
“분명 능력도 진화한다고 하니까.”
각성자의 성장에 맞춰 능력도 강해진다. 그러니 차원 거래도 분명 자신의 성장에 맞춰 강해질 것이다.
문제는 대체 어떤 방향으로 능력이 강해질 것이냐는 것인데…….
“뭐, 그건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복수 대상일 가능성이 크겠네.”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 대상과 거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한율은 다시 한번 튀김소보루를 베어 물고 다음 스킬을 확인했다.
이름: 레스트의 매직 미사일.
설명: 마법사, 레스트가 개량한 1서클 마법.
스킬창에 등록된 다른 마법, 실드도 매직 미사일과 다르지 않다.
“공격과 방어는 갖췄으니… 다음은 보조를 구입해야 하나?”
레스트의 설명에 따르면 알려진 1서클 마법은 총 열다섯 가지.
그중 전투 마법사라면 반드시 필요한 마법이 세 가지, 마법사라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마법이 두 가지.
“가치가 비슷하면…….”
마법 하나에 가치 40으로 잡으면 가치 200을 준비해야 한다. 급매가 아닌, 일반적인 거래라면 영약 또는 영초를 요구하니.
“열심히 벌어야지. 시벌.”
대전을 대표하는 특산품(?)답게 어느새 튀김소보루는 말끔히 사라졌다.
빈 봉지를 버리고 손을 탁탁 턴 한율이 스킬창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기차 출발 시각이 가까워지자 스킬창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기차에 올라 표를 확인하며 자리를 찾았다.
“좋아…….”
아직 출발하지 않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기차역.
“드디어 집에 간다.”
***
“끄으응!”
‘설마 이동 중에 사건이 터지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켠 한율이 경쾌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했다.
임시 헌터 신분증 발급받았지만, 말 그대로 임시 헌터 신분증.
“에휴.”
집으로 바로 가고 싶다.
전역복을 벗고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
지하철 노선도 앞에 서 있던 한율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1호선에 올랐다. 집으로 바로 가고 싶어도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향한 곳은 시청역.
정확하게는 서울 시청 인근에 건설된 헌터 협회.
저벅저벅.
지이잉.
자연스럽게 열리는 자동문을 통과해 협회에 들어선 한율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호오?”
각성 사실을 알리고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신입 헌터들과 양복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반인들이 보였다.
모두 자신의 일이 있기 때문인지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율이 뒤늦게 걸음을 옮기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엥? 군인?”
“직업 군인이신가?”
“아냐. 저거 전역 마크잖아.”
“억울한 군저씨!”
누군가의 외침에 호기심을 가지고 훔쳐보던 사람들의 외침에, 업무를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번호표를 발급받는 기계 앞.
한율은 모니터를 이리저리 터치해 튀어나온 번호표를 손에 들고 로비 의자에 앉았다.
“…….”
수군수군.
“…….”
수군수군.
거참 시끄럽다. 작게 한숨을 내쉰 한율은 주변을 쓰윽 둘러봤고, 사람들이 시선이 마주치기 직전에 고개를 숙이는 것을 확인하고 TV를 시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벅저벅.
“안녕하십니까.”
양복을 입은 한 사내가 한율 앞에 서서 인사를 건넸다.
“응? 아, 네. 안녕하세요?”
“억울한 군저씨. 맞으시죠?”
“서울까지 퍼졌냐…….”
“예?”
“아, 아뇨. 예. 억울한 군저씨입니다.”
“저는 은평구에 위치한 흑사자 길드 인사 담당, 이지원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며칠 전에 전역을 명받은, 플러스 군을 나오자마자 각성한 한율이라고 합니다.”
뭔 뜻인지 알지?
너도 신체 건강한 남자니까 대충 무슨 뜻인지 알지?
나 전역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흑사자 길드의 매니저, 이지원이 입을 다물었다.
한율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에 명함만 내밀었다.
“나중에 연락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파이팅!”
“파이팅!”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내였기 때문에 한율은 직접 지갑을 열어 명함을 꽂아 넣었다.
이지원이 떠나자 다시 뉴스를 시청했다.
-오늘의 인터넷 뉴스 톱텐! 7위는 억울한 군저씨!
유명한 여성 아이돌이 밝은 목소리로 오늘의 인터넷 뉴스를 소개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다리를 쩍 벌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 한율에게.
전역복을 입고 있는 한율에게.
-유명세를 얻기 위한 어느 각성자가 전역복을 입고 활동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최초로 올라온 게시판 글을 보면 전역을 명받고 군을 나오기가 무섭게 능력을 각성했다고 하네요. 일단 이번에 발생한 킬러 비 게이트 사건에서도 활약하셨는데요. 방송 영상을 확인해 볼까요?
여성 아이돌 가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이 바뀌었다.
전역 마크가 떡하니 붙어 있는 군복을 착용한 사내가 총기를 들고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이 송출되었다.
-진짜라면 불쌍하다. 진짜라면 정말 억울하겠다는 댓글이 많다고 하네요. 아인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이돌 출신 방송인, 아인이 여성 아이돌 가수의 물음에 아주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대답?
그 씁쓸한 미소가 대답이었다.
누군가는 키득 웃으며 훔쳐보고, 누군가는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인 한율?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띵동.
짧은 알림과 함께 ‘136번’을 찾는 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등록하러 오셨나요?”
“네.”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한율이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