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억울한 군저씨(1)
대전 부사동.
인삼 약초 특화 거리.
게이트와 몬스터, 그리고 마나를 흡수한 영초의 등장으로 유명해져 지금은 줄여서 약재 거리라 불리는 유명지.
딸랑.
“실례합니다.”
“어서 오쇼.”
“찾고 있는 게 있는데요.”
“어떤 거.”
“독을 찾고 있습니다.”
“……?”
TV를 보며 손님을 맞이했던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군인.
전역 마크가 떡하니 붙어 있는 군모와 군복이 매우 인상적인 젊은 청년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뭘 찾는다고?”
“독이요.”
“먹으면 뒈지는?”
“옙.”
“……각성자냐?”
“옙. 여기 신분증.”
한율이 대답과 동시에 지갑을 열어 임시 헌터 신분증을 보여 줬다.
“각성자 맞네. 근데 왜 전역복이냐?”
“전역했습니다.”
“…….”
“…….”
침묵이 이어졌다. 기나긴 침묵 끝에 노인이 다시 물었다.
“아아. 동원 훈련?”
군대를 다녀온 후에 각성을 겪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동원 훈련을 다녀왔나 싶어서 물었지만 한율의 대답은 듣는 이마저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일주일 전에 전역했습니다.”
“……각성은?”
“일주일 전에 했습니다.”
“전역 날?”
“전역을 명받고 입구를 나오기가 무섭게.”
“……읏차.”
저벅, 저벅, 저벅.
툭, 툭, 툭.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가 한율의 어깨를 두들긴 그는 아주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 뭐가 필요하다고?”
“독이요. 부식 효과를 지닌 독. 액체면 좋겠네요.”
“그래. 독도 괴물하고 싸우는 데 효과가 좋다고 해서 우리도 구해 놨지. 기다려 봐라.”
“아, 그리고.”
“또 뭐 필요한 게 있고?”
“영초도 있나요?”
“비싸기는 하지만 있지.”
“그럼 혹시 마…….”
마약도 있나요?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미소 때문에 실수로 물을 뻔했다. 한율은 점점 멀어지던 노인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자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럼 영초와 부식 효과를 지닌 맹독 좀 주세요.”
“오야. 기다려라. 얼마나 필요하냐?”
“어디 보자.”
헌터 협회가 정한 D급 마석과 E급 마석의 가격은 각각 150만 원과 50만 원.
까닥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직업이 헌터였기 때문에 150만 원과 50만 원은 그렇게 높은 금액이 아니었다.
“백오십, 아니, 백사십만 원이요.”
“백오십이면 백오십이지. 백사십?”
“집에는 가야 하니까요.”
노인이 다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집?”
“네.”
“어딘데?”
“집은 서울입니다.”
“……그래?”
“예.”
“음? 일주일 전에 전역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각성했잖아요. 근처 모텔에서 능력을 확인하느라…….”
능력을 확인한다. 몬스터를 상대로 국가를 수호하는 헌터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군인들 돈 많이 받지 않나?”
고작 몇십만 원을 받고 뺑이…… 아니, 복무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실전에 투입되기 때문에 군인들의 월급은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실전수당이니 위험수당이니 이런저런 수당을 붙여준다.
그래도 중소기업보다는 못하지만.
“집에 부쳤죠.”
“교통비는 남겨 뒀을 거 아냐.”
“딱 교통비만 남겨 뒀죠.”
“…….”
대책 없는 놈.
헛웃음을 터트렸던 노인이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집에 간다고?”
“네.”
“근데 왜 독이 필요하냐? 아, 앉아서 기다려라.”
“감사합니다. 제가 운이 더럽게 없거든요. 집에 가던 도중에 또 몬스터와 싸울 거 같아서요.”
“…….”
전역 당일, 그것도 전역을 명받고 군을 나오기가 무섭게 각성했다고 했다.
노인은 입을 다문 채 독을 찾았다.
그런 노인의 반응에 한율은 어색한 미소를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일반 약재도 팔고, 영초도 판다. 무기로 사용할 독도 파는 약초 가게.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가게를 둘러보던 한율이 바로 흥미를 잃고 아직 켜져 있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뉴스가 진행 중이었다.
게이트를 발견했다는 소식, 헌터와는 관련이 없는 일상 소식, 연예계 소식 등등.
한율은 멍하니 뉴스를 시청했다.
10분쯤이나 지났을까.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카운터 앞으로 이동했다.
“부식 효과를 가진 맹독이다. 감정해 봐라.”
“감정.”
이름: 킬 비의 맹독(10).
설명: 벌형 몬스터 킬 비의 독, 강력한 부식 효과를 가졌다.
“좋네요.”
“써 봤냐?”
“군인이잖아요. 아니, 군인이었잖아요.”
실제로는 가치를 보고 좋은(?) 맹독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가치라는 지원 시스템 자체가 차원 거래를 통해 얻은 다른 헌터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한율은 자신의 전직을 언급했고, 노인이 다시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바로 다음 물건을 감정했다.
이름: 킬 비의 꿀(15).
설명: 정화를 마친 벌형 몬스터 킬 비의 꿀.
효과: 신체 강화(0~1%).
“이것도 킬 비?”
“시장 나가서 우측으로 꺾으면 바로 게이트가 나오거든.”
“헤에.”
이름만 보면 벌로 추측된다.
작고 숫자가 많은 매직 미사일과는 상성이 나쁜 몬스터.
“비싸요?”
“별로.”
“신체 강화 효과를 지녔는데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안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하긴.”
일반적으로 헌터들은 1%부터 시작하는 영초를 찾는다. 백 번 복용해야 한 번 효과를 얻을 정도로 성공률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독은 30만 원, 꿀은 50만 원.”
“……비싼데요.”
“이것도 깎아 준 거야. 불……. 흠흠! 꼭 아들 같아서.”
정확하게는 불쌍해서였을 것이다.
한율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노인을 위해 자연스럽게 떠오른 뒷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킬 비의 독과 킬 비의 꿀을 구입했다.
“나중에 또 오…….”
갓 전역한 군인, 그것도 전역 당일에 헌터로 각성한 이에게 자기 부대와 가까운 지역으로 또 놀러 오라는 말이 인사가 될까?
“고생하고.”
“네. 수고하세요.”
노인은 인사말을 바꾸었고, 한율은 그런 그에게 일반적인 인사말을 건네고 가게를 나왔다.
“남은 돈은 10만 원.”
집에 갈 차비로 써야 하니 약재 거리를 나와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대전역.
정확하게는 집.
“전역하고 일주일. 허허.”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터트렸던 한율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전역에 들어섰다.
소리를 내어 말해야 글로 바뀌어 상대에게 말이 전달된다. 그래서 한율은 시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표를 구입하자마자 기차역으로 내려가 차원 거래 능력을 사용했다.
“레스트 님. 시간 되세요?”
[레스트: 거래 준비가 되셨습니까?]
“예. 킬 비의 독이라는 부식 효과를 지닌 맹독하고 킬 비의 꿀이라 불리는 영초, 아니, 영약? 영꿀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영약 효과를 지닌 꿀을 구했슴다.”
[레스트: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하니.]
차원 거래 능력을 숨기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는 자신처럼 레스트 또한 능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 개량된 실드 마법서(50).
설명: 레스트가 개량한 1서클 마법, 실드 설명서.
마법서와 함께 기술 거래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가치는 130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거래 방식을 결정한 상태였다.
킬 비의 꿀, 킬 비의 독, 마지막으로 500원짜리 동전으로 가치 130을 맞춘 한율은 벤치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레스트에게 실드 마법을 배웠다.
“……실드.”
파앗.
영창을 마치자 생성되는 타원형 방패.
[레스트: 상상하는 대로 변합니다. 돔 형태가 될 수도, 방패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레스트: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네.”
있다.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
“레스트 님, 마법은 기합에 따라 효과가 올라갑니까?”
기합을 주고 영창을 하니 매직 미사일 두 발이 생성됐다.
[레스트: 기합 말입니까?]
한율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 트리니를 상대할 당시에 관해 설명했다.
[레스트: 아아, 어떻게 보면 기합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마법인데요?”
무슨 마법이 근접 전투 능력자들을 연상시키는 기합에 따라 강해지고 약해지지?
[레스트: 실드 마법이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형태가 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마법은 마법사의 집중력에 따라 능력이 강해지고 약해집니다. 그러니 기합에 따라 효과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죠.]
“기합…….”
기합(氣合).
특정한 행동을 하기 위해 정신과 힘을 집중하는 행위.
“즉, 기합을 주면 마법이 강해진다는 것이군요.”
[레스트: 정확하게는 영창에 얼마나 집중하느냐,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형태를 그릴 수 있느냐죠.]
형태를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은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을 것이니 영창, 즉 주문을 외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레스트: 아마 이틀 정도는 연락을 못 드릴 거 같습니다.]
맹독을 주문했고, 마약을 주문했다. 분명 무슨 일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기에 한율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레스트가 처한 상황은 한율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레스트: 뭐, 이번 대화가 마지막일 수도 있고요.]
“……엄청 위험한 일인가 보네요.”
[레스트: 예. 꽤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쨌든 예상대로 일을 마치면 이틀 뒤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레스트: 한율 님도 조심하십시오. 매번 운이 나쁘다고 하셨으니까요.]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세상은 어디서부터 자신에게 신호를 보낸 것일까?
할아버지가 게이트를 설명할 때?
레스트가 우스갯소리로 운이 나쁘다고 농담을 건넸을 때?
-알립니다. 게이트 폭주 현상이 발생하기까지 약 3시간 남았습니다. 위치는 킬 비의 던전이라 불리는 D급 게이트, 장소는 한밭 종합 운동장, 장소는 한밭 종합 운동장입니다. 헌터들은 바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헌터들은 바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차는 도착했다.
“…….”
10분만 지나면 출발이다.
“시벌.”
무시할까?
불가능하다.
한율은 억울한 군저씨.
도안숲 E급 게이트에서 활동하며 매우 유명해졌다.
한율은 한숨을 내쉬면서 기차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 대전역 앞, 택시 승차장으로 향했다.
브레이크 현상이 발발할 경우 헌터들의 교통비는 헌터 협회에서 지불한다.
“한밭 종합 운동장이요.”
한율이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며 장소를 알렸다.
“오, 헌터분이……시……구나?”
헌터다. 웃으며 반겨 주던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한율의 복장이 눈에 들어오자 말을 천천히 흐렸다.
“억울한 군저씨?”
“…….”
이제는 택시 기사도 자신을 안다.
아마 갓 각성한 헌터 중에 자신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하, 하하. 예, 맞습니다. 억울한 군저씹니다. 빨리 가 주세요.”
“오. 오오.”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택시 기사가 액셀을 밟았다.
기사 아저씨는 운전을 하던 도중에도 힐끔힐끔 백미러로 한율을 훔쳐보다 영업용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난 건가요. 하하하. 운이 안 좋으시군요.”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도중에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난 건데요.”
“…….”
“…….”
“……하하하. 운이 나쁘시군요. 그, 그럼 각성은 복무 중에 해서 전역을 명받았습니까?”
“전역 당일에 각성을 했죠.”
“그, 그렇군요.”
운이 없다.
멍하니 백미러를 통해 택시 기사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한율은 먼저 고개를 돌리는 기사의 행동에 또 한 번 울컥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